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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전생 더 빌런-210화 (210/367)

무한전생-더 빌런 210화

20-오버맨 엔트리

이관영의 설명에 경완이 말했다.

“그런 놈이면 잡아도 보람 있기는 하겠네요.”

강자를 죽이는 걸 좋아한다는 거는 일단 치워두고, 약자를 괴롭히는 걸 좋아한다는 건 제법 악질적이었다.

연인을 잡아다가 눈앞에서 강간한다든가, 총 따위를 쥐여 주고 친구나 가족, 혹은 일면식도 없는 이를 죽이라고 협박한다든가 하는 짓거리를 즐긴다나?

괜히 미친놈이라는 평가가 있는 것이 아니었고 경완에겐 길 가다가 발견하면 꼭 밟아 죽이고 싶은 벌레 새끼로 분류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마냥 러시아의 호의(?)를 믿기엔 경완의 생각은 조금 꼬인 부분이 있었다.

“그런데 좀 꼴 받는 게 있는데, 이웃 나라에 마약 풀어놓는 범죄조직을 가만히 놔두는 거 자체가 문제 아니에요?”

그 말에 이관영은 쓰게 웃었다.

“현실은 현실이니까요.”

러시아는 넓지만 그만큼 공권력이 강하진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강하기는 한데 구석구석까지 뻗치진 않는달까?

그래서 낙후되어 대신 마피아의 영향력이 강한 지역의 문제까지 처리하기엔 여력이 모자랐다.

그런 공권력의 빈틈을 찔러서 자력구제를 할 수도 있지만, 국경을 넘는 마약상놈들은 은밀히 움직이고, 그런 놈들을 때려잡으면 결국 요란해지니 러시아 당국의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러시아 정부 입장에서 타국의 공권력이 넘어와 범죄자를 처리하는 걸 눈감아준다는 것 자체가 크게 선심 쓴 것이 분명했다. 미국조차 남미에서 오는 마약에 이를 갈아도 군대를 보내는 것 대신 국경 바리케이드를 치지 않던가? 자칫 외교적 문제로 비화할 수도 있으니까.

경완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웃나라와 친하게 지내면 본인의 생활 안정에도 조금은 보탬이 될 거라는 계산이 섰다.

“그래서 놈은 어딨어요?”

경완의 물음에 이관영이 잠시 뜸을 들이다가 대답했다.

“청진시에 잠적해 있다고 들었습니다.”

“거기가 어딘데요?”

“함경북도에 있는 도시요.”

“……놈이 왜 거기에 있어요?”

경완이 고개를 갸웃했다. 러시아 빌런이라며?

이관영은 이걸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눈 딱 감고 대답했다.

“러시아의 추적을 피해 온 것으로 보입니다.”

“왜 중국 저 넓은 땅을 두고 하필 이 나라로 왔는데요?”

“중국이 엉망이지 않습니까?”

중국이 멀쩡했다면 러시아의 추적은 아마 중국과의 국경에서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의 치안은 엉망이었고, 러시아의 팀이 빌런을 잡는다고 중국땅을 누벼도 제대로 항의할 정부가 없었다.

“그래서 한국까지 도망쳐왔다?”

“적어도 러시아의 추적자들이 중기관총이나 공격헬기를 동원하진 못할 테니까요.”

“그랬어요?”

“중국땅에서 추적할 때는 중기관총까진 썼답니다.”

려윽시 러시아라며 경완은 혀를 내두르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놈을 체포하러 러시아 초능력자들이 나섰고, 또 여기까지 몰아붙였다면 굳이 제가 나설 필요도 없는 거 아니에요?”

안 그래도 치안이 엉망이라는데 그 미친 빌런을 잡는다고 우리 경찰과 히어로들이 고생하는 것보다는 보야 사노비치라는 놈을 여기까지 몰아붙인 그 러시아 체포단이 활동할 수 있도록 국경을 열어주는 편이 낫지 않나?

하지만 이관영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었다.

“인명피해와 재산피해가 클 겁니다. 놈은 인질을 잡는 것도 서슴지 않아요.”

인적 드문 오지에 숨지 않고 굳이 사람이 있는 도시로 들어오는 이유는 먹잇감을 찾기도 쉽고 의외로 몸을 숨이기도 쉬웠기 때문이다. 나무가 숲에 숨어 있는 것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에 숨어 있으면 초능력으로도 찾기 어려웠다.

거기다가 여차하면 주변의 행인을 잡아다 인질로 삼아 도망칠 수도 있었다.

물론 중국에서 그러면 신경도 쓰지 않지만 한국에서 그러면 문제가 아니겠는가?

“추적에 골치 아픈 초능력도 있습니다. 얼굴과 체형을 변화시킬 수 있다더군요.”

“매니 페이스 같은 능력인가요?”

“타인의 얼굴을 모방하는 게 아니라 그냥 다른 얼굴을 가지고 있는 겁니다. 그것만으로 안면인식 프로그램을 회피한다고 하더군요.”

“그렇다면 놈을 어떻게 구별하죠?”

“놈을 알아볼 수 있는 에스퍼가 있다고 합니다.”

사람이 가진 특유의 체취, 초능력자가 각자 가지고 있는 어떤 기운이나 분위기 등을 예민하게 감지할 수 있는 에스퍼가 보야 사노비치를 추적하는 핵심이었다.

“해변에서 바늘 찾기 같은데요?”

“생각보다 훨씬 뛰어난 에스퍼라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청진시는 그리 큰 도시가 아니죠.”

사실 북한에서 4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였지만 거짓말은 아니었다. 남한의 대도시에 비하면 확실히 작은 도시였으니까.

경완은 미간을 찌푸리며 입맛을 다셨다. 왠지 고생할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이관영이 은근한 어조로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실 겁니까?”

“치워야죠.”

놈이 저기 러시아 땅에 있다면 귀찮아서라도 안 가는데 한국땅에 있다고 하니 더 큰 문제를 일으키기 전에 처리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게다가 희생자가 많아질수록 강해진다는 놈이니 빠르게 처리할수록 편하게 처리할 수 있었다.

경완의 수락에 이관영은 반색하며 말했다.

“그럼 접선 장소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그리고는 보야 사노비치를 쫓아온 러시아의 추적자들이 있는 장소를 알려주었다.

그들은 이미 청진시에 있었다.

* * *

“반갑습니다. 미하일이라고 합니다.”

경완이 러시아의 추적자들과 만났을 때 아시안-슬라브 혼혈로 보이는 사내가 꽤나 유창한 한국말로 경완에게 손을 내밀었다. 한국계 혼혈인 모양이었다.

그는 경완이 그의 손을 잡자 가볍게 흔들며 말을 이었다.

“이렇게 빨리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빨리 처리하고 집에 가고 싶거든요.”

“좋은 말씀입니다. 저희 팀원들도 좋아할 겁니다.”

이어서 그는 자신이 이끄는 추적팀, 일명 보야 척살팀을 소개했다. 총 9명의 인원으로 꾸려진 척살대는 전위에 서는 신체강화계열 3명, 보조 및 근접지원 2명, 그리고 원거리 지원 3명과 마지막으로 추적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에스퍼 1명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적절한 밸런스와 함께 느껴지는 정예함은 보야라는 빌런을 도주하게 만들기에 충분하게 느껴졌다.

딱 한 명 빼고.

“애잖아요.”

정수리가 경완의 가슴팍까지밖에 오지 않는 백인소녀가 바로 보야 척살의 핵심인 에스퍼였다.

“사정이 있습니다.”

미하일이 표정을 굳히며 말을 이었다.

“그 아이는 보야의 피해자입니다.”

“어. 음…….”

경완은 더는 말하지 않았다. 보야의 악질적인 괴롭힘에서 살아남은 소녀라…….

꼬치꼬치 캐물어서 소녀의 상처를 헤집을 정도로 경완은 눈치 없지 않았다.

어린아이다운 천진난만함이 사라진 표정 대신 날카로운 눈빛과 무표정한 얼굴은 소녀가 이 자리에 있는 이유 대부분을 설명해 주었다.

그래도 경완은 한 가지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이가……?”

“11살입니다.”

“어우.”

15살 정도는 되는 줄 알았더니 더 꼬꼬마였다. 경완은 괜히 물었다는 듯이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돌렸다. 하여간 이놈의 입이 주책이었다.

“그래서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경완의 물음에 미하일이 대답했다.

“일단 낮에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놈의 흔적을 추적할 겁니다.”

“어떠한 단서도 없이요?”

“네. 그러나 외람된 말이지만 단서는 곧 생길 거라고 생각합니다.”

경완은 거기에 담긴 뉘앙스를 눈치챘다. 한마디로 그 바야라는 미친놈이 사건을 일으키리라는 말이었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청진시의 누군가가 피해자가 될 때까지 놈을 추적할 마땅한 단서가 당장은 없다는 말과 같았다.

“단서가 없다면 어떻게 놈이 여기 있다는 걸 확신하죠?”

“어……. 정보의 제공처가 있습니다.”

“그 제공처의 도움을 받으면 되지 않나요?”

“그분은 최대한의 도움을 주셨다고 말했죠.”

“그게 누군데요?”

“요하네스 벨푸기스 씨입니다.”

뜻밖의 이름을 들은 경완이 눈을 깜박이자 미하일이 말을 이었다.

“사실 놈을 러시아 땅에서 몰아낼 수 있었던 것도 위버멘쉬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경완이 의문을 표했다.

“러시아에도 위버멘쉬가 진출해 있나요?”

그가 아는 바로는 위버멘쉬의 진출을 허락하지 않았던 소수의 나라 중 하나가 러시아였던 것이다.

미하일이 말을 이었다.

“아니요.“

“공짜로 도와줬다?”

“음. 더 이상 묻지 말아 주십쇼.”

미하일이 곤란해하자 경완은 고개를 끄덕였다. 뒤로 뭔가 대가를 주고받았겠지만 경완이 알 필요는 없었다. 알고 싶지도 않았고.

미하일은 이어서 계속 일정과 계획에 대해서 경완에게 설명을 했는데 경완의 입장에선 애보기에 가까웠다.

탁탁!

백인소녀가 손을 들어 경완의 어깨를 두드렸다.

소녀와 함께 거리를 산책하듯 돌아다니던 경완은 보야라는 놈을 추적할 흔적을 찾았나 싶어서 초감각을 돌렸지만 딱히 뭔가 특이한 점은 없었다.

그래서 소녀를 내려다보는데 어이가 없었다. 소녀가 가리키는 곳엔 붕어빵을 파는 노점상이 하나 있었던 것이다.

“사달라고?”

“……?”

“Eat?”

러시아를 못 하는 경완이 먹는 시늉을 하며 말하자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간단한 영단어는 아는 모양이었다.

경완은 딱히 거절할 이유도 없겠다, 본인도 좀 출출하겠다, 붕어빵 8개를 사서 소녀와 4개씩 나누고는 근처 광장에 앉아 먹기 시작했다.

미하일을 비롯한 나머지 8명은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서 원거리 경계를 하며 움직이고 있었다.

경완은 붕어빵을 오물거리는 무표정의 소녀를 힐끗 곁눈질했다.

타냐 스바로츠키. 소녀의 이름이었는데, 현재 그 미친놈이라는 보야 사노비치를 추적할 수 있는 유일한 에스퍼였다.

소녀의 사정에 대해선 자세히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그럴듯한 상상은 가능했다.

보야 그놈의 피해자였던 소녀는 초능력을 각성할 때 놈에 대한 복수심 때문에 놈을 추적할 수 있는 에스퍼 능력을 얻게 되지 않았을까?

그리고 복잡한 사정을 통해 이렇게 놈을 추적하는 팀에 합류하게 된 것이고.

아무튼, 소녀를 경완이 옆에서 담당하게 된 이유는 보야 그놈이 척살대에 자신을 추적하는 특별한 방법이 있음을 짐작하고 있을 거라는 미하일의 우려 때문이었다.

놈과 척살대가 충돌한다면 가장 먼저 놈이 노릴 대상은 놈을 추적할 수 있는 능력자였고, 놈은 그런 초능력을 구분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이 있는 초능력자였다.

놈이 드넓은 중국땅을 북에서 남으로 가로질러 도망쳐 왔지만, 이 청진시에서 다른 곳으로 또 도망치지 않는 이유는 뭔가 의도가 있다는 뜻이었으니, 그에 대한 프로파일링을 한 전문가의 의견에 따르면 놈이 자신을 추적하는 방법에 대한 단서를 얻어 이를 제거하거나 아니면 추적하는 자들 통째로 타격을 줄 계획을 세운 것 같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타냐라는 11살 난 꼬마애는 스스로를 보호할 능력이 없잖은가?

그래서 세계 공인 가장 강력한 초능력자인 경완이 이 꼬마 옆에 붙은 것이다. 꼬마애라고 하면 화를 내니 자중해 달라는 미하일의 당부와 함께 말이다.

타냐는 붕어빵 3개를 먹고 한 개는 미적거렸다. 경완이 그 모습에 한마디 했다.

“Finish it.”

그 말에 타냐는 붕어빵에서 경완을 향해 시선을 돌리더니 그의 묵묵히 말 없는 얼굴을 보았다.

그러더니 이유 모를 꼴을 받았는지 눈을 가늘게 좁히더니 그에게 붕어빵을 내밀었다.

경완은 반쯤 식은 붕어빵을 힐끗 내려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역시 짬처리는 성인 남자의 몫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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