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전생 더 빌런-179화 (179/367)

16-스캔들

“응.”

“너희 회사 대표님 불러줄까?”

그러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으응. 집에 가고 싶어.”

“어떻게 가려고?”

“데려다 줘.”

“주소 불러.”

“으응.”

그녀가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오빠집에.”

경완의 눈이 가늘어졌다. 기회를 놓치려들지 않는 그녀의 영악함이 느껴졌지만, 그녀가 겪은 일이 일이다 보니 한 수 양보해 주기로 했다.

솔직히 그녀를 노린 이번 사건의 정확한 동기가 뭔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녀를 혼자 두는 것도 조금 우려되었다.

결국 경완은 그녀를 데리고 자택으로 돌아왔다.

“오빠. 나 씻을래.”

“……그래라.”

미연의 말에 경완은 잠시 멈칫했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화장실 앞에 갈아입을 옷을 놔두었다.

잠시 뒤 미연이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문지르며 나왔다. 후줄근한 추리닝도 아름다운 그녀가 입으니까 패션이 되었다.

아니, 지퍼를 명치 아래까지밖에 안 올려서 그런가, 지퍼 사이로 보이는 살결과 젖은 머리칼, 뜨거운 샤워로 달아오른 얼굴이 무척이나 고혹적이었다.

자태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경완을 향해 다가오는 그녀의 눈빛 또한 뜨거웠다.

뭔가 역사가 벌어지려는 날인가?

하지만…….

띵동! 띵동띵동!

“누구세요?”

[접니다! 김길상! 우리 미연이는 괜찮습니까?!]

김 대표가 찾아왔다. 미연이 샤워하는 동안 경완이 미리 연락해 놨던 것이다.

미연은 김 대표의 방문에 칫! 하고 혀를 차더니 인터폰에 대고 말했다.

“대표님. 저는 괜찮으니까 돌아가셔도 돼요.”

하지만 이미 경완은 대문 잠근 해제버튼을 눌러버렸고 김 대표가 현관으로 들어왔다.

집안에 들어온 김 대표는 미연부터 찾아서 두 손을 붙잡고는 눈물을 글썽거렸다.

“아이고! 괜찮냐? 어디 다친 곳은 없고?”

“어. 음…… 저는 괜찮아요.”

김 대표를 바라보는 미연의 눈빛은 복잡했다. 좋은 기회(?)에 초를 쳤기는 하지만 김길상 대표처럼 순수하게 자신을 걱정해 주는 지인이 많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때 경완이 입을 열었다.

“병원에라도 데려가 보시죠.”

“맞다! 미연아! 병원 가자.”

“전 멀쩡하다니까요. 경완 오빠가 바로 구해줘서 다치지 않았다고요”

그런가?

김 대표가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납득하자 경완이 또 끼어들었다.

“거 몸 치료하는 병원만 병원이에요? 정신병원에 데려가서 심리적으로 상처받은 게 있진 않은지 확인해봐야죠.”

“맞다! 그 말이 맞습니다! 미연아! 병원 가자!”

김 대표는 곧장 경완의 말에 맞장구를 호들갑을 떨었다. 미연이 평하기에도 호구라고 표현하는 사람답게 귀가 참 얇았다.

그리고 그런 김 대표의 말에 미연은 결국 빼액 소리를 질렀다.

“아! 안 간다니까요! 멀쩡하다니까요! 정신병원이라니! 그게 여배우에게 할 소리예요?!”

그때 경완이 심드렁한 어조로 한마디 툭 던졌다.

“응.”

“오빠!”

미연의 태도가 뾰족해졌다. 절호의 기회(?)를 날려버렸는데 어찌 냉정할 수 있겠는가?

그녀는 뭔가 말린다 싶은 생각이 퍼뜩 떠오르자 일단 심호흡부터 했다. 그리고는 찬찬히 자신은 괜찮다고 강변했다.

“난 정말 괜찮아요. 그리고 진짜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그게 하루 만에 증상이 나타나겠어요?”

“네 말이 맞는 것 같구나.”

그녀의 설명에 귀 얇은 김 대표의 태도는 바로 갈대처럼 바뀌었다.

경완도 한마디 했다.

“괜찮으니 집에 가면 되겠네.”

그 말에 대꾸하는 미연의 한마디.

“집에 갈 정도는 아니야.”

“그럼 병원 가든지.”

“병원 갈 정도는 아니고.”

그래, 참 대단하구나.

어떻게든 그의 집에 입성하고야 말겠다는 미연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으니, 그녀 역시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경완의 시선을 받아내는 미연은 확실히 뛰어난 연기자였다.

그녀는 눈빛으로 자신의 의지가 확고함을 보이고는 바로 김 대표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녀의 날카로운 눈빛을 받은 김 대표는 퍼뜩 정신이 들었다.

“저는 사건이 완전히 마무리될 때까지 오빠 옆에서 안.전.하게 지낼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러면서 은근슬쩍 김 대표의 등을 밀었으니, 김 대표는 그것이 얼른 가라는 뜻인 걸 깨닫고 당황했다.

“그…… 아, 아니다.”

뭔가 한마디를 꺼내려고 했던 그는 미연의 무시무시한 표정을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하긴 경완의 옆이 가장 안전하긴 했다. 감히 누가 이경완이 지키고 있는 여자를 납치하려고 들겠는가?

“아무튼, 안전하니 다행이다. 경완 씨, 우리 미연이 좀 잘 지켜주세요.”

잔뜩 몸이 달아오른(?) 미녀 탑스타와 한 지붕 아래에 있는데 과연 잘 지켜줄까 싶겠지만 그간 미연이 방문한 주기와 하던 행동을 보았을 때, 경완이 일(?)을 벌였으면 진즉에 벌어졌을 것이다.

물론 세간의 시선이 신경 쓰이기는 하지만 납치 스캔들보다야 열애 스캔들이 더 낫지 않은가?

납치 스캔들의 경우 무슨 일을 당했을지 모른다며 세간에서 수군거릴 수 있었다. 언더독으로서 기어 올라온 미연이었기에 자칫 연예인으로서의 생명이 그대로 끝날 수도 있었다.

그러니까 평소에 좀 여러 힘 있는 사람들하고 친하게 지냈어야 했는데 미연은 자기보다 아래에 있는 사람에게 주로 친절했을 뿐 소위 힘 있는 사람들은 철저하게 가려서 인연을 맺었다.

“조심히 가요, 대표님.”

미연이 그를 배웅했다. 아주 반가운 표정으로 말이다.

김 대표는 그런 그녀의 표정에 할 말이 많았지만 결국 한숨만 푹 내쉬었다. 그는 그녀가 한 번 고집을 부리면 꺾어본 적이 없었다.

미연은 현관을 나서는 김 대표에게서 시선을 돌려 경완을 보았다. 중간에 방해가 들어왔지만 괜찮다. 계속 밀어붙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각오는 새로운 방해꾼의 등장으로 무산되어버렸다.

띵동! 띵동!

“누구세요?”

[접니다, 경완 씨.]

김준이 방문했다.

* * *

이미연 납치 미수 사건.

납치되었지만 미수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범인들이 피해자를 모종의 장소로 데려가는 과정에서 그것이 실패했기 때문이었다.

누가 어떻게 이미연을 이렇게 신속하게 구해낼 수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그 어떤 거짓도 없이 언론에 공개되었다.

천리안 장비, 그리고 이경완.

기밀이었던 천리안 장비가 공개된 사정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이경완의 기여가 인정된 건 한 사람의 돌발적인 행동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사람은 바로 이미연이었다.

그녀가 기자의 질문에 ‘경완 오빠가 구해줬어요. 마치 백마탄 왕자님 같았죠’라며 대답했기 때문이었다.

이경완이 누군가?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초능력자가 아닌가?

게다가 일본 후쿠시마에서 벌였던 이적이 그에게 붙어 있던 전과자라는 이미지를 희석시켰다. 그에 더해 북한 조선족 소요사태 발발을 막은 공까지도 다시 한 번 언론에서 다뤄지면서 이경완에 대해서 논란이 많아졌다.

법치를 어지럽히는 범죄자인가, 아니면 시대를 타고나지 못한 영웅인가?

여러 관점과 논란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동의하는 사실은 그가 현존 최강의 초능력자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장비의 힘을 빌렸다고 하나 어느 초능력자가 홀로 대한민국을 황사로부터 보호할 수 있겠는가? 누가 후쿠시마 방사능 제염을 삼 일 만에 해낼 수 있겠는가?

이경완 사면에 대한 대통령의 권한 남용에 대한 비판과 이에 이러진 정권 심판론은 언론이 이경완의 진면목에 대해 까면 깔수록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쏙 들어간 건 중국의 북한 철수가 이경완이 관여해서 벌어진 일이 아닌가라는 카더라 보도가 나오고 나서였다.

이경완이? 중국에? 어떻게?

이런 의문이 제기되는 것 자체가 중공의 발작버튼을 누르는 꼴이라 한국 정부에도 적잖은 부담이 되는 일이었지만, 그럼에도 그러한 보도가 나온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그러니까 폭발 능력자 그 새끼가 중국인이다?”

“조선족입니다.”

“아, 그러니까 파오차이 먹는 짱개 새끼라는 말이잖아요.”

조선족도 김치를 좋아하겠지만 지들 말로는 김치가 아니라 파오차이를 먹는다면서?

납치범들을 잡은 바로 당일 경완을 재방문한 김준은 이례적으로 빠른 심문 결과를 경완에게 알렸다. 왜냐면 바로 이미연 납치 사건에 중국이 개입했을 가능성에 대해서 경고하기 위해서였다.

차후 언론에서 끝내 이경완의 중국군 북한 철수 개입 의혹이 튀어나왔을 때쯤엔 좀 더 자세한 조사결과가 나왔다.

여기까지 겨우 나흘 걸렸다. 그리고 그 나흘 동안 이미연은 경완의 집에서 두문불출했다.

그녀가 조사 결과를 가져온 김준에게 물었다.

“그래서 사건은 끝난 건가요?”

기회(?)를 날려버린 결정적인 장본인이라 그런지 미연의 목소리가 어딘가 뾰족했다.

김준은 그런 그녀의 눈치를 살피다가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원흉을 특정하진 못했습니다.”

사건의 불씨는 중국군이 북한에서 철수한 후에 당겨졌다.

중국 당국은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한 결단이라고 발표했지만 국수주의와 애국주의에 빠진 젊은 청년, 링링허우 세대에겐 그것이 조국의 패배로 인식되었다.

그들이 절대 숭상하는 중국 공산당의 발표에 얌전히 있기는 했지만 밑바닥부터에선 자신들의 조국이 패배했다는 열패감과 이로 인한 분노가 피어올랐고, 그러한 감정은 왜 자신들의 조국과 위대한 군이 북한에서 물러나야만 했는지 그 이유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서 조선족 북한 추방(?) 사건이 연이어 벌어졌으니 당연히 관심이 쏠렸다.

그런데 거기서 이경완이 튀어나왔다. 중국의 원전을 테러한 극악무도한 테러범이 왜 감옥을 벗어나서 거기서 조선족들을 핍박(?)하고 있었지?

한국에선 이경완의 무단 탈옥이라고 해명했지만 탈옥한 놈을 사면까지 해준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조선족을 핍박해서 사면해줄 정도로 한국정부가 중국을 싫어하는구나 싶었다.

그런데 잠시 시간이 흐르자 뭔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무려 중국을 테러한 테러범이 고작 조선족을 핍박했다고 사면을 받았다?

뭔가 좀 찜찜한 기분이 드는 차에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중국군이 북한에 진출했을 때 이경완이 중국 베이징에 방문한 적이 있다고 말이다.

이 은밀한 소문에 빠르게 살점이 붙었다. 이경완이 중국 주석과 공산당 고위 간부가 숨어 있던 벙커에 침입했다, 그들의 신체에 상해를 입히며 협박했다, 위대한 공산당과 조국은 결국 테러범 한 사람에게 굴복했다.

이런 소문을 막기엔 살아남은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살아남은 이들의 입을 막기 위해 과격한 수단을 동원하기엔 너무나 아까운 자들이 많았다.

경완에게 패배했다지만 그와 싸워서 살아남은 초능력 특수부대가 바로 그 예였다. 그뿐인가? 책임지는 자리에 있지 않아서 눈알이 파이지 않은 운 좋은 공산당원들도 있었다. 그들에게 경쟁자의 흠집은 곧 자신이 그들을 딛고 올라갈 수 있는 발판이었다.

아무튼 위대한 조국의 간판에 먹칠한 장본인이 드러나자, 물밑에서 어떻게든 이경완에게 보복, 혹은 본때를 보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공감대가 있었다.

이경완이 대단하다는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절대로 그가 다시는 중국을 함부로 해서 안 된다는 교훈을 새겨줘야 한다는 공감대였다.

중국 내 온라인 커뮤티니에서 자생적으로 탄생한 이 여론에 막 초능력을 각성한 애국주의 링링허우 세대도 동의했다.

어? 그런데 마침 이경완이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네?

사랑하는 사람을 붙잡고 협박하는 것만큼이나 효과적으로 뼈에 교훈을 새길 수 있는 방법이 또 있겠는가?

이미연을 납치하는 건 이경완이 중국에 해를 끼칠 수 있는 것만큼 중국 역시 그에게 해를 끼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만큼 애국을 실천하는 일이 또 있겠는가?

그러면 이경완이라는 작자가 중국에 해를 끼치려고 할 때 한 번이라도 더 고민하고 망설이지 않겠는가?

무한전생-더 빌런 17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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