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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전생 더 빌런-218화 (218/367)

무한전생-더 빌런 218화

21-검은 머리 짐승

“뭐, 본인의 정치야망을 위해 처가와 선을 긋고 살았을 수도 있죠. 하지만 생각해 봐요. 댁 처가가 되는 재벌이 혼맥으로 여기저기 얼마나 복잡하게 얽혀 있는지. 결국 가문을 위해 정략혼을 해왔다는 소린데, 댁 안사람이라고 다르겠어요?”

[헛소리 좀 하지 마시오!]

안사람 이야기가 나오자 왕백견의 어조에 다소 격앙된 반응이 묻어나왔다.

물론 경완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설마 자기 집안에 별 도움도 안 되는 사람에게 귀한 손녀를 줬겠어요? 다~ 도움이 되니까 허락한 거지. 그렇게 정계에 끈을 하나 만들어두고, 자네 선배는 어떤 사람이냐, 저 후보는 어떤 사람이냐, 호감이 가는데 만남을 주선해 줄 수 있느냐, 이런저런 가벼운 부탁을 차츰 들어주다 보면 어느새 빠져나갈 수 없는 수렁에 빠져 있는 거예요. 카르텔이 뭐 별건가?”

명색이 엘리트 카르텔이다. 무식하게 총질이나 하는 마피아 카르텔처럼 ‘우리 패밀리 건들면 뒤진다’라고 광고하고 다니겠는가?

이들은 선을 넘으면 골치가 아프다는 걸 알 정도로 똑똑하기 때문에 그저 ‘우리가 남이가’ 정신으로 무장하고 선을 넘지 않고 은근히 이익을 공유하려 했다. 왜냐면 명색이 엘리트이기 때문에 대중의 분노가 부담스럽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엘리트 카르텔이지만 철저한 위계질서를 가진 법조 카르텔이 두드러지는 것이다.

법조 카르텔의 철저한 위계질서는 법이라는 총알을 서로의 등에 쏘아대지 않도록 막기 위한 안전장치이자, 초법적 권한의 독점을 위한 울타리였다.

이 법조 카르텔은 서로의 총탄(법률)만 조심하면 두려울 것이 없었다. 마치 마피아처럼 말이다.

괜히 법조 마피아라고 불리겠는가? 정치인들은 표를 생각해서라도 사람들 눈치를 봐야 하지만 공무원인 법조 카르텔이 유권자 눈치를 볼 필요는 없었다.

그들이 눈치를 보는 이는 오직 자기네들 인사권을 틀어쥔 윗사람, 윗기수 선배들, 그도 아니면 돈 주는 물주뿐.

그럼 대통령 눈치를 보는 거 아니냐고? 단단히 뭉친 법조 카르텔은 대통령조차 함부로 손을 못 댄다. 대통령이 검사 출신이 아닌 이상 자기들 기득권에 대한 잠재적 위협에 불과했다.

특히 사법 개혁 운운하는 후보는 이들의 공공의 적으로서 10년 묵은 먼지라도 날리도록 탈탈 털어댄다.

[근거 없는 헛소리고, 증인은 지금 이 자리가 김마리아 소장의 청문회이지 제 청문회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경완의 설명이 살짝 길어져서 왕백견은 그사이에 침착함을 되찾았다. 그리고 경완의 궤변에 휘둘리지 않으려 본론으로 돌아가길 시도했다.

물론 거기에 응할 경완이 아니었다.

“내가 쓸데없는 헛소리나 늘어놓으려고 이렇게 내 시간을 허비했을까요? 다~아 관련이 있으니까 한 말이지. 자, 그럼, 마리아 소장과 입장 바꿔 생각해 보세요. 내가 한 말들이 다 근거 없는 헛소리다? 문제는 헛소리냐 아니냐가 아니라 왜 내가 그런 말을 했는가죠.”

[증인은 간략하게 말하십시오.]

보다 못한 사회자가 끼어들었다.

“거의 다 왔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그런 말을 늘어놓은 목적은 이 자리에 있는 위원들이 마리아 소장의 입장을 한 번 느껴보라는 취지였습니다. 어때요? 자신의 이름에 흠집이 나는 기분이?”

[그녀가 힘든 입장이라는 거 우리도 잘 압니다. 하지만 이 자리는 서울 참사의 진위를 파악하기 위한 것이고 수십만의 고혼들, 백만 유족들의 의문을 풀어주기 위한 자리입니다. 흠집 내기라고 폄하하지 말아주시죠.]

그러자 경완은 어깨를 으쓱하며 이렇게 말했다.

“흠집 내기에만 그치면 다행이죠. 하지만 댁들의 역할이 그 흠집내기잖아요? 이 청문회로 서울 재건의 아이콘이라는 마리아 소장의 명성에 흠집을 내면, 기레기들이 그녀에게 불리하며 비난 섞인 여론을 부추기고, 그 여론에 힘입어서 사법부에서 그녀에게 불리하도록 일을 처리한 후, 그녀가 궁지에 몰려 있는 사이에 기업들과 정관계 인사들이 그녀가 가진 이권을 냠냠한다. 이게 댁들이 그린 큰 그림 아니에요?”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왕백견이 결국 분개하며 언성을 높였다.

[증인은 지금 성실히 청문회에 증인으로 나온 겁니까, 방해하러 나온 겁니꽈아!]

꽤나 흥분했는지 혀가 꼬이는 꼴이 꽤 우스워서 경완이 피식 웃었다.

“쫄려요? 그럼 나랑 진실의 스무고개 하든지.”

[얼마든지!]

왕백견은 전혀 거리낌이 없었기 때문에 자신 있게 나섰지만 경완의 시선은 그가 아니라 그의 옆자리로 향했다.

“뭐, 왕백견 의원님은 아~무것도 모르는 청순한 뇌라서 당당하시겠지만 옆자리에 계신 우~리 의리하신 권희동 의원님은 생각이 좀 다른 모양이네요.”

그러자 왕백견의 시선이 권희동 의원에게 돌아갔다. 웃고 있지만 얼굴은 굳어 있었다. 한 가지 이상한 점은 이마가 번들거리는 게 참으로 촉촉해 보인다는 것이었다.

[권 의원님?]

[아… 네… 저, 그…….]

권희동 의원은 손등으로 이마의 식은땀을 닦아보았지만 제대로 말을 꺼내지 못했다. 아마 그와 그들 무리는 경완이 이렇게까지 내밀한 사정을 알고 있으리라는 생각은 전혀 못했던 모양이었다.

그 모습에 경완은 어깨를 으쓱하며 한쪽 입꼬리를 잔뜩 올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봤죠? 이러니 쇼가 아닐 수가 있겠어요?”

자신의 말이 맞다는 선언.

골전도 이어폰으로 나탈리가 ‘잘하고 있습니다’라는 응원을 보내왔다.

마리아 소장에 대한 마녀공세에서 힘을 빼기 위해서라도 물타기 전법은 매우 유효했는데 경완이 이렇게까지 잘해줄 줄은 몰랐다. 그냥 깽판과 사고만 잘 치는 문제인사(?)인가 했는데 혓바닥도 이렇게 잘 놀릴 줄이야.

하지만 이 청문회가 쇼임을 쉽게 인정할 순 없는 것이 청문회 위원들이었다.

왕백견은 오랫동안 정계에 몸담아온 경험치를 최대한 발휘했다.

[증인의 말은 근거가 없습니다.]

“하긴 저랑 진실의 스무고개를 해도 저 권 씨가 쉽게 인정할 리도 없죠. 증거가 중요하잖아요. 그쵸?”

경완은 고개를 끄덕이며 순순히 인정했다. 오히려 억지를 부리면 이 청문회를 생방송으로 보고 있는 시청자, 대중들에게 경완 자신의 신빙성에 의심을 품게 할 수도 있었다.

진실의 스무고개는 진실을 밝히는 비장의 칼이었지만 지금은 진실을 밝히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마리아 소장에 대한 공세를 막는 것에 있었다.

진실을 밝히면 되지 않냐고?

경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대중에겐 진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이 납득할 사실이 더 중요할 뿐. 왜냐면 대중이란 존재는 어떤 사건의 당사자가 아니라 항상 구경하는 관중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구경이라도 해주면 다행이었다. 대부분은 그저 남일이라고 무시하고 넘어가기 일쑤였으니, 공동체 의식이 부족한 사회일수록 진실보단 그저 흥밋거리를 찾기 바빴다.

그리고 경완과 그를 돕는 나탈리에겐 충분한 흥밋거리가 있었다.

[권희동 의원이 동료 의원과 함께 대기업 회장과 몰래 회동한 영상이 있습니다.]

경완은 골전도 이어폰으로 나탈리가 말해주는 내용을 듣고는 자연스럽게 말을 이었다.

“그럼 일단 권희동 의원님이 모 대기업 회장이랑 가리봉동의 한 회원제 고급 한식집에서 회동해서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부터 들어볼까요?”

[그런 적 없다!]

권희동 의원이 일갈하듯 목소리를 높였지만 차라리 비명처럼 들리는 이유는 뭘까?

경완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어라? 그렇게 단언하셔도 돼요? 제가 괜히 그런 말을 꺼냈는지 의문도 안 생겨요?”

급소가 찔린 사람이 그런 생각을 할 여유가 있나?

경완이 느긋하게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면서 거만한 태도로 말했다.

“제가 운 좋게 얼마 전에 영상 하나를 제보받았거든요. 송이버섯죽, 불고기 소스를 얹은 한우 스테이크, 송로버섯 잡채, 인삼채 등 아주 맛깔스러워 보이는 음식들이 코스요리처럼 한 사람 앞에 한 상씩 나오는 음식점에서 권 의원님이,”

[그만! 그만! 헛소리는 집어치워!]

갑자기 사람 말을 가로막고 언성을 높이는 권희동 의원의 모습에도 경완은 아랑곳하지 않고 입맛을 다시며 말을 이었다.

“맛있는 거 혼자, 아니 재벌 회장님이랑 둘, 아니 다른 한 분도 포함해서 세 분이서만 먹으니까 참 부럽더라고요. 저도 가서 먹어보고 싶었는데 회원제라서 아무나 손님으로 안 받고 회원이 되려고 해도 기존 회원의 추천이 있어야 가능하다더군요. 그래서 그런데 권 의원님, 저한테 추천장 하나 써주실 수 있어요?”

현장에 있는 카메라맨들이 일제히 권희동 의원의 새파랗게 질린 얼굴을 찍기 위해 열심히 카메라 버튼을 누르고 있을 때, 상황이 명백히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을 파악한 왕백견 의원이 급히 상황 수습을 시도했다.

[증인은 청문회와 관련 없는 말은 하지 마세요!]

“왜 관련이 없어요?”

경완은 이런 것도 모르느냐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이 청문회의 진실성을 의심하는 거잖아요. 정말 서울 참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마리아 소장을 공격해서 그녀가 가진 이권을 빼앗으려는 건지.”

[불법적인 녹화본은 인정할 수 없습니다!]

“법원에서야 그렇게 말하겠죠. 하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걸요? 음, 언론사에 보내면 데스크에서 압력을 넣어서 방송되지도 못할 테니 유튜브에나 올려야겠다.”

아, 안 돼!

누군가 서둘러 마이크를 꺼서 권희동 의원의 목소리가 울리진 않았지만 그의 입모양과 아련한 외침은 카메라에 빠짐없이 찍히고 있었다.

나름 중요한 이벤트라고 생방송을 결정한 것이 자신들의 발목을 잡을 줄은 몰랐던 모양이었다. 뭐, 마리아 소장의 이름값을 생각하면 생방송이 아닌 것도 문제였겠지만.

궁지에 빠진 권희동 의원은 퍼뜩 어떤 생각 떠올랐는지 급히 마이크가 꺼지지 않은 옆 사람의 마이크를 빼앗아 쥐고 외쳤다.

[네가 사망기자구나!]

웅성웅성웅성!

그 외침에 현장에 있는 언론 관계자들이 가장 먼저 동요했다.

소위 기레기들이 가장 싫어하는 빌런이 있으니, 그 이름하야 사망기자!

왜 감히 빌런 주제에 자기들 밥그릇을 위협하는가? 빌런이면 빌런답게 은행강도나 저지를 것이지 감히 언론도 외면하는 사건을 보도해? 자기소개부터가 사망기자인 것으로 보아 기자혐오가 포인트인 빌런이라는 것이 언론계의 인식이었다.

이런 언론계의 사망기자 기피(?) 혹은 증오는 사망기자 한 명이 한국 언론사보다 더 믿을 만하다는 여론조사 결과 덕분에 더욱 업계 전반에 만연해 있었다.

그래서 한동안 사망기자가 안 보여서 좋아했는데, 여기서 이렇게 뜬금없이 사망기자가 언급된다고?

웅성거리는 현장기자들과는 달리 경완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이야~ 이걸 이렇게 물타기를 들어온다고?’

물타기에는 물타기. 역시 국회의원 짬이 어디 가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권희동 의원이 물꼬를 트자 왕백견 의원도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확실히 회원제 음식점에서 몰래 영상을 찍을 수 있는 능력자는 사망기자밖엔 없겠죠. 증인은 혹시 이전부터 사망기자와 관련되어 있었습니까? 혹여 중국에서 정보를 얻는 일에 도움을 받진 않았나요?]

경완의 머리에 문득 그런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인이 그런 것이 아니라, 위버멘쉬가 비질란스를 전부, 아니면 일부라도 포섭한 것이 아니냐고 말이다.

특히 사망기자의 수상할 정도의 정보력은 위버멘쉬 입장에서도 많이 탐이 났으리라. 그리고 위버멘쉬가 한국에 진입하고 나서 점차 비질란스의 활동이 멈춘 것도 사실이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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