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차 초능력 전쟁
“흐흐흥~”
경완은 콧노래를 부르며 냉장고를 뒤졌다. 오늘은 미역이가 야간 촬영 때문에 못 들어온다고 하니 혼자 먹어야지.
하지만 막상 냉장고를 뒤지니 차리기 귀찮아졌다. 정확히는 저녁을 차릴 만한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맛있는 음식이 없었다.
그것은 미연이 자신의 부재를 경완이 아쉬워하도록 하는 노림수였지만, 안타깝게도 경완은 조금도 아쉬움을 느끼지 못했다.
“치킨 시켜 먹어야지~”
고작 한 끼, 하루만으로 그가 미연이 차려주는 식사를 그리워하기엔 한국의 치킨은 너무 맛있었다.
“거기요, 치킨집이죠? 여기 갈릭 치킨 한 마리요.”
한국인의 정체성은 약하지만 입맛만큼은 확실히 한국화된 경완은 TV를 보며 배달된 치킨을 뜯고 맥주를 마셨다.
TV에선 아프리카에서 발생한 초능력 동물에 대한 외신보도를 국내방송사들이 받아쓰고 있었다. 초능력이 인간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나?
각 정부에선 감추고 싶은 사실이었지만 죽은 사람이 너무 많았다. 초능력을 각성한 아머드 엘리펀트가 밀렵꾼들을 쫓아가서 때려죽여 버렸다고 하니까 말이다.
이 아머드 엘리펀트는 결국 아프리카의 초능력자와 군부대에 의해서 사살당했다. 아무리 밀렵꾼이라지만 사람 죽인 동물을 살려둘 순 없는 노릇 아닌가?
경완은 혀를 찼다. 역시 인간은 이기적이다. 자기들은 스스로를 안전이나 이득, 혹은 복수를 위해서 얼마든지 같은 인간을 죽이는데, 동물들은 그러지 못하게 하니 말이다. 괜히 짐승 같은 놈이라는 표현이 욕이 아니었다.
그 외에 다른 뉴스도 이어졌지만, 이미연-이경완에 대한 이름은 한 글자도 나오지 않았고, 불법대선자금 지원에 대한 것도 단 한마디 나오질 않았다.
이러니 언론이 쓰레기라고 욕을 먹지. 사망기자 같은 빌런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라니까.
그러고 보니 요즘 사망기자가 뭐하는지 소식이 없었다. 인터넷을 뒤져봐도 사망기자 사망설, 사망기자 도주설 등 그의 근황을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았다.
참 아쉽게 되었다. 하는 똘끼가 유쾌해서 참 구경하는 맛이 있는 친구였는데.
경완이 배가 불러서 남은 치킨은 내일 먹으려고 냉장고에 킵하기 위해 주섬주섬 정리했다.
그런데 그 와중에 머릿속에 목소리가 울렸다.
[잘 지내셨나요?]
아는 목소리. 비질란스의 텔레파시 능력자, 오라클이었다.
[오랜만이네요. 그런데 무슨 일이세요?]
[……그냥 근황이 궁금해서요.]
비질란스가 일개 개인의 근황이 궁금하다? 뭐, 경완을 단순한 개인으로 치부할 순 없지만 그들이 그를 포섭하거나 같은 편으로 끌어들이려고 하는 게 아니라는 건 분명했다.
그렇다고 쓸데없는 일로 연락한 것도 아닐 테니 경완의 머리엔 한 가지 가설이 떠올랐다.
그냥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서?
경완이 강우빈을 통해 위버멘쉬의 음모(?)를 경고했고, 요하네스가 일이 잘 안 풀렸다고 언급까지 했으니 분명 경완 덕분에 위기를 모면한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고맙다고 솔직히 말하지 못하고 근황이 궁금하다고만 하는 것은 고마운 이유를 설명하기 난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걸 말하려다간 강우빈과 비질란스의 관계가 들통 날 것이기 때문이었다.
오라클이 말을 이었다
[저희는 경완 씨처럼 불의를 참지 못하는 분들을 지원하고 있어요. 새삼스럽겠지만 혹시나 도움이 필요하게 되시면 연락을 주세요.]
경완은 어떻게요라고 묻지 않았다. 그렇게 말하면 분명 방법을 알려주겠지만 지금처럼 서로 거리를 두는 편이 서로에게 좋았다.
[괜찮습니다. 제가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 되면 세상이 시끌벅적해질 테니 따로 연락할 필요가 없을 거예요.]
[…….]
말은 없지만 당혹스런 감정이 전해져왔다. 뭔가 곤란한 상황이 닥치면 막 나갈 거라는 뉘앙스에 그러라고 말하기도, 그러지 말라고 말하기도 뭐한 오라클이었다.
경완은 마음은 고맙지만 이 불편한 인사를 얼른 끝내기로 했다.
[신경 써줘서 고맙기는 합니다. 그럼 님도 잘 지내시고, 비질란스도 하는 일 탈 없이 잘 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오라클은 그 말 외엔 딱히 다른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뭐랄까 더 많은 말을 하기엔 서로가 가는 길이 너무나 차이가 났다고나 할까?
그래도 한 가지 위안이 되는 점은 경완 같이 강력한 존재가 비질란스에게 묘한 호의를 가지고 있다는 점, 그리고 그가 정부나 어떤 집단에 회유 되어 비질란스를 적대할 가능성이 적다는 것에 있었다.
경완이 악한 자들을 혐오하듯이, 비질란스 역시 그러했으니까.
[그럼 평안하시길.]
오라클이 텔레파시를 끊자 경완은 다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오늘 저녁 촬영을 순식간에 끝내고 돌아온 미연 때문에 그것도 오래가지 않았지만 말이다.
“오빠! 나 왔어!”
“……문 안 열어줬는데 어떻게 들어왔냐?”
“여기 대문 스마트도어락이잖아? 나도 등록해 놨지.”
“…….”
대단하다.
경완이 할 말을 잃은 동안 그녀는 사온 식료품을 정리하러 주방으로 갔다가 냉장고에서 경완이 치킨 시켜 먹은 흔적을 발견했다.
“오빠. 치킨 먹었어?”
“응.”
“치사하게 혼자 먹기야?”
“그럼 너도 먹든가.”
“그럴까? 이거 몇 분 데우면 되지?”
“…….”
경완은 돈도 잘 벌면서 자신이 먹다 남긴 것을 아무렇지 않게 먹으려는 그녀의 모습에 진짜 정들 것 같아서 얼른 새로 치킨을 시켜줬다.
진짜 강적이었다.
* * *
텔레파시로 마리아에게 코어의 구조를 전해준 뒤 일주일쯤, 경완은 그녀의 연락을 받아 세립 초능력 연구소로 향했다.
연구소에 도착한 그는 그녀를 따라 깨끗해 보이는 연구실로 향했다.
그녀는 커다란 스크린에 영상 하나를 띄웠다.
“3D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코어 모형이에요. 경완 씨 기억과 비슷하나요?”
“비슷한 것 같네요.”
사진빨이라는 게 있긴 있는 모양이었다. 그 장엄한 느낌이 조금도 구현되지 않은 것을 보면 말이다.
“얼마나 비슷한가요? 한 90%쯤?”
경완은 솔직하게 말했다.
“한 80%쯤 되는 것 같네요.”
“역시…… 경완 씨, 번거롭겠지만 몇 더 작업해야겠네요.”
별수 없었다. 경완은 일정을 잡았고, 약 두 번 더 텔레파시로 코어 관찰한 내용을 전달했다.
그러고 나서야 코어의 3D 모델링이 그가 인정할 수 있을 만큼 원본의 형태를 따라 할 수 있었다. 마리아가 천재는 천재인 모양이었다.
경완은 이제야 조금 마음이 편해졌다. 이걸로 마리아의 귀찮은 등쌀을 피할 수 있게 되었으며 그녀의 호의까지 확보했다. 위버멘쉬와의 우호적 관계는 덤이었다.
“그런데 정말 재현이 가능하겠어요?”
문외한인 경완이 봐도 매커니즘을 규명하는 것부터 쉬운 일이 아닌 것으로 보였다.
그의 물음에 마리아가 대답했다.
“해봐야죠. 어렵다고 포기하는 건 연구자의 자세가 아니죠.”
그녀의 말도 맞았다. 인류의 기술문명을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불가능에 도전하는 이들 덕분이었으니까.
경완은 그녀의 앞날에 덕담을 해주었다.
“부디 잘 해내시길 바랍니다. 그럼 저는 그만 가볼게요.”
“나중에 혹시 경완 씨의 도움이 필요해질 수도 있으니까 귀찮아하진 말아요.”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 보죠.”
막 일 하나를 마친 참이라 그녀의 요청을 승낙하기 충분할 정도로 기분이 좋았지만 경완은 그런 순간적인 기분에 막 내뱉을 정도로 자제력이 약하지 않았다.
누가 알겠는가? 그때 가면 정신없이 바쁠지.
“아참. 코어가 재현되면 미연이 호신장비 만들어주는 거 잊지 마세요.”
“물론이죠.”
경완은 마리아와 약조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약 한 달 후, 세상은 초능력 장비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맞이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