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인간의 탈을 쓴 카미사마
[안 그래도 경완 씨의 성격이 과격한데 그런 미친놈들의 교주가 되면 무슨 사고를 칠지 모르니까요. 안 그렇습니까?]
김준이 애써 던진 농담이 부위기를 한층 더 누그러뜨렸다.
아무튼 경완이 CIA 국장의 제안을 거절했으니 남은 선택지는 공포의 사제들이란 컬트 마피아를 소탕하거나 그냥 놔두거나 둘 중 하나였다.
하지만 가만히 놔두자는 선택지는 미국이나 경완에게나 별로 메리트가 없었다.
미국은 미국 내에 이런 광신적이고 파괴적인 집단이 독버섯 자라듯 자랄 가능성이 우려되었고, 경완은 그런 꼴보기 싫은 것들과 이미 얽혔다고 볼 수 있는 상태였으니까.
결국 그들을 어떻게 소탕할 것이냐에 서로의 머리를 모았다.
의논과정은 조금 길었지만 결국 시작도 경완이었으며, 끝도 역시 경완인 계획이 통과되었다.
아무리 공포의 사제들이 사람들을 고문하는 것으로 악명 높은 집단이라고 하더라도 그들은 엄연히 다른 나라 땅에 사는 다른 나라 국민들.
그러니 아무리 국제경찰(혹은 깡패)인 미국이라고 하더라도 함부로 다른 나라 영토에서 활동할 수 없었다.
심지어 그것이 마피아 같은 범죄집단의 소탕이라 할지라도 최소한 그 나라의 허락이 필요했다.
그렇다고 그 나라의 허락을 받으려고 하니 정보가 샐 우려가 있었다. 남미의 마피아는 이미 하나의 군벌이나 마찬가지였고 중앙정계, 경제계 등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그렇기에 공포의 사제들 소탕 작전은 블랙옵스로 진행하기로 했으며, 기밀유지를 위해 소수의 정예요원을 파견하기로 했다.
여기에 경완이 포함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소수로 다수를 소탕하려고 하는 만큼 그만큼 강한 능력자가 필요한 건 당연했다.
하나 그것은 공포의 사제들이 보유한 초능력자에 비해 미국이 보유한 초능력자들이 약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니었다. 다만 비공개 작전에 그들을 활용하기가 곤란하다는 점이 경완을 선택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무엇보다도 본인이 그들을 소탕하길 매우 원하고 있지 않은가?
경완을 이용해서 컬트 마피아를 통제해보고자 하는 CIA 국장의 계획은 어그러졌지만 애당초 정보업계에 몸담은 인간이 하나의 계획만 가지고 움직일 리가 없었다.
경완이 그들의 소탕을 원한다면 그에 맞춰 이득을 취하면 그만. 정보를 선점한다는 건 그런 것이었다.
소탕 작전은 마치 미리 준비라도 해둔 듯 빠르게 진행되었다.
공포의 사제들이라는 이 위험한 컬트 마피아 집단이 미국에 악영향을 끼칠 경우 그들을 어떻게 제압할 것이냐에 관해 작성된 계획서를 토대로 한 것이라, 우왕좌왕할 것 없이 계획서 일부를 수정해서 진행하는 것으로 펜타곤을 비롯한 미국의 여러 정부기관의 지원을 받아 빠르게 일을 진행할 수 있었다.
두두두두두.
“승차감 개떡 같구만.”
경완의 말에 김준이 그를 타일렀다.
“프롭기가 다 그렇죠.”
공기와 섞인 연료가 폭발하는 힘을 왕복하는 피스톤이 받아서 추력을 내는 프롭기의 탑승감은 당연히 여객기에 비할 바가 못 되었다.
“낙하 포인트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준비하세요.”
김준의 말과 함께 프롭기의 옆문이 열리며 세찬 바람이 들어왔다. 열린 문 저 아래로는 드넓은 정글이 펼쳐져 있었다.
이번 작전의 목표는 공포의 사제들의 본거지였고, 그 본거지는 정글 속에 있었다.
사람을 잡아다가 고문하며 공포를 가하는 그들의 행태를 생각하면 본거지가 도시에 안에 있는 것보단 외곽에 있는 편이 여러모로 조직에 덜 부담을 주었다.
경완과 함께 갈 CIA 요원들의 분대장, 마이클이 소리를 질렀다.
[지금 가야 합니다!]
바람소리를 뚫고 들려온 목소리에 경완은 고개를 끄덕였고 비행기에서 낙하하기 위해 입구로 이동했다.
김준이 그를 격려했다.
“건승을 기원합니다!”
경완은 엄지를 내밀고 비행기 밖으로 몸을 던졌다. 그 뒤로 그를 보조해 줄 요원들이 연이어 몸을 던졌다. 그중에는 FBI 요원인 스테이시도 끼어 있었다.
[조심해요!]
김준의 걱정에 그녀는 경완이 그랬던 것처럼 엄지를 들고 비행기 밖으로 몸을 던졌다.
다른 이들이 봤으면 집단 자살을 하려는 건가 경악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왜냐면 그들은 낙하산을 매지 않고 뛰어내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믿는 바가 있었다.
경완의 몸에서 검은 연기가 뿜어졌다.
검은 연기는 그들의 몸을 붙잡고 넓게 퍼지며 바람을 타며 활공했다.
뿐만 아니라 경완은 힉스장 간섭능력도 동시에 사용하여 일행의 무게를 줄이고 마치 깃털처럼 정글에 안착했다.
“Wow!”
그런 경완의 재주에 모두가 미사여구 따위가 붙지 않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충분히 많이 놀란 사람은 원래 말수가 적어지기 마련이었다.
일행은 안전한 곳에 착지한 후 서둘러 짐을 확인하고 행군 준비를 했다.
CIA의 블랙옵스 요원인 마이클이 선두에 섰다. 하지만 이번 작전에서 그와 대원들의 역할에는 교전이 포함되지 않았다. 그저 경완을 공포의 사제들이 있는 본거지로 신속하고 쾌적하게 안내하는 것이 그들이 이번에 해야 하는 임무의 다였다.
하지만 이 정글이란 환경에서 ‘쾌적하게’라는 조건은 만족시키니 어려웠기에 마이클은 ‘신속하게’라는 조건에 집중했다.
그건 CIA 국장과 경완 사이에 약속된 것과는 거리가 있는 태도였지만 원래 책상 위에서 계획된 일이 현장에 그대로 적용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Let’s go!”
경완과 스테이시를 가운데로 두고 CIA 요원들이 전후방에 선 포지션으로 일행은 정글 깊숙이 진행했다.
정글은 생명이 가득한 곳이지만, 문제는 그 생명들이 인간에게 호의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인간의 부드러운 살내음을 맡고 달려드는 수많은 벌레들, 그중 일행을 가장 귀찮게 하는 두 놈은 단연코 거머리와 모기였다.
모기야 말할 것도 없고 거머리는 나무에 올라가 기다리고 있다가 일행이 내뿜는 이산화탄소를 감지하고 뚝뚝 머리 위로 떨어졌다.
거머리는 작고 촉촉하기 때문에 피부 위에 떨어져도 자칫 그걸 나뭇잎에 맺힌 물이 떨어지는 것으로 착각할 수 있지만 경완의 초감각에 다 걸렸다.
톡!
팡!
스테이시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거머리를 검은 연기가 채찍처럼 후려치자 튕겨 나간 거머리가 나무에 납작하게 달라붙었다. 그 모양이 흑갈색의 껌딱지 같았다.
[깜짝이야! 또예요?]
스테이시의 물음에 경완은 고개를 끄덕이며 방금 지나온 나무를 가리켰다. 그림자 진 나무 아래였지만 충분히 납작하게 뭉개진 거머리의 형태를 알아볼 수 있었다.
[으으~ 고마워요.]
스테이시는 거머리를 보며 인상을 쓰면서도 경완에게 감사를 잊지 않았다.
그러한 감사에 경완은 그저 어깨를 으쓱했다. 사실 그는 스테이시에게만 도움을 주진 않았다.
일행의 주변에 달려드는 해충을 제거하고 힉스장 간섭능력을 펼쳐 그들의 몸을 가볍게까지 해주었다.
마이클은 경완이 능력을 혹여 남용해서 고통의 사제들을 소탕하기도 전에 초능력 탈진이 올까 봐 걱정했지만 경완은 괜찮다며 능력을 사용했다.
고통의 사제들이란 잡놈들을 처리하는 것만큼이나 거머리나 모기 따위의 해충에게 뜯기지 않는 것도 중요했다. 고통의 사제들이란 놈들을 처리하려는 것도 결국 미친놈들이 얽히지 않는 쾌적한 삶을 위해서가 아닌가?
그에게 자신을 귀찮게 한다는 점에서 이 사이비 집단과 모기, 거머리 등의 해충은 다를 바가 없었다. 거짓된 신앙에 미친 사이비 집단이나, 피에 미친 모기나 사람에게 해롭기는 마찬가지였다.
즉, 놈들을 소탕하려고 거머리와 모기 따위에게 살점과 피를 뜯기는 걸 감수한다는 건 경완에겐 본말(本末)이 전도된 행위인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보니 날이 어두워졌다. 마이클은 위성단말기를 확인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가 A 포인트요. 여기서 하루 야영해야 할 것 같군.]
남미의 마약 카르텔의 영역은 비단 도시에만 국한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지만 비도시 지역, 마약의 원료가 되는 농작물을 재배하는 지역도 중요하긴 마찬가지였다.
이들 카르텔에게 도시 지역은 인력과 물자를 수급하는 시장의 역할에 가까웠고, 이마저도 돈이 충분하거나 브로커를 이용하면 대체가 가능했다. 정글의 드넓은 초지에서 생산되는 마약은 미국 등지로 가서 비싸게 현금화가 되니까.
카르텔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이들 마약을 생산하는 지역의 농민들은 열렬한 카르텔의 지지자들이었다. 마약 카르텔이 원하는 작물을 재배하면 평범한 농작물로는 꿈도 꾸지 못할 수익을 얻을 수 있었다.
그것은 카르텔이 내미는 당근이었다. 공포와 강압으로 채찍질만 해봤자 농민들을 그들의 편으로 삼기는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농민들은 당근과 채찍으로 카르텔에 길들여졌으며, 일행은 이들의 시선도 피해야 했기에 낙하 포인트를 본거지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으로 설정할 수밖에 없었다.
주변에 숲을 태워 만든 화전이 여러 곳이었고 그곳엔 농민들의 눈과 귀가 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어차피 교단에는 에스퍼들도 있으니 이렇게 좀 멀리 떨어진 곳에서부터 조심스럽게 잠입해야 했다.
고체연료에 불이 붙고 전투식량이 그 위에 올려졌다. 뜨끈뜨끈하게 데워진 스팸이 열량과 염분을 보충해주었다.
이제 남은 건 잠자리를 확보하는 것뿐. 마이클이 불침번을 정하는 동안 경완은 초능력을 이용해서 잠자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장면은 모두에게서 할 말을 앗아갔다.
“…….”
“…….”
“…….”
“What?”
그들의 시선과 죽은듯한 침묵에 경완이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그들은 그저 대단하다며 엄지를 치켜들며 Wow! 하고 감탄사를 내뱉는 것 외에는 하지 못했다.
땅속에서 뽑혀져 나온 돌덩이들이 척척 직육면체로 잘려나가더니 알아서 차곡차곡 쌓여 돌침상을 이루는 광경을 보면 누구나 그럴 수밖에 없으리라.
경완이 물었다.
[댁들 꺼도 만들어 줄까요?]
[그래주면 고맙죠.]
축축하고 벌레들이 기어 다니는 정글의 바닥을 생각하면 돌침상은 과분할 정도였다.
그리고 그냥 단순한 돌침상이 아니었다. 가운데 공간이 있어서 달궈진 돌을 넣어두고 정확하게 재단된 돌덩이로 잘 막아두면 간이 온돌 침대 완성이었다.
경완은 그런 돌침상 세 개를 더 만들고 잠에 들었다. 벌레들이 달려들지 못하게 머리만 감싸는 작은 모기장까지 쳤다. 몸은 침낭이 보호했다.
마치 캥핑 야숙을 보는 것 같은 장면에 CIA 요원들은 기가 차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자신들이 이런 정글에서 작전할 때는 벌레에게 뜯기는 것 정도는 각오해야 하는 일이 아니던가? 어떤 벌레는 근육까지 파고들어 수술을 해야 할 정도로 독한 놈도 있었다.
그런 일도 있다는 걸 어디서 들었는지, 경완은 한 번의 뜯김도 용납지 않겠다는 듯이 철저히 방충태세를 갖추었다.
그만큼 짐도 많아졌지만 그의 힉스장 간섭 능력 덕분에 오히려 예전보다 움직이는 것이 편해진 요원들은 불만을 표할 수 없었다.
능력이 되면 뭘 못하랴? 작전만 문제없이 성공하면 되는 것이다.
다음 날 날이 밝자 모두 다시 정글을 이동했다.
우거진 정글을 지나 그들이 목표지점에 도착한 건 해질녘이 되어서였다.
[도착했소. 저 강 너머요.]
마이클이 방향에서 우거진 나무 사이로 강과 선착장이 보였다. 정글 속으로 물자를 나르기엔 강만큼 좋은 교통수단도 없었다. 얼핏 보니 수상기도 보였다.
경완이 말했다.
[해가 완전히 지면 움직이죠.]
뉘앙스는 마치 같이 행동한다는 것 같지만 사실 경완 혼자 들어가기로 되어 있었다. 밝히지 않았지만 놈들을 어떻게 처리할지 나름의 계획이 있었다.
무한전생-더 빌런 170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