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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전생 더 빌런-219화 (219/367)

무한전생-더 빌런 219화

21-검은 머리 짐승

혹시 모르니까 청문회 끝나고 나서 불씨재단을 맡고 있는 샌드맨, 강우빈 감독에게 운이나 띄워볼까?

하지만 당장은 상대의 물타기 시도에 초를 치는 것이 중요했다.

“글쎄요. 익명으로 들어온 정보라…….”

너희만 모르쇠냐? 나도 모르쇠다.

어차피 진흙탕 싸움이 되면 남는 건 영향력 싸움이었다.

아무리 여기가 한국땅이고 똥개도 제집 앞마당에서는 절반은 먹고 들어간다지만 위버멘쉬와 미국의 지지를 받는 마리아 소장에게 불리한 싸움이 될 것 같진 않았다.

“아무튼, 영상을 유튜브에 올릴까요 말까요, 권성동 의원님?”

[증인이 사망기자 같은 범죄자와 연루되어 있다, 이렇게 봐도 될까요?]

권성동 의원 대신 왕백견 의원이 대꾸했다.

서로 자신의 관점만 주장하는 상황. 이런 상황에선 무조건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법이다. 논리와 근거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원하는 프레임을 상대에게 강요하는 방법론이 중요했다.

“푸하하하!”

경완은 별안간 웃음을 터뜨렸다. 난데없는 웃음에 사람들이 당황했다.

“의원님은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저 이경완이에요. 내가 준법시민이던가요? 차라리 빌런에 가깝지 않습니까?”

[지금 그 말은 사망기자와의 관련성을 인정하는 발언으로 받아들여도 됩니까?]

경완은 상대의 말을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내가 양승태 의원의 허리춤에 칼을 꽂아야 했던 이유를 다들 망각한 것 같네요. 그리고 한국 윗대가리들은 그때에 비해서 조금도 나아진 것 같지도 않고요.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김오민 검사가 죽고 나서 움직였을 때처럼 마리아 소장이 당하고 나서 움직여야 할까요? 어? 그런데 그때와 다르게 이제는 초능력까지 있네? 그것도 S급 위험도를 가진? 차라리 불행한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예방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경완의 말에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던 왕백견 의원마저 말을 더듬었다.

[지, 지금 협박하는 겁니까?]

“쇼하지 말자고요. 억울한 게 있으면 사실을 밝혀야지, 거기에 사심을 섞으면 제가 오해하잖아요.”

협박이란 프레임에 사로잡히지 않으려 교묘히 말을 돌리는 화법도 재주라면 재주였다.

내가 오해하지 않도록 사심 섞지 않도록 해줘라. 이런 뉘앙스는 이번 청문회가 ‘쇼’에 불과하다는 프레임을 강화하도록 의도한 발언이기도 했다.

물론 그를 여전히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협박으로 단정 지을 수 있는 말이었지만, 경완이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런 식으로 말을 한 건 아니었다.

서울 참사가 터진 이후, 핵공격의 범인이었던 중국 공산당을 주석부터 척살해 내려간 그는 적잖은 까방권과 우호여론을 쌓아놨다.

오죽하면 이경완을 국회의원 공격한 전적이 있는 빨갱이 새끼라고 욕하던 늙은이조차 더는 빨갱이라고 욕을 안 하는 상황이랄까?

양식 있는 사람이라면 이웃국가를 군벌들로 쪼갠 학살범이라는 인식은 가지겠지만, 지식과 감성은 사실 서로 친한 사이가 아니었고, 많이 배울수록 권력과 힘의 향방에 예민했다. 그리고 예민한 만큼 유혹에 흔들리기도 쉬웠다.

[…….]

“청문회하는 사람들, 어디 갔나요? 자, 계속합시다.”

경완은 대충 프레임을 장악한 것을 파악하고 말을 이었다.

“뭐, 댁들 입장이야 이해는 돼요. 여태 한국을 이끌어나가고 있다고 자찬하고 있었는데, 어디서 난데없이 떡!하니 튀어나온 여자가 서울 재건의 방향키를 쥐고 이러면 안 된다, 저러면 안 된다 딴죽을 걸어대니 기분 나쁘기는 하잖아요? 자기 밥그릇을 건드는 건데. 하지만 마리아 소장 입장에서 생각해 봐요. 빨리 서울과 한국 경제를 재건하려면 한 푼이라도 효율적으로 써야 하는데 금 모으기 탈세 같은 짓거리를 또 하려고 하니 거슬려요~ 안 거슬려요?”

국가부도의 위기에서 전 국민이 십시일반으로 모은 금을 이용해 작게는 수백억, 크게는 수조 원 가까이 탈세로 해먹은 사건이 바로 금모으기 운동의 본질이었으며, 여기에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조차 빠지지 않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러한 사실이 밝혀진 건 사건이 일어난 지 약 5년쯤이 지난 후, 즉 공소시효가 지난 다음이었다. 결국 아무도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다는 말이었다.

과연 언론이 그 사실을 정확히 5년 후에 알아낸 걸까? 아니면 그 5년 동안 주둥이에 현금을 꽉 물고 있었던 걸까?

경완은 후자라고 생각했다. 자본주의 아래서 언론사의 논조는 결국 물주, 돈 주는 광고주 입장으로 갈 수밖에 없으니까. 결국 국가부도 탈출의 꿈은 금 모으기 했던 순진한 국민들만 꾸었고, 누군가는 그 꿈을 이용해 자기네들 배때기를 불리고 있었던 것이다.

인간은 그때와 지금이 별로 변하지 않았다. 서울에서 핵폭탄이 터지는 참사에도 누군가는 재건의 꿈을 꾸고, 누군가는 그 꿈에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이익을 빨아먹길 꿈꿨다.

슬슬 청문회 위원들이 경완의 증언을 끝내고(주둥이를 막고) 싶어 하는 표정을 짓자 경완은 이렇게 자신의 발언을 마무리했다.

“제가 아는 진실이란, 중국은 그때도 이미 서울에 웜홀 마커를 박아놓고 언제든 거기로 핵폭탄을 밀어 넣을 계획을 짜놨다는 거예요. 언제든 한국을 협박하거나 굴복시킬 수 있도록 말이죠. 마리아 소장이 자극했다? 그건 핑계에 불과합니다. 굳이 그 사람이 아니었다고 해도 수틀린다 싶으면 언제든 터질 수 있었던 게 서울참사예요. 그리고 대가리가 있으면 생각이라는 걸 좀 해봐요. 자극했다고 무려 핵폭탄을 터뜨리는 미친놈들이라고요. 솔직히 제 생각으론 서울참사에서 그쳐서 다행이지, 자칫했으면 서울, 대전, 대구, 부산 참사가 났을걸요?”

경완이 잠시 숨을 고르자 사회자는 기회다 싶어 재빨리 청문회를 정지했다.

[그럼, 잠시 쉬겠습니다. 식사하고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당연하게도 식사 이후에도 경완의 증인석이 계속될 거라는 말은 없었다.

순간 장난기가 돋아난 경완은 마이크가 꺼지기 전에 얼른 물었다.

“식사하고 다시 제가 증인석에 앉는 거죠?”

그래야 할거야, 라는 뉘앙스에 사회자는 잠시 어버버했다.

더 이상 경완에게 발언권을 주고 싶진 않았지만 국민, 아니 유권자들이 보고 있었다. 그리고 사회자란 원래 눈치가 좀 예민해야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닌가? 사회자가 눈치도 없으면 토론 따위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는 불 보듯 뻔했다.

하지만 요령은 좀 없는지 사회자 최선의 답변은 이러했다.

[일단 식사부터 합시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 아니겠습니까?]

참으로 궁색한 변명이었고 코미디가 또 따로 없었다. 사회자 역시 국회의원 중 한 명이라는 걸 자백하는 꼴이기도 했다. 이러니 코미디 프로그램이 죄다 문을 닫지.

그 모습이 너무 웃겨서 경완이 한 마디 더하려고 했지만 아쉽게도 마이크가 꺼져 있었기에 그저 입맛만 다셨다.

그렇게 잠시 휴식시간을 가지게 되자 기자들이 일제히 경완의 앞에 마이크와 카메라를 들이댔다. 그런데 취재를 하려는 건지 취재의 탈을 쓴 모욕과 폭행을 하려는 건지 마이크로 얼굴을 찔러댔다.

죄 없는 사람(?) 건드린 적 없다고 너무 간덩이가 부은 거 아닌가?

그런 걸 순순히 당해줄 경완이 아니었다.

확!

“히익!”

검은 연기가 은은하게 깔리며 얼굴에 부딪히려는 마이크와 주변의 기자들을 밀어냈다.

경완은 입꼬리는 올리고 미간을 좁히며 웃으며 불쾌해하는 기묘한 표정을 지었다.

“직업정신은 훌륭한데 거리감 좀 유지하죠? 직업정신 지키자고 인간성 팔아먹지는 말자고요.”

인간성은 어디에 있나? 경완은 다는 말할 순 없지만 그 일부분에 예의는 분명히 있다고 보았다.

물론 그 예의의 형식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일단 지들 밥벌이 하겠다고 상대를 필요 이상으로 불쾌하게 하는 건 예의가 없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안 그래? 이 기레기 새끼들아?

“이경완 씨! 정말 마리아 소장에게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요.”

“증언할 때는 마리아 소장에게 잘못이 없다는 식으로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녀의 잘못은 잘난 주제에 양보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런 식으로 마녀사냥을 당하죠.”

“…….”

기자들의 입이 순간 다물어졌다. 아~ 이래서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하는 거구나.

경완이 말을 이었다.

“그녀가 이 나라의 기득권들과 타협하고 카르텔의 일원이 되어 그들이 빼먹을 거 다 빼먹게 가만히 두고 봤으면 이런 일이 생겼겠습니까? 쉬쉬하면서 묻어가지 않았, 아! 아니죠. 여전히 재건과 경제 재부흥 운동이 계속되고 있었을 테니 서울 참사의 진실이라는 사치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못했겠죠.”

“수십만 명이 죽은 참사의 진실을 알려고 하는 일이 어떻게 사치 따위가 될 수 있습니까?!”

누군가 분개해서 목소리를 올렸고 경완은 그쪽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사치죠. 진실을 말해봤자 당사자들이 받아들일 여유가 없는 상태였을 테니까요. 설사 당사자들이 어떻게든 진실을 추구하려 해봤자 그 주변 사람들까지 받아들일까요?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일단 산 사람부터 살아야 한다고, 국론 분열시키지 말고 입 닥치라고 윽박지르지 않았을까요? 이따위 쇼 같은 청문회만 봐도 답 나오죠.”

의문 많은 해양사고로 자식들을 잃은 부모들이 진실을 밝혀달라고 단식투쟁하는 그 바로 앞에서 폭식투쟁이란 걸 하지 않았던가?

진실을 추구하려는 이들을 부담스러워하고 경멸하는 족속은 분명히 존재했고, 그것만으로도 진실이 모든 인류가 누릴 수 있는 가치가 아닌 걸 증명했다.

일부의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것. 그걸 다른 말로 사치라고 한다.

경완은 카메라를 보며 비릿하게 웃었다.

“적어도 남의 말 따위에 휘둘리는 사람에겐 진실을 알 자격은 없죠.”

그는 그 말을 남기고는 마리아가 있는 대기실로 향했다. 그녀는 혼자서 도시락을 먹고 있었다.

“혼자 먹으면 맛있어요?”

“배가 고프니까 먹는 거죠.”

맛을 위해 먹는 게 아니라는 말에 경완은 속으로 혀를 찼다. 먹는 게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한데? 교도소에 있을 때도 먹는 거 가지고 장난치던 새끼 때문에 한바탕 난리부르스를 추지 않았던가?

“암튼 어때요?”

짧지만 많은 의미가 담긴 질문에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직 모르겠어요.”

서울 참사가 정말 자신의 탓이 아닌지, 죄책감을 덜어내도 되는 건지, 이러한 생각 모두가 자신이 위선자라는 걸 증명하는 것은 아닌지…… 그녀의 속내는 스스로도 어떤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혼란했다.

경완이 대꾸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서울 참사는 불행한 사고라고 할 수 있어요. 상대가 다짜고짜 핵폭탄 터뜨리는 미친놈이었다고 누가 예상할 수 있겠어요? 그리고 다시 생각해 봐도 소장님이 아니라도 서울 참사는 일어났을 일이에요.”

마리아가 중국과의 충돌을 포기하고 한국을 떠났다 하더라도 경완이 남아 있었다.

미국은 결코 웜홀 핵폭탄이라는 중국의 위협을 좌시하지 않았을 것이며, 한국이라는 나라의 인프라에 만족하고 있던 경완도 자신의 편안한 울타리를 위해서 미국과 손을 잡았을 것이다.

그리되면 남은 일의 수순은 결국 위구르 동쪽 지하 핵미사일 시설에서 있었던 일의 재연이다. 중국에서 웜홀 능력자가 탄생했을 때부터 서울 참사는 운명처럼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 아니었겠냐는 게 경완의 시각이었다.

세상일에는 필연이라는 것이 있었다. 그건 마치 사과가 사과나무에서 떨어지면 땅바닥에 낙하한다는 물리법칙처럼 인간사회에도 법칙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중 경완이 믿는 진실 어린 인간사회의 법칙이란, 영원한 번영도 없고, 타락하지 않는 체제도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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