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전생-더 빌런 196화
18-1차 초능력 전쟁
“경완 씨가 제 입장이라면 어떻게 할 건가요?”
“화해할 생각은 없죠?”
“저쪽이 먼저 사과하기 전에는요.”
그렇겠지.
경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본 마리아 소장의 성질머리도 보통은 아니었다.
“가장 확실한 건 친구를 많이 사귀는 거죠.”
“중국을 고립시키라는 의미인가요?”
“마리아 씨에겐 이를 위한 확실한 카드가 있잖아요.”
그것은 바로 기술력. 대표적으로 스마트 포스필드가 있었다. 코어 기술을 부외로 쳐도 이미 산업 전반에선 스마트 포스필드 기술이 자원 혁명을 가져올 것이란 예측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예측에 따라 각국 정부에선 몇 가지 조치를 취하고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쓰레기 수출에 대한 규제였다.
여태까진 쓰레기를 돈 주고 수출했다면 앞으로는 그 쓰레기를 돈 받고 파는 세상이 올 거라고 예상하는 것이었다.
이게 무슨 소린가? 쓰레기란 결국 인간의 생존 및 경제활동 과정에서 다 소화되지 못하고 남은 일종의 똥이 아닌가?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쓰레기란 인류의 경제활동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자원을 의미했다. 핵심자원을 인간이 사용할 수 있도록 가공하고 유통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자원이라는 뜻이었다.
설사 그런 자원이 아니라도 인간이 자신에게 전달된 자원을 100% 소비하는가?
그렇지 않다. 버려지고 폐기되는 자원을 생각해 보면 쓰레기에 포함된 자원은 아마 자연에서 캐내는 자원보다 더 많을 수 있었다. 여태까지 쓰레기의 완전 재활용은 기술의 미비로 인해 채산성이 낮아서 외면받아왔지만, 스마트 포스필드 기술이 나온 이상 상황이 달라지는 것이다.
산업, 생활 가리지 않고 쓰레기의 99.9999% 재활용.
이런 극단적인 수준의 재활용 혁신은 산업 전반에 혁명을 가져올 것이고 세계의 공장이라 자부하는 중국이 그 혁신에 올라타지 않으면 여태까지 이룬 경제적 위상을 모두 잃어버릴 수 있었다.
안 그대로 지구기후 변화라느니, 탄소중립이니 하는 이슈가 지구촌을 점령하고 있지 않은가? 이를 위해선 마리아 소장의 기술은 필수재나 다름없었으니 그녀가 원한다면 각국의 도움을 받는 건 어렵지 않았다.
경완이 말을 이었다.
“중국이 암살자를 보낸 것도 마리아 씨에게 그런 전략이 가능한 인맥과 능력이 있어서가 아닐까요?”
마리아를 노린 이유가 죽이려고 한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폭력을 가미한 위협만을 가하려고 한 것인지 아직 신문(訊問) 중이지만 그 이유는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경완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표정을 보니 이미 그가 말한 것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녀가 입을 열었다.
“경완 씨. 제가 납치당했던 사건 기억나요?”
“물론이죠.”
그게 언젯적 일이라고 벌써 까먹었겠는가?
“웜홀 능력자도 기억나요?”
“물론이죠.”
그런데 그 새끼 전에 12구경 권총으로 맞지 않았나? 뭐, 중국에도 치유 능력자가 한 명쯤은 있을 테니 멀쩡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중국 주석 등 고위 간부들이 두 눈 멀쩡히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며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물며 웜홀 능력자처럼 전략적으로 중요한 능력자를 고치지 않았을까?
“요하네스가 말하길 전략적으로 가장 위험한 능력자가 바로 그 웜홀 능력자라더군요.”
경완은 고개를 끄덕였다. 중국도 핵보유국. 웜홀 능력으로 핵폭탄을 전송하는 건 대륙간 탄도미사일보다 더한 전략적 우위를 가진다.
무엇보다도 대륙간 탄도미사일처럼 쏘고 낙하하는 시간이 없어서 핵미사일 시설을 선제타격해 상대의 핵능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치명적이었다.
핵무기의 억제 능력이란 상호확증 파괴에 있지 않은가?
하지만 일방적으로 핵공격을 가할 수 있다면 이러한 억지력이 무너진다. 더구나 어디서 날아왔는지 가늠할 수 있는 핵미사일과 달리 웜홀 핵폭탄은 누가 터뜨렸는지 파악하기도 쉽지 않았다.
마리아가 말했다.
“위구르와 티베트에 기업들만 접촉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더군요.”
웜홀 능력을 어떻게 하지 않는 한 위구르와 티베트가 국제사회에서 국가로 인정받는 일이 성사되기는 어렵다는 말이었다.
“대처 방법이 있나요?”
“기술적으로 웜홀이 열리는 걸 감시할 수 있기는 해요.”
웜홀이 뚫리며 발생하는 중력왜곡을 탐지하는 건 현재 기술로도 가능했다.
그러나 장비의 크기가 거대하고, 어디서 열리는지 파악도 어려워 실용적이지 못했다.
그래서 여기에도 초능력 공학이 도입되었다. 마리아는 코어를 이용해 웜홀 탐지장치를 개발하고 있었다.
“문제는 테스트를 할 수 없다는 거예요. 발견된 웜홀 능력자는 현재 한 명뿐이거든요.”
그리고 그 한 명이 중국 소속이었다.
“그러다 뒤통수를 맞으면 크게 맞는다?”
“이미 제가 웜홀에 대한 대처법을 연구 중이라는 사실이 새어나갔어요. 중국 측이 다음에 웜홀 능력자를 투입할 땐 치명적인 일격을 먹일 각오와 계획을 세운 후겠죠.”
그 말에 경완은 잠시 생각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서울 한복판에 핵폭탄을 터뜨릴 수도 있겠군요.”
마리아는 그 극단적인 말에 아연실색해서 순간 할 말을 잃어버렸다.
“……설마요.”
“가능성은 낮지만 제로는 아니죠. 권력에 미친놈들은 뭐든 할 수 있거든요.”
위구르와 티베트 때문에 이미 전시 체제로 돌입한 거나 마찬가지인 중국이었다. 그런데 문명인처럼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을까?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고 말한 사람을 추종하는 놈들인데?
더구나 사람의 목숨을 숫자로 치환하는 상황 자체가 인간의 야만성을 극대화한다. 오히려 차가운 이성과 광기어린 악의로 핵폭탄 기폭장치의 버튼을 누를 수도 있는 것이다.
마리아는 고민에 빠졌다가 입을 열었다.
“사실 오늘 이 자리를 마련한 건 경완 씨에게 할 부탁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부탁이라…….”
“원래는 웜홀 능력에 대처할 장비 개발에 도움을 달라고 하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더 확실한 방법을 부탁해야겠어요.”
“뭔데요?”
“그 웜홀 능력자를 납치해와 주세요.”
“……허얼.”
이번에는 경완이 뻥진 표정을 지었다.
그 말에 마리아는 조금 무안해진 표정을 지었지만 이미 뱉은 말을 철회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어차피 절 납치한 사람이잖아요. 그래서 똑같이 납치해 주겠다는 거예요.”
“하지만 본의가 아닐 수도 있잖아요? 공산당에게 가족들이 인질로 잡혀서 그저 시킨 일을 했을 뿐이 아닐까요?”
그 말에 마리아의 표정이 냉정해졌다.
“그렇게 따지면 저도 어쩔 수 없는 이유로 납치하는 거죠. 세계 평화와 공산당에 억압받는 사람들의 해방을 위해서라고요.”
“왠지 약 파는 것 같은데요.”
“어차피 저쪽의 어쩔 수 없는 사유도 결국에는 위대한 중화 어쩌구저쩌구하는 것일 뿐이잖아요.”
음. 반박할 수 없는 논리였다.
경완은 입맛을 다시며 물었다.
“그런데 그 웜홀 능력자의 위치는 알아요?”
어디 있는지는 알아야 납치를 할 것 아닌가?
“경완 씨가 수락한다면 알아볼 거예요. 한 가지 확실한 건 그를 알아볼 수 있는 건 오직 경완 씨뿐이에요.”
웜홀 능력자에 대한 중국의 보안은 철통이었다. 이름이나 신분, 얼굴조차 알려지지 않았으며 그나마 그의 얼굴을 본 사람은 오직 경완뿐이었다.
그녀의 말에 경완은 고민했다.
확실히 웜홀 능력자는 중국이 쥔 에이스카드였다. 어차피 중국과 척을 지기로 결심한 그는 귀찮다고 뒤로 빼지 않았다. 이렇게 앞에 나서서 중국을 때려주는 사람이 있을 때 손을 거들어 주는 편이 나았다.
중국의 압박이 두렵기 때문에, 골치 아픈 일에 신경 쓰기 싫기 때문에, 그저 달달한 중국의 젖꼭지를 빨고 싶기 때문에, 입을 닥치고 있다가는 중국이 나에게 닥쳤을 때 누가 나를 돕겠는가?
순망치한이라는 말은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좋아요. 그렇게 하죠.”
어차피 더한 일도 했었는데 납치쯤이야.
마리아의 제의를 수락한 경완은 좀 더 자세한 사항을 물었다.
“그런데 납치한 놈을 한국으로 들이는 건 아니겠죠?”
“그야 물론이죠.”
한국 정부가 중국의 눈치를 보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에 웜홀 능력자를 가져다 놓으면 어찌 될까? 어떻게 중국 측이 국정원에서 제공한 안가로 정확히 암살자를 보낼 수 있었는지 아직도 파악되지 않은 상황에서 말이다.
한국의 방첩망은 결코 중국으로부터 안전하지 않았다.
“그럼 계획이 세워지면 연락주세요.”
마리아와 대화가 끝난 경완이 일어나며 말했다.
그녀가 경완에게 악감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람 이용해서 자기 잇속만 챙기려는 사람도 아니며, 오히려 경완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인데 설마 그를 물 먹일 계획을 짜겠는가?
그리고 며칠이 흐른 후 경완은 마리아 소장으로부터 경기도 한구석에 있는 별장으로 밤늦게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와달라는 전갈을 받았다.
경완은 그곳에서 위버멘쉬와 위구르 독립군부에서 나왔다는 두 사람과 만났다.
둘 다 낯선 사람이었지만 경완이 그 두 사람을 경계하지 않은 까닭은 마리아와 화상통화를 하면서 만났기 때문이었다.
“무슨 일이기에 이렇게 비밀리에 만나자고 한 거예요?”
[아무래도 비밀리에 일을 진행할 필요가 있어서요. 경완 씨의 알리바이도 만들어야 했고요.]
“에이~ 알리바이랄 것까지야.”
[경완 씨의 행적에 누가 가장 민감할까요?]
“중국이겠죠.”
뭐, 딱히 원한이 얽힌 곳이 거기밖에 더 있겠는가?
[앞으로의 일도 있으니 경완 씨의 행적은 중요해요. 더 자세한 이야기는 거기 두 사람하고 이야기해 봐요.]
통화가 끝나고 경완은 눈앞의 두 사람을 보았다.
위버멘쉬에서 나온 빨간 머리 백인남성의 이름은 보쉬였고, 위구르 독립군부에서 나왔다는 위구르계 남자의 이름은 하르단이었다.
세 사람은 머리를 맞대고 은밀히 작전을 구상했다.
[그 웜홀 능력자의 위치는 파악 중입니다.]
[몽타주로는 부족했어요?]
보쉬의 말에 경완의 미간이 좁혀졌다. 아니, 밥상이 다 차려지면 불러야지 다 차려지지도 않았는데 부르는 게 말이 되나? 아무리 몽타주라도 거의 사진이나 다름없이 똑같이 나왔는데 말이다.
그사이 놈이 성형수술을 했을 가능성은 낮았다.
경완의 분위기가 별로 좋지 않자 보쉬라는 남자가 서둘러 말을 이었다.
[몇 군데 유력한 곳을 찾았습니다만 그 이상 파고들면 저들의 경계심을 자극할 우려가 있어서 더 이상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그 이상은 미스터 리의 협조가 필요하다고 판단해서 이렇게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혹시 천리안 장비를 말하는 건가요?]
[은밀하게 유력지를 탐색하기엔 그보다 좋은 방법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저 말고 천리안 장비를 운용할 사람이 없는 건가요?]
[중국의 방첩망을 뚫을 수 있을 정도로 멀리 운용할 수 있는 인력은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위버멘쉬라면서요.]
경완의 대꾸가 무슨 모욕이라도 되는지 보쉬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 위버멘쉬에서 능력 있는 천리안 장비 운용인을 구하지 못해 이렇게 외부사람에게 도움을 청해야 하는 상황이라니…….
경완은 그의 그런 얼굴을 보고 입맛을 다셨다.
[다른 방법이 없다면 어쩔 수 없겠네요.]
[최대한 편의를 보장하겠습니다.]
당연한 소리에 경완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위구르계 남성, 하르단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래서 이분이 이 자리에 있는 이유는?]
[아무래도 한국의 천리안 장비를 사용할 순 없으니까요.]
미국은 너무 멀고, 러시아는 가깝지만 외교상 무리고, 한국은 어디선가 정보가 새어 나갈 후려가 너무 크고, 그렇다면 남은 건 중국과 가장 사이가 안 좋은 위구르나 티베트가 적격이었다.
하르단이 입을 열었다.
[웜홀 능력자는 저희에게도 위협적입니다. 독립전쟁 말에 웜홀 능력자를 이용한 후방 타격은 커다란 피해를 주었죠.]
국제적인 압박과 경제적인 문제로 인해 일단 자치권 수준에서 타협을 보았지만 언제고 다시 전쟁이 벌어질 거라는 건 위구르나 티베트도 다 아는 바였다.
나중을 위해서라도 웜홀 능력자를 제거, 혹은 중국의 손에서 빼앗는 일은 위구르나 티베트를 위해서라도 필요했다.
[그래서 구체적인 계획이 어떻게 됩니까?]
경완의 물음에 보쉬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일단 경완은 명분을 만들어 미국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미국에서 다시 위구르나 티베트로 몰래 밀입국한다. 중국에서 경완이 미국에 있다고 생각하는 와중에 경완이 웜홀 능력자가 있을 만한 후보지를 천리안 장비로 탐색해서 위치를 확인, 위버멘쉬의 의용군과 함께 웜홀 능력자를 납치, 혹은 현장에서 사살한다.
이러한 계획에 경완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저기 비어있는 것 같았지만 계획의 골격만큼은 딱히 흠잡을 곳이 없었다.
계획의 시작은 위버멘쉬가 미국과 한국 정부에 한 가지를 요청하면서 시작되었다. 그것은 바로 이경완을 미국의 위버멘쉬 훈련소에 초청해서 교류를 가지고 싶다는 것이었다.
미국 정부야 당연히 반대할 이유가 없었고 이는 한국 정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더구나 위버멘쉬는 코어 기술과 생산을 독점하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호의를 살 기회가 있으면 잡아야 했다.
그렇게 두 정부의 허락과 협조하에 경완은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김준이 굳은 표정으로 그와 함께했다.
“표정이 왜 그래요?”
경완의 물음에 김준은 한숨을 푹 내쉬며 대답했다.
“뭔가 불안해서요.”
“걱정 마세요. 김준 씨는 미국에 남을 테니까.”
경완이 미국에 있는 것으로 위장하기 위해서라도 그를 담당하는 김준은 미국에 남는 편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