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스캔들
경완이 트레일러에서 나오자 김준이 서둘러 물었다.
“찾았습니까?”
“먼저 갈 테니 쫓아오든 말든 알아서 하세요.”
경완은 빠르게 대답한 후 훌쩍 날아갔다.
그의 이례적으로 빠른 행동에 김준은 잠시 멍해졌다. 그러나 이내 굳은 표정으로 신속하게 무전기를 통해 지시를 내렸다. 경완을 따라가라고 말이다. 그러면서 속으로 혀를 찼다.
여태 봐온 경완의 행태를 봤을 때 납치범들이 몸 성히 무사할 거라고는 보기 힘들었다.
아! 그렇다면…….
김준은 다시 어디론가 연락을 취했다. 구급요원들을 미리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 * *
경완은 하늘을 날았다. 그가 가장 먼저 도착한 지점은 천리안으로 미연의 위치를 마지막으로 확인한 지점이었다.
그리고 그 지점에 도착하자 그의 초감각에 미연에게 남긴 마커가 걸려들었다.
마커가 남긴 짙은 S입자의 자취를 따라 경완이 공중을 질주했다.
그의 초감각에 4명의 사람이 걸려드는 건 금방이었다. 보아하니 여전히 미연은 기절해 있었고 납치범들은 모종의 장소로 이동 중이었다.
경완은 그들이 그저 황급하게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 목적지가 있다고 느꼈다.
그는 인질의 안전을 위해서 초전부터 놈들을 제압하기로 했다.
그의 고도가 높아졌다. 고도가 높아진 이후에는 자유낙하. 그냥 자유낙하가 아니었다. 호흡을 참고, 힉스장 간섭능력으로 가속도를 높이고, 신체강화능력으로 몸도 보호하면서 흑연의 초능력을 몸 주변에 두른 그의 모습은 마치 하늘에 쏘아진 커다란 대포알 같았다.
약간의 곡선을 그리며 사선으로 미끄러지는 경완의 속도는 납치범에게 접근해 가며 마침내 음속으로 돌파했다.
경완의 집중력이 모든 잡념을 제거했다. 그의 머리에 남은 것은 미연을 안전하게 구하고 납치범들을 응징하는 것뿐.
그의 몸이 두터운 검은 연기를 두른 채 납치범들의 가운데에 떨어졌다. 충격파가 나무를 밀어 넘어뜨리고 땅과 부엽토를 흩뿌렸다. 흑연의 염동력과 발달한 신체강화능력이 반작용으로 오는 충격을 거뜬히 견뎌냈다.
미군이 계획했다는 신의 지팡이를 인간의 몸으로 약간 실현한 ‘쁘띠 신의 지팡이’가 일으킨 충격에 납치범들이 날아갔지만 미연만은 멀쩡했다.
충돌 찰나의 순간, 경완의 몸에서 뿜어진 검은 연기가 그녀의 몸을 감싸서 충격에서 보호했기 때문이었다.
역시 염동력. 이래저래 범용성이 높았다.
경완은 기절한 미연을 안아 들고 힉스장을 전개했다. 신체강화능력자는 이것으로 무력화. 사람은 발바닥에 아무것도 닿지 않으면 생각보다 아무것도 못 한다.
그럼 남은 건 염동력자와 폭발능력자인가?
그는 우선 방어부터 굳혔다. 그러한 판단은 적절했다. 정신을 차린 폭발능력자가 능력을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퍼엉!
지근거리에서 일어난 강력한 폭발이 마치 크레모아처럼 나뭇조각과 돌 조각을 비산시켰다.
경완은 미연과 자신을 몸을 보호하기 위해 두른 흑연의 염동력이 심하게 소모되는 것을 느꼈다. S입자 자체는 풍부했지만 집중력이 순간 떨어졌다. S입자가 정신에 영향을 받는 것처럼 정신에 의해 발현된 초능력은 그것을 유지하는 것에 집중력을 요구했다.
경완은 곧장 대응했다. 촉수처럼 길게 뻗은 검은 연기가 빼빼 마른 놈의 발목을 잡아 끌어당겼다. 어디 지근거리에서도 폭발을 일으킬 배짱이 있나 보자.
“으아아악!”
놈이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당황과 분노가 섞인 고함을 내질렀다.
무중력에 둥둥 떠다니며 위아래가 뒤집혀 있는 놈의 머리통에 경완의 로우킥이 작렬했다.
그 충격에 반쯤 정신을 잃고 빙글빙글 보는 놈의 모습에 경완이 내심 흡족해했는데, 마침 그의 초감각에 키 작은 놈이 도망치는 것이 걸렸다.
단 한 놈도 놓아줄 생각이 없었던 경완은 빼빼 마른 놈이 사용한 폭발의 의해 뾰족하게 부서진 나무를 놈에게 날렸다.
“아악!”
무중력 상태에서 동료(?)들을 버리고 자신의 염동력으로 홀로 도망치려고 했던 키 작은 놈은 정강이에 나무가 박히는 고통에 집중력을 잃고 염동력을 흐트러뜨리고 말았다.
경완은 놈도 초능력으로 끌어당겨서는 머리통에 발차기를 먹여주었다.
이제 남은 건 홀로 공중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몸 좋은 놈뿐이었는데, 경완은 일단 놈과 대화를 나눠보기로 했다. 왜, 무슨 생각으로 미연을 납치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야.”
“으아아아!”
“야.”
“아악!”
경완의 몸에서 뻗어 나온 검은 연기가 몸 좋은 놈의 양쪽 귀를 붙잡고 코를 잡아당겼다. 코를 붙잡고 당기는 게 아니라 검은 연기가 마치 낚싯바늘 모양으로 콧구멍으로 들어가 당기고 있었다.
“내 말 알아듣겠어?”
경완의 말에 놈은 대답했다.
“네, 네!”
대답하는 거 보니 한국어를 할 수 있었다. 물론 한국어를 할 줄 안다고 다 한국인이라고 단정 지을 순 없었다.
“너 한국인이야?”
“네! 한국인입니다!”
“진짜? 한국말 할 줄 아는 중국인이거나 조선족 아니야?”
경완에 대한 원한이 하늘을 찌른다면 아무래도 중국 쪽이 아니겠는가? 그의 주변인에게 보복을 한다면 아마 그쪽 인간이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그의 말을 들은 놈은 그의 말마따나 진짜 중국인이나 조선족이면 큰일 난다는 듯 격렬히 고개를 저었다.
“하, 한국인 맞습니다!”
“남자야?”
“……네, 넵!”
딱 봐도 근육질의 몸이 남자가 맞지만 그리 물어본 건 다음 질문을 던지기 위한 포석이었다.
“군대는 다녀왔어?”
“아니요.”
“이 새끼 이거 검은 머리 외국인이네. 그런데 왜 한국인이라고 그래?”
누가 봐도 신검 1등급 나올 놈이 군대를 안 갔단다. 그렇다면 남은 가능성은 검은 머리 외국인뿐이었으니, 검은 머리 외국인은 한국인처럼 생겼지만 한국인은 아니었다.
100%는 아니지만 군대 다녀온 사람은 어느 정도는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경완의 말에 수긍하면 큰일이 날 거라고 생각을 하는지 놈이 급히 외쳤다.
“아직 안 갔어요, 아직!”
“아직?”
“너 몇 살인데?”
“스, 스물이요.”
“만으로?”
“……네.”
쫙!
경완이 대답하는 놈의 싸다구를 때리며 일갈했다.
“신체 멀쩡한 새끼가 납치나 하고 말이야.”
경완이 한참 훈계질을 했다. 그러면서 납치범들의 인적사항을 알게 되었는데 빼빼 마른 놈, 건장한 놈, 키 작은 놈 순으로, 윤태오, 공배식, 김찬석이라는 이름을 가졌다.
경완이 ‘부모님 뭐하시노?’라고 물어봤지만 제대로 된 대답을 못 했다. 몇 대 때려서 입을 열게 했더니 가출해서 팸에서 살았다고 한다.
어쩐지 딱 봐도 여기저기에 문신을 새기고 불량스럽게 생겼다 했더니…….
문신한 사람을 비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말도 있잖은가? 문신을 한 사람들이 모두 양아치는 아니지만 양아치는 거의 다 문신을 했다고 말이다.
거기다가 가출팸이라니……. 치안의 사각지대 아닌가? 멘토가 없는 아이들은 범죄에 빠지기 쉬웠으니까.
그런 가출팸에서 성인이 될 때까지 살았다?
경완의 눈이 가늘어졌다. 가출팸에 들어간 아이들이 모두 범죄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가출 안 한 아이들이란 비교군을 생각해 보면 합리적 의심을 해봐야 했다.
“너 미연이 납치해서 뭐하려고 했어?”
“……아악!”
대답이 없자 경완의 염동력이 놈의 젖꼭지를 꼬집었다. 아무리 신체강화능력자라도 꽤나 아플 것이다.
“그냥, 도, 돈이 된다고 해서..”
“누가?”
경완의 물음에 공배식의 시선이 빼빼 마른 윤태오에게 향했다. 주동자가 저 새끼인가?
아직 정신을 잃은 놈을 깨워서 물어보려는데 품에서 움직임이 느껴졌다. 마침 미연이 깨어난 것이다.
“오빠?”
그녀는 눈을 뜨자 보이는 경완의 모습에 영문을 모르는 눈치였지만 경완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를 품에서 내려놓았다.
그제야 그녀는 주변을 살필 정신이 있었다. 돌이나 흙, 나뭇조각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낯선 남자 셋도 말이다.
얼른 상황을 파악한 그녀는 웃는 얼굴로 경완을 보았다.
“구하러 와준 거야?”
“그래.”
경완은 담담하고 단순하게 대답했지만 미연에겐 그것이 무척 크게 다가왔던 모양이었다.
“히히. 그렇단 말이지?”
주먹으로 입을 가렸지만 휘어진 눈꼬리가 암튼 매우 기분이 좋다는 걸 알리고 있었다.
납치당해서 무슨 짓을 당했을지도 모르면서 무서워하기는커녕 뭘 이리 좋아하는지, 납치당할 때 어디 머리를 다친 모양인가?
아무튼, 경완은 다시 시선을 돌려 빼빼 마른 놈을 깨우려고 했지만 이번에도 또 누군가가 끼어들었다.
“저희는 적이 아닙니다. 국정원 요원들입니다.”
짙은 선글라스나 마스크로 얼굴을 반쯤 가린 양복의 사내 및 여성들이 경완의 시선에 두 손 들고 조심히 다가왔다. 국정원 소속의 초능력자들이었다.
하지만 경완이 쉽게 경계를 풀지 않자 그들은 어디론가 통화를 했고 경완은 자신의 폰이 울리는 것을 느꼈다.
전화를 받자 아는 목소리였다.
[이경완 씨, 저 한대정입니다.]
“아, 네.”
모를 리가 없었다. 옆집에 살고 있는 이웃이자, 감시자이자, 경완이 양갈비도 사줬던 사이 아니던가?
[체포한 범인들을 부디 그들에게 넘겨주셨으면 합니다.]
“이 새끼들에게 좀 묻고 싶은 게 있는데요.”
[그건 언제든 하실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납치당할 뻔했던 이미연 씨를 케어해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한대정의 말에 경완은 미연을 보았다. 얼굴은 뭔가 좋아하는 표정이었지만 무릎이 모인 두 다리는 후들거리고 있었다. 무의식에 남은 충격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경완은 혀를 차며 한대정에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그는 범인들을 국정원 요원들에게 인계했다. 국정원 요원들은 단순히 범인들의 손과 발에 수갑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목에도 뭔가를 채웠다.
“뭐, 뭔가요?”
정신을 잃지 않은 공배식이 당황한 채로 묻지 국정원 요원이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
“폭탄이다. 탈출하려고 하거나 수상한 짓을 하려고 하면 펑. 무슨 말인지 알지?”
“이, 이건 인권 침해 아닙니까?!”
“납치범 주제에 어디서 주워들은 건 있는 모양인데, 초능력 강력범죄 개정안이 통과된 건 못 들어봤나 봐?”
공권력이 공권력일 수 있는 이유는 범법자들을 물리적으로 강력하게 구속할 수 있다는 점에 있었다.
하지만 최근 초능력 각성자에 의한 범죄가 늘어나면서 단순히 경찰이 지닌 수갑만으로는 초능력 범죄자를 구속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무리였다.
북한에서도 초능력자에 의해 강력범죄가 늘어나고 범죄조직화될 기미를 보이자 초능력 범죄자들을 확실히 제압할 수 있는 수단에 대한 필요성이 절실해졌다.
공배식의 목에 채워진 폭탄 목걸이는 수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결국 국회에서 승인된 구속 수단이었다.
“걔 신체강화능력자인데 그런 게 소용이 있어요?”
경완이 노파심에 끼어들었지만 국정원 요원은 걱정 말라는 듯이 말했다.
“단순히 폭발물만 들어있는 게 아니라 대(對) 초능력 탄환의 재료가 되는 파편도 같이 들어있습니다. 그 안에는 치사량에 조금 못 미치는 테트로도톡신도 담겨 있어서 이 녀석이 정말로 강력한 신체강화능력자가 아니라면 최소 전신불수입니다.”
국정원 요원의 설명을 들은 경완은 안심이 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고, 공배식은 새파랗게 질려서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 위험한 걸 사람 목에다가! 풀어줘! 풀어달라고! 컥!”
“멍청한 새끼야. 풀어줄 거면 왜 채웠겠냐?”
경완이 염동력으로 놈의 아구창을 씨게 때렸다. 한 대 맞은 놈이 얌전해졌다. 꽤나 아팠던 모양이다.
“느이 세 놈. 나중에 또 보자. 미역아.”
그리고 경완이 미연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무한전생-더 빌런 178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