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전생-더 빌런 192화
18-1차 초능력 전쟁
하지만 이상하게도 초능력을 사용한 전투에서 대체적으로 밀렸다. 초능력자의 질도, 심지어 그 수에서도 말이다.
물론 자국의 인재풀을 100%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변명을 할 수 있었지만 당장 비정규전에서 중국이 딱히 우위를 점하지 못한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이 비정규전에서의 열세는 정규전에도 영향을 끼쳤다. 대표적으로 보급과 인명손실로 인한 사기저하 문제가 극심했다.
이상하게 여긴 중국은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초능력 확장 장비가 대거 이들 독립군에게 넘어간 것이다.
당연히 누가 넘겼는지는 설명할 것도 없었다. 중국은 대번에 한국 정부에 경고했다. 외교적 수사는 간결했고 거기에 담긴 의미는 더 간결했다.
‘국교단절을 각오하고 벌이는 짓이냐?!’
한국 정부는 자기들은 모르는 일이라 펄쩍 뛰었고, 실제로도 모르는 일이었다. 모든 것은 마리아 소장이 독단으로 저지른 짓이었으니까.
초능력 확장 장비를 한국에서 생산했다면 한국 정부도 미리 그녀의 돌발행동을 알았겠지만 그녀는 그저 외국에 발주를 넣었을 뿐이었다.
여기서 제3세계까지 뻗은 위버멘쉬의 영향력은 충분히 저렴하게 초능력 확장 장비를 대량생산할 수 있는 국제 산업 연계망을 형성했고 티베트, 위구르 독립군에게 싸게 공급되었다.
단지 코어의 생산이 관건이었지만 위버멘쉬는 다른 곳에 줄 물량까지 뒤로 물리면서 독립군을 지원했다.
그리고 그러한 배경엔 마리아의 강력한 의지가 있었다. 위버멘쉬만이 아니라 그녀 역시 초능력 확장 장비에 적잖은 지분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박사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
이를 파악한 한국 정부에선 산업통상부의 장관인가 차관인가 하는 사람을 보내 마리아에게 사정했다. 한국 경제의 타격이 어마어마할 거라고 말이다.
이에 그녀는 전격적으로 기자 회견을 열었다.
“저는 여기서 한 가지 고백할 것이 있어요.”
그녀의 고백은 그녀가 위구르와 티베트의 독립에 대해 본인이 지원하고 있다는 것이었으며 그 이유까지 설명했다. 자신이 티베트와 위구르의 독립을 지원하는 건 자신을 납치했던 중국에 대한 원한 때문이라고 말이다.
그녀의 그런 돌발 발언은 중국은 물론 한국 정부조차 달가워하지 않는 일이었다. 감추고 싶었던 비밀을 대중에게 공개하는 것이니까.
하지만 마리아는 그마저도 예상하고 있었다.
“이런 기자회견이 한국 정부에 달갑지 않을 거라는 건 알아요. 하지만 제가 무사히 돌아온 이후에도 중국에 한 마디 공개적으로 항의하지 못하는 정부의 입장을 제가 굳이 고려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군요.”
“소장님! 한국 경제에 악영향을 끼칠 우려는 고려해 보셨습니까?!”
어떤 기자의 질문에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이 나라의 100년 먹거리를 도적질해 가는 나라와 경제 협력을 하는 것 자체가 제게는 불합리한 선택으로 보여요. 모두 냄비 안에 담긴 개구리처럼 물이 서서히 뜨거워지고 있다는 걸 모르겠어요?”
그녀는 단호했고 그런 그녀의 기자회견은 한국사회와 한국증시에 엄청난 충격을 줄 것이 뻔했다.
하지만 충격을 주는 사실은 비단 중국과의 갈등으로 발생할 경제적 우려만은 아니었다.
Q&A 시간에 어떤 기자가 질문을 던졌다.
“아까 한국 정부의 입장을 고려할 필요를 못 느끼겠다고 하셨는데, 한국 정부가 소장님을 구한 것이 아니었습니까?”
한국 정부가 구했다면 당연히 그 입장을 고려해야 하지 않겠는가? 라는 뉘앙스에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저를 구해준 사람은 이경완 씨였습니다.”
“……누구요?”
모두가 ‘아니, 거기서 그 이름이 왜 나와?’라는 표정을 지었지만 마리아가 자신의 말을 도로 삼키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 자리를 빌어 이경완 씨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당신이 아니었다면 저는 중국의 세뇌를 받아, 알고 있는 것들을 모두 토해낸 뒤 입막음을 위해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을 당했겠죠. 당신은 제 생명의 은인입니다.”
생방송으로 기자회견을 보고 있던 중국 네티즌들의 머릿속엔 ‘또 그놈이야?’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쯤 되면 하늘이 점지해 준 악연, 중국의 대적(大敵)이 아닌가? 왜 중국이 하는 일마다 초를 친단 말인가?
하지만 당장에 그를 응징할 수는 없었다. 중국 서쪽의 사정이 나날이 악화일로를 걷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상황은 미국의 경제적 대(對)중(中) 압박을 시작으로 치열한 전쟁으로 번지기 시작했는데, 여기에 기름을 부은 건 위버멘쉬 소속의 의용군 참전이었다.
언론에선 최초로 초능력자가 정규전에 뛰어든 이 전쟁을 두고 1차 초능력 대전이라고 명명했다.
* * *
“드디어 끝났나 보네. 아니, 아닌가?”
경완이 마우스를 클릭하며 외신 뉴스를 스크롤했다.
약 두 달여의 시간. 짧으면 짧다고 할 수 있는 위구르, 티베트 독립전쟁은 일단 정전(停戰)협정을 맺었다. 협상의 내용은 겉으로만 보면 윈윈이었다.
중국에선 일단 독립을 저지했다는 모양새를 얻었고, 위구르와 티베트는 공산당의 입김이 닿지 않는 강력한 자치권을 확보했다.
물론 이 자치권이 더 나아가 독립국가의 바탕이 될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이 정전협정은 그저 서로의 피해가 너무 컸기 때문에 잠시 숨고르기를 위한 것이라는 걸 서로가 모를 리 없었다. 다시 시간이 지나고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다시 전쟁이 시작되리라.
티베트와 위구르에게 안 좋은 점은 그때가 되면 중국은 이번에 보인 미흡한 점을 모두 봉합하고 달려들 것이라는 점이었다.
하지만 언론은 중국이 미국처럼 여러 주가 모인 합중국 형태가 될 수도 있을 거라며 근거 없이 희망찬 메시지를 광고하기 바빴다. 그런 희망적인 메시지를 던져야 증시에 가해진 충격을 조금이나 완화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기사도 결국엔 돈 주는 놈 입맛대로 나오는 세상이었다.
비관주의자, 혹은 식견 있는 자들은 그런 언론의 홍보에 넘어가지 않았다. 2차 세계 대전의 씨앗이 1차 세계 대전의 정전 협정부터 심어진 것처럼, 제2차 티베트&위구르 독립전쟁, 혹은 진압전쟁이 언제고 시작될 거라는 것을 말이다.
티베트와 위구르 두 곳은 독립에 대한 희망의 불씨를 유지했지만 악재는 이만저만 큰 것이 아니었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중국의 적극적인 사민정책을 통해 불어난 중국인 인구였다.
거기에 강제적인 결혼 정책을 통해 태어난 2세, 3세들은 자치구 내에서 차별과 분열의 불씨였다.
그들은 중국으로 가면 한족이 아니라고 멸시받고, 살고 있던 곳에 남아도 이상한 시선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이런 이들까지 보듬기엔 독립세력에겐 여유가 없었다. 그들도 바보가 아니니 곧 이어질 중국의 공세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할 군사적, 경제적 울타리를 만드느라 온 역량을 쓰고 있었다.
안 그래도 중요한 경제적, 군사적 거점에서부터 중국인들을 추방하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만연한 차별을 포용할 정도로 정신이 있진 않았다.
그리고 그러한 현실적 문제들이 독립세력 앞에 산적해 앞으로의 난항을 알려주고 있었다.
“다들 잘됐으면 좋겠네.”
미연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경완의 어깨너머로 그가 무슨 뉴스를 보는지 함께 보고 있었다.
경완은 야동 보는 것도 아니고 해서 그런 그녀의 행동을 지적하진 않았다.
“일 안 나가?”
“녹화 끝났어. 이제 좀 쉬어야지.”
그녀가 주연인 ‘그녀는 멋있어요’라는 드라마의 촬영이 끝났다.
OTT 서비스로 전 세계에 공개된 드라마에서 그녀는 매력적인 커리어 우먼으로서 현대 여성들이 되고 싶어 하는 워너비의 이미지를 잘 구축했다는 평을 받고 있었다.
미연은 경완이 자신을 보자 가느다란 허리를 강조하듯 두 손을 허리에 짚고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한 팔로 확 끌어안고 싶을 정도로 늘씬한 라인이었지만 경완의 눈에는 그녀의 허리에 차고 있는 물건이 먼저 들어왔다.
“나가지도 않을 건데 그건 왜 차고 있어?”
그녀가 차고 있는 것은 경완이 마리아로부터 받은 개인용 배리어 장비인 금속 허리띠였다.
그의 물음에 미연은 웃으며 대꾸했다.
“그냥?”
그런 그녀의 미소를 경완은 차마 보지 못하고 입맛만 다시며 고개를 돌렸다. 그녀가 사랑스러운 행동을 하는 것은 그의 입장엔 참 문제였다.
경완은 괜히 자리를 피해서 거실로 나왔다. 게임이나 해야지.
하지만 미연은 그런 그를 쫓아 그의 옆에 앉아서 그가 게임하는 것을 구경했다.
다시 경완은 불편해졌다.
“아니, 왜?”
“그냥?”
자신의 얼굴을 물끄러미 감상하는 이유를 물어봤지만 그냥이라고 대꾸하니 뭘 더 말해야 하는 걸까?
경완은 도망치고 싶어졌고 마침 그의 머리에 떠오르는 요청들이 있었다.
하기 귀찮아서 미뤄놨던 것들을 이번 기회에 해버려야겠다는 생각에 경완은 게임을 껐다.
“다 했어?”
“응.”
“웬일이래? 밥 먹을 때까지 붙잡고 있더니?”
“갑자기 할 일이 생각나서.”
“무슨 일인데?”
“넌 몰라도 돼.”
“같이 가면 안 돼?”
“응, 안 돼.”
경완이 대충 옷을 걸치고 슬리퍼를 신자 그녀가 현관까지 그를 배웅해줬다.
“잘 다녀와.”
마치 그 모습이 남편 출근을 배웅하는 새색시 같아서 경완은 기분이 복잡해졌다.
이루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을 품은 채 그는 김준을 만나러 갔다.
FBI의 이경완 담당 통로인 그는 경완에게 진실의 스무고개를 외주하기 위해 미국국적의 범인을 한국으로 들여서 수사하는 업무에 일조하고 있었다.
때문에 한국으로 이송된 용의자들은 어이가 없었다.
왜 미국에서 신문(訊問) 받지 않고 굳이 한국까지 와서 신문을 받아야 하는 것일까? 솔직히 미국도 초능력을 수사와 신문에 활용하는 수준이 높아져서 거짓말을 하는 것도 어느 정도 판별할 수 있는 수준에 올라있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정신계 능력자들이 범인들과 정신을 접촉하는 것 자체가 위험했다. 정신에 관한 문제는 신중히 다루어야 했으며 그중 텔레파시 능력을 통한 정신오염 문제는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어서 가장 보수적인 방침으로 운용 중이었다.
귀중한 정신계 능력자가 반사회적 범죄 사상에 오염되는 것만큼 큰 손실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래서 연쇄살인이나, 테러, 비양심적인 범죄자에 대해 정신계 능력으로 심문하는 일은 지양하고 있었다. 귀중한 인재의 정신적 건강을 위해서 말이다.
그래서 경완의 일거리는 여전히 없어지지 않았다. 그가 사용하는 진실의 스무고개라는 테크닉은 정신계 능력과는 일절 관련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웬일이세요? 경완 씨가 먼저 일거리를 찾고 말이죠.”
김준은 경완의 방문이 매우 놀란 모양이었다. 이렇게 부지런한 사람이 아니었는데 말이다. 하지만 이내 그는 묘한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하긴. 책임질 여자가 생기면 남자는 변하게 마련이죠.”
“……헛소리 좀 하지 마세요.”
미연을 두고 하는 말이 분명했기 때문에 경완은 어이없어하며 반박했지만 김준은 다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과 표정이 때리고 싶을 정도로 얄미웠다.
때릴까, 말까? 경완이 그런 고민을 하는 줄도 모르고 김준이 말을 이었다.
“미안하지만 경완 씨의 도움이 필요할 정도의 사건은 요즘엔 그리 많지가 않아서요. 저번에 제안 드린 것도 바쁘다고 거절하셔서 무산되었죠.”
“미국은 사람도 많고 빈부격차도 크지 않아요? 한 달에 한 번꼴로 미친놈이 나올 것 같은데요?”
“…….”
그게 지금 사람이 할 말이냐며 눈으로 욕하는 김준이었다. 자기 할 일 때문에 어디까지 사건이 일어나야 한단 말인가?
하지만 경완은 두꺼운 낯가죽으로 혀만 잘도 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