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전생-더 빌런 215화
21-검은 머리 짐승
“서울 참사는 마리아 소장의 탓이 아니야.”
서울 참사를 그녀의 탓으로 돌리려고 한다? 그런 식이라면 그전에 그녀를 납치했던 중국과 그녀를 보호하기는커녕 제대로 된 항의조차 하지 않았던 한국정부부터 탓해야 하지 않을까?
국가로부터 외면받은 개인이 자력구제를 하겠다는 게 잘못일까?
루소의 사회계약론이 사실이라면 마리아 소장이야말로 일방적 계약 파기, 혹은 계약의 불성실 이행을 받은 피해자였다.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적어도 경완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게 자신에게도 유리한 논리가 아니겠는가?
그리고 그가 보기에 마리아 소장이 국가로부터 받은 대우는 그녀가 공헌한 바에 비해 매우 모자랐다.
내가 몸담은 공동체가 내가 기여한 만큼 나를 보호하지 않는다면 나 역시 공동체에 기여할 이유가 있겠는가?
미연은 마리아를 옹호하는 말에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성적으로는 경완의 말이 납득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가슴으로는 받아들이기가 좀 어려운 모양이었다.
“…….”
경완은 말 없는 그녀를 보며 입맛을 다시며 돌아섰다.
“다녀올게.”
그리고 그대로 웜홀을 열어 서울로 향했다. 서울 참사 이후 서울 재건에 헌신하겠다고 마리아 소장의 거주지도 서울로 옮겨져 있었다.
하늘을 날아 그녀의 집 근처에 도착한 경완은 늦은 밤인데도 시위대 및 서울 참사의 유가족들과 그들을 취재하려는 기자들이 마리아의 아파트 건물 밖에 모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우리 아들 살려내~~애!]
[살인마!]
“쯧쯧쯧.”
시일이 지났지만 가족을 잃은 슬픔이 새삼 솟구쳐 오르는지 악을 쓰는 유가족들과 그런 그들을 경쟁적으로 찍는 기자들의 모습이 절로 혀를 차게 만들었다.
누군가의 비극이 누군가에겐 밥벌이가 되는 장면.
아아.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 언론의 맛인가?
경완은 사람들 몰래 마리아의 아파트 안에 들어갔다.
♪♬♩~♪♬♩~♪♬♩♪
전화벨 소리가 계속 났지만 받는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혹시 자살한 걸까?
그렇지는 않았다. 그녀는 그저 계속해서 울리는 스마트폰을 테이블에 올려둔 채 홀로 와인을 홀짝이고 있었을 뿐이었으니까.
“혼자 마시는 거예요?”
“아~? 우리 굥완 띠~”
얼굴을 붉어졌고 혀는 꼬여 있었다.
경완은 주방에서 잔을 들고 마리아의 맞은편에 앉았다.
“혼자 마시면 맛없어요.”
안주도 제대로 된 게 없었다. 하긴 안주를 마련할 정신이 있었다면 저렇게 혼자서 병으로 나발을 불고 있진 않겠지.
경완은 마리아의 손에서 와인병을 빼앗아 들고 병을 기울였다. 그녀의 앞에 놓인 잔에 한 잔, 자신 앞에 놓인 잔에 한 잔.
“자자, 듭시다.”
경완의 재촉에 마리아는 마지못해 잔을 들었다.
경완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치며 말했다.
“속박에서 벗어나게 된 것을 건배.”
“……경안 씨는 참 긍졍적인 것 같아요.”
“긍정적이라니요. 사실을 말했을 뿐이죠. 업보를 졌다고 혼자서 끙끙대는 것보단 기왕 이렇게 된 거 어떻게든 매듭짓는 게 좋죠.”
“쪼오기 밖에 있는 사람들은 그러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여.”
“원래 대중이란 선동당하기 쉬운 존재거든요. 거기에 가족을 잃기까지 했으니 누구라도 원망하고 싶겠죠.”
그 심정은 이해한다. 하지만 정말 서울 참사가 마리아의 탓일까?
중국은 이미 핵폭탄이 터진 그 자리에 웜홀 마커를 박아 놨었다. 탓을 하려면 그런 짓을 한 당사자와 중국 지도부를 탓해야지 왜 마리아를 탓한단 말인가?
“또 말하는 내용이라 귀에 딱지가 앉겠지만 소장님은 잘못 없어요.”
“…….”
말없이 수긍하지 못하는 표정에 경완은 답답해졌다. 하지만 와인 한 모금을 머금고 차분하게 이야기를 꺼냈다.
“이제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그쎄여?”
“아마 청문회가 열릴 겁니다.”
이렇게까지 국민적인 관심이 쏠렸으니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단순히 국민적 의혹을 풀기 위해서라든지, 관심이 고프신 정치인분들의 인지도 향상을 위해서라든지 등.
그 이외에도 경완이 예상치 못할 이유와 각자의 이해관계가 청문회 개최를 위한 압력으로 작용하리라.
“아마 마녀사냥의 현장이 되겠죠.”
서울 참사의 국민적 분노를 한 명의 희생양에게 몰아서 해결한다면 이 얼마나 남는 장사겠는가?
경완은 슬쩍 마리아를 살폈다. 마녀사냥이라는 단어에 흠칫할 뻔도 한데 마치 남의 일을 듣는 것마냥 반응이 없었다.
경완은 속으로 입맛을 다셨다. 그녀가 그동안 얼마나 정신적으로 몰렸는지 짐작할 수 있는 방증이었다. 누군가 그녀의 멘탈을 캐어해 줬다면 저렇게까지 자신을 버리려고 들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다.
그러나 그녀가 스스로의 몰락을 바란다고 그걸 그대로 용인할 순 없었다. 인간적인 유대감이나 그녀와의 친분 때문은 아니었다.
“소장님에게 마녀사냥 당하면 저는 가만히 둘 것 같아요?”
그렇다. 굳이 서울 참사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요소, 중국의 웜홀 능력자를 목적으로 한 작전과 이경완이라는 인물은 분리할 수 없었으니, 마리아를 지시범이라고 마녀사냥한다면 경완에게도 실행범이라는 화살이 돌아올 것은 뻔했다.
경완의 말에 마리아는 고개를 갸웃했다. 술에 취해서 그런지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금방 이해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나한테 공범이라고 지랄지랄 할 게 분명하다고요.”
“에~이. 누가 갱완 씨하테 그래요~오.”
말도 안 된단다며 웃는 그녀를 보며 경완은 고개를 저었다. 도저히 논리적인 설명으로 설득하기엔 술이라는 난관이 있었다.
그렇다고 지금 같이 밖에서 ‘살려내!’, ‘개 같은 년!’, ‘위선자!’ 같은 소리를 외치고 있는 상황에서 술도 못 마시게 하는 건 좀 그렇지 않은가?
그래서 경완은 논리는 집어치우고 억지를 부리기로 했다.
“아무튼! 소장님은 잘못 없습니다. 설사 일부 도의적 책임이 있다고 해도 여태 해온 것만으로도 충분히 갈음했어요.”
하지만 동의하지 않는다는 듯 김 여사는 말없이 술잔을 기울였다.
고집불통 같으니. 하긴 고집이 있으니 여태까지 그 많은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거 아니겠는가?
경완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를 위한 변명을 늘어놓았지만 손은 아니었다.
“끄뤩!”
염동력으로 목덜미를 탁 후려치니 혀를 빼물며 기절하시는 공대 출신 매드사이언티스트 여왕님.
본인이 아는지는 모르겠지만 서울 재건에 지대한 공을 세우신 이공계 여성 인사로서 김마리아는 상당한 지지층이 있었다. 솔직히 초능력 공학에 기여한 정도만 따져도 리사 수 못지않다고나 할까?
아무튼 경완은 떨어지는 잔과 쓰러지는 마리아 소장을 염동력으로 붙잡은 후 그대로 그녀를 침대 위에 옮겨놨다.
더 이상 할 얘기도 없고, 술 취한 인간을 상대로 구구절절히 설득을 하려 해봤자 입만 피곤할 것 같고, 그렇다고 계속 술에 취한 채 놔두는 것도 불안하고 해서 그냥 기절시켜 버린 것이다.
“맑은 정신으로 이야기하자고요, 아줌씨.”
내가 어딜 봐서 아줌마야!
자기 관리를 잘한 그녀가 나름 미스 골드라며 앙칼지게 한마디 할 것이 상상되니 괜히 피식 웃음이 나왔다.
다음 날, 미연이 소속사에 일이 있다며 나간 후 경완은 마리아와 통화를 나누었다. 어제는 온종일 통화상태였지만 오늘은 아닌지 통화가 연결되었다.
[여보세요.]
“소장님, 잘 일어나셨어요?”
[경완 씨, 어제 아주 무례했다는 건 알죠?]
필름이 끊겼던 것은 아닌지 그녀는 갑자기 기절했단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 짓을 할 사람이 경완밖에 없었다는 것도.
“술 취한 사람에게 예의는 무슨. 한숨 푹 자고 나니까 좀 괜찮아지지 않았어요?”
[참 뻔뻔하네요.]
그렇게 대꾸하는 그녀의 음성엔 평소와 같은 당당함?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은 일단 밀어붙이려는 에고이스트로서의 평소 모습이 담겨 있었다.
경완의 말을 부정하지 않고 그저 비난하는 것만 봐도 강제 수면 요법이 효과가 있었다는 걸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경완은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아무튼, 소장님은 잘못 없어요. 아시겠죠?”
[누굴 위해서요?]
“당연히 소장님을 포함한 여러 사람을 위해서죠. 말도 안 되는 마녀사냥을 용납하면 다른 억울한 피해자가 또 나올 테니까요.”
[경완 씨에게도 귀찮은 일이 생기고요?]
“뭐, 저야 곁다리로 얻어걸리는 거고요. 제가 말하는 명분이 아예 틀린 것도 아니잖습니까?”
[글쎄요.]
“아, 그참. 소장님은 잘못 없다니까요. 선전포고도 안 하고 핵폭탄 터뜨리는 미친놈들이 잘못이죠.”
건들지 말라고 옆집 사람에게 주먹을 쳐들었더니 이 새끼가 갑자기 가스통에 불을 붙이네? 옆집 놈이 이런 미친놈일 가능성을 누가 예상하겠는가?
경완의 말에 마리아가 한숨을 내쉬는 것이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아무튼, 누가 서울 참사에 책임이 있냐고 물으면 없다고 하세요.”
[……모르겠어요.]
하~ 이 아줌마 답답하네.
경완은 인정에 호소했다.
“내 얼굴 봐서라도요. 예?”
[입은 다물게요.]
거기까지가 그녀가 뻔뻔해질 수 있는 마지노선인가? 경완은 아쉽지만 인정하기로 했다. 너무 밀어붙였다가는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었다.
“그럼 우리 함께 이 난관을 헤쳐나가 봐요.”
[훗. 알겠어요.]
마치 아동프로그램의 MC와도 같은 과장된 어조에 마리아 소장은 웃으며 전화를 껐지만 경완은 진이 빠졌다. 멘탈 예민해진 과학자 하나 케어해 주는 게 이렇게 어렵다.
“냐앙~”
정신으로 피곤해져서인지 마른세수를 하는데 치즈가 소파 등받이에 올라와 그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경완은 치즈를 보며 물었다.
“사실대로 말해봐. 너 사람이지?”
“…….”
하지만 치즈는 대답 없이 경완과 눈을 맞추고는 ‘내가 어딜 봐서 사람이냥?’이라고 항의하는 듯 꼬리를 세우고 도도히 정원 쪽으로 난 창문으로 가서는 밖을 가만히 구경하는 것이 아닌가?
경완이 피식 웃으면서 문을 열어주자 치즈는 알아서 정원을 돌아다니며 킬링타임을 즐겼다. 경완 역시 지지 않겠다는 듯 게임기를 작동시켜 킬링타임을 시전했다.
해가 질 때쯤 미연으로부터 오늘은 늦을 테니 먼저 식사하라는 전화를 받은 그는 저녁으로 밥 대신 치맥을 뜯으며 저녁 뉴스를 시청했는데, 서울 참사에 관련하며 김마리아 소장에 대한 청문회를 개최한다는 뉴스가 속보로 올라왔다.
경완은 미간을 찌푸렸다. 자신도 저 청문회에 불려나갈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니, 그건 느낌이 아니라 찰나의 순간에 이루어진 추론의 결과였다.
이슈가 생산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당사자의 해명이나 기자회견도 없었는데 이렇게 신속하게 청문회를 연다는 것은 뒤에 유력자나 세력이 있지 않고서는 납득이 어려웠다.
그런데 그들이 아무런 소스도 없이 청문회를 개최했을까? 역풍은 어찌 감당하려고?
이러한 의문은 정보가 유출되었을 가능성을 암시했다. 어디서 유출되었을까? 위버멘쉬? 미국? 아니면 티벳이나 위구르?
어디서 유출되었는지는 당장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 정보가 어디까지 유출되었는가, 그 유출된 정보에 경완에 대한 내용이 얼마나 포함되어 있는가가 중요했다.
설사 포함되어 있지 않더라도 청문회는 나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마리아의 편을 들어줄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경완이 복잡하게 고민하는 와중에 전화가 왔다. 확인해 보니 요하네스였다.
경완은 놀라지 않았다. 서울 참사와 마리아 사이의 관련성엔 위버멘쉬도 얽혀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한편으론 의문도 들었다. 왜 위버멘쉬는 이런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지 못한 것일까?
위버멘쉬를 위한 변명이 여럿 떠올랐다. 외국계 조직인 위버멘쉬가 화교조차 자리를 잡지 못한 배타적인 나라에서 어떻게 서울 참사에 대한 국민적 분노를 무마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하지만 전화를 받고 좀 더 내밀한 이야기를 들으니 상상과는 다른 측면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