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전생-더 빌런 208화
20-오버맨 엔트리
염동력과 염동력이 겨룰 때엔 공간의 선점이 중요했다. 상대가 먼저 점유한 공간을 밀어내려면 더 많은 힘이 들어가기 때문이었다.
이미 마이티 가이는 경완과 힘겨루기로는 승패를 장담하기 힘들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상황을 유지하며 돌파구를 찾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경완이 먼저 손을 썼다.
[이제 그만 끝내자.]
경완을 검지를 막 돌렸다. 마이티 가이의 주변에 가해진 힉스장이 마구 변했다.
그 가운데 있는 마이티 가이의 입장에선 중력이 마구 변하는 것으로 느껴졌다. 마치 아이들이 마구 흔들며 가지고 노는 공안에 갇힌 햄스터처럼 말이다.
그로 인한 영향은 단연코 멀미였다.
“S, Stop!”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금방이라도 구토를 할 것 같은 마이티 가이의 모습에 경완은 상냥하게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신체강화능력자들의 일반적인 약점이 바로 그거야. 감각이 뛰어나다는 말은 다른 말로 민감하다는 뜻도 되거든.]
감각 교란에 특화된 능력은 정신계열이지만, 경완처럼 요령과 재능이 있다면 멀미 정도야 어렵지 않게 만들어낼 수 있었다. 감각의 민감성을 의도대로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이런 공략법에 제대로 대응조차 못하고 무력화될 수 있었다. 후각이 예민한 능력자라면 후각에 타격을 주는 화학물질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뛰어난 가수들이 마이크의 감도를 적당히 조절할 줄 아는 것처럼 능력의 강함보다 중요한 것이 통제와 활용이었다.
[항복할래? 아니면 저기 카메라에 구토하는 거 찍힐래?]
[져, 졌다.]
마이티 가이의 패배선언에 경완은 그를 놓아주었다.
구토의 위기에서 벗어난 마이티 가이는 얼른 바닷물을 퍼올려 얼굴을 적셨다. 바닷물의 비린내가 코를 찔렀지만 차갑게 얼굴을 식히는 감각이 멀미와 구토감을 말끔히 씻어냈다.
정신을 차린 마이티 가이가 시선을 돌렸을 때 경완은 이미 해변가로 멀리 가버린 상황이었다.
마이티 가이가 뒤를 따라 해변에 도착했을 때엔 경완은 제이슨에게 맡긴 물품을 챙기고 하늘로 훌쩍 날아가 버렸다.
그런 뒷모습을 보는 마이티 가이에게 제이슨이 조심히 다가와 입을 열었다.
[괜찮습니까?]
[괜찮습니다.]
마이티 가이는 허탈하게 웃었다.
[상대가 안 되네요. 허헛.]
제이슨은 뭐라 위로의 말을 꺼내지 못했다.
= = = = =
집에 돌아온 경완이 바닷내음이 묻은 몸을 씻고 편하게 소파에 누우니 저절로 마이티 가이와의 대련이 머리에 떠올랐다. 습관 같은 거랄까?
뭔가 가르침을 내렸다는 우월감이나 보람 같은 건 없었다. 다만 몸만 큰 어린애 같은 이에게, 아주 깔끔하게, 쓸데없는 원한관계를 맺지 않고 힘의 우월과 세상은 만만하지 않다는 교훈을 내려줬다는 점에서 좋은 성과를 냈다고 할 수 있었다.
이제 서열을 확인한 마이티 가이는 감히 경완에게 덤비지 못할 것이고, 경완에게 도전하려는 주제 모르는 것들은 일단 히어로 컴퍼니가 제공하는 비디오 시청부터 하고, 그래도 자신감이 넘치면 마이티 가이부터 이겨 먹고 와야 한다는 소리를 들어야 할 것이다.
마이티 가이는 저도 모르게 자신이 명예만 쫓는 애송이들로부터 경완을 보호하는 탱커가 되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를걸?
경완이 그 사실에 흡족하게 웃을 때 전화가 왔다. 요하네스였다.
“여보세요.”
[이겼다고 들었습니다.]
다짜고자 하는 말이었지만 경완은 별로 기분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빨리 본론만 말하고 끝내려는 듯해서 내심 흡족하기까지 했다.
“네.”
[그런데 꽤나 사정을 봐주신 모양이더군요.]
이 양반 어떻게 거기까지 알았지?
정보력이 좋은 건가, 아니면 자신을 주시하고 있는 건가?
뭐, 어차피 국정원이나 미국 CIA 등에서 24시간 동태를 확인하고 있으니 새삼 불쾌할 건 없었다.
“굳이 심하게 때려서 원한 살 필요는 없잖아요.”
[흐음…… 미스터 리가 보기에 마이티 가이가 조금은 자신을 되돌아본 것 같습니까?]
“자아 성찰을 했는지는 모르겠고, 아무튼 자기가 최고가 아니라는 것쯤은 확실하게 깨달았겠죠.”
[훌륭합니다. 그 정도라도 충분해요.]
마이티 가이라는 녀석과는 어떤 관계이기에 위버멘쉬의 총수라는 사람이 이리도 좋아할까?
[아무튼, 수고하셨습니다. 그럼 이만.]
“네, 그럼 총수님도 잘 지내세요.”
경완은 담백하고 깔끔하게 통화를 끝냈다.
뭔가 대단한 사람들 사이의 대화치고는 영 싱거웠지만, 대단한 사람들이 항상 뭔가 특별한 일을 하는 건 아니었다.
그들도 사람이고 평범한 일상을 누렸다.
“오빠, 나 왔어.”
“일찍 왔네?”
미연은 비닐봉지를 들고 들어와 주방으로 향했다.
“오늘 맛있는 거 해주려고.”
“남자들이 무지 부러워하겠군.”
그 이미연이 직접 해주는 맛있는 요리라……. 더 설명할 필요가 있겠는가?
경완은 저녁을 먹고 누웠다. 미연이 그의 위에 엎어져 함께 TV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는 돌아가는 채널과 프로그램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입을 열었다.
“요즘 별일 없어?”
“응.”
“회사는 어떻게 되는 거야?”
“이사님이 챙긴대.”
JB엔터의 김길상은 서울 참사 때 사망했다. 하지만 법인은 남아있었고 누군가는 회사를 책임져야 했다.
JB엔터의 이사인 전태규가 바로 그러한 사람이었다.
“회사가 정상화되면 다시 일할 거야?”
“생각해보고.”
미연의 대답을 들어보니 딱히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김길상 대표의 죽음을 아직 극복하지 못한 듯했다.
경완은 그녀의 등을 쓰다듬어주며 채널을 돌렸다. 그리 무겁진 않았지만 그래도 편안하다고 말하긴 힘든 자세를 굳이 용납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
그냥 좀 안타까워서? 왜 굳이 그녀에게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되었는지 경완은 생각하지 않고 말없이 채널을 돌렸다.
[문화제 옆에 세워진 일명 왕릉 아파트의 지하실에 테러로 보이는 폭발이 일어났습니다. 건설사는 입주민들이 안심하고 입주할 수 있도록 보수 및 보강공사를 하겠다고 밝혔지만, 전문가들은 아파트의 중량을 지탱하는 기둥의 상당수가 파괴되었기 때문에 건설사 측에서 보수보강공사를 한다고 해도 안전이 담보되지 않는다는 의견을 개진했습니다. 차라리 무너뜨린 후 다시 짓는 편이 안전하지만 건설사는 난색을,]
[경찰은 오늘 오후 압록강을 오가는 마약중개책을 체포하고 약 2만4천 명이 동시에 투약 가능한 마약을 압수,]
그저 말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충족되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 이상을 생각할 순 없었다. 그건 위험했다. 위험할 리가 없지만 그래도 위험할 것 같았다.
미연은 어느 정도 의욕이 생겼는지 경완에게 물었다.
“오빠. 개 키울래?”
“네가 원하면.”
“개 별로 안 좋아해?”
“응.”
“왜?” “개의 충성에는 선악이 없거든.”
주인이 세상을 멸망시키려는 천하의 악당이든, 사람을 밥 먹듯이 죽이는 사이코패스든 개는 주인에게 충성한다.
그 충성이 기꺼운 사람이 있다고 하지만 그렇기에 경완에게 개가 내포하는 의미는 내가 키우면 상관없지만 네가 키우면 엿 같은 것이었다. ‘우리 애는 안 물어요’하면서 맹견에게 입마개를 채우지 않는 견주들이 즐비한 세상 아닌가?
왜 개새끼가 욕이겠는가?
“그렇구나……”
미연의 음성에 실망한 기색이 서렸고 경완은 타협을 생각했다.
“개는 말고 고양이는 어때?”
“고양이?”
미연이 경완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경완이 그녀를 보니 눈이 초롱초롱한 것이 타협안이 괜찮은 모양이었다.
경완이 설득을 이어나갔다.
“자율적이고 자유롭지. 제멋대로 하는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애완묘에겐 그게 매력 포인트잖아?”
“진짜 고양이 키울 거야?”
“네가 원한다면.”
“좋아!”
미연이 활짝 웃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청초한 미소가 음흉하다는 단어 외에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변했다.
“오늘 밤에 서비스를 해줘야겠는 걸?”
그 말에 경완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오늘은 의무방어전인가?”
“의무방어전이 뭐야, 의무방어전이! 나 삐친다!”
“삐칠 수 있는지 보자고.”
“어머어머!”
경완이 그녀를 번쩍 들어 침실로 향했다.
미연은 발을 버둥거리며 내숭을 떨었지만 상기된 낯빛은 명백히 기대를 담고 있었다.
두 사람이 침실로 들어가고, 문이 닫혔다.
* * *
“얘는 어때?”
“음…… 귀엽네.”
“쟤는?”
“걔도 귀여워.”
“참고로 한 마리만 키울 거야.”
혹여나 여러 마리 키울까 봐 미리 선을 긋는 경완의 말에 미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고양이를 한 마리만 키우기로 한 두 사람이 간 곳은 유기묘 보호소. 하지만 미연은 선뜻 고르지 못하고 망설였다.
“너 은근히 선택장애다.”
“선택장애가 아니라 신중한 거야. 평생 함께할 가족을 찾는 일인걸?”
경완은 고양이 수명이 사람만큼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었지만 그런 말을 했다가는 분위기 씹창난다는 걸 모를 지능이 아니었다.
“기준은 있어?”
“삘이지, 삘. 내가 오빠를 좋아하는 데에 이유가 없는 것처럼 말이야.”
“날 좋아하는 데 이유가 없다고?”
“솔직히 오빠가 능력은 좋지만 무심하고 게으르잖아? 일반적인 여자라면 질려버리지 않을까? 단점 다 무시할 정도로 엄청나게 잘 생긴 것도 아니고.”
“…….”
필터링 없는 팩트폭행에 경완은 입을 다물었다.
조건 없이 자신을 좋아해주는 여자란 이 얼마나 귀중한 존재인가? 그런 존재가 팩트폭행을 하면 얌전히 맞아줘야지.
유기묘 보호소를 끝까지 훑어본 미연이 경완의 손을 잡아끌었다.
“여기는 없는 것 같아. 다른 곳에 가보자.”
경완은 입맛을 다셨다. 첫날 입양은 실패인 모양이었다.
미연과 경완이 두 번째, 세 번째 유기묘 보호소를 방문하고서도 끝내 새로운 가족을 찾지 못했고, 그때쯤 경완은 요하네스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혹시 가족으로 들일 고양이를 찾고 계신가요?]
“어떻게 아셨어요?”
[뉴스에 떴습니다.]
“아무리 뉴스에 떴다고 해도…….”
경완은 말꼬리를 흐렸다. 방금 9시 뉴스에 잠깐 지나간 내용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바로 연락을 하다니…… 이 정도면 스토커가 아닐까?
말꼬리를 흐리며 찝찝해하는 경완에게 요하네스는 유쾌하게 웃었다.
[하하하! 경완 씨는 본인에 대해서 관심 많은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시는 모양입니다. 지금쯤 어떤 고양이를 선물해야 할까 고심하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걸요?]
이에 경완은 왠지 귀찮은 냄새가 나는 것 같아서 미간을 찌푸렸고 요하네스는 말을 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제가 누구보다도 먼저 고양이를 선물해보고자 합니다.]
“흐음…….”
경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고양이를 여러 마리 키울 생각은 없으니 선물로 고양이를 선물한다면 선착순일 것이다. 아, 그래서 이렇게 빨리 전화를 건 건가?
“하지만 미연이 마음에 들어야 할 텐데요?”
[분명 마음에 들 겁니다. 평범한 고양이가 아니니까요.]
“……미연이에게 물어볼 테니까 무슨 고양이인지 설명해 보세요.”
뭐 결정은 미연이 하는 거니까. 그리고 기왕 이렇게 된 거 빨리 고양이를 들이는 편이 귀찮은 일을 줄일 수 있을 것 같았다.
미연은 경완으로부터 요하네스가 소개해 준다는 ‘특별한’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눈을 빛냈다.
“어떤 고양이인데?”
“초능력 고양이.”
“초능력 고양이?!”
놀란 미연에게 경완이 말했다.
“의외로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사실인데, 초능력을 각성한 동물들이 있어.”
“그거 위험한 거 아냐?”
“위험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