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전생-더 빌런 201화
19-서울 참사
“아무래도 경찰청에서는 제가 경완 씨에게 영향력이 있는 참모라고 파악한 모양입니다.”
그래서 FBI를 통해 경완에게 제안을 보낸 것이다. 안 그래도 이경완의 신문능력을 활용하기 위한 협약이 FBI와 맺어져 있는 상황이라 의사소통을 위한 라인도, 명분도 있었다.
하지만 김준 입장에선 한숨만 나오는 상황이었다. 참모는 개뿔, 사실은 그냥 뒤치다꺼리나 하는 연락책에 불과한데 말이다.
한숨만 나오는 오해에 경완은 또 복장 뒤집히는 소리를 해댔다.
“오~! 출세했네요.”
소리조차 나지 않는 가식적인 박수에 김준은 저도 모르게 마른세수를 했다. 이런 출세 따윈 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이게 출세이긴 한 걸까?
경완에 대해 명백히 두려움을 느끼는 상부의 입장에선 그에게 직접 말을 하고 제안을 내밀 수 있는 본인의 위치가 분명 가치 있다는 건 납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들의 생각이고 김준 자신이 생각하는 출세의 형태는 아니었다. 결국 경완의 마음에 달린 것이지 않은가? 그의 비위를 맞추어 호가호위하는 걸 김준은 출세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경완의 말이 귀에 들어왔다.
“그런데 정말 저를 히어로로 삼겠다는 미친 생각을 한 사람이 있어요?”
“히어로가 아니라 히어로 활동입니다.”
김준의 대답을 경완은 다음과 같이 이해했다.
그러니까 히어로처럼 초능력 범죄자를 잡아들여 주기를 바라지만 히어로 대우는 못 해주겠다?
그럼 돈이라도 받아야지.
“얼마 준대요?”
“……저는 그저 넌지시 경완 씨의 의사만 묻는 겁니다. 만일 경완 씨가 관심이 있다고 하면 그걸 전달할 뿐이죠.”
협상은 아직 시작도 안 했다는 의미에 경완은 잠시 뭔가를 생각하다가 물었다.
“굳이 제 도움을 빌릴 정도로 사정이 안 좋아요? 여태 저에게 그런 제안은 없었잖아요.”
그 말에 김준은 슬쩍 시선을 피했다.
그 표정이 무엇을 말하는지 짐작한 경완은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국회의원 허리춤에 칼침 꽂고 이웃나라 원전 폭파한 미친놈에게 치안활동을 맡길 순 없겠지.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한국에서만큼은 경완은 고혼이 된 60만 원혼들의 한을 갚아준 은인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물론 대놓고 오피셜로 할 말은 아니었지만 이미 온라인 세상에서 경완은 성웅급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가 아니었다면 일제, 아니 중공 강점기, 또는 제2의 625가 벌어졌을 거라는데 대부분의 네티즌들이 입을 모았다.
물론 주변국에선 서슴없이 살인을 저지르는 빌런이나 마찬가지였으니 단신으로 정부의 기능을 마비시킨 능력과 잔혹한 손속은 권력자들에겐 공포나 마찬가지였다.
“흐흠. 아무튼 제 손도 빌리고 싶다 이거죠?”
경완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중국이 무정부상태에 들었기 때문에 공단도 멈췄고, 그래서 서해를 건너올 황사가 그리 심하지 않을 테고, 그러니 지금의 한국 정부가 굳이 황사에 신경 쓰진 않을 테니까.
솔직히 황사가 날아와도 지금의 한국 정부는 황사방어에 쓸 비용도 아껴야 하는 처지였다. 그러니 경완이 스마트 포스쉴드로 황사방어해서 벌던 쏠쏠한 용돈은 이제 끝이라고 봐야했다.
그러니 경완이 얼마 줄 거냐고 물은 것이다. 히어로 활동, 아니 빌런 체포 활동을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일까?
“공짜로 해줄 순 없는데요.”
“더 자세한 협의를 하고 싶으면 제가 연통을 넣겠습니다.”
골치 아픈 협상은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선을 긋는 김준을 향해 경완은 이렇게 말했다.
“뭐, 견적부터 뽑아보죠.”
“무슨 뜻인지..”
“진짜 제 손까지 빌려야 할 정도로 상황이 안 좋은지요.”
일단 대답을 보류하고 김준을 돌려보낸 경완은 해가 진 저녁에 밖으로 나가보았다.
원래라면 이렇게 귀찮게 직접 움직이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상황이 변했다.
서울 참사를 겪은 한국은 기이한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다. 뭔가 수면 아래에서 들끓고 있는 느낌이랄까?
당장은 국가 경제의 재건을 위해서 참고 있지만 뭔가 계기라도 터지면 억눌린 분노가 터져 나올 것 같은 상황이라 괜히 눈치 없이 나대다가 표적이 되면 인생이 피곤했다.
돈만 있으면 편히 살 수 있는 대한민국이란 울타리 안에서 편안하게 각종 서비스를 받으며 지내려면 조금은 눈치 있는 행동을 하는 편이 합리적이었다.
핵폭탄을 맞고 치안이 어려워진 한국의 요청을 귀찮다고 모른 척했다가 혹여 나중에 경완이 곤란할 때 도와주기는커녕 꼴좋다고 돌을 던질 수 있었다.
그전까지 경완이 대한민국에 얼마나 공헌했던 간에 대중의 감정이란 그렇게 비합리적이었다.
억울해도 세상살이가 다 그 꼬라지로 돌아가는 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인생이란 ㅈ같은 거고 항상 좋을 수 없으며 언젠가는 반드시 어려움에 빠지게 생겨먹었다.
그때 도움의 손길을 받느냐, 아니면 나락 가라고 절벽을 붙잡은 손을 짓밟는 발이 있느냐는 자신이 살아올 행실에 의해 결정된다.
평소에 안티가 많던 유명인사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킬 경우 과도할 정도로 더 심한 비난을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이런 이치를 알고 있는 경완은 어느 정도 한국의 치안을 도와줄 용의가 있었다. 대한민국이란 울타리는 완벽하진 않았지만 다른 나라랑 비교하면 제법 괜찮았기 때문이다.
총기규제가 엄격한 것만 봐도 어디인가?
경완이 웜홀을 통과해 도착한 곳은 서울에 위치한 어느 높다란 건물의 옥상이었다.
그가 워샤이둥이란 이름의 웜홀 능력자로부터 카피한 웜홀 능력엔 몇 가지 제약이 있었다.
가장 큰 제약은 직접 가본 곳에서만 웜홀을 뚫을 수 있으며 그렇게 갈 수 있는 지점은 일정 수로 제한되어 있다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직접 가본 장소에 웜홀 능력의 좌표점이 되는 일종의 웨이포인트, 마커를 찍어두는 식이었다.
두 번째 제약은 이렇게 찍어놓은 웜홀 마커의 유지와 웜홀의 발현에 막대한 S입자가 소모된다는 점이었다.
엄청난 양의 S입자를 가진 경완에겐 별문제가 안 될 것 같지만 웜홀 마커가 늘어날수록 소모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경완에게도 부담이 올 정도로 말이다.
부담이란 것과는 담을 쌓고 싶었던 경완은 그래서 몇 군데 필요한 곳에만 마커를 설치하고 다른 곳은 지웠는데, 그래서 남은 마커가 중국 북경과 자신의 집, 그리고 지금 서있는 서울의 한 옥상 위였다.
서울의 공중으로 떠오른 경완은 초감각을 넓게 펼치며 서울의 밤을 찬찬히 훑었다. 정말 그렇게 치안이 안 좋은지 직접 확인해 볼 생각이었다.
딱히 필요하지 않은데도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면 뭔가 다른 꿍꿍이속이 있는 거 아니겠는가?
서울 하늘을 둥실둥실 떠오른 경완은 레이다 돌리듯 멀리 뻗은 초감각을 돌려 서울의 밤을 스캔했다. 아무리 그라고 해도 서울 전역을 한 번에 인지하는 건 불가는 했다.
돌아다니다 보니 확실히 치안이 안 좋은지 돌아다니는 인적이 드물기는 했다.
가게 유리창을 깨고 도둑질하려는 놈들도 종종 보이고 강도질하려다가 출동한 히어로에게 제압되는 놈들도 있었다.
신이시여. 이게 정말 그 평화롭던 서울의 야경이란 말입니까?
경완이 혀를 쯧쯧 차는데, 인적 드문 어느 공터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초감각에 걸려들었다. 중지된 공사판 뒤쪽이었는데 딱 봐도 일진놀이하는 철없는 것들이었다.
경완은 어쩔까 하다가 끼어들기로 했다. 바늘 도둑 소도둑 된다고 저런 새끼들이 각성하면 빌런되기 십상이었다.
“야.”
“뭔데, 꼰대?”
꽁초가 된 담배를 탁 뱉으며 남학생 한 놈이 경완의 앞을 막아섰다. 그놈 친구가 ‘라임 쥑이네’라며 피식 경완을 보며 비웃음을 흘렸다.
경완은 마스크와 모자를 벗고 얼굴을 드러냈다.
“나 누구게?”
“니가 뭔데?”
“정말 내가 누군지 몰라?”
“조또 관심 없으니까 꺼, 야, 왜?”
비웃던 친구 한 놈이 급히 담배냄새 나는 놈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담배냄새 나는 놈이 짜증으로 인상을 쓰며 친구를 돌아보니 친구놈이 경완을 손가락질하며 말을 더듬었다.
그 손가락 끝은 덜덜덜 떨리고 있었다.
“이, 이, 이 이경완이야!”
“이경완? 서, 설마?”
안 그래도 최근에 또 중공 지도자 대가리를 떼고 와서 한창 유명한 시기라 경완의 얼굴은 잘 알려져 있었다.
경완은 일진 아이들이 자신의 얼굴을 알아보자 흡족해졌다. 명성(?)이 있으면 때론 쉽게 해결되는 문제가 있기 마련이었다.
“그래, 내가 바로 수틀리면 국회의원도 쑤시는 이경완이란다. 그런데 얘들아. 니들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일진놀이나 하고 쳐자빠져있니? 이럴 때가 아니라 이 어려운 경제에 앞으로 사회 나가서 뭐하고 먹고 살지 궁리하는 게 머리가 달린 인간이 내릴 수 있는 합리적 행동이 아니겠니? 머리는 장식이 아니란다.”
경완은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어떻게 저런 독설이 친절하냐고 의아해할 수 있겠지만 따끔하게 말해야 알아 처먹는 인간은 분명 존재했다. 일진도 그들을 낳아준 애미애비가 있고 나름 가정교육을 받았을 텐데, 부모말이라도 잘 듣는 놈들이라면 이런 곳에서 일진놀이나 하고 자빠져있을 리가 있겠는가?
경완의 친절한 독설(?)에 일진들은 얼굴을 붉히면서 소심하게 반항했다.
“저 새끼 짱개 새끼라고요!”
“그래요!”
놈들은 자신들을 정의편이라고 항의했다. 그리고 그 말에 경완은 놈들의 어깨 너머를 슬쩍 보았다. 진짜 짱개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얻어맞던 아이는 교복을 입고 있었다.
경완의 감상은 간단했다.
“참 유치하네.”
고작 중국인이라는 이유로 따돌리고 괴롭히다니.. 참으로 유치했다.
경완이 자신들의 말에 동의하지 않은 뉘앙스를 풍기자 일진들은 급히 말을 이었다.
“저 새끼들이 핵폭탄을 터뜨렸잖아요!”
“쫓아내야 해요!”
“그래요!”
그런 놈들에게 경완은 입을 열었다.
“어릴 적에 내 친구가 말이야,”
친구 없다. 하지만 그는 계속 입을 놀렸다.
“일진에게 괴롭힘을 당해서 자살했어.”
“….”
“그런데 너희도 일진이네? 이번 기회에 죽은 친구의 보복을 해볼까?”
경완이 손가락을 꺾으며 목과 어깨를 풀었다. 딱 봐도 몇 대 치려는 모습에 일진들은 악을 썼다.
“저희는 그 일진하고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
“왜? 너희도 일진이잖아?”
너희가 싸잡아 판단하니 나도 싸잡아 판단한다. 그것이 경완의 스탠스였다.
일진학생들이 억울한 표정으로 외쳤다.
“아, 아저씨는 한국인 아니에요?!”
“억울하지? 꼭 지들 억울한 건 못 견디는 새끼들이 남 억울하게 하더라. 너희같이 유치한 족속하고 같은 무리가 되느니 차라리 짱깨가 되련다.”
경완이 한 걸음 내딛자 화들짝 놀란 일진들이 서둘러 몸을 돌렸다.
“튀, 텨!”
걸리면 튄다. 누군가는 과연 사과와 반성을 모르는 일진이라고 손가락질할 수 있겠지만 저들이 도망치는 상대가 이경완임을 참작해야 했다.
당연히 경완은 그들의 도주를 허락하지 않았고, 염동력에 붙잡혀온 그들은 모두 강제로 벽을 짚고 서야했다.
“다시는 안 그럴게요!”
겁먹은 한 소년이 소리쳤지만 경완은 고개를 저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게 내 지론이란다.”
쉽게 변하지 않을 뿐이지 변할 수는 있다. 다만 그러기 위해선 그만한 충격과 스트레스가 가해져야 했다. 찰흙도 힘을 줘야 모양이 변하는 법이다.
경완의 손에 각목이 날아들었다. 공사장이었기에 각목 정도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앞으로 너희가 범죄에 빠지지 않고 바른길로 갈 수 있도록 교훈을 새겨줄게. 뼛속 깊쑤~욱 하게 말이다.”
“살려주세요!”
“안 죽인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