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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전생 더 빌런-166화 (166/367)

15-인간의 탈을 쓴 카미사마

그는 마츠키를 허리를 안아 일으켜 세우며 흑연의 초능력을 전개했다.

그의 몸에서 폭발하듯 솟구친 흑연이 온천으로 쏘아지는 초능력자를 가로막았다.

하지만 그 침입자의 존재에 뭉게뭉게 퍼뜨린 흑연의 초능력은 얄짤 없이 뚫리고 말았다.

경완은 미간을 좁혔다.

뚫린 방식이 그의 예상을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방어막으로 친 염동력은 단순히 운동량을 감당하지 못해서 뚫린 것이 아니라 침입자의 몸 주변에 쳐진 것으로 보이는 투명한 능력에 갈가리 분쇄되듯 잘려나간 것이다.

그리고 경완은 그 능력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절단?’

절단의 속성을 가진 능력이 흑연의 염동력과 그 S입자 구성체마저 잘라내 파훼하고 있었다.

경완은 거세게 출렁이는 온천에서 천천히 허리를 일으키는 사람을 보았다.

남자? 아니 여자였다. 그런데 외모가 참으로 개성적이었다. 머리는 빡빡 밀었고 귀와 입술 코에 피어싱이 줄줄이 달려있었다. 두 손으로 다 세지 못할 피어싱의 개수는 어림잡아 서른 개 이상.

아무리 피어싱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너무 과해서 제정신인지 의심될 정도였다.

그녀는 빼빼 마른 몸에 아랫단이 너덜너덜한 망토 같은 것을 두르고 있었는데 경완을 향해 위험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광기.

그 눈빛을 표현하는 단어는 그 단어로 충분했다.

경완은 딱 봐도 미친년을 보면서 마츠키의 귀에 속삭였다.

“얼른 피하세요.”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검은 연기가 여자의 몸에 닿는 순간 갈가리 갈리듯 흩어지는 광경에 마츠키는 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온천을 빠져나갔다.

하지만 피어싱의 낯선 여자는 오직 경완에게만 관심이 있는 듯 광기 어린 뜨거운 눈빛으로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마츠키가 탈의실로 모습을 감추자 경완이 피어싱 여자를 향해 입을 열었다.

“누구세요? 후아유?”

그 말에 여자를 고개를 갸웃하며 손을 휘둘렀다. 그리고 여자의 손에서 튀어나온 투명하고 커다란 칼날이 탈의실을 향해 날아갔다.

미친!

경완은 기겁하며 초능력을 일으켰다. 온천 바닥이 뒤집어져 여자가 쏘아낸 절단의 바람을 막아내고 대신 두 동강 났다. 뒤집어진 온천 바닥이 아니었다면 탈의실에서 급히 옷을 입고 있는 마츠키가 반토막이 났으리라.

경완은 혀를 내둘렀다.

“미친년일세?”

피어싱의 미친년이 입을 연 건 그때였다.

“[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 old one. $!%@”

“뭐라고 씨부리는 건데?”

확실한 건 눈앞의 여자가 일본인은 확실히 아니라는 것이다. 그녀의 입에서 튀어나온 언어는 일본어도, 영어도 아니었으니까. 느낌상 스페인어 같았다. 자세히 보니 피어싱을 여럿 한 얼굴도 동양계의 얼굴과는 거리가 멀었다.

경완은 질문을 하면서 반 토막 난 덩어리를 미친년에게 집어던졌다. 호의로 왔는지 적의로 왔는지는 여전히 미지수지만 하는 짓거리를 보니 얽히고 싶지 않은 년이었다.

그의 공격에 여자는 두 팔로 머리를 가리고 몸을 낮췄다. 그러자 그녀의 몸에 던져진 거대한 덩어리가 그녀의 몸에 닿자마자 잘게 썬 야채조각처럼 썰려나가 그녀가 있던 자리에 수북이 쌓였다.

그녀가 있던 자리? 그 수북이 쌓인 중앙에 있어야 할 여자는 없었다. 그녀는 어느새 경완의 옆으로 달려들고 있었다.

초감각을 펼쳐두고 있었기에 그런 섬전과 같은 기동은 경완에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는 그 전광석화 같은 공격에 침착하게 뛰어오르는 것으로 피하며 상대를 분석했다.

능력이 몇 개지? 절단능력만 있는 건가? 이 잔상이 남을 정도의 신속한 이동은 근력 강화, 아니면 능력의 응용?

몸 근처에 다가가기만 해도 갈가리 잘려나가니 공방일체의 기술임은 틀림없었다.

경완의 몸이 공중으로 뛰어오르는 동시에 힉스장 간섭능력이 주변을 짓눌렀다.

“끼야악!”

여자는 비명 같은 기합성을 지르며 땅을 박찼다. 보통 사람 같았으면 무거워진 자신의 몸에 그대로 무릎을 꿇었을 텐데 신체강화능력도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뛰어오른 순간 한층 강해진 힉스장에 끝내 그에게 닿지 못하고 추락했다.

경완은 염동력으로 여자가 갈아버리고 온천수에 흠뻑 젖은 돌조각들을 한껏 퍼올려 여자의 몸 위에 쏟아버렸다.

피어스 여자의 몸에 두른 절단의 초능력은 S입자 구성체마저 갈아버리는 공수일체의 훌륭한 능력이었지만 물질 자체를 소멸시키거나 지워 버릴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힉스장 간섭능력은 힉스장이란 것을 초능력으로 제어하여 힉스장이 만들어내는 중력장을 조절하는, 간접능력에 해당했기 때문에 피어스 여자가 아무리 출력을 올려도 그녀를 구속하는 중력장의 족쇄는 쉽게 벗어던질 수 없었다.

피어싱 여자의 위로 돌조각이 섞인 대량의 물이 쏟아져 내렸다. 힉스장에 의해 무거워진 무게는 그 아래에 깔린 사람을 납작하게 짓누르기 충분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나타난 두 사람으로 인해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후드를 뒤집어써 얼굴을 반쯤 가린 두 사람이 능력을 전개했다.

반구 형태의 투명한 무언가가 생겨나 피어싱 여자를 감싸자, 쏟아져 내리는 돌더미가 투명한 배리어에 막혔다.

또 한 사람은 입을 크게 벌리며 경완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Asfixiarse de miedo!”

그러자 그의 입에서 충격파가 튀어나왔다. 경완이 신속하게 검은 연기를 펼쳐 충격파를 막아냈지만 충격파는 검은 연기로 만들어진 방어막을 흔들며 경완에게까지 영향을 주었다.

그 충격파는 단순한 충격파가 아니었다. 물리적인 충격은 검은 연기로 흘려냈지만 충격파에 정신파동이 섞여 있었다.

면으로 형상화된 정신계 능력자의 패스가 소리에 실려 음속의 속도로 전신을 훑고 지나갔다.

그리고 거기에 심상이 담긴 정신파동이 신경계를 자극하자 경완의 마음에 공포가 피어올랐다. 작게 피어오른 공포는 그의 기억을 훑어 과거에 가장 무서웠던 기억을 생생하게 불러왔다.

공포의 원천. 가장 오래된 자. 우주의 시작부터 존재했으며 우주의 끝을 살라먹는 자. 모든 필멸자의 종말.

하지만 다행인 점은 경완의 정신은 코스믹 호러, 그 우주적 공포를 이겨냈던 기억도 즉시 불러왔다. 그가 무수한 전생을 거치는 동안 정신을 공격하는 이능 하나 겪어보지 못했으랴? 정신공격에 대처하는 방법 하나쯤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방식의 정신공격은 이번 생에는 처음이라 잠시 멈칫했다. 그리고 이렇게나 효과적이고 세련된 방식도 여태 본 적이 없었다. 방금 경완이 당한 공격은 이런 것이었다.

정신계 능력자가 사용하는 패스를 소리에 실어 채찍으로 후려치듯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작동기제만 정신에 상흔처럼 남기고 패스를 끊어버리는 방식이었다.

이로써 패스의 연결을 통해 심상의 역류를 방지했으니, 비유하자면 기존의 패스를 연결하는 정신계 능력이 서로의 몸을 붙잡고 완력과 체력을 겨루는 레슬링이라면, 이 기술은 나만 때리는 타격기라 할 수 있었다.

아니었다면 경완의 기억과 감정이 패스를 타고 역류해 놈의 정신에 타격을 주었을 것이다.

아무튼, 이러한 공세는 저들에 잠깐의 시간을 벌어주기는 했다. 한 1초 정도?

공포에 짓눌렸던 시설의 기억을 추스른 경완의 서늘한 시선이 아래를 향했다. 검은 연기를 밟은 채 하늘에서 그들을 내려다보는 그의 시선은 단순히 불쾌한 무언가를 목격했을 때와는 달랐다. 불쾌한 것을 넘어 해를 끼치는 무언가를 보는 시선이었다.

그런데 경완은 이내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그를 향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며 경건하게 두 손을 모으고 있었던 것이다.

불쾌감을 응징으로 갈음하려고 했던 경완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이게 뭥미?’

그는 그들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에서 기시감을 느꼈다. 잘 생각해 보니 마치 언젠가의 전생에서 사이비 교주 노릇할 때의 느낌이 들었다.

물론 그런 느낌은 오래가지 않았다. 갑작스런 습격에 놀란 일본 당국과 경완과 함께 왔던 미국 FBI 등이 급히 사람을 출동시켰기 때문이다.

세 명의 괴한들도 그들의 등장을 알아차렸지만 별로 걱정하는 티는 보이지 않았다. 그저 두 손을 모으고 우상을 숭배하듯 경완을 올려다보며 뭔가 주문 같은 것을 중얼거릴 뿐.

일본 경찰들이 그런 그들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어디 후쿠시마를 구원해 주신 귀하신 분께 함부로 접근하는 것인가?

괴한들이 초능력자였기에 일본 경찰들은 총기를 빼 들며 항복을 종용했다.

하지만 그들이 항복할 리가 없었다.

경완에게 정신공격을 했던 괴한이 준비동작도 없이 입을 벌리자 공포를 일으키는 펄스가 사방으로 퍼졌다.

그 영향은 매우 컸다. 일본 경찰, FBI 할 것 없이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호흡곤란 증세를 보이거나 공황발작, 심하면 정신을 잃고 기절하기까지 했다.

멀쩡한 건 오직 경완뿐.

그는 이번에는 조금의 집중력도 잃지 않고 가슴에서 피어오르는 공포를 무의식 너머로 흘려보내며 이 사태를 일으킨 괴한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그 모습에 괴한들은 급히 사방으로 흩어지듯 도망치기 시작했다.

경완은 그런 그들의 등을 향해 이것저것 맞으면 꽤나 아픈 것들을 던져 보았지만 각자의 능력을 동원해서 잘도 피해내고서는 그대로 종적을 감췄다.

경완은 굳이 그들을 쫓지 않았다. 뭐랄까, 딱히 자신을 적대한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쫓아가서 뭐하나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저들에 대한 처우를 어찌해야 할지 바로 결정이 내려지지 않았던 탓이 컸다.

처음이야 적대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그 뒤엔 갑자기 매우 순종적인 모습을 보이니, 굳이 쫓아가면서까지 조져야 할 필요성을 못 느꼈다. 도주하는 실력도 범상치 않아서 쫓는 것도 꽤나 힘들 것 같고 말이다.

그가 하늘에서 땅으로 착지해 주변을 둘러보자 정신을 차린 사람들이 하나둘씩 머리를 붙잡고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중 제프리가 인상을 쓰며 경완에게 와서 물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광역 정신공격 같은데요?”

“경완 씨는 아무렇지도 않습니까?”

“제 멘탈 튼튼한 거 아시잖아요?”

손사래치는 경완의 말에 제프리는 역시나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현존 최강의 초능력자는 정신력도 최강인 모양이었다.

하긴 무려 중국 공산당을 굴복시킨 남자니까. 아직 그와 같은 실적으로 자신의 능력을 증명한 초능력자는 없었다. 무려 중국이라는 대국을 일신으로 상대해 양보를 얻어낸 초능력자가 또 있겠는가?

하지만 제프리는 다행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먼저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저기…….”

“왜요?”

“앞 좀 가리시죠.”

“흐음…….”

제프리가 지적하며 슬쩍 시선을 돌리자 경완은 살짝 고개를 숙였다. 적나라하게 모습을 드러낸 똘똘이가 시야에 들어왔다.

흐음……. 아랫도리를 가린 수건이 어디 갔지? 분명 가렸었는데? 공중으로 점프할 때 날아갔나?

그의 시선에 저기 바닥에 떨어져 있는 젖은 수건이 들어왔다. 그가 손가락을 까딱이자 그의 손끝에서 튀어나온 검은 연기가 마치 카멜레온의 혓바닥처럼 수건을 낚아챘다.

경완은 그 수건을 허리에 두르며 태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일단 다른 온천으로 가죠.”

피해보상은 뭐 일본에서 알아서 하겠지.

* * *

의문의 습격자(?)에 대한 추적은 실패로 끝났다. 일본 당국이 보유한 초능력 전력으로는 그들을 추적하여 잡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광역 공포로 정신을 무너뜨리는 놈이 가장 골치 아팠다. 정신공격에 대한 마땅한 대처 방법이 악으로 깡으로 버티는 것밖에 없는 현상황에서 놈이 지르는 목소리와 함께 퍼지는 공포의 심상은 일본의 초능력 영웅들, 저팬히어로들의 추격도 끝내 뿌리쳤다.

무한전생-더 빌런 16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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