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전생-더 빌런 216화
21-검은 머리 짐승
“그러니까 토사구팽이라는 건가요?”
[그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만, 상당한 위기감의 발로이기도 하죠.]
서울 참사 이슈와 김마리아 소장이 얽힌 것은 경완의 예감대로 기득권의 입김이 들어간 것이 맞았다.
정계, 경제계 인사들이 합심해서 짜놓은 작전인 것. 언론이야 그 두 집단이 가는 데로 쫄래쫄래 따라가는 나팔수에 불과하고 말이다.
[사실 그동안 초능력이다 각성이다 혼란스러웠지만 한국의 기득권층은 그 혼란을 오히려 자신들의 기득권 강화의 기회로 삼았습니다.]
초능력자와 관련된 다양한 법안은 초능력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사실 대기업들이 초능력자로 이루어진 사설 무력집단을 쉽게 구성할 수 있게 도와주는 디딤돌의 역할을 했다. 동시에 타국으로 초능력 인재가 유출되는 것을 막으면서 타국의 초능력자 파견업체가 한국에 진출할 때 장벽으로 작용한 것이다.
마치 동종업계 이직의 커다란 장애물인 경업금지약정이나, 스마트폰이 처음 나왔을 때 어떻게든 국내 대기업의 스마트폰 출시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사람들의 항의에도 허가절차를 지지부진 끌던 정계와 공무원 조직처럼 말이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 커다란 변화가 생겼다. 서울 참사가 발생한 것이다.
나라가 망할 상황에 대기업들조차 ‘해외런’을 고려할 때 나타난 구국의 영웅이 있었으니 바로 김마리아 소장이었다.
그녀는 그녀가 가진 거의 모든 것을 동원해 피해의 확산을 막고 서울 재건의 기반을 닦았다. 실질적으로 한국 경제를 구해냈으니 경제지에서 그녀를 묘사하길 한국 경제의 잔다르크라 불렸다.
하지만 잔다르크가 프랑스왕 샤를 7세에 의해서 토사구팽 당했듯이 김마리아 역시 토사구팽의 상황에 처했다는 것이 요하네스의 설명이었다.
[닥터 김이 서울 재건을 위해 쏟은 노력은 결과적으로 그녀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부여했습니다. 재벌들이 부담스러울 정도로요. 재벌들과 성향도 다르고 원하는 바도 다른 그녀를 통제하려고 들기엔 그녀와 손을 잡고 있는 저희 위버멘쉬가 가만히 있지 않았죠. 거기다 서울 재건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한국에 진출하니 한국의 기득권층 입장에선 그녀가 마치 그들의 기득권을 위협하는 위버멘쉬의 첨병처럼 느껴졌을 겁니다.]
“어…… 총수님. 혹시 한국에서 사업을 하고 계신가요?”
[물론이죠. 초능력 공학은 이미 산업과 경제와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저도 공짜로 조직을 운영할 순 없는 노릇 아닙니까?]
수상할 정도로 한국어를 잘하고 한국도 자주 오는 이유가 있었구나.
경완은 납득하면서도 그렇다면 혹시나 요하네스에게 이 상황의 해법이 있지 않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런 질문에 요하네스는 이렇게 대답했다.
[일단 이번 청문회를 무사히 넘기는 것이 관건입니다. 시간은 우리 편이니까요.]
토사구팽은 다른 관점에서 보면 더는 시간을 주면 부담스럽다는 뜻이었다.
“그러니까 어떻게 넘긴다는 건가요?”
[그 부분을 다방면으로 준비하고 있지만 역시 쉽지 않더군요. 한국의 폐쇄성은 상상 이상입니다.]
“기득권의 폐쇄성이겠죠. 어디 박힌 돌이 굴러온 돌을 반기는 거 봤어요?”
[정정하죠. 기득권의 폐쇄성이 매우 강력하더군요.]
하긴 경제계, 정관계, 거기에 언론까지 광범위한 카르텔이 형성되어 있는데 그게 쉽겠는가? 자국민들이 기어오르는 것도 막으려고 드는데 하물며 해외에서 들어온 거대 단체는 오죽하랴?
“그래서 어떤 준비를 하셨어요?”
[일단은 저들이 제시하는 증거에 대한 반박 자료를 수집하고 있습니다만 그것만으론 충분치 않더군요.]
“그래서요?”
[물타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그런데 거기에 적합한 스피커가 경완 씨 밖에 없더군요.]
“물타기라면…….”
[이 청문회 개최의 배경에 있는 정치인, 그리고 그 정치인과 연결된 기업들과의 비리를 찾았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그들이 청문회를 여는 이유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고 부풀리는 겁니다.]
경완은 고개를 끄덕였다. 영 불리하다 싶으면 지성을 쓰레기통에 쳐넣고 ‘쟤들도 쓰레기야!’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양비론 물타기야말로 한국 여론의 유구한 전통이 아니던가?
누가 더 더럽고 덜 더러운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 목소리가 더 크니 내 말이 맞다!
한국에서 대해서 열심히 공부한 티가 나는 식견이었다.
요하네스의 말이 이어졌다.
[하지만 도무지 우리의 논리를 옹호해 줄 스피커를 찾는 게 어렵더군요. 이 나라의 언론들도 거의 다 한통속이라서 저희 위버멘쉬를 견제하고 있습니다.]
혼맥으로 단단히 얽힌 이 나라의 기득권층의 아성은 외국에서 잘나가는 돌이 굴러들어온다고 해서 쉽사리 흔들릴 리가 없었다.
똥개도 자기네 앞마당이라면 절반은 먹고 들어간다는데 하물며 똥개보다 더 지독한 기레기는 어떻겠는가?
[고만고만한 인터넷 언론사들은 그리 영향력이 있지도 않고요. 잠적한 사망기자가 아쉬울 정돕니다.]
사망기자라면 그 비질란스 소속? 경완은 샌드맨 활동을 완전히 접고 불씨 재단 활동에 전념하고 있는 강우빈 감독을 떠올렸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가 아니다.
“광고는 안 써봤습니까?”
경완은 차선책에 관해 물어보았다.
언론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가장 합법적인 방법이 바로 광고료 아니겠는가?
재벌이 언론을 나팔수로 길들이는 먹이가 바로 광고료니, 돈만 주면 얼마든 기사의 탈을 뜬 광고도 써주고 이미지 개선을 위한 똥꼬 빨기도 해주는 것이 자본주의 언론의 실태였다.
그러니 돈을 주면 이쪽 편을 들진 않더라도 적어도 주둥이는 다물 거라는 기대는 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지만 이어진 요하네스의 대답은 실망스러웠다.
[저희 광고는 안 받는답니다.]
“광고료 비싸게 준다고 해보지 그러셨어요?”
[그러기는 싫더군요.]
하긴…… 경완은 고개를 끄덕였다. 국제적으로 위상이 높은 거대 초능력자 협회의 회장이 뭐가 아쉬워서 돈 받고 뉴스인지 광고인지 구별도 힘든 기레기들에게 돈 더 주겠다고 아쉬운 소리를 하겠는가?
서양의 거대 언론사처럼 영향력이 있지도 않은 기업 나팔수 따위에게?
자존심 때문에 실리를 놓치는 게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위버멘쉬의 전 세계적 영향력을 생각하면 코딱지만 한 나라의 로컬한 언론에 저자세로 나가는 것 자체가 그 명성에 흠집 내는 짓이었다.
그런 집단의 총수로서 한국의 언론에 허리를 숙이는 것 자체가 마이너스였다.
“그래서 저군요.”
[네. 저는 미스터 리가 청문회에 불려갈 가능성을 매우 높게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중에 대한 미스터 리의 호감도와 발언력은 이 나라 기득권이 충분히 싫어할 정도죠.]
“이해가 안 되네요. 그런데 저를 부른다고요?”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르는데?
요하네스는 이렇게 답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는 걸 잊으면 안 됩니다.]
호의가 계속되면 호의가 호의였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둘리가 되고, 공포도 반복해서 상기시켜 주지 않으면 괜한 깜냥이 생겨난다.
경완은 자신이 이 나라의 기득권과 완전히 척을 졌던 사건을 떠올렸다.
양승태였던가? 경완이 몸소 허리에 칼침 꽂았던 국회의원의 이름이?
시절을 되돌아보니 세월인 참 빨리 지나갔고, 당시의 충격과 공포가 희석되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경완은 당시의 기억이 아련하게 느껴져서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는 말이 실감 났다.
시간만 원인인 게 아니라, 중간에 총선도 한 번 치러서 물갈이도 좀 됐고, 초능력과 관련된 여러 사건 사고들도 있었으니 자신이 어떤 놈인지 망각하는 의원도 있을 법했다. 아니면 그동안 얌전히 지내서 사람이 바뀌었다고 착각을 하든지 말이다.
“일단 알겠습니다. 어차피 남 일이라고 할 수도 없으니까요.”
경완은 요하네스의 제안을 수락했다. 하긴 그가 생각해도 나쁜 방법은 아니었다. 정 빠져나올 구석이 없으면 물이라도 흐려서 피해를 최소화해지 않겠는가?
[그럼 관련 자료는 인편으로 보내겠습니다.]
“편하신 대로.”
국정원와 미국의 관리(?)를 받는 경완이었으니 고전적인 방법으로 자료를 주는 편이 가장 안전했다.
그런데 인편으로 자료를 보낸다고 했는데 인편치고는 거창한 인사가 왔다.
“오랜만입니다.”
무려 위버멘쉬 공식 대변인, 나탈리 헵번이 온 게 아닌가?
그녀는 경완에게 태블릿 하나를 건네주며 말했다.
“루팅한 기계입니다. 물리적인 연결이 아니면 네트워크와 연결이 되지 않습니다. 해킹이 불가능한 물건이죠.”
“직접 가져온 걸 보니 보통 물건이 아닌 모양이네요.”
“물건 자체보단 내용물이 중요합니다. 이 나라의 기득권과 척질지도 모르는 내용이니까요.”
“그래요?”
경완은 호기심에 태블릿을 만졌다.
힘없는 서민이라면 핫 뜨거라 태블릿을 저 멀리 치워버렸겠지만 경완은 힘없는 서민이 아니라 힘 있는 서민이었다.
힘이 있는데 왜 서민이냐고? 원래 빌런의 어원은 농민, 그 시대의 서민을 뜻하는 단어였다. 그런데 착취에 버티지 못한 농민들이 약탈을 하는 범죄자가 되어버리니 높으신 분들에겐 농민이 범죄자나 다름없는 놈들도 보였던 모양이었다.
그러한 인식은 현시대에도 바뀌지 않았으니, 기득권을 쥐신 높으신 분들 눈에 대중은 자신들의 재산을 약탈해가려는 빌런이나 다름없었다.
내가 내 적법한 권리에 따라 이윤을 창출하겠다는데 니들이 뭔데 파업하고, 세금 많이 내라고 지랄이냐?
대놓고 그렇게 말하면 죽창을 맞을 테니 공교육을 박살 내고, 중소기업을 착취해서 영세하게 만들고, 비정규직 정규직을 갈라치기 해서 서로가 서로를 착취하는 개돼지로 만들면 그다음부터는 그렇게 굳어진 사회시스템이 알아서 대중을 개돼지로 길들여 준다.
혁명? 대중의 30%만 제 입맛대로 움직일 수 있다면 혁명 따윈 없다. 히틀러가 수상 자리에 오를 당시조차도 나치당의 득표수는 과반을 넘지 못했다.
척박한 현실에 개돼지들이 새끼를 치지 않는다고 해도 걱정하지 마시라. 세상은 넓고 개돼지는 얼마든지 수입이 가능했다.
“이야~ 이거 진짜예요?”
경완은 이번 청문회 구성 인원들 중 상당수가 향응이나 뇌물을 받은 자료가 있었다. 그중엔 심지어 성상납 영상도 있었으니 경완이 다음과 같이 묻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이거 불법적으로 얻은 자료죠?”
“네.”
나탈리는 부정하지 않았다.
경완은 요하네스가 왜 자신에게 나팔수 역할을 부탁했는지 이해했다. 이 정도로 큰 건수라면 대한민국 언론은 절대로 공표할 리가 없었다. 그런 짓은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밥그릇을 내던지는 행위였다.
단순히 정의감이 넘치는 사람도 무리였다.
오직 높으신 분들에게도 가차 없이 박규를 날릴 수 있으며 그분들과 적이 되는 일에 전혀 두려움이 없는 이경완에게만 가능한 일인 것이다.
“혹시 제가 특별히 알아야 할 것이 있나요?”
“자료를 다 훑어보시는 동안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의문이 생기시는 사항이 있으면 언제든 물어봐 주세요.”
말하는 걸 보아하니 단단히 작정하고 온 모양이었다.
하지만 경완은 그녀가 전달한 자료를 완벽히 독파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차라리 이렇게 하는 게 어떻겠습니다. 제가 청문회장에 갈 때 골전도 이어폰을 끼고 가는 거죠. 그리고 나탈리 씨나 저를 도와줄 아무나가 제가 할 답변에 도움을 주는 겁니다.”
“……지금 ‘cheating’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거참. 컨닝이라니요. 그저 우리의 목적을 위한 스마트한 수단이라고 해주세요.”
0점에서 70점에 가는 거랑 70점에서 90점 이상 가는 노력이 차원이 다른데 왜 머리에 지혜열을 내가며 달달 외워야 한단 말인가? 이게 무슨 시험이나 면접 보러 가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경완의 말에 나탈리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태블릿에 있는 내용이 상당히 많았기 때문에 청문회까지 경완이 모든 내용을 숙지할 수 있을지 그녀로서는 장담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럼 최중요 사항부터 알아볼까요?”
“알겠습니다.”
경완은 그녀의 도움을 받아서 청문회를 대비한 자료를 외웠다. 그중에는 아는 얼굴도 있었다.
“이야~ 황 검사님. 질기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