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전생-더 빌런 190화
18-1차 초능력 전쟁
“여보세요?”
[경완 씨! 어딥니까!]
한대정의 목소리였다.
“저도 모르겠네요.”
[설마 경완 씨도 붙잡힌 겁니까?!]
“아, 그건 아니고요.”
경완은 한대정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렇군요.]
대답하는 한대정의 목소리가 침울했다. 그렇게나 대비를 했는데 결국 주요 인재를 빼앗겨 버렸다.
[그러니까 뜸들이지 말고 구했으면 좋았을 거 아닙니까?]
억눌린 목소리엔 분노가 가득했다. 하지만 경완이라고 할 말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러니까 중국이 이딴 짓을 하지 못하도록 평소에 잘하지 그랬습니까? 마리아 소장님이 평소에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으면 이런 위험한 짓을 하다가 결국 잡혀가기까지 했겠어요?”
경완의 반박에 한대정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본인이 말을 꺼내기는 했지만 지금 누군가의 잘잘못을 따질 때는 아니긴 했다.
[하아……. 소장님은 안전하겠습니까?]
“머리에 든 지식을 빼먹으려면 고문은 하지 않겠죠. 대신 세뇌 작업은 하겠지만.”
[그건 안전하지 않다는 소리 아닙니까?!]
“그래서 조만간 다시 돌아갈 생각이에요.”
[언제쯤요?]
“뜸 좀 들이고요.”
위치는 알아놨으니 한숨 푹 쉬었다가 놈들이 안심할 때 바로 추적에 들어갈 생각이었다.
정규전이 힘들면 비정규전을 해야지. 아니면 깔끔하게 마리아만 빼내도 되고 말이다.
경완의 계획에 조금은 안심이 되는지 한대정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잘 부탁합니다. 저희도 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 해보겠습니다.]
“정부가 나서서 앞에서 어그로를 끌어주면 좋아요. 예를 들어 규탄성명이라든가, 국제적인 호소라든가.”
[……위에 보고하겠습니다.]
국가가 나서서 어그로 탱킹을 해달라는 말에 한대정은 잠시 멈칫했다. 그건 자신이 아니라 청와대에서 결정해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네, 그럼 수고하세요.”
경완이 그런 한대정의 반응에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지만 곧바로 다시 전화가 왔다. 한대정이 다시 전화를 걸어올 줄 알았는데 다른 사람이었다.
[여보세요, 이경완 씨?]
“음…… 이 목소리는 혹시 요하네스 씬가요?”
[요한이라고 불러도 됩니다.]
몇 번이나 그렇게 말했지만 경완은 그를 애칭으로 부를 생각은 없었다.
우호적인 관계라도 요하네스 정도 되는 사람하고 개인적으로 친분을 가질 생각은 없었다.
그 정도 위치에 있는 사람은 이미 정략과 사생활이 일치된 경우가 많기 때문이었다.
본인을 애칭으로 부르라는 그의 의도가 순수하다고 믿을 정도로 경완의 뇌는 청순하지 않았다.
“아무튼 무슨 용건이세요?”
[킴이 납치되었다는 말에 급히 연락을 드린 겁니다. 그런데 경완 씨도 전화를 안 받더군요.]
“수신이 불가능한 지역에 있어서요.”
[혹시 경완 씨도 마리아의 납치와 관련되어 있습니까?]
“관련되어 있다면 관련되어 있죠.”
경완은 애매하게 말했다. 하지만 요하네스는 바로 핵심을 찔렀다.
[혹시 중국입니까?]
“뭐, 그렇죠.”
딱히 비밀도 아니었다. 곧 정부에서 발표할 테니까. 만약 중국의 젖꼭지가 달달해서 입을 꾹 다문다면 경완이 터뜨릴 용의가 있었다.
요하네스가 물었다.
[킴을 구하러 갈 겁니까?]
“뭐 그래야겠죠?”
이번 교전만 해도 경완은 약간의 위협을 느꼈다. 시대에 뒤처진다는 퇴물의 느낌보다는 자신에게 원한을 가진 쪽이 급격하게 힘을 부풀리고 있을 때 발생하는 합리적인 불안감에 가까웠다.
경완은 마리아와의 약속을 지키는 건 그런 중국에게 엿을 먹이고 힘을 깎을 수 있는 좋은 명분이었다.
[그렇다면 경완 씨가 킴을 구하기 쉽도록 저희도 협조하겠습니다.]
“어떻게요?”
혹여나 도와준답시고 초를 치면 골치가 아팠다. 그런데 요하네스의 답변은 여기까지였다.
[보면 알 겁니다.]
뚝.
“여보세요? 여보세요?”
경완은 연신 여보를 외쳤지만 이미 전화는 끊어져 있었다.
그는 혀를 찼다.
어디 한 번 어떻게 도와주는지, 아니면 초를 치는지 두고볼까 했는데 하루쯤 쉬고 있다 보니 갑자기 뉴스에서 이런 소식이 나오는 게 아닌가?
[속보] ‘신장 위구르 소요사태 발발!’
[속보] ‘티벳 강제수용소 파괴!’
갑작스레 중국에서 악재가 터져 나왔다.
좀 더 자세히 보아하니 난데없이 등장한 초능력자들이 중공군을 공격하며, 중국에게 탄압받던 사람들을 구해내 자유를 주고 있었다.
중국은 이 난데없는 공격을 테러리즘이라 규정하고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했지만 그들은 미국이 아니었다.
서양은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 나오며 협조를 구하는 중국에게 시큰둥한 태도를 보였다.
안 그래도 언더독, 사회에서 소외된 자의 초능력 각성에서 이러지는 원한 범죄 때문에 빈부격차, 따돌림 등의 문제들에 대한 말이 많았다. 평소에 얼마나 불합리하고 불공평했으면 힘이 생기자마자 보복하려고 드는 이들이 생기겠냐는 말이었다.
각성한 초능력으로 자신을 괴롭히고 따돌리던 동급생들에게 보복하러 다닌 사건은 미국에서도 발생해서 이슈가 되었다.
그런데 오랫동안 종족말살이나 다름없는 짓을 한 중국에 대한 티벳과 위구르의 감정은 어떻겠는가?
그러니 터질게 터졌다는 반응이 나오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경완은 요하네스의 말이 떠올랐다.
보면 안다고?
그의 말과 지금 중국에게 터진 악재는 과연 우연의 일치에 불과할까?
하지만 확실한 것은 있었다. 이로써 중국의 시선이 서쪽으로 향할 테니 경완이 움직이기 더 수월해졌다는 거 말이다.
그는 해가 어둑해질 때쯤 몰래 집을 빠져나왔다. 옆집에 있는 한대정이나 오하나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TV를 켜놨기 때문에 두 사람은 아마 경완이 드라마를 시즌 통째로 보고 있는 줄 알 것이다.
굳이 알리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두 사람이 국정원이기 때문이었다. 차장이라는 인간도 일본 돈 먹는데 중국 돈 안 먹은 사람이 한 명도 없을까? 정보를 빼내기 위해선 입 하나면 충분했다.
경완이 다시 황해를 건너갔다. GPS좌표를 따놨기 때문에 정확한 위치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도착해 보니 사람이 없었다. 추적을 염려해서인지 완전히 시설이 비어있었다. 급히 움직이느라 미처 챙기지 못한 군장류를 보니 군사시설이긴 했던 모양이었다.
경완은 초감각을 전개했다. 그가 흩뿌린 S입자에 마커가 남겨놓은 S입자의 자취가 걸려들었다. 차를 타고 이동했는지 안개 같은 자취는 도로를 따라 남겨져 있었다.
어둠에 숨어 도로가를 따라 움직이던 경완은 그 자취가 도로 옆으로 빠져 비포장도로 위에 남겨진 것을 감지했다.
따라가보니 한국의 것과는 다른 느낌의 산수(山水)를 배경으로 으리으리해 보이는 별장이 하나 있었다. 무려 5층짜리 건물이라서 그런지 쁘띠 호텔 느낌이 난달까? 과연 중국의 스케일다웠다.
하지만 딱 봐도 경비가 삼엄했다. 경완은 S입자를 뿌리려고 하다가 공포의 사제들이라 불리던 컬트 마피아가 떠올랐다.
그때도 S입자를 뿌려서 현장을 파악하려고 했더니 S입자에 민감한 자들이 반응했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그럴 수 있었다.
저번에 잠시 교전했던 중국 초능력 전투부대의 역량이 상상 이상이었으니 경계 태세 역시 마찬가지라고 보는 것이 안전했다. 더 이상 S입자를 매개로 하는 경완의 초감각이 결코 만능이 아니라는 의미였다.
하지만 다행히 경완에겐 대안이 있었다.
그는 옅게, 아주 옅게 흑연의 염동력을 뿌렸다. 바닥에 얇게 깔린 염동력을 최대한 멀리 뿌려 거기에 걸리는 감각으로 외각의 경계 태세를 확인했다.
S입자를 뿌리는 것보다 신경도 많이 써야 하고 범위도 좁고 시간도 걸렸지만 훨씬 은밀했다. 이 방법이라면 S입자에 예민한 초능력자에게 들키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의 초감각처럼 S입자를 뿌리는 능동적인 탐지 능력이 저들에게 없다면 말이다.
경완은 외곽 경비의 위치를 확인하고 사각지대를 찾아 담을 넘었다. 경비의 사각지대로 생각되는 지점에 마치 함정처럼 동작감지기가 설치되어 있었지만 염동력을 전선을 끊어 무력화했다.
안으로 침투한 그는 잠깐씩 S입자를 발아래에 뿌려 혹시 지하에 따로 방이나 시설이 있는지 확인하기도 하면서 전체적인 구조를 확인했다.
그리고 파악한 구조를 토대로 과연 마리아를 어디에 감금해 놨는지 추론해 보았다.
가장 유력한 두 곳은 전망 좋은 5층, 혹은 도주가 힘든 지하실이었다.
아무래도 일단 회유를 시도할 것이기 때문에 그녀에게 좋은 방을 주지 않았을까?
경완은 위층으로 올라가기로 했다.
물론 정직하게 건물 안으로 들어가진 않았다. 물론 마커가 남긴 자취를 따라 들어가면 확실하게 마리아의 위치를 찾을 수 있겠지만 건물 안 곳곳에 있을 경비시스템을 피하는 건 아무리 경완이라고 해도 무리였다.
하나쯤은 상관없겠지만 갑자기 감지센서가 계속 무력화되면 저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뭔가 문제가 생겼음을 알 테니까.
차라리 건물 밖 벽에 붙어 창문 안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는 편이 훨씬 안전했다.
물론 그런 식으로 확인하지 못하는 방도 분명 있었다. 밖에서의 조명 때문에 밝혀진 벽면은 투명능력이 없는 이상 접근할 수도 없었다.
그럴 땐 경완은 어떨 수 없이 S입자를 뿌렸다. 안에 예민한 감각의 에스퍼가 있을 경우 들킬 수도 있었지만 그만한 리스크를 감수할 가치는 있었다.
왜냐면 그러한 시도 끝에 결국 마리아가 가두어진 방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딱히 구속되어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하지만 안에 감시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고 문 앞에는 감시자가 둘씩 대기하고 있었다.
경완은 마리아를 포기하고 후퇴한 자신의 전략이 옳았음을 확인했다. 만약 그때 자존심을 세운답시고 억지로 싸웠다면 이렇게 그녀를 안전하게 확보할 기회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아마 저들은 자신이 이렇게 그녀를 찾아낼 줄은 상상도 못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긴 마커라는 테크닉을 생각해 내고 사용할 만한 사람이 세상에 그리 많지는 않을 테니까. 그리고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이경완일 수 있다는 가능성은 더욱 상상하기 어려웠고.
그도 미연이 납치당하는 일이 없어서 마커라는 테크닉을 습득하지 못했다면 지금과 같은 기회를 얻지 못했을 테니 인생이란 정말 알 수 없는 것이었다.
마커라는 능력이 없었다면 아마 지금쯤 그는 북경에 가서 주석과 상무위원들의 모가지를 잡고 인질교환 협상을 벌이고 있지 않았을까?
경완은 시간을 확인했다. 새벽 2시. 마리아를 도로 탈취해서 튀기에 딱 좋은 시간이었다.
그가 실처럼 뽑아낸 검은 연기 한 줄기가 창문 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신속하게 움직였다.
감시 카메라의 선을 뽑고, 창문의 잠금장치를 열고, 의자 등받이로 문고리를 받혀 문을 막는 일련의 행위가 거의 동시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일어났다.
짤깍! 짤깍! 짤깍!
“!#$!%”
문 밖에서 당황한 목소리가 들렸다. 감시 카메라에 이상이 생겼으니 확인해 보라는 지시에 안으로 들어오려고 했지만 문이 잘 안 열리자 당황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저들도 중요한 인물의 신변을 아무나 담당하게 두진 않았다.
콰직!
굵은 팔뚝이 문을 뚫고 나오더니 그대로 뜯어버리듯 떼어내며 방으로 들어왔다. 신체강화능력자였다.
하지만 경완은 이미 마리아를 보쌈하듯 이불로 돌돌 말아서 창문 밖으로 튀었다.
“!#$!%!”
사이렌이 울리고 서치라이트가 켜졌지만 밤의 어둠속으로 사라진 두 사람을 찾을 순 없었다.
* * *
“다 끝난 줄 알았어요.”
마리아가 바닷내음을 맡으며 중얼거렸다.
경완이 대꾸했다.
“왜요? 제가 버린 줄 알았어요?”
“네, 그랬죠.”
“그건 다 작전이었어요. 그 상황에서 격렬하게 싸웠다면 승패를 장담할 수 없었거든요. 제가 죽거나 잡히면 소장님은 누가 구해줍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