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전생 더 빌런-174화 (174/367)

16-스캔들

처음 고용한 파출부야 어찌 운좋게 평범한 사람일 수는 있으나 그 자리를 탐내는 이들이 손을 뻗으면 갈아치워지는 건 시간문제였고, 고작 파출부 자리를 두고 서로 싸워 댈 가능성도 있었다.

뭐, 지들끼리 지지고 볶으면 별말 안 하겠는데 경완을 귀찮게 할 여지가 있다는 게 문제였다.

물론 그것도 막상 닥치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눈앞의 여성이 눈에 담긴 이글거리는 의지였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식모 자리를 지켜내겠다는 의지가 피부로 느껴졌다. 자칫 함부로 건드렸다간 엉뚱한 곳에(그곳이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불똥이 튈 것 같은 위험마저 느껴졌다.

경완은 지금 가장 현명한 대처는 저 불길이 다 타서 재가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뿐이라고 판단했다. 시간은 모든 것을 마모시켜 버리니까.

미연의 열정도 언젠가는 식어버리겠지.

이러한 연유로 결국 미연은 경완의 식모 자리를 쟁취했다. 포기하지 않는 노력과 의지의 승리였달까?

물론 그녀는 거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경완의 식모 자리는 그저 그를 공략할 발판에 불과했다.

그녀가 반찬과 밥을 해두고 돌아오는 차 안, 휴대폰이 울렸다.

“네, 여보세요. 네, 김준 씨.”

[어떻게 됐습니까?]

“잘됐죠.”

[잘됐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려요.”

미연은 미소를 지으며 전화를 끊었다.

미국은 물론 국정원과도 손을 잡았다. 그렇다고 그녀가 첩보원이 되었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다만 저들은 경완이 큰 사고를 치지 않도록 브레이크 역할을 할 무언가가 필요했고, 거기에 가장 효과적인 건 여자, 즉 미인계의 필요성을 느꼈다.

하지만 미연이 경완 옆에 다른 년이 들러붙는 걸 용납할 리가 있겠는가? 그것도 순수한 의도로 접근하는 것도 아니고 속에 검은 속내를 품은 개잡년이, 그녀의 은인이자 그녀의 마음을 훔쳐간 남자에게 달라붙는 걸 말이다.

그래서 그녀는 저들과 손을 잡았다. 다행스럽게도 먼저 접근한 건 저쪽이었다.

자연스럽게 접근할 빌미가 되어줄 어릴 적의 인연, 연예계의 밑바닥에서부터 기어 올라온 그 의지와 수완, 거기에 대중의 인기로 증명된 미모와 매력까지.

저들이 생각해도 경완에게 먹혀들 만한 미인계에 그녀보다 적합한 여인은 없었다. FBI나 CIA 요원들을 다 뒤져도 미인계에서 미연의 상대가 될 만한 여성 요원이 있을까? 그 정도 미모와 매력이라면 진즉 헐리우드에 갔겠지.

더구나 진심인지 아닌지를 가려내는 경완의 능력을 생각하면 진짜 그를 좋아하는 것 같은 미연을 능가할 요원은 없었다.

마지막으로, 미연의 적극성을 생각하면 설사 경완 옆에 여자를 붙여놨어도 아마 방해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차라리 그녀를 회유하는 편이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경완에게 미인계를 사용하고 싶어 하는 자들에게 미연은 대체가 어려운 방법이었다.

한편, 미연에게 다행인 점은 그들이 원하는 것이 미인계를 통해 경완을 조종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러한 시도나 의도가 그에게 발각되었을 때 그가 어떻게 반응할지는 그녀조차 예상이 되지 않았다. 아니, 한 가지 예상되는 점은 있었다.

관계의 완전한 단절.

하나 다행인 점은 저들이 욕심을 내려놓은 덕분에 미연은 공권력의 지원을 받아 경완을 공략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만일 그들이 그녀를 이용해 경완을 조종할 의도가 있었다면 그녀가 그들과 손을 잡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아마 저들이 그럴 의도가 있었다면 미연부터 쪼르르 달려가 경완에게 그 사실을 꼰지르지 않았을까? 저들을 팔아먹고 경완에게 점수를 따는 것이 그녀 입장에선 더 나은 선택이었다.

“대표님. 저 왔어요.”

“와, 왔니?”

JB엔터의 김길상 대표는 미연을 보면서 어색하게 웃었다. 그녀가 어디 다녀왔는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그가 경영에 딱히 재능이 없는 대표라지만 적지 않은 기간 동안 이 업계에 몸을 담은 덕분에 이 앞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뻔하게 보였다.

스캔들.

미연 덕분에 은퇴 자금은 충분히 벌어둔 김 대표였지만 그녀에 대한 걱정은 끊을 수 없었다. 그에게 미연은 마치 조카 같은 아이였다.

미연은 그런 김 대표의 시선을 느낀 것인지 걱정 말라는 듯 미소를 지었다.

“너무 그렇게 심란해하지 마세요. 다 잘될 거예요.”

“글쎄다…….”

회의적인 김 대표의 말은 예언이 되었다.

[충격! 탑스타 L양은 열애 중!]

[L양의 남자는 누구일까?]

[거의 매일 그녀가 방문하는 집은?]

L양이 바로 탑스타인 이미연이라는 사실은 찌라시를 시작으로 인터넷으로 삽시간에 퍼졌다.

JB엔터에서는 근거 없는 낭설이라고 일축했지만 기다렸다는 듯이 미연이 식재료가 담긴 비밀봉지를 들고 어떤 집으로 들어가는 사진이 언론을 공개되자 사람들은 JB엔터의 말은 믿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이미연이 직접 입장을 밝히길 바랐다.

연예부 기자들은 그녀를 쫓아다녔고, 그녀는 귀찮아서 피한다고 피했지만 극성스러운 기자들을 쉽게 뿌리칠 수 있겠는가?

짜장면을 시켰는지 탕수육을 시켰는지조차 국민의 알 권리라고 하는 인간들에게 탑배우의 스캔들은 침 고이는 먹잇감이었다.

“이미연 씨, 정말 연애하고 계신 겁니까?!”

“상대는 누구입니까?!”

“팬들을 위해 한 말씀만!”

기자들의 극성에 촬영 스텝들에게 폐를 끼치게 되자 그녀는 어쩔 수 없이 한마디 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 연애하고 있지 않아요.”

일단 솔직하게 말했다. 지금 한 말이 경완의 귀에 들어갈 수도 있으니까.

미연의 말에서 느껴지는 묘한 뉘앙스를 캐치한 한 기자가 다시 질문했다.

“아직이라면 곧 연애한다는 뜻입니까?”

“저 혼자 마음 있다고 연애가 되나요? 상대방도 마음이 있어야죠.”

“…….”

애라 모르겠다 질러 버린 그녀의 대답에 얽힌 행간을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읽을 수 있었다.

“혹시…… 짝사랑입니까?”

이번 물음에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직 썸타는 중이라고만 말할게요.”

그건 여배우로서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몇 번이고 직간접적으로 대쉬하는 중이지만 계속 까이고 있다고 말할 순 없었다.

그녀의 말에 기자들은 다음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그 행운의 남자는 도대체 누구입니까?”

“거기까진 비밀이에요.”

고혹적인 눈웃음을 지으며 검지를 입술에 댄 그녀가 윙크까지 날리자 여기자들까지 할 말을 잃고 멍하니 입을 벌렸다.

그런 그녀의 대처 덕분에 기자들의 극성맞은 행동은 한풀 꺾였지만 동시에 궁금증이 솟구쳤다.

저런 미녀랑 아직도 그냥 썸만 타는 남자가 있단 말인가? 고잔가?

일부에선 혹시 그녀가 좋아하는 사람이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 예능 방송에서 보여주는 그녀의 털털한 걸크러쉬는 그녀를 언니라고 부르며 여동생을 자처하는 팬들을 양산하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좀처럼 그녀가 썸을 탄다는 남자의 정체를 알아낼 순 없었다.

그때 네임드 빌런이 된 트위스터와 코리안 히어로 선더보이의 충돌이 대서특필되어 잠시 이미연의 남자라는 이슈를 삼켰다.

트위스터가 끝내 선더보이에게 중상을 입히고 도주하는 데 성공하고, 대림동을 주름잡는 조선족 조직폭력배들을 그의 시그니처라고 할 수 있는 트위스티드 스테츄로 만들어 남겼다.

일명 뒤틀린 조각상.

그동안 능력이 발달이라도 했는지 사물과 물체를 하나로 얽고 뒤틀어버리는 능력은 더욱 기괴하고 흉측한 조각상을 남겼다.

그것은 죄짓는 자들, 죄를 저지르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이들에 대한 트위스터의 경고였다.

정계나 검경은 이런 트위스터를 법치를 파괴하는 자라며 맹비난했지만 시민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그런 이야기를 이미 너무 많이 들어서 귀에 딱지가 앉은 탓이었다.

개가 짖어도 기차는 가고, 범죄자 몇이 뒤틀린 조각상이 되어도 세상은 문제없이 돌아갔다. 솔직히 평범한 사람들은 자기에게 별다른 영향이 없는 일에 별로 관심을 주지 않았다.

힘든 일상을 견디는 것만으로 힘에 부치는데 법치질서니 빌런이니 하는 소리가 귀에 들어오겠는가?

오히려 진즉 한국 경찰이 그런 범죄자들을 잡아 가뒀으면 빌런이라는 것들이 활동을 안 했을 거 아니냐는 쓴소리를 하는 것이 범죄에 연루될 일이 없는 평범한 서민 대부분의 입장이었다.

깨어 있는 시민이라면 빌런과 사적제재, 공권력이 한데 얽힌 문제를 심각하게 바라보겠지만, 깨어 있는 시민이란 존재는 생각보다 훨씬 귀한 존재였다.

배웠다는 인간들, 지식인들조차 제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부패와 영합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데 쥐뿔도 없는 서민이 깨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하지만 한국을 활개치고 다니며 범죄자를 노리는 빌런의 존재는 단순히 깨어 있는 시민이 결집하고 힘을 모은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었다.

솔직히 아무리 법치붕괴에 대해 우려한다고 하나, 무능하거나 부패한 공권력에 의해 오히려 가해자들이 보란 듯이 잘 먹고 잘사는 현실에서 그런 자들을 징치하는 빌런의 존재는 필요악이라는 인식조차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빌런들이라고 해도 다 같은 빌런이 아니었다. 크게 초능력을 이용해 제 사리사욕을 채우는 범죄자형 빌런과 본인의 신념에 따라 사적제재를 행하는 자경단형 빌런으로 나뉘었는데, 트위스터, 거세남, 샌드맨들이 활약(?)하는 한국에서 범죄형 빌런은 오래가지 못했다.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난 거세남에 의해 사지가 잘리거나, 뒤틀린 조각상이 되거나, 아니면 잠깐 잠에서 깨어났다 일어나 보니 경찰에 의해 체포된 상태라거나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검경은 필시 이들 자경단형 빌런들이 서로 연합하거나 적어도 협력하는 상태라고 내부적인 결론을 내렸다.

사망기자. 그 불가사의할 정도의 정보력을 가진 빌런이 아니라면 이 검경이란 거대한 수사기관보다 먼저 범죄를 저지른 빌런을 잡을 순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자경단원들의 활약은 그들의 체포에 대한 국민적 필요성을 더욱 낮추고 말았다. 범죄자형 빌런으로 인해 치안이 약화되고 사회적 불안이 가중되었다면 국민들도 빌런에 대해 더 강경한 입장을 가지고 더 많은 관심을 가졌을 텐데 말이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이번에 빚어진 트위스터와 선더보이의 충돌도 사람들의 관심에서 서서히 멀어져갔다.

그리고 조회수와 관심으로 먹고사는 기자들은 묵혀놨던 떡밥을 기어코 공개하고야 말았다.

[탑스타 이 씨의 썸남은 퍼스트 빌런?!]

[탑여배우의 그 남자는 강력범죄 전과자!]

파파라치는 아니지만 파파라치 수준으로 추락한 기자들에 의해 기어코 미연이 드나드는 집이 어딘지 밝혀졌다.

그 집은 수도권 교외 지역에 있었으며 소유주의 이름 역시 확인되었다.

그 이름이란 바로 이경완.

대한민국 역사 최초로 국회의사당에 차량을 타고 돌진한 후 국회의원에게 칼침을 박은 전례 없는 일을 저지른 자의 이름이 아니던가?

대부분의 사람은 동명이인일 뿐이라고 생각했지만 이경완 다큐를 떠올린 이들은 확신했다.

‘이미연이 이경완하고 썸탄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가능한 일인가? 이경완은 교도소에 있었던 것이 아닌가?

특종을 예감한 기자들은 바로 조사를 시작했고 경완이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풀려난 것을 확인하고야 말았다.

‘특종이다! 특종이야!’

어떻게 이경완과 같은 중범죄자를 특별사면할 수 있냐는 비난들이 여야를 가리지 않고 쏟아져 나왔다.

이 사태에 국정원장은 차장들을 불러 모아 소리쳤다.

“도대체 일을 어떻게 하고 있는 겁니까! 이경완이 밖에 나와 있는 건 기밀이잖아요!”

“…….”

무한전생-더 빌런 17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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