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인간의 탈을 쓴 카미사마
위성, 헬기 등의 장비를 이용한 추적도 여의치 않았다.
셋 다 신체강화능력자라도 되는지 보통 사람의 근력과 지구력을 초월한 신체능력으로 후지산의 우거진 숲으로 들어가 끝내 추적을 뿌리쳤다
강력한 복합능력자임이 확실했고 그만한 능력자는 일본에서도 드물었다. 아마 그들이 도주에 주력하지 않고 맞상대하는 걸 선택했다면 적잖은 사상자가 났을 것이다.
그것을 인지한 일본 정부는 자신들의 소중한 초능력 전력을 더 투입하기가 꺼려졌다. 놈들의 의도가 무엇인지도 분명치 않은데 괜한 충돌을 빚어 귀중한 초능력 전력에 손실을 입고 싶지 않았다.
초능력자가 곧 국력.
이 사실을 몸소 중국을 상대로, 또 후쿠시마 방사능을 상대로 증명한 이가 바로 일본에 있잖은가?
이경완. 일본인이 아니라 한국인인 것이 너무나 아쉬운 남자.
게다가 아무리 봐도 범인들이 바로 그를 노리고 온 것 같으니 굳이 행정력과 치안력을 소모해 가며 위험한 복합능력자를 잡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아니! 이경완이 일본 후쿠시마에 무엇을 해주었는데!’라고 하는 인간도 충분히 있을 법했으나 원래 화장실 들어가기 전과 후의 마음은 다른 법.
물론 도덕 기준이 높은 사람은 그런 본성을 경계하겠지만, 냄새나는 것은 덮어버리고, 여럿이 건너면 빨간불도 무섭지 않으며, 죄란 ‘남에게 들켜야’ 죄라는 일본 특유의 문화를 생각하면, 그 세 명의 괴한을 경완에게 떠넘긴다는 일본 정부의 후안무치한 발상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나름의 논리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현장만 봐도 이경완을 노리고 습격한 것이 분명해 보였으니 굳이 다른 곳에 인력을 투입할 필요가 있나?
그리고 그의 능력을 생각하면 굳이 일본 측이 피해를 무릅쓰고 경호 인력을 파견할 필요가 없어 보였다.
설마 그가 고작 세 명에게 당하겠는가?
물론 경완은 이런 일본의 방침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일본이라는 나라에 애당초 관심이나 기대 같은 것이 없었으니 후안무치하든 말든 계약사항만 준수한다면 그걸로 족했다.
오히려 그의 관심은 일본의 행태보다는 차라리 자신과 조우했던 그 세 명에게 기울어져 있었다. 그편이 더 생산적이었고 말이다.
“에~ 그러니까 본국의 분석에 따르면 아무래도 공포의 사제들로 보입니다.”
“그게 뭐였더라…… 아.”
제프리의 설명에 경완이 기억을 더듬다가 마인드 브레이커란 키워드를 떠올렸다.
경완이 마인드 브레이커의 패스를 통해 오히려 놈의 정신을 공격한 뒤에 발생한 컬트 집단? 혹은 조직이라고 했던가?
제프리가 경완에게 의견을 물었다.
“왜 놈들이 경완 씨를 습격했을까요?”
“저야 모르죠.”
경완은 그렇게 대답했지만 사실 짐작이 가는 가설이 없는 건 아니었다.
공포의 사제들이라는 컬트 집단이 탄생하게 된 계기는 결국 마인드 브레이커와 본인 사이에 있었던 일이 아니겠는가?
그 일로 인해 종교집단화 된 그들은 자신들이 겪었던 종교적(?) 사건의 원인을, 마치 순례자가 성지를 찾아 헤매듯 찾아서 거슬러 올라왔음이 분명했다.
아마 처음의 습격은 자신에 대한 시험이었고, 뒤이은 굴종은 그들 신앙의 원천이 이경완이라는 확신 때문이리라.
그런 생각이 든 경완은 일이 귀찮게 돌아가리라는 것을 확신했다. 원래 인간은 불가해한 것에 대해 극단적인 반응을 보이게 마련이었다. 숭배하거나 공격하거나.
아무리 컬트적인 집단이라고 해도 사람이 모이면 다양한 의견이 있게 마련.
숭배냐, 공격이냐 어느 하나로 의견이 모여도 골치, 서로 의견합치를 이루지 못해서 분열해도 골치였다. 분열하면 분열하는 대로 원인을 경완에게 돌리고 원망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경완은 결국 한숨을 내쉬며 제프리에게 물었다.
“하아~ 아무래도 놈들을 조져야 할 것 같은데 조력을 구할만한 곳이 없나요?”
“네?”
“적의 적은 아군이라고 하잖아요. 수소문이라도 해줘요.”
경완의 부탁에 제프리는 웬일이냐는 시선으로 경완을 쳐다보았다. 사면받고 나서는 완전히 게을러터진 생활을 하고 있던 그가 이렇게 나올 줄이야.
하지만 경완은 굉장히 피곤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을 이었다.
“미친놈들이 미친짓을 하기 전에 빨리 치워버려야 마음이 편하겠어요.”
피곤해하는 표정이었지만 거기서 제프리는 불길한 느낌을 받았는지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상부에 전달해 놓겠습니다.”
경완은 일본 일정을 서둘러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일본 측은 그런 그의 행동에 안심과 속시원함, 아쉬움을 동시에 느꼈다. 일본의 입장에서 이경완이라는 인물은 마냥 가까이하기엔 너무나 위험한 당신이었지만 전략적으로 친분을 다져야 하는 인물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래도 접대의 일본이라는 명성(?)이 아직 빛바래지는 않았는지 그가 미국으로 떠날 때까지 삼엄한 호위를 제공해주었다.
그렇다. 경완은 신속한 일처리를 위해 한국으로 가지 않고 곧장 미국으로 향했다. 아무리 일본까지 온 놈들이라도 다시 태평양을 건너 미국까지 쫓아오기엔 분명 시간이 걸릴 테니까.
이런 경완의 부지런함이 낯선지 제프리가 감탄했다.
“신속하게 움직이시네요.”
‘이례적으로’라는 단어는 일부러 뺐다. 아무리 제프리가 김준보다 눈치가 좀 떨어지기는 하지만 그래도 사회인이었다.
경완이 고개를 끄덕였다.
“미친놈들은 그 행동이 어디로 튈지 모르니까요.”
광신도도 마찬가지다. 언제 어떻게 갑작스럽게 급발진을 할지 모른다. 판데믹이 일어날지도 모르니 예배를 자제하라고 해도, 자신과 이웃들의 건강보다 본인들의 신앙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 그들의 스탠스가 아니던가?
경완의 말에 제프리는 공감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온천에 턱까지 잠기도록 몸을 푹 담갔다.
“온천 여행도 이게 마지막이라니 아쉽네요.”
“뭐, 언젠가는 기회가 있겠죠.”
경완은 입으로는 그렇게 말했지만 다시 일본에 올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일본이 제2의 진주만 폭격 같은 일을 저지른다면 또 몰라도 말이다.
온천욕을 끝내고 잠자리에 들기 위해 움직이던 경완은 복도에서 마츠키와 마주쳤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
“저기, 이 상.”
“네.”
“진지하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녀의 표정에는 굳은 결심이 서려 있었고, 경완의 뒤를 따라오던 제프리는 슬쩍 분위기를 파악하고는 자리를 비켜주었다.
“이 상.”
“네.”
“저와 교제해 주세요!”
눈을 꼭 감고 외치듯 말하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청춘 드라마의 한 장면을 연상시킬 정도로 풋풋하고 흐뭇했지만 경완은 그런 감성에 젖기에는 너무나 마모된 인간이었다.
“마음은 고맙지만 무리에요. 이유는 굳이 다시 설명하지 않아도 알겠죠?”
그녀와 함께 온천에 몸을 담갔을 때 설명했으니까.
경완의 거절에 혹시나 했던 그녀의 얼굴은 역시나라는 실망감으로 물들었다.
“아쉽네요.”
“마츠키 씨는 예쁘니까 저보다 훨씬 좋은 남자를 만날 수 있을 거예요.”
“글쎄요.”
쓰게 웃는 표정에 뭔가 사연이 있는 것 같았지만 경완은 굳이 캐묻지 않았다. 그녀와의 인연은 여기까지.
그것이 서로에게 좋은 법이었다.
그가 그녀를 지나서 걸을 때 누군가가 저 멀리서 다급히 뛰어왔다. 그리고는 그녀에게 일본어로 뭐라고 다급하게 말했다.
마츠키는 무슨 말을 들었는지 경완을 불렀다.
“이 상!”
“왜요?”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무슨 일인데요?”
“쓰나미데스!”
난데없이 쓰나미가 밀려오고 있었다.
* * *
이번 쓰나미의 원인은 후쿠시마 남동쪽에서 일어난 해저지진이었다. 진도 약 5 정도에 예측되는 쓰나미의 높이는 약 5미터.
그래, 쓰나미가 몰려오는 게 사실이라 치자. 그런데 자신보고 뭐 어쩌라고?
경완은 어이가 없었지만 마츠키가 그에게 도움을 요청한 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 때문이 아니라 충분히 근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름 아닌 그 근거는 마리아 소장의 이론이었다.
“쓰나미를 막는 거요? 충분히 가능해요.”
“어떻게요?”
“그야 스마트 포스필드와 당신의 능력으로 말이죠. 현재 일본에 들어와 있는 장비는 총 열 대. 장비를 모두 연동시키면 지금 오고 있는 쓰나미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어요.”
그녀는 지도를 보여주며 개략적인 설명을 이었다;
“스마트 포스필드를 이용해서 쓰나미를 막는 방법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어요. 하나는 역장으로 구성된 방파제를 만드는 방법과 또 하나는 스마트 포스필드를 매개로 쓰나미의 에너지를 상쇄하는 파동을 일으키는 거죠.”
경완은 물었다.
“뭐가 가장 편하고 쉬운 방법이죠?”
“동일한 수준으로 피해를 낮춘다고 할 때 역장 방파제는 힘들지만 쉽고, 상쇄파동을 일으키는 후자의 방식은 덜 힘들지만 어렵죠.”
“한마디로 머리가 좋으면 몸이 덜 고생한다는 말이네요.”
“그래요.”
스마트 포스필드로 일으키는 역장은 작용반작용이란 물리학 법칙이 작용해서 어떤 힘을 막으면 그에 대한 반작용이 발생한다. 그래서 스마트 포스필드장비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 이 반작용을 대신 받아 분산하는 초능력 철기둥이었다. 철기둥이 스마트 포스필드라는 구조물에서 일종의 지지대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열 기 분량의 스마트 포스필드 장치를 연동시킨다고 해도 자연의 거대한 에너지가 실린 쓰나미를 완전히 받아낼 순 없었다. 5미터 높이의 쓰나미? 무게만 해도 몇십만 톤, 몇백만 톤은 가뿐히 넘을 것이다.
“그래서 역장으로 방파제를 만드는 방식은 포스필드 장비의 용량이 최대 한계 출력이 되죠. 사용자인 경완 씨가 100% 가동 효율을 이끌어낸다고 해도 그 한계는 변하지 않아요. 하지만 상쇄파동 방식은 달라요. 사용자의 역량과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어요.”
“이거 무조건 상쇄파동 방식으로 가라는 말로 들리는데요?”
“경완 씨가 단순무식한 사람이었다면 이런 방법은 말도 안 해요. 당신이 똑똑한 사람이니 말하는 거죠. 당신의 표현을 빌리자면 머리가 좋아서 몸이 덜 고생하는 방식을 제안하는 거예요.”
“예이예이.”
경완은 자신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마리아의 말에 두손두발 다 들었다. 실제로 말이다.
“…뭐하시는 거죠?”
“항복의 자세?”
“강아지예요?”
개가 배를 드러내고 눕는 게 굴복의 의미라던가? 경완은 앉아서 그랬지만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
꼴 보기 싫은지 마리아가 미간을 좁혔다.
“장난칠 시간이 없으니 진지하게 들어요.”
그녀는 신속하게 상쇄파동을 이용한 쓰나미 피해 저감 대책을 설명했다.
거대한 해일이라는 파동을 상쇄하기 위해 반대 위상의 파동을 일으키는 것은 사실상 지구라는 거대한 존재가 방출한 만큼이나 거대한 에너지원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이므로 불가능한 방안이었지만 해일이 가진 에너지 자체를 이용할 방법이 있다면 말이 달라질 수 있었다.
그녀는 간단히 그림을 그려가며 그녀의 방식을 설명했고 경완은 그녀의 설명을 이렇게 축약했다.
“그러니까 반사를 이용해 위상을 반전시키고 파동의 속도를 조절한 다음 파동이 가진 회절의 성질을 이용해 알아서 위력을 줄이도록 한다. 이 말이죠?”
“맞아요. 파동의 성질과 쓰나미가 가진 에너지 자체를 최대한 이용한 것이기 때문에 순간적인 부담이 작고, 들인 시간만큼 쓰나미의 피해를 낮출 수 있어요.”
경완이 이해가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마리아는 손뼉을 치며 일어났다.
“그럼 얼른 움직이죠. 시간을 들일수록 쓰나미의 피해가 줄어드니까요.”
쓰나미가 일본 동해안에 도착할 때까지 남은 시간은 4시간.
경완은 장비에 앉으며 물었다.
무한전생-더 빌런 168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