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전생-더 빌런 217화
21-검은 머리 짐승
청문회의 위원으로 참여하는 국회의원과 긴밀하게 연결된 검찰 측 인물로 황석칠 검사가 있었다.
일신의 영달을 위해 후배였던 김오민 검사를 양승태 의원에게 팔아넘겼던 검사가 어떻게?
경완은 황석칠 검사의 프로필을 살피며 혀를 찼다.
정상적인 사법체계라면 검사 살해 사건의 종범으로 옷 벗고 나락으로 떨어져야 하는데 고작 좌천이라니……. 하지만 좌천도 오래지 않아서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뭐,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건설 브로커가 여대생에게 강제로 마약 먹이고 접대 대상에게 제공해도 접대받은 사람이 검찰이면 법조계는 선택적 안면인식 장애에 걸린 채 동영상을 보다가 무혐의를 때리고, 그 건설 브로커조차 5년 남짓한, 표창장 위조보다 조금 더 많은 형량을 받는 데에 그칠 뿐이었으니까.
이것이 끼리끼리 헤처먹는 엘리트 카르텔의 실태였다. 매스컴에 나온 이들은 그저 빙산의 일각, 혹은 얼굴마담에 불과할 뿐이고 그 뒤에는 ‘우리가 남이가!’ 정신으로 이권을 나눠 먹는 엘리트 기득권층이 있었다.
수가 여럿이고 뚜렷한 리더도 없기 때문에 마치 서로 뿌리가 얽힌 잡초처럼 뽑아도 뽑아도 제대로 뽑히지 않고 부와 권력에 대한 부지런함으로 마침내 밭을 점령해 버린다.
이런 걸 뿌리 뽑으려면 밭을 완전히 뒤집어엎어야 하는데 과연 누가 할 수 있겠는가?
“건설족이 여러모로 눈에 띄네요.”
경완이 흥미롭다는 듯이 한 마디 뱉었다.
사실 엘리트 카르텔이라는 환경에서 법조계는 발로 뛰는 입장이 아니었다. 기업 카르텔이야말로 이권확보에 앞장서는 자들이었으니 법조계는 그 뒤를 따르며 그들이 흘린 걸 주워 먹을 뿐이다.
물론 적극적으로 그들의 후장을 빨아대며 이득을 탐하는 법조인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런 이들은 소수였다.
아무래도 민주공화국에서 공직자에 있는 이들이 적극적으로 이권을 탐하는 건 여러모로 부담이 되니 기업을 내세워 간접적으로 이득을 취하는 것이다. 악어와 악어새 같은 일종의 공생 관계랄까?
대표적인 것이 건설족으로, 산업화 개발 광풍 때부터 현재까지 이어진 유서 깊은 카르텔 되시겠다.
당연하게도, 당시 용역 깡패 동원, 부실시공 등 검찰이나 경찰이 봐주지 않으면 하기 힘든 불법, 아니 범죄를 저질렀기에 법조계와 관련이 깊었다.
과거에는 몰래 현금을 줬다면 요즘에는 개발 정보를 미리 주는 것으로 합법적으로, 그리고 상대적으로 더 안전하게 로비할 수 있었다.
정치인이라면 그런 것도 걸리겠지만 대한민국에서 감히 누가 검사를 조사하겠는가?
아무튼, 경완의 한 마디 나탈리가 첨언했다.
“서울 재건 때문이죠.”
서울 참사 이후, 무너진 인프라를 복구하기 위해 막대한 예산이 책정되었다.
핵으로 인한 수십만의 사망, 그로 인한 국민적 슬픔에도 불구하고 이 거대한 먹거리에 숟가락을 올리려고 하는 것이 기업의 속성이었다.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 있냐고? 사람이 아니라 기업이니까. IMF라는 국가부도위기 앞에서도 국민들이 금 모으기 운동으로 모은 금을 이용해 수천, 수조 원을 탈세로 해 먹은 게 대한민국의 기업이었고, 여기엔 대기업과 은행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권 앞에선 국가부도의 위기도 남의 일인데 하물며 서울 참사라고 예외랴?
망가진 인프라를 복구하고, 새로 건물을 올리는 재건사업은 기업들 입장에선 노다지였다.
건설업의 특징상 빼먹을 곳이 많아서 해먹기가 너무 좋기 때문이었다. 산업화 시대가 끝나서 건설경기가 죽어가도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이 건설업체를 하나씩 가지고 있는 이유였다. 하청의 재하청으로 위험을 외주화하기에도 딱 좋고 말이다.
무엇보다 대대적인 재건 재개발 계획이었다. 안 그래도 게을러빠진 공무원들이 모두 단속하기엔 규모가 너무 컸다. 해먹을 곳도 많다는 뜻이었다.
“마리아 소장님이 거슬렸겠네요.”
“이공계 인재라 그런지 효율성 없는 사업진행은 질색이셨거든요.”
나탈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마리아 소장으로 인해 서울 재건 사업에서 건설업의 불투명한 부분이 완전히 걷어졌다.
그 와중에 빚어낸 비리 적발과 계약 파기 및 새로운 업체 선정 과정은 고발, 고소가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 참으로 가관이었다.
“일단 권희동 의원이라는 사람은 건설족에게서 돈을 좀 받았다는 건 알겠는데, 이 사람은 좀 미묘하네요.”
경완은 태블릿에 있는 관계도에서 굵고 선명한 선으로 동그라미 쳐져 있는 ‘왕백견’이라는 이름을 보았다.
이름을 누르면 링크를 따라 더 자세한 내용을 볼 수 있었지만, 딱히 비리 내역이라는 걸 찾기 힘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대기업 회장님을 장조(丈祖)님으로 둔 국회의원이었기 때문이었다.
돈이 아쉬울 것 없으니 정치자금이랍시고 뇌물을 받을 리 없었고, 아내 집안이 무서워서라도 함부로 아랫도리 놀리기 힘들었으니, 정치인으로선 상당히 깨끗한 인물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서 이번 청문회의 난관이라고 할 수 있었다. 딱히 약점이 없었으니까.
나탈리가 말했다.
“그의 처가가 재벌이라지만 그것만으로는 힘들 겁니다.”
“어쩔 수 없죠. 그때는 임기응변으로 가야지.”
경완은 그렇게 말했지만 나탈리에게 왕백견에 대한 추가조사를 부탁했다. 물론 청문회까지 추가로 들어온 정보는 없었고, 청문회의 날이 밝아왔다.
당연히 기레기들은 미쳐 날뛰었다.
[박사님! 한 마디만 해주십시오!]
[서울 참사에 박사님이 관련되어 있다는 말이 사실입니까?!]
[박사님! 박사니임!]
청문회장 입구는 경호원들이 아니었다면 그대로 기레기들에게 압사당할 정도로 바글바글했다.
그렇게 시작된 청문회는 위원들의 날 선 질문으로 시작되었다.
[마리아 소장에게 자극받은 중국이 핵공격을 했다는 정보가 있습니다. 이게 사실입니까?]
“제가 중국을 자극한 건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소장님에게 서울 참사의 책임이 있다는 말이네요? 그죠?]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다는 말입니다.”
마리아는 차분하게 반박했다. 그건 그녀가 서울 참사에 대한 도의적 책임감을 벗어던지겠다고 마음먹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저 부정확한 억지에 의해 마녀사냥 당하는 건 지식인이란 정체성으론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각오에도 위원들의 질문공세는 한층 더 날을 세웠다.
[50만이 죽었어요, 50만이! 당신은 죄책감도 못 느낍니까?!]
[마리아 소장님. 이런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까? 그때 중국과 화해를 했더라면 서울 참사는 없지 않았겠느냐라는.]
감정해 호소해 비난을 위한 빌드업을 짜는 질문도 있었고, 내심 그녀가 후회하는 부분을 예리하게 찌르는 질문도 있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서울 참사에 대한 책임이 마리아에게 있다는 논리를 뒷받침하기 위해 증인을 불렀다. 그중엔 국정원 소속이라는 이도 있었고, 자칭 미국통이라는 이도 있었다. 그리고 이경완도 있었다.
경완은 가볍게 걸어 증인석으로 향했다. 놀이터로 향하는 어린아이처럼 흥겹기까지 한 그의 걸음걸이를 카메라들이 집요하게 쫓았다.
[증인. 앉으세요.]
청문회의 진행을 맡은 위원장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경완이 자리에 앉았다.
[증인은 누구입니까?]
증언하기 전에 본인을 밝히라는 말에 경완은 청개구리 심보가 샘솟아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불렀어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아직(?) 때가 아니라는 생각에 순순히 대답했다.
“이경완입니다.”
[직업이 어떻게 되시죠?]
알면서 물어보는 게 번잡스럽게 느껴졌지만 허례허식의 노예들과 눈높이를 맞춰주지 않으면 대화가 통하질 않을 테니 순순히 대답했다.
“백수요.”
거창한 이유치고는 참으로 하찮은 답변이었다.
[증인은 본 증인석에서 진실만을 말한 것을 선서하시겠습니까?]
“네.”
거창한 선서 행위까지 하고 나니 위원석에 앉은 의원의 표정이 좀 풀린 모양이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경완이 순순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니 큰일에 얽힌 줄 알고 몸을 사리는 거라 생각하는 걸까?
아무튼, 여유를 찾은 덕분인지 그들 중 한 명이 경완의 귀에 걸린 물건을 발견했다.
[잠깐! 증인. 귀에 뭘 걸고 있죠?]
“골전도 마이크요.”
[왜죠?]
“제가 귀가 좀 안 좋아서요. 보청기처럼 쓰고 있습니다.”
사실은 경완이 미리 약속된 제스처를 취하면 나탈리가 적절한 조언을 해주기 위한 장비였다. 청문회는 생방송으로 진행되고 있어서 그가 어떤 맥락에서 무슨 질문을 받는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문회 위원들이 그 사실을 알 방도는 없었다. 보청기라고? 귀가 안 좋다고? 왜? 언제? 여태 안 그랬잖아?
표정들을 보면 도무지 납득하지 못하는 것 같지만 어쩌겠는가? 이 자리는 김마리아 청문회지 이경완 청력 의혹 청문회가 아니었다. 그냥 하는 수밖에.
[증인은 여기에 불려 온 이유를 알고 있습니까?]
“네.”
[그 이유를 본인의 입으로 말할 수 있습니까?]
마리아 소장, 중국, 서울 참사에 너도 얽힌 거 아니냐는 물음이었다. 마리아 소장을 증인석에 앉히고 질문할 때 경완의 이름도 나왔었으니까.
경완이 입을 열었다.
“쇼 하러요.”
[…….]
웅성웅성웅성.
뜻밖의 대답에 위원들은 일제히 말을 잃었고 방청객들 사이에선 작은 소란이 일어났다. 경완이 처음 보였던 고분고분한 태도는 대체 뭐였단 말인가?
권희동이라는 이름의 의원이 손바닥으로 책상을 내려치며 격앙된 표정으로 외쳤다.
[지금 여기 장난하러 나왔습니까!]
하지만 경완은 태연하고 뻔뻔하면서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에이~ 의원님도 참. 내가 장난으로 내 시간 허비에 가면서 이런 곳에 나왔겠어요?”
솔직히 쇼하러 온 곳에서 장난 좀 치는 게 뭐가 어때서? 장난질 없이 어떻게 쇼가 성립되나?
경완은 잠깐 그런 이치를 설명해주면 눈앞에 있는 이들이 알아듣지 못하고 본인 입만 아플까 봐 그들의 수준에 맞게 장난하러 온 것이 아니라고 대답해 주었다.
개돼지들 사이에서 선출한 대표라고 해도 어차피 개돼지에 불과했다.
선출되었다는 의미는 가장 지혜롭고 리더쉽 있는 개돼지를 뽑았다는 의미가 아니라, 가장 혓바닥을 잘 놀려서 유권자를 현혹할 능력이 있는 자를 뽑았다는 의미였다. 개돼지는 냉정하고 현명한 마음가짐으로 국가와 미래를 위한 투표를 못 하니까.
과연 그래서 그런지 꼬투리 잡는 실력도 뛰어났다.
[증인은 방금 발언한, 쇼의 의미가 뭔지 정확히 밝히시기 바랍니다.]
위원장의 질문에 경완은 이렇게 대답했다.
“간단합니다. 다들 이미 서로 입 맞춰놓고 왔잖아요. 서로 합의한 결론에 따라 청문회의 결과를 만들어내시겠다, 이런 짜고 치는 고스톱이 쇼가 아니고 뭔가요?”
[증인은 지금 허위사실을 만들어 위원들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습니다! 얼른 사과하세요!]
낯빛 하나 변하지 않고 근엄하고 엄중한 태도도 경완을 질타하는 왕백견 의원. 하도 태연해서 남이 보기엔 경완이 구라치고 있는 것 같았다.
그에게 경완은 한마디로 일침을 가했다.
“재벌가 나팔수는 좀 빠져 있으시죠?”
[뭐, 뭣?!]
“맞잖아요. 무슨무슨 그룹의 손녀와 결혼해서 돈 한 푼 걱정 안 하고 편하게 정치하셨잖아요.”
경완의 말에 왕백견은 황당하고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다가 이내 심각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제가 정계에 들어설 때 들었던 이야기를 또 들으니 어이가 없군요. 제가 재벌가 나팔수라니 어이가 없어서 참. 방금 한 말이 허위사실 유포와 명예훼손인 건 알고 하는 말입니까?]
일반인이라면 쫄려서 어버버버 말을 더듬을 정도로 분위기가 험악해졌지만, 분위기를 읽어도 개썅마이웨이를 걸을 수 있는 철면피가 바로 이경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