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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전생 더 빌런-182화 (182/367)

17-코어

물론 대비에는 한계가 있지만 귀찮다고 가만히 있다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후회는 만들고 싶지 않았다.

나중에 무슨 일이 터지더라도 스스로에 할 만큼은 했다며 자기위안을 할 수 있는 핑계 정도는 만들고 싶었다.

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금방 끝날까요?”

“구조 분석은 금방 될 거예요. 해석하는 것이 문제지.”

초능력이 세상에 등장하기 이전에도 현대 과학 기술은 장비가 워낙 잘 나와서 시료분석 정도는 (돈만 들이면) 어렵지 않게 해낼 수 있었다. 문제는 그 데이터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달린 문제일 뿐.

경완이 고개를 갸웃했다.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은데…….”

그 말에 마리아는 다른 상자에 있는 약간 두툼해 보이는 벨트를 가리켰다.

“저게 휴대용 포스필드 장비예요. 동력원과 매개체가 해결이 안 돼서 연구 개발이 중단된 물건이죠.”

요컨대 그 부분만 해결되면 금방 만들어서 줄 수 있다는 뜻이었다.

경완이 물었다.

“정말 코어만 분석해서 재현할 수 있으면 그 두 가지 문제가 해결되는 건가요?”

“S입자는 에너지원의 역할도 하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단순히 에너지원으로만 작용하는 건 아니고 물질계에 간섭하는 매개입자, 다른 말로 S입자 구성체를 담는 역할도 하는 코어의 해석과 재현은 그 두 부분을 기술적으로 실현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라는 게 그녀의 설명이었다. 코어라는 건 초능력 자석보다 한 차원 높은 곳에 있는 초능력 물품이라나?

그녀의 말이 더 길어지기 전에 경완이 재빨리 끼어들어 맥을 끊었다.

“그런데 제가 구조를 분석한 걸 소장님은 어떻게 알죠?”

그 부분이 또 다른 걱정거리였다. 아무리 경완이 천리안 능력이 응용된 좋은 장비로 코어의 구조를 파악한다고 해도 그 구조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러한 우려에 마리아는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경완 씨는 충분히 저에게 그걸 설명해 줄 수 있을 거예요.”

“어째서 그렇게 장담하는데요?”

“경완 씨 똑똑하잖아요.”

“아닌데요.”

애써 부정해 보는 그였지만 마리아는 웃으면서 압박했다.

“괜찮아요. 못 배워서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필요한 개념들에 대해서 제가 다 일일이 가르쳐줄 수 있죠.”

경완은 그녀의 미소에 이렇게 생각했다.

‘급 귀찮아지는데 포기할까?’

뭔가 번거로운 일이 생기는 것 같았지만 그는 결국 감수하기로 했다. 그의 귀찮니즘도 양심의 무게를 가볍게 만들진 못했다.

그래서 그는 특별하게 커스터마이징 된 천리안 장비에 앉게 되었다. 그리고 그 바로 앞에 코어가 든 실린더가 놓였다.

“일단 미세구조부터 파악할 거예요. 그 미세구조가 어떤 재료로 이루어졌는지는 그다음 일이죠.”

경완이 알아들은 듯 고개를 끄덕이자 마리아는 신호를 주고 장비를 가동했다.

경완의 의식이 어디론가 빨려 들어갔다.

기묘한 감각이었다. 세상에 커지고 작아지고를 반복하는 것이 마치 심장이 박동하는 듯했다.

[어때요? 괜찮아요?]

환청같이 들리는 마리아의 음성에 경완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한 번 코어로 의식을 집중해 봐요.]

박동치는 세상에서 코어의 위치를 찾는 건 꽤 어려운 일이었다. 경완은 익숙한 감각과 그렇지 않은 감각 사이를 널뛰는 상황 속에서 침착하게 코어를 위치를 찾아 의식을 이동시켰다.

코어에 의식을 집중하자 마치 그의 의식이 코어에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감각 이후, 박동치는 세상이 멈췄다.

코어 내부로 들어간 의식과 감각이 본 코어는…… 단순히 S입자 저장장치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하나의 작은 우주와도 같은 느낌이었다. 신체를 정밀하게 들여다보는 연구자들이 종종 느끼는 감상 같은 것일까? 복잡하게 얽힌 코어의 미세구조는 마치 중력장으로 얽혀있는 저 거대한 우주의 별들을 보는 것 같았다.

경완은 그 장엄한 광경을 무심한 눈으로 지켜보았다. 그리고 코어에 대한 마리아의 말을 떠올렸다.

‘코어라고 불려요. S입자 배터리죠.’

그녀가 틀렸다. 코어는 단순히 S입자 배터리가 아니었다. S입자 구성체와 물질이 절묘하게 결합된 그 이상의 물건이었다.

아니, S입자의 휘발성을 생각하면 이를 저장하기 위해서 필연적으로 이런 구조를 갖출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닐까?

자연계의 물질도 안전하게 저장하기 위해선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경우가 있었다. 반물질 같은 경우엔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하물며 초능력의 매개입자인 S입자 아닌가?

경완은 정신을 집중했다. S입자 구성체를 제외한 물질 자체의 미세구조를 파악하기 위해선 감각을 필터링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S입자를 제외한 미세구조도 보통 복잡한 것이 아니었다. 코어의 미세구조는 어떤 규칙성이라든지, 결정화된 구조가 보이지 않았다.

다만 무엇과 무척 닮았다는 인상은 받았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뇌였다.

원소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비정질 금속의 바탕에 생화학 고분자 물질이 뇌세포가 얽힌 듯이 복잡하게 얽혀있었는데 그 선의 폭은 아무리 커도 나도 스케일 수준이었다. 현대 과학 기술로는 도저히 재현이 불가능해 보일 정도였다.

인간의 뇌보다 더 복잡한 구조에 S입자 구조체가 결합하자 경완의 초감각엔 마치 거대한 은하수들이 서로 얽힌 듯이 장엄하고 환상적인 느낌을 준 것이다.

경완의 의식이 코어에서 나와 육체로 돌아갔다. 그리고 마리아에게 자신이 본 것을 설명했다.

그녀는 고개를 갸웃했다.

“도저히 어떻게 만들었는지 감이 안 잡히네요. Self assembly에 소결법을 결합한 건가? 하지만 그러면 바탕이 되는 비정질 금속을 도저히 설명…….”

그녀는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는데 경완이 끼어들었다.

“그래서 재현할 수 있어요, 없어요?”

“아무래도 저걸 만드는 데 초능력이 쓰인 것 같아요. 적어도 금속을 상온 액화, 혹은 비정질화하는 능력이 없으면…….”

다시 중얼중얼 혼자만의 세계로 빠져드는 그녀의 모습에 경완은 텄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자신이 기대했던 개인용 포스필드 배리어 장치 같은 게 바로 나오기는 그른 모양이었다.

“소장님. 저는 이만 피곤해서 이만 가볼게요.”

경완이 사색에 잠긴 마리아에게 말했다. 늪에 발목만 빠진 상태라면 얼른 빠질 수 있었다.

미연의 안전을 위해 기껏 연구소까지 찾아온 노력이 아깝다? 아니다. 이젠 그는 본인은 충분히 할 만큼 했다고 자위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간다는 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린 마리아 소장이 그의 옷깃을 붙잡았다.

“잠깐! 설명은 마저 해주고 가야죠.”

경완은 어쩔 수 없이 그녀에게 자신이 관찰한 것을 최대한 자세히 설명했다. 성심성의껏 아는 바를 다 털어놓은 것을 그녀도 느꼈는지 뭔가 굉장한 결핍을 느끼는 표정을 지으면서 마지못해 경완을 순순히 놓아주었다.

어차피 지금 상태로 계속 붙들고 있어도 그가 그녀가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명확한 설명을 하긴 무리라는 걸 그녀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빈손으로 보내기는 뭐 했는지 경완에게 전기충격탄을 내밀었다.

“이거라도 주고 싶네요.”

“뭐, 주시니 받겠습니다.”

경완은 입맛을 다셨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는 미연에게 전기충격탄을 내밀며 잔뜩 생색을 냈다.

“내가 너 때문에 이렇게 고생한다.”

“뭔데?”

“전기충격탄. 세립 초능력 연구소에서 받아온 프로토타입이야. 그거 초능력자에게도 먹힌다더라. 아! 초능력의 종류에 따라 안 통하는 경우도 있다니까 주의하래.”

그러면서 무슨 초능력자에게 먹힌다는 말인가?

하지만 미연은 경완의 손바닥에서 애기주먹만 한 크기의 전기충격탄을 주워들고는 감탄하며 물었다.

“그래서 이거 어떻게 쓰는 건데?”

“잘 보면 중간에 금이 있지? 반구 두 개를 붙인 자국인데 거기를 중심으로 비틀어 돌린 후 던지면 돼.”

“그래?”

경완의 설명을 들은 그녀는 곧장 아무런 생각 없이 전기충격탄의 안전을 해제했다.

“어?”

“얍!”

그리고는 정원에 투척.

마당에 떨어진 전기충격탄은 빠지직 사방으로 굵은 전류를 방전하고는 매캐한 연기를 내고 말았다.

“굉장하네. 오빠, 고마워.”

미연이 감탄하더니 자신을 걱정해준 경완에게 감사를 표하며 두 손을 내밀었지만 그는 말이 없었다.

“…….”

“?? 왜? 더 없어?”

“응.”

경완이 고개를 끄덕이자 미연은 짜게 식은 표정으로 내밀었던 손을 거둬들였다.

“성능은 괜찮은데 개수가 아깝네.”

“마음에 들면 더 만들어 달라고 할까?”

경완이 물었다. 방금 마당에 던지는 모습을 보아하니 투척형 호신장비라도 제법 잘 쓸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됐어. 저것보다는 경호를 강화하는 게 더 확실할 것 같아. 누가 경호에 끼어주면 참 좋을 텐데.”

그녀의 말에 경완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게 귀찮아서 쓸만한 호신장비를 찾기 위해 움직였던 거 아니겠는가?

그녀는 씨알도 안 먹힐 것 같은 경완의 표정에 속으로 칫하고 혀를 차더니 작전상 후퇴를 결정했다.

“아무튼 신경 써줘서 고마워. 혹시 모르니까 휴대폰 줘봐.”

“왜?”

“암튼 줘봐.”

“싫은데?”

단단한 경완의 가드에 미연은 결국 이유를 솔직하게 말했다.

“앱 하나 깔아주려고. 여기 이거 보여?”

그녀는 작은 액세서리를 경완에게 보여주었다. 위치추적기로 경완이 원하면 앱으로 언제든 그녀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거면 혹시 내가 또 납치되더라도 빠르게 구할 수 있겠지?”

경완은 딴죽 걸지 않고 앱이 설치된 자신의 휴대폰을 받았다. 그녀의 말대로 그녀가 또 납치되었을 때 수수방관할 생각은 없었다.

문득 그런 자신의 생각을 자각한 경완은 어이가 없어 피식 웃었다.

미연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라도 구하겠다는 생각을 했을까? 곰곰이 생각해 봐도 아니었다. 자신도 남자는 남자인 모양이었다. 미녀는 구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니 말이다.

그가 피식 지은 미소의 의미가 미연은 궁금했던 모양이었다.

“왜 웃어?”

그녀의 물음에 경완은 평소처럼 대답했다.

“그냥.”

* * *

며칠이 지났다. 경완은 호신장비보다는 경호를 강화하자는 미연의 의견에 기깔나고 신박한 호신장비를 구해다 주자는 생각을 버렸다.

경호를 강화하는 것은 돈이 더 들기는 하지만 나쁜 방법은 아니었고, 한 번 그녀가 납치당할 뻔까지 했으니 그녀의 안전에 더 신경을 쓰게 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경완이 생각하는 그런 신박한 호신장비가 아직 세상에 없지 않은가?

그는 자신에 대해 원한을 가진 중국인을 상상해 보았지만 미연에 대한 납치가 또 벌어질 확률은 낮다고 보았다. 원한이 있다고 해도 그 원한을 해소하기 위해 보복을 계획하고 실행한다는 건 매우 비범한 정신을 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짓이었다.

경완은 빼빼 마른 폭발 능력자, 한국말 할 줄 아는 중국인 윤태오를 떠올렸다. 확실히 평범한 정신을 가진 놈은 아니었다. 원래 천재와 바보는 종이 한 장 차이라지 않은가? 영웅과 또라이의 차이는 승리자냐 아니냐에 달린 것이고.

일이 성공했다면 그는 중국에서 영웅 대접을 받았겠지만 실패자에 불과했으니 중국에서조차 개인의 일탈이라며 선을 그어 버렸다. 정신 상태가 온전하지 못한 자의 폭주라나?

아무튼, 사로잡힌 그는 모종의 장소에 수감되어 있었는데 마리아가 그의 능력에 관심이 많았다. 과연 어떻게 일이 진행되고 있을까?

잠시 그런 생각을 하던 그는 고개를 터는 것과 동시에 관심도 접었다. 호기심이 일기는 하지만 알아봤자 인생에 하등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기 때문에 일찌감치 엉뚱한 곳에 대한 관심을 접고 자신의 관심사에 집중했다.

무한전생-더 빌런 18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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