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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전생 더 빌런-168화 (168/367)

15-인간의 탈을 쓴 카미사마

“소장님은 일본에서 뭘 받기로 했어요?”

참고로 경완이 이번 쓰나미 방어에 받을 대가는 미국 에이전시를 통해 받아내기로 했다.

공짜로 일해 줄 수는 없고, 그렇다고 대가로 무엇을 얼마나 받고 싶은지는 본인도 모르니 제3자의 공정한 시선에 맡긴 것이다.

마리아는 그 물음에 이렇게 대답했다.

“일본의 초능력 연구 기밀자료요.”

역시…….

경완은 고개를 끄덕이며 더는 말하지 않고 스마트 포스필드의 부속장치인 뇌파동조기를 머리에 썼다.

장비가 가동되자 일본 당국은 초조하게 쓰나미 방어 작전을 주시했다.

네 시간 후, 쓰나미가 도착할 시간이 되었다.

하지만 별다른 피해는 없었다. 그저 평소보다 높은 파도가 해변에 몰려왔을 뿐.

쓰나미를 주시하고 있던 일본해양연구개발기구에서는 원래 예상되었던 5미터 높이의 쓰나미가 1미터로 낮아졌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그리고 거기에 한국에서 판매한 스마트 포스필드 장치가 지대한 공을 세웠다는 것도 설명하며 스마트 포스필드 기술 연구에 대한 국가적 역량 투입을 천명했다.

어라? 일본은 이경완의 존재를 감추고 싶어 했던 것이 아닌가?

그러기엔 이번 쓰나미를 막았던 것이 너무나 인상 깊었던 모양이다.

엄밀히 말해 피해를 엄청나게 줄인 것이지만, 이 정도도 얼마인가? 쓰나미의 높이는 5미터에서 1미터로 낮아졌지만 피해는 천분의 일 이하로 낮아졌다.

자연재해가 일상인 일본에 있어 이런 능력을 가진 초능력자와 우호관계를 맺지 않으면 누구와 우호적 관계를 맺어야 한단 말인가?

하지만 그렇게 사방에다가 우리 쓰나미 막아냈어요라고 광고하기에는 달리 쓰나미를 막은 경완이 일본을 떠나 미국으로 향하는 그때까지, 그에게 인사 한 번 하러 오는 정부 관계자가 없었다. 그의 일정을 파악하지 못한 것도 아니었고 말이다.

참 이중적인 행태였다.

제프리는 경완을 따라 미국으로 오면서 이에 관해 말을 꺼냈다.

“엄청 고마워하던데 막상 별로 주는 건 없네요.”

“원래 별로 기대하지도 않았어요. 일본이 원래 그렇잖아요.“

“그런 것치고는 스마트 포스필드 기술을 엄청 칭찬하던데요? 그러면 경완 씨가 부각되는 건 시간문제이지 않아요?”

이번에 쓰나미의 피해를 엄청나게 줄인 경완의 능력에 놀라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제프리도 나름 명석하기 때문에 일본이 경완과 우호를 쌓기 위해 신속하게 움직일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런 행동은 없었고 경완은 마츠키와 일본 외무성 소속 공무원 몇 명의 배웅만을 받은 채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경완이 무심하게 말했다.

“한국인에게 굽히기 싫거나 그게 아니라도 최소한 자중지란이 일어나서 의견합치가 안 되고 있는 거겠죠. 집단 광기라는 건 합리성과 거리가 멀거든요. 솔직히 이웃나라와 이웃민족에 대한 혐오서적이 베스트셀러로 팔리는 나라가 정상은 아니잖아요.”

마츠키의 제안을 수용했다면 또 모르지만 분명히 선을 그었으니 탐탁지 않게 생각할 것이다.

그 말에 제프리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합리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 경완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 일본의 입장에서는 무조건 좋다.

하지만 일본은 말로만 그럴 뿐 실제로 우호적인 관계를 쌓기 위한 실무적 활동을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다른 나라에서 그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는 중이었다.

그래서 일본 지도층이 죄다 미친놈이기 때문에 그러는 거라는 경완의 말은 퍽이나 설득력이 있었다.

“그럼 경완 씨에게 이번 일에 대한 포상도 제대로 주지 않을 수도 있네요.”

“그래서 제가 미국 측에 부탁한 거죠. 일본이 감히 미국의 말을 무시할 수 있겠어요?”

경완의 말에 제프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했다. 그는 다 계획이 있었구나.

그가 미국 측에 한 부탁이란 다름이 아니라 이번 일본에서 받을 보상에 관해 미국의 히어로 컴퍼니가 일종의 에이전트 역으로 끼어들어 적절한 보상을 산정하고 그것을 받아내 달라는 것이었다.

히어로 컴퍼니 입장에서 그건 전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원래 그들이 하는 일이 초능력자를 히어로로 프로듀싱하는 것이지 않은가? 에이전시 업무의 범주에 경완이 요구하는 일들이 자연히 포함될 수밖에 없었다.

“경완 씨는 참 똑똑한 것 같아요.”

“똑똑한 게 아니라 잡념이 많아서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하는 것뿐이에요.”

경완은 자신의 얼굴에 날아오는 금칠을 막아내며 눈을 감았다.

“도착하면 깨워주세요.”

“가는 내내 자려고요?”

일본에서 미국까지 12시간이 넘게 걸리는 시간이다.

경완은 서슴없이 대답했다.

“네.”

“……대단하네요.”

12시간 내내 자겠다니…… 그것도 참 대단한 능력이었다.

경완과 그 일행을 태운 비행기는 하이재킹 같은 돌발사고 없이 무사히 미국 땅에 착지했고 경완은 워싱턴에서 김준과 조우했다.

“왔어요?”

“네.”

“갑시다.”

김준은 그를 펜타곤으로 데려갔다. 펜타곤의 한 회의실에선 FBI와 CIA 국장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경완은 그들과 악수 및 인사를 나눈 후 입을 열었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죠. 공포의 사제들을 치워버리고 싶습니다.]

[이유는?]

[미친놈들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르거든요.]

[단지 그것뿐입니까?]

[그거 외에 무슨 이유가 또 필요해요?]

CIA 국장의 질문에 대한 경완의 반문에 그 방에 있는 모두가 역시라는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미약한 동기로 큰일을 저지르려는 그의 행태는 그의 성품이 어떤지 짐작할 수 있는 또 한 가지 요소였다. 괜히 CIA가 그를 시한폭탄처럼 생각하는 것이 아니었다.

[저희야 나쁠 것은 없습니다만 아무래도 처리 과정에 대해서 긴밀한 협조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냥 조지면 되는 거 아니에요? 사람들 고문하고 괴롭히는 미친놈들이라면서요?]

[저희는 미스터 리에게 살인을 시킬 생각이 없습니다.]

[그냥 제가 없애고 싶다니까요.]

[하지만 저희가 협조하는 이상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당신에게 살인을 시켰다고 보겠죠. 그건 우리로서도 부담입니다.]

경완은 입맛을 다시면서 팔짱을 꼈다. 그리고 이야기를 더 들어보겠다는 듯 입을 다물었다.

저쪽의 입장도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고, 저들의 도움 없이 혼자서 공포의 사제들이라는 컬트 집단을 처리하는 것도 무척 골치 아프고 피곤한 일이었다.

CIA 국장이라는 자가 입을 열었다.

[공포의 사제들이라는 집단이 어떤 곳인지 정확히 아시오?]

[광신도 집단이라면서요?]

[우리 CIA에서 분석하기로는 컬트 마피아에 가깝소. 종교적 교리를 도입한 마피아라 할 수 있지. 일반적인 사이비는 교주나 교주를 보위하는 소수 인물을 위해 나머지 신도들이 착취당하는 구조지만, 이들은 마피아의 기본적인 뼈대를 유지하고 그 위에 사이비 종교적 요소를 덧붙여 놨소.]

마피아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인가? 그것은 피아구분이 명확하고 명확한 만큼 단호하며 단호한 만큼 잔혹하다는 점이다.

그들은 그들의 울타리 안에 있는 이들을 보호하면서 적으로 판명된 이들에겐 가차 없었다. 내부의 단합을 위해서 외부에 적을 만드는 공식은 마피아 조직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혹여나 공익을 위한 내부고발자가 있다? 마피아 조직 내에선 그건 죽여 달라고 시위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이들은 기존의 마피아 조직을 손쉽게 흡수하고 있소. 기본 행동이나 습성이 비슷하니까. 다른 점은 이들의 연대가 계보라는 마피아식 전통이 아니라 올드원이란 존재에 대한 숭배를 중심으로 한다는 것이오.]

[암튼 그래서요?]

[모조리 죽이지 않으면 와해되지 않을 거요. 죽이면 죽일수록 순교자가 되어 암세포처럼 퍼져 나가겠지.]

그 말에 경완이 고개를 갸웃했다.

[죽일 수 없는데 모조리 죽이지 않으면 안 된다? 말이 좀 모순되지 않나요?]

[현실이 그러하니까. 그들이 어떻게 신도를 늘리는지 아시오?]

CIA가 국장이 설명하길 그들은 마피아가 신입을 받아들일 때 어떤 의식을 치른다고 한다.

마피아 입단 자격을 증명하는 의식 중 가장 악질적인 것은 살인을 시키는 것이지만 이 공포의 사제들의 입단 의식은 단순히 범죄에 대한 공범 의식이나 살인을 시켜 그에 대한 약점을 잡는 수준이 아니었다.

다양한 수단으로 가하는 고문과 같은 공포. 그 항거할 수 없는 공포에 굴종하는 자만이 그들의 일원이 될 수 있었다. 공포로서 조직과 올드원에게 충성하도록 세뇌하는 것이었다.

초기엔 이런 공포를 주입하기 위해 고문이란 잔혹한 수단이 사용되었지만 언제부턴가 피비린내 나는 고문은 입단의식이 아니라 적과 배신자에게만 향하게 되었다.

[우리의 판단으론 그들에게 다수의 정신계 능력자가 생긴 것으로 보고 있소. 그러한 능력자를 통해 고문을 대신하고 있겠지. 당신도 알 것이오. 광역 공황을 일으키는 그 특이한 복합능력자를.]

목소리에 공황을 일으키는 정신파동을 싣는 능력자를 떠올린 경완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이 남아있었다.

[그들의 교리가 그렇게 매력적인가요? 교단이 와해되어도 독버섯처럼 다시 자라나게?]

[매력적이라기보다는 공포에 의해 세뇌가 되기 때문이오.]

평범한 이들은 공포의 사제들이 가진 무력 앞에 입을 다물고, 반항하는 자들은 본보기로 고문을 받고 제거되며, 내부자들은 공포로 세뇌되어 충성을 바친다. 고문과 세뇌로 일그러진 정신은 감히 조직을 배신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CIA국장의 말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런데 온천에서 미스터 리를 습격한 자들이 나중에 굴복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보고가 있었소. 사실이오?]

[그렇기는 한데, 그래서요?]

[우리는 그 이유를 저번에 보고받은 미스터 리와 마인드 브레이커 사이에 있었던 일에 기인한 것으로 보고 있소. 그러니까 그들이 지금과 같은 컬트적인 조직으로 재탄생한 일에 미스터 리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거요. 물론 당신이 주도하진 않았지만 그들이 공유하는 종교적 가치와 당신 사이에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오. 아마 당신을 찾아온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이겠지.]

마치 수많은 종교에서 성인(聖人)을 기리거나 숭배하고, 그들을 이끌어줄 선지자를 찾는 것과 같이 말이다.

그렇다면 남미에서 활동하는 자들이 왜 굳이 태평양 너머 일본까지 경완을 찾아왔는지 충분히 설명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경완은 CIA국장이 무슨 의도를 가지고 그러한 말을 했는지 바로 알아차렸다.

[그러니까 나보고 그들의 교주 따위가 되어서 통제 혹은 관리를 해 달라?]

[그렇…… 소.]

경완은 속내를 알 수 없는 표정으로 CIA 국장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저 빤히.

그럴 뿐인데 누구도 입을 열지 못할 정도로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그 무거운 분위기를 깬 것은 이러다가 뭔가 큰일 나겠다 싶어서 얼른 정신을 차린 김준이었다.

[CIA 국장님의 말씀은 그저 개인 의견일 뿐이니 흘려들어도 됩니다.]

[그래요?]

그러자 경완의 표정이 밝아지며 김준과 FBI 국장, 그리고 마지막으로 CIA 국장을 향했다.

CIA 국장은 마치 자신을 잔망스러운 어린아이 보듯 눈웃음을 짓는 경완의 얼굴에 애써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보았지만 이미 식은땀이 등을 촉촉하게 적셨다.

조금 전 자신을 향한 경완의 시선은 절대로 같은 사람을 보는 눈이 아니었다.

그건 마치 자신의 아들이 어릴 적 나비의 날개를 뜯거나 개미굴 입구에 콜라를 쏟아부을 때의 표정 같았다.

[다행이네요. 미친놈들의 사이비 교주가 될 생각은 추호도 없었으니까요.]

무한전생-더 빌런 16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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