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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전생 더 빌런-200화 (200/367)

무한전생-더 빌런 200화

19-서울 참사

미연이 누운 경완의 몸 위에 허벅지를 올리며 몸을 밀착했다. 그녀에게 팔베개를 해준 경완은 그녀의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속삭이듯 말했다.

“자라.”

“웅.”

그녀는 작게 대답하고는 그의 겨드랑이에 얼굴을 파묻고는 다시 색색 숨소리를 내며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잠에 취해 몽롱한 경완의 귓가에 미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나 나가볼 테니까 밥 챙겨 먹어. 된장찌개 해놨어.”

경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참 부지런한 여자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서울 참사 이후 경완이 중국을 다녀오면서 피곤한 일과를 보냈다지만 미연만큼은 아니었다.

서울 참사 직후, 김길상 사장의 죽음을 경험한 그녀는 치유 능력을 각성했다.

그녀의 치유 능력은 강력하진 않았지만, 축구 경기장 하나 정도 되는 넓은 영역에 전개할 수 있었다. 위력도 죽기 직전에 있는 사람의 숨통을 붙잡을 정도는 되었다.

그 덕분에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이 몇이나 되던가? 그래서 그녀에게 붙은 별명이 성녀였다.

물론 여전히 후유증으로 고통받는 이들이 많았기에 그녀는 부상자들이 수용된 병원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초능력을 사용했다.

본업조차 내팽개친 재능기부였으나 서울 참사로 인해 어차피 연예계는 반쯤 개점 휴업한 상황이었다.

수도에 핵폭탄을 맞고 나라가 망하냐마냐 하는 상황에서 하하호호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으니까.

연예인이랍시고 나대면서 사람들의 눈총을 사는 것보다는 차라리 봉사활동을 하면서 인지도를 쌓는 편이 낫다는 게 업계의 내부에서 조용히 공유되는 전략이었다.

향후 업계가 정상화될 때를 생각하면 차라리 지금 봉사활동이나 각종 기부로 긍정적인 이미지를 쌓아놓는 편이 좋다는 것이다.

물론 미연이 이런 생각으로 봉사활동을 하는 건 아니었다. 친지를 잃은 슬픔이 어느 정도인지는 삼촌 같았던 김 사장을 잃은 그녀가 모를 리 없었다.

그녀가 나간 후, 두어 시간 더 침대 위에서 뒹굴던 경완은 부스스한 머리로 일어나 씻지도 않고 주방으로 가서 미연이 끓여놓은 된장찌개를 데워먹고는 소파로 가서 패드를 잡았다.

며칠 고생한 자신에게 주는 보상 같은 건 아니었다. 그저 거기에 패드가 있기에 집었을 뿐.

경완은 무슨 게임을 할까 목록을 쭉 내려봤지만 딱히 땡기는 것이 없었다. 게임이란 자고로 참신하면서 단순하고, 그러면서 스케일이 크고 깊이가 있어야 했지만, 요즘 게임들은 그저 트리플 A급이란 수식어에 급급해서는 죄다 기본을 잃고 있었다.

게임 개발하는 사람들이 ‘그럼 니가 만들어봐!’라고 얼굴을 붉힐 만한 내적 기준이었지만, 본인은 자각하지 못했고 결국 마음을 동하게 하는 게임도 찾지 못했다.

게임을 포기한 경완은 대신 드라마나 영화로 넘어갔다. 머리 비우고 보기에 딱 좋은 것들이 여전히 쌓여 있었다.

그렇게 시간을 떼우다 오후가 되었을 때쯤 초인종이 울렸다.

“누구세요.”

[접니다.]

김준이었다.

거실에 들어온 그는 경완이 권하는 소파에 앉았다.

“어찌…… 갔던 일은 잘됐습니까?”

“대화를 나눠보니 진성 중화빠라서 죽여 버렸어요.”

“그랬군요.”

김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경완의 눈치를 살폈다.

조금 시니컬하고 염세적이면서도 욕심이 없어 탈속인 구석마저 있었던 경완이었지만 서울 참사 이후엔 다소 날이 선 분위기가 포함되었다. 그에게도 서울 참사가 충격이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 이후 계속 손에 피를 묻혔기 때문일까?

김준은 어젯밤 경완이 죽인 중국의 지방지도자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 입장에서 착잡한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어쩌겠나? 그도 상부의 결정을 따른 것뿐이었는데 말이다.

“앞으로 한동안 또 중국은 혼란에 빠져 있겠죠?”

“그럴 거라 보고 있습니다.”

경완의 물음에 김준은 상부 싱크 탱크의 의견을 참고해 대답했다.

미국은 경완이 중국에서 저지르는 혈사를 무제한 참수작전으로 칭했다. 지도부를 계속 제거하는 행위에 이보다 더 적절한 표현도 없었다.

그리고 그 무제한 참수작전을 돕기 위한 정보를 경완에게 제공했는데 이는 서로의 이해관계가 일치했기 때문이었다. 중국의 국력이 쇠약해지는 것은 미국이나 한국에게나 좋았으니까.

물론 경완이 한국을 대표한다고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어차피 그와 중국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사이였으니 중국이 약해지는 건 경완에게도 나쁘지 않은 이야기였다.

경완이 물었다.

“그사이에 또 새로 검증해야 하는 놈이 나왔어요?”

“아니요. 당분간은 없을 겁니다.”

김준은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미국은 중국의 국력이 쇠약해지길 바라기는 하지만 혼란이 길어지는 걸 바라진 않았다.

아무리 미국과 패권 갈등을 빚는다지만 중국은 명색이 세계의 공장이자 인구가 10억이 넘는 시장이 아닌가?

싼 인건비와 없다시피 하는 환경규제로 싸게 상품을 만들 수 있고, 또 중국 시장에서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서라도 통제 가능한, 국력이 약한 정부가 들어서는 편이 좋았다. 무정부상태에선 제대로 된 시장이 들어서기 힘들기 때문이다.

바라는 건 이러한 상황인데, 머릿속이 중뽕으로 가득한 정권이 중국에 들어서면 말이 통하겠는가?

그래서 미국은 경완에게 대륙의 혼란을 잠재우려고 노력하고 있는 차세대 중국 리더들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 것이다. 자타공인 중화의 적이 된 그라면 중뽕 가득한 자들이 중국의 권력을 잡게 두지 않을 것이 분명했으니까.

게다가 걸어 다니는 거짓말 탐지기이니만큼, 차세대 중국의 지도자들 머릿속이 중뽕으로 가득한지, 아니면 어느 정도 말이 통하는지 파악하고 알아서 솎아내 주니, 미국으로서는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 되는 상황이었다

경완이 중얼거렸다.

“앞으로도 계속 없었으면 좋겠는데.”

그 말에 김준은 쓰게 웃었다. 그의 말은 중국이 이대로 무정부상태로 혼란에 쌓인 무법지대로 남길 원한다는 말과 마찬가지였다.

물론 미국이 원하는 바는 아니었다. 전혀 통제되지 않는 나라를 뜯어먹으려다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질 수 있다는 걸 미국은 중동의 사례에서 충분히 배웠다.

다행히 경완의 바람과는 다르게 중국의 혼란은 영원할 수 없었다. 소말리아처럼 무정부상태의 무법지대가 되기엔 중국이 쌓아온 역사와 문화가 거대했다.

아무리 문화대혁명으로 작살이 나도 남은 잔재와 구전을 통해 전달되어온 문화적 씨앗은 언제고 싹을 틔워 중국 대륙의 혼란을 종식할 것이다. 진시황 때부터 중국인의 영혼에 박혀있는 천하통일 네 글자는 중국인의 정체성이나 다름없었으니까.

경완이 말을 이었다.

“그럼 용건은 다 끝난 건가요?”

김준이 고개를 저었다. 현황만을 묻는 거라면 이렇게 직접 오진 않았을 것이다.

“경완 씨의 의견이랄까, 이해 같은 걸 얻어야 하는 사항이 있습니다.”

“뭔데요?”

“최근 초인등록제가 국회에 상정되었습니다.”

“그래서요?”

“미국에선 오버맨 엔트리라고 불리는 법안으로 그 대상이 되는 초능력자들에겐 별로 달갑지 않은 법안입니다.”

평양 대폭발, 서울 참사, 그리고 이경완의 차이나 학살이 큰 계기가 되었다.

물론 다른 초능력 사건사고들도 오버맨 엔트리라고 불리는 초인등록제의 대두에 기여하기는 했지만 앞서 언급된 세 사건처럼 강력한 초능력자에 의한 국가의 붕괴를 피부로 실감하게 할 정도의 사건은 없었다.

“특히 경완 씨에 대한 감시와 감독은 더 심해지겠죠.”

이 초인등록제, 오버맨 엔트리가 그저 한 국가만의 일이라면 김준이 굳이 말을 꺼내진 않았을 것이다. 한국만 어떻게 하면 되는 일이니까.

하지만 이 오버맨 엔트리는 국제적인 조약이나 마찬가지였다.

서로가 가진 전략 초능력 자산(이경완과 같이 위협적으로 강력한 초능력자)에 대한 정보를 국제적으로 공유하고 이를 통한 리스크 관리가 목적이었다. 핵무기는 마음이 없지만 초능력자는 마음이 있지 않은가?

경완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렇기는 한데 지금 상황에서 어떻게 더 감시하고 감독한다는 거죠?”

“그렇기는 합니다만 그래야 높으신 분들이 마음이 안정된다니 어쩌겠습니까?”

경완의 말에 김준은 실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이미 경완은 국정원이나 미국 CIA의 감시 및 관리를 받고 있었다. 아니 감시를 넘어 서로 손잡고 협조하는 수준이 아닌가?

여기서 경완에 대한 감시의 수준을 더 높이는 것은 헌법을 위반할 소지가 있었다. 솔직히 지금도 경완이 문제를 제기하지 않아서 넘어가는 거지 그가 문제를 제기한다면 여기저기서 법적인 문제로 말이 나올 수 있는 상황이었다.

경완도 김준의 마음을 이해하는지 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런 거라도 해놔야 면피라도 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 법안을 낸 의원들이 경완의 말을 면전에서 들었다면 표정관리가 될까?

김준은 속으로 고개를 저으며 경완에게 물었다.

“그래서 말인데 괜찮겠습니까?”

“안 괜찮을 이유가 있어요?”

“음……. 지금보다 참견하려고 들지도 모릅니다.”

사람의 심리가 그렇다. 빌미가 생기면 이용할 수 있을지 일단 찔러보는 것이다.

정치인들이 특히 이런 짓을 잘한다. 타인을 다루고 이용하는 것이야말로 정치의 레버리지라 할 수 있었으니까.

경완은 이렇게 대답했다.

“주제넘게 귀찮게 하는 것들이야 어디에나 꼭 있긴 하죠.”

“으음…….”

“걱정 마세요. 몇 대 처맞으면 정신을 차리겠죠.”

“……그러지 말아 주십사 이렇게 찾아왔습니다만…….”

김준이 속으로 식은땀을 흘리며 입을 열자 경완은 다시 고개를 갸웃했다.

“윗대가리가 정신을 차려야 김준 씨를 비롯한 현장이 편한 거 아닌가요?”

“…….”

맞는 말이고 고맙기도 하지만 방법이 너무 과격하지 않은가?

김준이 말을 잇지 못하자 경완은 어깨를 으쓱했다.

“뭐,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가지고 걱정할 필요는 없죠. 설마 대가리가 있는데 제가 한 일을 보고도 막나갈까요?”

“그렇긴 하죠.”

김준은 부디 한국의 정치인들이 경완을 무리하게 자극하질 않길 바랐다.

사실 경완이 중국에 저질러 놓은 일을 보면 그런 병신들이 튀어나올 염려는 그리 크진 않았다. 그저 혹시나 하는 노파심일 뿐이었다.

잠깐 상념에 잠긴 김준의 귀에 경완의 음성이 흘러들어왔다.

“더 하실 말씀 없죠?”

“한 가지 더. 혹시 히어로 활동을 해볼 생각 없습니까?”

“네?”

반문하는 경완의 표정은 어이가 없다 못해 멍청해 보일 정도였다.

* * *

서울 참사의 여파는 컸다. 나라가 망하진 않았다지만 너무 큰 피해와 희생이 있었기에 그로 인한 사회불안, 치안약화는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안 그래도 경찰 인력에 부담되는 상황에서 강력범죄는 늘어만 갔고, 더 큰 문제는 범죄조직의 창궐이었다.

핵을 맞아 골골거리는 치안공백을 틈을 타고 주변 국가의 범죄조직이 침투하는 것은 물론, 범죄와의 전쟁이 이후 짜부라져 있던 건달들이 물 만난 물고기마냥 고개를 쳐들기 시작한 것이다.

러시아, 중국, 일본.

삼국의 한가운데 있는 한국은 마약 유통의 허브로서 최적이었다. 더구나 북한이 없어 대륙과 연결되었으니 은밀한 유통루트를 만드는 것도 어렵지 않았으니 돈만 되면 불법을 서슴지 않는 범죄조직이 눈독을 들이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다만 범죄조직의 창궐이 단순한 문제였다면 어떻게든 경찰을 더 모집하거나 해서 범죄와의 전쟁을 다시 치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초능력이었다. 범죄조직에 속한 초능력자가 들어오니 초능력 인력이 부족한 경찰의 단속역량이 한계에 달한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왜 FBI 소속인 김준 씨가 하는 거죠?”

아무리 생각해도 한국 정부나 경찰청 차원에서 나서야 하는 일 아닌가?

문득 든 의문에 김준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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