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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전생 더 빌런-164화 (164/367)

15-인간의 탈을 쓴 카미사마

그녀가 이어서 설명하길, 일본 경찰을 점잖게 비하하는 단어가 국영 폭력단이란다.

왜냐면 상당히 고압적이며, 반말은 일쑤에, 권위적인 데다가 경찰기동대가 시위진압이라도 올 때는 맞아 죽을 각오를 해야 할 정도로 폭력과 과잉진압이 심하다는 것이다.

한국 경찰은 일 제대로 안 한다고 욕먹는다면 이쪽 경찰은 관료선민주의가 심해서 욕먹는달까?

그런 인식이 없잖아 있으니 경완이 일본에서 벌인 인질극에도 우익만 울컥할 뿐 평범한 사람들은 별 관심이 없거나 오히려 공감하는 부분이 없잖아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인질극을 벌인 이유가 밥을 안 줘서라지 않는가?

그래서 한편으론 그 사건을 두고 ‘한국인이 밥에 진심이라더니 진짜였네~’라는 우스갯소리도 종종 나온다며 마츠키는 조신하게 웃었다.

“이야~”

경완은 감탄했다. 세상은 정말 요지경이었다.

그가 감탄하자 그녀는 말을 이었다.

“그리고 혼자 몸으로 중국 대륙에서 오는 황사를 막아내는 유일한 초능력자이기도 하잖아요. 후쿠시마 재건을 바라는 사람들이 이 상에게 얼마나 기대를 하는지 아시나요?”

“어……. 그 말은 무지 부담되는걸요?”

“후쿠시마 사태로 고향을 떠난 사람들은 아마 이 상이 후쿠시마에 오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을 거예요. 아마 일본에 방문하시는 그날이 축제날이 될 수도 있어요.”

“…….”

경완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것이 혐한 서적이 수시로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오랜 혐한의 나라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이란 말인가?

하지만 일본 내 한류에 대한 반응을 생각하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이내 납득하고 말았다. 혐한을 하는 만큼이나 한국에 관심이 많고 한국의 것을 좋아하는 이중적인 나라이니 경완 본인에 대해 이중적인 입장이 있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는 입맛을 다셨다. 방사능으로 고향을 잃은 무고한 이들을 생각하니 입맛이 착잡했다. 솔직히 그도 사람인데 측은지심이 조금도 없을까?

솔직히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약한 그였기에 일본인에 대한 편견이나 반감이 그리 크진 않았다. 단순히 ‘일본인이라서’ 따위의 이유는 그의 호오(好惡)에 영향을 끼칠 수 없었다.

마츠키는 웃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물론 이 상이 그 사람들 입장을 다 고려할 필요는 없어요. 이 상에겐 이 상의 생각과 입장이 있는 거니까요. 그저 솔직하게 원하는 바를 말씀해 주시면 우리는 최대한 그에 부응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해요.”

경완은 감탄했다. 설득력이라는 관점에서 김마리아 소장에 준하는 수준의 사람을 또 보다니 말이다. 분명 자신에 대한 연구를 많이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문제는 진짜 일본에 원하는 것이 없다는 경완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전 진짜 일본에 원하는 게 없다니까요. 그러니까 뭘 원하는지 말하라고 해도 딱히 말할 것도 없어요.”

경완의 말에 마츠키는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미소와 함께 이렇게 제안했다.

“어. 그럼 일단 후불로 하는 게 어떨까요?”

“하하하.”

경완은 어이가 없어 웃었다. 그건 마츠키가 뻔뻔한 제안을 내밀었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그 뻔뻔한 제안에도 별로 기분이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놀랍게도 그녀에겐 혹여나 상대가 불쾌할 수도 있는 제안을 그리 기분 나쁘지 않게 제시하는 재능이 있었다.

그녀는 웃는 그를 향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경완 씨에겐 무고한 사람들에 대한 동정심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맞나요?”

경완은 웃는 얼굴 그대로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무능하고 부패한 윗대가리로 인해 고통을 겪는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그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전생에서 한두 번 겪었나? 빡쳐서 프래깅(상관 살해)도 무수히 많이 했다. 쿠데타도 존나 많이 해봤고.

아무튼 그런 경완의 반응에 마츠키는 조금 안심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요구사항이 당장에 기억나지 않으시면 나중에 말씀해 주시고, 우선 힘든 사람들을 위해 도움을 주시면 안 될까요?”

“그래서 전혀 제안할 게 없다는 건가요?”

“아뇨! 일단 여기 저희 쪽 제안을 가져오기는 했는데 별로 마음에 드실지 몰라서요.”

그녀는 얼른 서류 몇 개를 꺼냈다. 50억 엔을 지불한다는 계약서, 후쿠시마 근처에 있는 부동산, 그 밖에 일본 채권과 일본 영주권도 옵션으로 있었다.

마츠키가 말을 이었다.

“원래는 시민권을 드리려고 했는데 좀 눈치가 보여서.”

누구 눈치를 본다는 걸까? 한국? 미국? 그것도 아니면 중국? 아마 경완의 눈치도 좀 살피는 것 같았다. 그가 일본에 있을 때 벌인 경시청 인질사건을 생각하면 그가 일본에 호의적인 인상을 가지고 있다고는 생각하기 힘드니 말이다.

경완은 계약서를 다 살펴보고는 손을 내밀었다.

“팬 주세요.”

“사인하시게요?”

마츠키의 표정이 무척 밝아졌다.

경완은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기분 문제였을 뿐이다. 장기적으로 생각해 보면 해주는 게 자신에게도 이익이었다.

돈이야 둘째 치고, 일단 입에 들어가는 해산물을 찜찜한 기분으로 먹긴 싫었다. 놀랍게도 한국인의 해산물 소비량은 세계 1위였다. 섬나라인 일본도 제쳤다.

그는 계약서에 사인하면서 주의사항을 말했다.

“일단 부동산은 현금화해서 제가 말하는 재단에 지급해 주시고요,”

“네!”

“혹시나 제가 일본에 갔을 때 불미스러운 일이 없도록 꼴 보기 싫은 인간들이 눈앞에 안 나타났으면 합니다.”

“어~ 어떤.”

마츠키가 불안한 표정으로 말꼬리를 흐리자 경완이 웃으며 설명해 주었다.

“뭔가 좋은 일이 생기면 한 숟가락 올리려는 인간들 있잖아요. 한 거 하나도 없는데 기자들 앞에서 같이 사진 한 방 찍고는 마치 자신이 큰일 했다는 듯이 생색내는 인간들 말이에요.”

“아…….”

마츠키가 어색하게 웃었다. 경완이 누구를 말하는지 정확히 이해가 되었기 때문이다.

경완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이건 절대로 농담이 아니에요. 한 번 와보라고 하세요. 어떤 꼴을 당하나.”

“바, 반드시 보고할게요.”

마츠키는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경완이 결국 일본 후쿠시마를 돕기로 결정을 내리자 많은 사람들이 움직였다. 언론에도 극비로 하긴 했지만 이경완이라는 사람의 위험함도 현실이고, 그에 대한 세계적 관심, 혹은 욕심도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완의 일본행에 동행할 사람은 여럿이었다. 미국에선 김준과 제프리, 거기에 CIA요원 둘을 더 붙였고, 한국에선 국정원 요원들을 붙였다. 일본에선 안내와 접대를 위해 마츠키를 포함한 외교부 직원을 붙였고 말이다.

마츠키가 말했다.

“원하시면 일본 온천 여행도 즐기실 수 있어요. 맛집 탐방도 좋아하신다죠? 저희가 다 부담할게요.”

그녀는 경완이 일본으로 향하는 동안 그가 지루해하지 않도록 그의 입맛에 맞는 화제들을 꺼냈다. 그러면서 이성적인 관심이 있다는 걸 어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뜻밖의 사람이 한 명 더 붙었다.

“소장님이 여기엔 무슨 일로?”

“그야 경완 씨가 크게 힘쓴다는데 제가 안 올 수가 있나요.”

경완은 마리아의 어깨너머로 일본이 보내준 총리 전용 전세기, 보잉 777에 용도를 알 수 없는 장비가 실리는 것이 보였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냥 경완 씨는 경완 씨가 할 일만 하면 되니까요?”

“…….”

“왜 그래요? 제가 한 입으로 두말한 적 있어요?”

없긴 하지. 경완은 고개를 저어 그녀의 말에 동의했다.

하지만 솔직히 겁나 신경 쓰였다. 경완이 사면을 받고 나온 지난 한 달 동안 그녀가 접근이나 접촉을 시도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거 있지 않은가? 원래 하던 짓을 갑자기 안 하면 왜 하던 지랄을 안 하느냐고 주변 사람이 의아해지는 거 말이다.

마리아가 그런 경우였다. 경완의 잠재된 역량과 그가 발휘할 수 있는 초능력의 가능성에 호기심을 불태우던 그녀였는데 그 관심이 딱 끊기자 당사자인 경완은 의아해질 수밖에 없었다.

뭐 나름 그 이유를 추론해 보기는 했다.

“위버멘시와의 협동연구가 잘 되어 가나 보네요.”

“…….”

그녀는 안경 너머로 경완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도대체 무슨 속인지 알 수 없는 표정을 경완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낯가죽 두껍고 속내 읽기 힘든 건 경완도 지지 않았다. 경완이 지루하지 않도록 옆에서 말을 걸어주던 마츠키도 분위기를 읽고 숨을 죽였다.

그런 눈싸움이 문득 의미 없다고 여긴 것인지 그녀가 입을 열었다.

“너무 잘 돼서 큰일이죠.”

“예를 들면요?”

“말해 주면 함께할래요?”

기밀이거든요.

그런 뉘앙스에 경완은 곧바로 지지쳤다.

“말 안 한 걸로 하죠.”

그런 경완의 대꾸에 그녀는 피식 웃더니 다시 서류에 집중했고, 눈치를 보던 마츠키는 다시 웃으며 경완과 즐거운 대화를 나누었다. 함께 즐거운 시간이었는지 홀로 즐거운 시간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한국과 일본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았기에 그 즐거운(?)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나리타 공항에 착륙한 후 비행기에서 내리던 경완은 자신의 앞에 쫙 깔린 붉은 카펫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를 웃는 얼굴로 맞이하는 저 사람은 경완의 기억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일본 총리가 아니던가?

경완은 주변은 돌아보았다. 귀빈을 환영하기 위한 의장대는 있었지만 다행히 깃발을 흔들기 위해 동원된 민간인은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사람을 대거 불러 모아 환영 행사를 했다면 경완은 총리 폭행죄로 잡혀갔을지도 모를 테니까.

“총리님께서 반갑다고 하시네요.”

마츠키가 총리가 뭐라뭐라 씨부리는 말을 통역해 주었다.

“저는 별로 안 반갑다고 해주세요.”

“…….”

“그냥 적당히 받아주세요.”

마츠키가 곤란해하는 표정을 짓자 경완은 그렇게 타협했다.

그 말에 그녀는 어색하게 웃으며 경완도 반가워한다고 총리에게 말해주었고 그는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웃는 얼굴에 굳이 침을 못 뱉을 건 아니지만 경완은 마주 잡아주고는 총리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었다.

걸어가면서 중간에 마츠키를 통역으로 대화를 나누었는데, 총리의 말은 대부분 경완의 능력에 큰 기대를 걸고 있으며 잘 부탁한다는 말이었다.

이에 대한 경완의 대꾸는 빨리 일 처리하고 놀러 다니고 싶다는 말이었으니 총리는 자신의 호탕한 모습을 자랑하려는 듯 웃으며 경완에게 감사의 말을 꺼냈다.

그 모습에 왠지 기분이 좋아 보였는데, 총리에게 경완의 말은 후쿠시마 제염작업을 빨리 처리해 주겠다는 말로 들렸기 때문이다.

마츠키의 배려로 경완의 숙소나 이동 일정은 빠르게 잡혔으며 중간에 기자들이 막아서며 플래쉬 세례를 터뜨리는 일도 없었다.

한국이라면 기레기들이 빠르게 달려들었겠지만 ‘언론통제가 완성된 민주주의 국가’(?)라서 그런지 알 권리랍시고 똥파리처럼 달려들어 경완을 불쾌하게 하는 기자는 없었다.

여러모로 참으로 다행이었다.

다음날 후쿠시마 인근에 도착한 경완은 스마트 포스필드가 설치된 건물로 들어섰다. 식사하느라 좀 늦어서 그런지 마리아 소장이 먼저 도착해 장비를 점검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옆과 뒤에서 일본의 연구자, 혹은 과학자로 보이는 이들이 서서 그녀의 설명을 경청하고 있었다.

경완을 수행하던 마츠키가 그녀에게 쪼르르 다가가서는 말을 걸었고 그 바람에 뒤돌아본 마리아는 경완을 발견했다.

“시작하죠.”

“조종석은요?”

“저기예요.”

경완은 그녀가 가리는 스마트 포스필드 장비에 앉았다. 곧 우우웅 하는 고주파음과 함께 장비가 가동했고 경완의 의식은 육체를 벗어나 확장되었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다.

무한전생-더 빌런 16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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