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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전생 더 빌런-163화 (163/367)

15-인간의 탈을 쓴 카미사마

아…….

이관영은 속으로는 안심하면서도, 또 한편으론 한숨을 내쉬었다.

기분이 그러세요? 이 사회성이라곤 개미 똥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개또라이 기분파 새끼님?

물론 경완의 말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상식인이라면 감정에 휘둘리기보다는 냉정하게 본인의 손익을 따져서 행동해야지 않겠는가?

물론 이관영은 상대방의 비위를 맞춰야 하는 지금 상황에서 그따위 훈계로 분위기를 흐릴 순 없었다. 대신 더 현실적이고 맘 편한 해결책을 모색했다.

“얼마나 받아야 흡족하게 일본을 도와줄 수 있겠습니까?”

“그야 저도 모르죠. 제가 뭐 세상 물정을 알겠어요?”

“…….”

사실 돈에 연연하지 않기 때문이지만 상대방 입장에서 납득이 되는 말을 해줘야 더 귀찮지 않게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 말은 이관영에게 상당한 설득력이 있었다.

사회에 진출해서 제대로 부귀와 명성을 누려본 적이 없는 이경완이 얼마에 마음이 흔들리는지는 본인도 장담할 수 없으리라. 더구나 본인들로부터 갈취(?)한 돈마저도 거의 다 공익재단에 기부했다며?

이관영은 이 부분에서 해법이 있으리라 보았다. 돈보다는 마음을 움직이는 정성, 이른바 VIP를 모시는 서비스 정신이 필요하지 않을까?

본인도 예전엔 일본에서 그런 대접을 받아봤기 때문에 때론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이해하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의논해서 다시 방문하겠습니다.”

“언제 올 건데요?”

“최대한 빨리 오겠습니다.”

이관영은 서둘러 움직였고 다음 날 바로 경완의 집을 방문했다. 주한일본대사와 함께 말이다.

“주한일본대사인 요시다라고 합니다.”

일본인 특유의 예의범절이 가득한 표정과 품행으로 요시다는 경완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경완도 호들갑을 떨며 허리를 숙였다.

“아이고, 이 귀한 곳에 누추한 분이.”

“…….”

“당황해서 말실수했어요.”

당황은 이쪽에서 한 거고.

이관영은 애써 웃어 보였지만 속으로는 좀 초조했다. 경완의 태도가 정중해도 너무 정중했던 것이다. 너무 정중해서 반어적으로 오히려 비꼬는 느낌이랄까? 방금 말실수한 것도 마음에 걸리고.

하지만 그는 그것이 그저 본인만의 느낌이길 바랐다.

주한일본대사인 요시다는 덕담으로 이야기를 꺼냈다.

“한국이 개발한 기술 덕분에 일본 부흥이 가능하게 됐다는 점부터 먼저 감사드리고 싶스므니다.”

“그런 감사는 과학자들에게 해야 하지 않나요?”

“이 상이 그 기술 개발에 도움을 준 훌륭한 오퍼레이터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슴니다. 그리고 지금은 황사를 막는 매우 유능한 오퍼레이터라는 사실도 말입니다.”

“에이~ 그거 다 과장이에요, 과장.”

“과장이라니요. 이미 김 상이 이 상에 대해 여러 번 칭찬하지 않아스므니까?”

요시다가 말하는 김 상이란, 김마리아, 그녀를 뜻했다.

경완은 겸양을 떠는 걸 멈추지 않았다.

“그 아줌마 원래 주변 사람 칭찬 잘하고 다니는 사람이라 그래요.”

“그래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면 언급조차 안 했을 거 아니므니까?”

“그러니까 과장이 되어 있다는 말이죠.”

어떻게든 얼굴에 금칠을 해주려는 요시다와 서둘러 그 금칠을 씻어내는 경완 사이의 자강두천은 답답함을 참지 못한 이관영이 끼어들면서 멈췄다.

“자, 여기서 이러지 말고 저희가 좋은 곳에 이 상을 모시는 건 어떻습니까?”

“하하. 그거 좋습니다. 원래 좋은 이야기엔 좋은 자리에서 술과 함께해야 하는 거 아니겠스므니까?”

아유, 참도 그러시겠네요.

좋은 곳에서 좋은 음식과 좋은 술로 경완의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만들어 보겠다는 심산이었지만 경완엔 통하지 않았다.

“나가기 귀찮은데요.”

“…….”

뜻밖의 반응에 이관영은 잠시 웃는 얼굴 그대로 굳었다가 그를 설득하듯 말을 이었다.

“경완 씨, 저의 정말 좋은 곳에 갈 거랍니다.”

“누구랑요?”

“저희와…….”

경완의 한심하다는 표정에 이관영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파악했다.

경완과 자신들이 그 좋다는 곳에 놀러 가기에는 나이 차이가 너무 났다.

이관영은 순간 자신도 늙었다는 걸 느꼈다. 일본에서 접대를 받은 경험이 너무 몸에 배어서인지 일본식 접대가 경완에게 안 맞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솔직히 자신도 경완과 같은 입장이라면 좋아할 리 없을 것이다. 늙다리들이랑 여자 끼고 술 마시며 놀아봤자 얼마나 재밌겠는가? 세대차이라는 단어가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이관영은 엇나간 상황이 더 멀리 가기 전혀 서둘러 수습했다.

“아무튼 이경완 씨는 절대로 일본에 가지 말아야 할 이유 같은 건 없죠?”

“그렇죠. 세상에 절대라는 게 어디 있겠어요?”

“오늘은 그 정도로 충분합니다.”

이관영은 미소를 유지한 채 고개를 끄덕이며 서둘러 요시다의 귀에 속삭였다. 일본어라서 무슨 말인지 이해는 못 했지만 대충 경완이 느낀 바로 표현하자면 ‘분위기 씹창내지 말고 여기서 빠지자’ 정도의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이관영이 속삭이는 말을 들은 요시다는 다소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렇게 말했다.

“미안하지만 내가 잠시 바쁜 스케줄이 있다는 걸 까먹었스므니다. 오늘은 그저 우리 일본이 이 상을 매우 높게 보고 있다, 이 말을 하기 위해 왔다는 것만 기억해 주십쇼.”

“가시는 건가요?”

“좀 더 실무에 관한 건 적당한 적임자는 찾아서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요?”

주한일본대사라는 사람이 직접 찾아왔으면 일단 경완에게 긍정적인 대답만이 아니라 어느 정도 약속을 듣고 가는 것이 정상이 아닌가?

하지만 일단 경완을 설득하는 전략의 첫 단추부터 잘못 끼었다는 것을 깨닫고 곧장 뒤로 물러나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판단력이었다. 뇌물 받는 실력만으로 국정원 차장의 자리에 오른 건 아닌 모양이었다.

“차장님은 잠시 저 좀 보고 가세요.”

조용히 요시다와 나가던 이관영은 경완의 말에 빠르게 눈알을 굴리더니 얼른 웃는 얼굴로 요시다를 배웅한 후 도로 안으로 들어왔다.

그에게 경완이 물었다.

“뭐 하자는 거예요?”

“진짜 일본은 경완 씨의 도움이 간절히 필요합니다. 이건 기밀이지만 동토차수벽에 문제가 생겼어요.”

동토차수벽. 고열로 바닥을 뚫고 지하까지 내려간 핵연료가 지하수를 통해 해양으로 유출되는 걸 막기 위해 지하에 냉매를 넣어 얼음벽을 형성한다는 개념이었다.

그 실효성에 대한 의문은 그 방법론이 제기되었을 때부터 꾸준히 있어왔고, 기어코 문제가 터졌다.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땅속으로 파고 들어간 고농도, 고준위성 방사성 물질이 지하수에 섞여 그대로 해양으로 방출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경완이 찜찜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도움이 필요하다는 당위성은 충분히 이해했다. 아마 가만히 두면 자신에게도 영향이 오겠지. 환경문제라는 건 항상 몇 놈이 싸지르고 대다수가 고통받는 것이 일반적이니까. 이것이 바로 공유지의 비극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괘씸하지 않은가? 일은 누가 저질렀는데?

경완의 표정을 세밀하게 살피던 이관영은 그가 별로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을 이해했는지 급히 말을 이었다.

“물론 저번에 대화했던 것처럼 경완 씨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어요. 그러니 흡족한 합의점을 찾기 위해 노력해 보겠습니다.”

“흐음…….”

경완은 더 말하지 않고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확실히 문제는 자신의 기분이 다였다.

대승적인 차원에서 도와주는 것이 옳다, 머리는 그렇게 말하고 있지만 가슴이 조까!라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솔직히 상황이 궁지에 몰리면 ‘다 같이 X되어 보자’라는 일종의 자포자기식 악의가 인간에겐 분명히 있었다. 미국에서 일어난 여러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난 것도 그런 악의, 잠들어 있던 야수성의 발현이었다.

차라리 세상이 불타고 파괴되길 바라는 마음은 궁지에 몰린 인간의 마음에서 충분히 독버섯처럼 피어날 수 있는 것이다. 맹수가 사나워지는 경우는 춥고 배고플 때였다.

하지만 경완은 그렇게 궁지에 몰린 상황은 아니었다. 본인 명의의 자택도 있고 능력도 있는 인간이 궁지에 몰릴 일이 얼마나 있겠는가?

“일단은 알았어요.”

그는 그렇게 말하며 일단 공을 저쪽에 넘겼다. 과연 어떤 정성으로 자신의 마음을 야들야들하게 녹일지, 그 수완을 지켜볼 생각이었다.

뭐,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니까.

무엇보다 저자세로 나오는 이관영의 태도가 불쾌한 기분을 좀 누그러뜨렸다. 경완이 저들의 노력에 대해 느끼는 귀찮음이 그나마 수용 가능해진 건 예전과는 마치 다른 사람 같이 그의 눈치를 살피며 정중하게 나오는 이관영의 모습이 때문이었다.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변할 수가 있을까?

그건 아마 경완의 위상이 과거의 그저 한낱 국회의원 테러범에서 일국의 국운을 바꿀 정도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부디 마음을 열고 전향적인 태도로 기다려주셨으면 해요.”

“그게 말 몇 마디로 되면 그쪽이 이렇게까지 나오진 않겠죠.”

“하하.”

이관영은 경완의 말에 그저 웃었다. 속은 자괴감을 느끼고 있지만 이경완이라는 인간의 대단함을 인정하고 나니 썩어 문드러지지는 않고 오히려 과거의 자신이 했던 행동이 조금은 후회될 정도였다.

그때 좋은 관계를 쌓아놨으면 이번 일이 조금은 편했을 텐데 말이다. 참, 사람 앞날이란 예측하기 힘들다는 것을 느끼는 이관영이었다.

다음 날 국정원 요원 둘과 주한일본대사관에서 나온 여성이 경완을 찾아왔다.

“안녕하세요. 마츠키라고 합니다.”

상당히 능숙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그녀는 주한일본대사관의 연구원이라고 했다. 한국의 문화를 연구하여 한일 우호와 관계 증진을 위해 무엇을 활용할 수 있을까를 연구한다나?

한일 양국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생각하면 그러한 연구가 필요한 건 분명해 보이지만 그녀가 왜 이 일의 실무자로서 경완과 협상을 하게 되었는지는 미지수였다.

아니, 솔직히 뻔했다. 경완을 보며 수줍어하는 미소를 짓는 마츠키의 미모는 수준급이었니까.

노골적이지 않지만 의도가 명확한 미인계란 그 미인계를 전개하는 사람이 마츠키라는 여성이기에 성립했다. 딱 봐도 이런 일에 경험이 없다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경완이 대놓고 물었다.

“혹시 저 꼬셔보라는 말이라도 들었어요?”

그 말에 그녀는 눈알을 좌우로 굴리며 슬쩍 국정원에서 나온 요원을 보더니 이내 천진할 정도로 웃으면서 대답했다.

“네.”

그녀의 말에 국정원에서 나온 직원 둘이 망했다, 낭패다라는 표정으로 두 눈을 찔끔 감거나 한 손으로 눈을 가리는 것이 경완의 눈에도 들어왔다.

경완은 그녀의 태도도 그렇고, 너무 노골적인 일본 측의 태도도 그렇고 참 어이가 없었다.

그런 그의 표정을 본 마츠키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자원했어요.”

“뭘요?”

“이 상과 우호적인 관계를 쌓는 일에요.”

경완이 고개를 갸웃했다.

“왜요?”

“그야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어서요.”

“왜요?”

“이 상은 본인이 얼마나 유명한지 모르세요?”

“알긴 하죠.”

“아니요. 잘 모르시는 것 같아요.”

그녀는 생글거리는 미소로 일본에 퍼진 경완에 대한 인식에 대해서 설명했다.

윤간의 위기에 빠진 여성을 구하고, 순순히 그 업을 지고 감옥에 들어가고, 거대 권력에 맞서 동료의 복수를 할 정도로 정의와 의리가 있는 남자.

경완은 자신의 귀에 들어온 말을 의심했다.

“경찰인질범이 아니라요?”

“뭐. 일본 경찰에 대한 인식은 일본 내에서도 별로 안 좋으니까요.”

무한전생-더 빌런 16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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