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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전생 더 빌런-202화 (202/367)

무한전생-더 빌런 202화

19-서울 참사

설사 죽을죄를 지었다고 해도 죽일 생각이 없었다. 누구 좋으라고 편하게 이승을 하직시켜준단 말인가?

“내가 때리면 몇 대 맞았는지 힘차게 잘 외치도록 해라. 확실하게 잘 세는 게 좋을 거야. 까먹거나 숫자가 틀리면 너희 손해거든.”

“다시는 안 할게요!”

“다 맞으면 믿어주마.”

“잘못했어요! 용서해주세요!”

“이것이 용서의 매란다.”

뻐억!

“꺼흑!”

뻐엉!

“!!!!!”

빠악!

“아악!”

아파서 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할 녀석이 있을 정도로 일진들의 엉덩이를 후려치는 위력은 강맹했고, 경완은 찰진 손맛을 느꼈다.

음! 그래. 바로 이 맛이지.

빡! 빡! 빡!

“어흑!”

“흐아앙!”

“엄마아~!”

겨우 두 바퀴 돌았는데 울음이 터져 나왔다. 이미 무릎에 힘이 풀렸지만 일진들은 경완의 초능력에 강제로 엉덩이를 뒤로 내밀고 빠따 맞는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몇 대 맞았니?”

경완이 물었지만 일진 아이들은 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경완이 혼잣말을 들으라는 듯이 말했다.

“열 대만 때리고 말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지. 정신 차릴 때까지 때려야겠네.”

“두, 두 대요! 두 대 맞았어요!”

퍼뜩 정신을 차린 한 소년이 외쳤고 경완은 흡족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숫자를 셀 줄 아는구나. 나는 설마 일이삼사도 못 뗀 줄 알았지.”

교복입고 다니는 녀석들이 숫자도 못 뗐다는 게 말이 안 되지만, 혹시 모르지 않은가?

아무튼, 다시 시작된 매타작.

퍽!

“세에엑!”

“하나부터 시작해야지. 넌 숫자를 셋 둘 하나 넷으로 세니?”

“…흐윽!”

억울하지만 법은 멀고 주먹, 아니 각목은 가까웠다.

경완은 엉덩이가 터져나가는 고통 속에서 간신히 열을 센 녀석들의 근성을 칭찬하며 한 마디 했다.

“너희도 머리가 있으니 곰곰이 잘 생각해봐라. 나쁜 짓 하고 날 안 만나길 평생 바라던가, 나쁜 짓 안 해서 날 만나도 아무 일 없이 넘어가던가. 참고로 나한텐 공소시도 없고 거짓말도 안 통해. 잘 알지?”

경완은 가벼운 어조로 경고와 훈계를 날렸다. 이런 애새끼들이 안 그래도 힘든 치안에 부담을 줘서 경완 본인에게까지 뭔가 영향이 오지 않기를 바랐다. 설마 그렇게까지 영향을 줄까 싶지만 2차 대전도 총알 한 발에 시작되었다.

혹시 모르지 않은가? 이 유치한 일진놀이를 가만 놔두었다가 여러 사람 골치 아프게 할 빌런 탄생의 계기가 될지.

언제나 그렇지만 잔에 가득 찬 물을 흘러내리게 하는 건 한 방울의 물이었다.

어기적어기적 도망가는 일진에게서 짱개 소년에게로 시선을 돌린 경완이 입을 열었다.

“넌 안 가냐?”

“…왜 도와주셨어요?”

되묻는 소년의 음성에는 억울함이 가득했다.

어려운 질문이 아니었기에 간단히 대답했다.

“병신 같은 걸 보면 교정해 주고 싶어서 손이 근질근질하거든.”

“전 중국인인데요.”

“중국 국적이라도 있어?”

경완의 말에 소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국적 따윈 경완에게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

“참 병신 같지 않아? 중국인이라서 차별하고, 유색인종이라고 차별하고, 조선족이라고 차별하고, 남자라서 차별하고, 여자라서 차별하고, 노인이라서 차별하고 애라서 차별하고. 아무튼 차별주의자들이 원하는 건 정의 같은 게 아냐. 그저 상대를 깔아뭉개서 자신이 우위에 있다는 알량한 우월감과 안심을 얻고 싶은 것뿐이지. 그런 게 인간의 본성이기도 하지만, 우월함을 확인하려고 자기PR을 하는 게 아니라 자신과 비슷한 병신들과 무리 짓는다는 데서 더 병신 같은 거지. 병신들이 모여봤자 여전히 병신 집단에 불과하거든.”

병신이 모여서 서로 우쭈쭈 해줘 봤자 갑자기 엘리트로 쨘~ 하고 변신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저 진짜 똑똑하고 강한 이들에게 이용당하고 과실을 따내는 지렛대 역할을 할 뿐이다.

뭔가 거창한 비전이나 대의도 아니고 고작 타인을 끌어내려서 본인의 우월성을 확인하고 싶어서 무리 짓는 종자들의 운명은 토사구팽뿐.

경완이 짜증 나는 건 왜 그런 병신 도토리 선발 대회를 자기 눈에 띄게 하냐는 것이다. 제발 그런 병신 짓은 안 보이는 데서 해주면 안 될까?

“….”

경완의 설명에 소년은 말이 없었고, 경완은 그런 소년을 향해 손을 내저었다.

“집에나 가라.”

그러자 소년은 꾸벅 허리와 고개를 숙이고 그의 반대편으로 뛰어갔다.

그런 소년의 모습에 경완은 고개를 갸웃했다. 왜 포권을 안 하지? 중국인이라면서?

경완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의문을 머릿속에서 지우고 서울의 밤하늘로 날아올랐다. 진짜 한국의 치안이 본인의 도움이 필요한지 확인하는 작업을 좀 더 해봐야 할 것 같았다.

* * *

“어떻게 고민을 해보신다고 들었습니다만…… 결정하셨습니까?”

경완은 어느 날 방문한 사내로부터 받은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눈을 감았다.

그를 방문한 청와대 국가안보실의 강태수는 초조하게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혹시 비질란스는 아직 활동하나요?”

“……요즘 잠잠합니다.”

강태수는 경완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모르고 솔직하게 대답했다.

비질란스의 활동이 언제부터 잠잠해졌는지는 정확하진 않지만 강태수의 기억으로는 아마 위버멘쉬가 한국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고 영향력을 확대할 때부터인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정신계 능력에 대한 대처는요?’

“…어렵지만 위버멘쉬에서 파견해준 초능력자들 덕분에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강태수는 경완이 왜 정신계 능력자에 대해서 묻는지 의구심을 품었다. 그와 무슨 관련이 있다고?

경완은 또다시 잠깐 입을 다물었다가 눈을 떴다.

“저는 빌런 체포 행위는 하지 않을 겁니다.”

“다시 한 번 생각해 주시면..”

“대신 나쁜 놈이 개 같은 짓을 못하도록 내 눈에 띄면 가만두지 않을 생각이에요.”

“그 말씀은…….”

강태수가 말꼬리를 흐리자 경완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치안 부족으로 인한 행정부의 애로사항은 충분히 공감돼요. 하지만 도저히 제가 누군가의 지시에 따라서, 혹은 소위 법이 정해준 수준으로 주먹을 쓴다는 게 도저히 상상이 안 돼요.”

그러시겠지. 국회의사당에 쳐들어와 국회의원에게 칼침을 놓으셨으니까.

하지만 강태수에게 그런 감상은 현안과 전혀 관련이 없는 문제였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과잉진압의 문제가,”

“그러니까 제가 꼴리는 대로 하겠다는 거죠.”

“어. 음…….”

그제야 강태수는 경완의 말뜻을 이해했다. 그는 지금 국정원으로부터 얻은 정보로 자경 행위를 하겠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강태수는 조심스러운 태도로 그에게 물었다.

“경완 씨는 괜찮겠습니까?”

자경행위는 원칙적으로 위법이다. 그의 말대로 한다면 본인이 책임을 지겠다는 뜻과 다름없었다. 행정부의 입장에선 부담이 확 줄어든다.

“들키지만 않으면 죄가 아니라는 말이 있잖아요?”

“하지만,”

“그리고 기소하지 않으면 재판도 없죠.”

“어. 음…….”

맞는 말이지만 강태수는 말을 아꼈다. 대한민국은 엄연히 법치국가이고 삼권분립이 법에 명시되어 있었다.

“반응이 왜 그래요? 검사들이 지들끼리는 불기소 처분에 기소유예에, 아니면 엉뚱한 죄목으로 기소해서 집행유예나 심지어 무죄까지 면죄부 주는 일이 일상이잖아요?”

비단 검사만이 아니라 판사들까지 포함한 법전 카르텔, 법피아는 그야말로 합법적인 조폭무리였다. 주먹이 아니라 법전을 휘두르는 게 다를 뿐.

“횡령하고 사기 친 경제사범도 나라의 경제발전에 공을 세웠답시고 집행유예를 때리거나 보석으로 풀려나는데, 저같이 나라의 치안을 위해 실질적으로 한 손 거드는 사람의 편의 정도는 기꺼이 봐주지 않을까요?”

“……한 번 이야기는 해보겠습니다.”

의문문이지만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뉘앙스에 강태수는 어렵게 대답했다.

어렵게 대답한 건 그만큼 장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검찰은 이경완을 지독하게 싫어하는 것으로 유명했기 때문에.

그가 해온 짓을 보면 충분히 그럴 만했다. 검찰 출신의 유력한 대선후보를 작살내고 검찰의 얼굴에 먹칠을 한 장본인이 아닌가?

덕분에 검찰은 단순히 떡검, 부패한 조직이라는 이미지를 뛰어넘어 합법 마피아라는 딱지까지 붙었다.

‘세상에! 후배가 회유 안 당한다고 살인까지 청부하는 조직이라니!’라는 이미지가 사람들의 머리에 박힌 것이다.

단순히 파벌 싸움이 아니라 민생을 위해 금융 범죄를 추적하는 강직한 젊은 검사를 부패한 수뇌부들이 제거한 형상이니 시궁창에 박힌 이미지는 쉬이 회복되지 않았고 정계에 끼치는 영향력도 줄었으며 오히려 정치계에서 받는 압박이 더 커졌다.

아마 각성이니 초능력이니 하는 이슈들이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 않았다면 검찰개혁으로 꽤나 몸살을 앓았을 것이다.

자신 없는 강태수의 대답에 경완은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그런데 딱히 그 양반들 허락은 필요 없지 않나요?”

“……그렇습니다.”

강태수는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사실 한국의 치안은 마비상태였다.

한창 개발 중인 북한, 서울 참사, 밀입국자, 빌런과 초능력 범죄조직 등 산적한 문제로 인해 계엄령을 내려야 하냐 마냐로 청와대 내부에서도 말이 많았다.

서울 참사로 경제가 폭망인데 계엄령까지 내려서 완전히 주저앉힐 수는 없는 노릇이라 안 하고 있지만, 그만큼 경완이 작정하고 국정원과 짜고 친다면 그가 자경활동을 해도 그것을 수사하거나 막을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당장 검찰과 이경완 둘 중 어디가 더 국익과 청와대에 필요하냐고 묻는다면, 강태수는 국가안보실장으로서 주저 없이 후자를 고르리라.

“그럼 건당으로 할까요?”

“건당이라 하심은……?”

경완이 또 뜬금없는 소리를 꺼내자 강태수는 걱정부터 앞섰다.

“일종의 현상금 같은 거죠. 내가 처리한 놈이 치안에 얼마나 악영향을 끼치는 놈인지 판단해서 그만큼의 값을 쳐주는 겁니다.”

“정권에 부담이 될 겁니다.”

“영수증도 없고 내역도 안 밝히는 국정원 특수활동비가 있잖아요. 청와대 상납한 적도 있다던데 그럴 바엔 차라리 저한테 치안 유지 명목으로 쓰는 게 훨씬 건설적이고 생산적이지 않아요?”

“대통령께 건의해 보겠습니다.”

“허락받으면 연락 줘요.”

더 이상 할 얘기가 없자 경완은 강태수를 서둘러 배웅했다. 짜투리 시간에 알뜰하게 게임을 해야지~

* * *

청와대의 허락은 금방 나왔다.

솔직히 경완은 허락 따윈 필요하지 않았다. 그가 한국의 치안에 개입하려고 한 이유는 자신이 누리는 경제ㆍ문화적 인프라가 망가지길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국정원 특수활동비를 달라고 한 말은 그저 부수적인 수입일 뿐이었다.

범죄조직이 활개치고, 마약이 범람하여 치안이 망가지면 경완의 주변은 어떻게 될까?

빌런이 날뛰고 범죄조직이 동네를 꽉 쥐고 있는데 야밤에 치킨배달이 잘 될까?

솔직히 그거 하나만으로도 그가 나설 이유로는 충분했다. 내 치맥은 소중하니까.

깨진 유리창 이론이 말하듯, 한 번 나빠진 치안은 계속 나빠지기 때문에 귀찮지만 조기에 관여하는 편이 더 효과적이었다.

치안을 맡아야 하는 검경이 오히려 힘이 세진 범죄조직과 붙어먹고 그만큼 치안이 더 나빠지고 범죄세력은 더 커지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지기 전에 말이다.

경제발전이 궤도에 오르자마자 범죄와의 전쟁을 치르지 않았다면 아마 한국은 마피아와 야쿠자로 골치를 썩이는 이탈리아나 일본 꼴이 됐을지도 모른다.

지금이 바로 그러한 시기였다. 지금 범죄조직의 뿌리를 뽑지 않는다면 경찰과 정치인에게 뇌물을 주며 공생하는 구조가 될 것이 분명했다. 안 그래도 200억짜리 사기가 징역 6년이고 라면 한 봉지 절도가 3년 반인 자랑스런 대한민국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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