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전생-더 빌런 220화
21-검은 머리 짐승
경완은 저기 밖에서 스피커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는 사람들에게 한번 물어보고 싶었다. 댁들이 신봉하는 이 민주주의가 정말 영원하리라 생각하느냐고.
이미 한 번 민주주의가 몰락한 아~주 유명한 사례가 있지 않은가?
그 이름도 유명한 로마.
로마 하면 흔히 로마 제국을 떠올리지만 세계사에 관심이 있는 이가 아니라면 로마가 ‘공화국Republic’이었음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리고 이 공화국 체제가 붕괴하고 군주제로 이행(移行)한 이유가 결국 계급갈등, 빈부갈등에 원인을 두고 있다는 것도 말이다.
삶이 팍팍해지고 노력 따위로는 어떻게든 극복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되면 사람들은 구세주를 바라게 마련이고, 모든 문제를 명쾌하게 해결할 절대권력의 탄생을 염원하게 되니, 이것이 민주주의가 붕괴하는 근본적 이유인 것이다.
그런데 파레토 법칙에 의해서 빈부격차는 필연적이다. 따라서 빈부갈등도 필연적이며, 이는 결국 민주주의의 필연적 붕괴로 이어진다.
어떻게 아냐고?
직접 겪어보기도 하고 해보기도 했다.
뭘?
민주주의의 붕괴를.
그래서 경완은 징조를 읽을 수 있었다.
0에 가까워진 출산율, 첨예한 남녀갈등, 외국인 혐오의 탈을 쓴 우경화, 다원주의인 척하는 반지성주의 등 민주주의에 부정적인 증상들은 점점 많아지고 있었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결국 깨어있는 다수일진대, 그런 것이 점차 무너지고 있는 광경을 보며 점차 목 위로 물이 차오르는 것이 느껴지지 않느냐는 말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마리아 소장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에 산소호흡기를 달아준 은인이라 할 수 있었다. 그녀가 주도한 서울 재건이 상당한 부의 재분배를 이뤄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서울 재건 사업은 부의 재분배는커녕 이권을 쥔 자들과 그들과 붙어먹은 자들이 해먹기 바쁜 사업이 되었을 것이다.
경완은 저기 밖에 모여 있는 이들이 이러한 이치를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하진 않았다. 알았다면 저렇게 모여서 마리아 소장에 책임을 물으려고 들진 않겠지.
아니 알고도 저러는 이도 있을 것이다. 괜히 검은 머리 짐승이라고 하겠는가? 대중의 양심이란 얄팍하기 짝이 없었다.
“그럼 저도 밥 먹고 올게요.”
밖에 사람들이 우글거려서 밥 먹기 힘들지 않을까 하는 우려는 필요 없었다. 웜홀로 집에 가서 먹으면 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집에서 편하게 밥 먹고 와도 경완이 다시 증인석에 서는 일은 없었다. 사회자가 이미 그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었고,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다른 증인의 발언도 들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던 것이다.
경완도 이리될 줄 몰랐던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한마디 안 하고 가기는 아쉬웠다.
“내~ 이랄 줄 알았다.”
의기양양한 태도로 무릎을 탁 내려치며 사투리 억양으로 내뱉는 말이 누가 봐도 영화의 한 장면을 흉내 낸 것이라 바로 밈이 되어 인터넷에 퍼졌다.
청문회가 다시 시작되어도 청문회 밖에 있는 그를 향한 카메라도 적지 않았고 유명해지면 똥을 싸도 박수를 받는다고, 경완이 그냥 고요한 수면에 돌 던지는 마음으로 내뱉은 대사를 다들 알아서 거창하게 해설을 붙여준 덕분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나탈리와 통화했다.
“어땠나요?”
[준비한 걸 다 보여주지 못해 아쉽지만 목적은 충분히 달성한 것 같습니다.]
“준비한 걸 다 털어내면 그만큼 후달렸다는 소리니까 아쉬워할 것 없어요.”
[훗. 그것도 그렇네요.]
나탈리는 그러면서 인터넷과 뉴스채널을 한번 확인해 보라고 링크를 보내주었다.
경완이 그 링크를 눌러 찬찬히 살피는 동안 나탈리가 말을 이었다.
[이제 남은 건 우리 위버멘쉬의 몫입니다.]
물타기의 물꼬는 텄다. 메시지를 공격하려면 우선 메신저부터 공격하라던가?
청문회의 의도에 대한 불신의 물꼬를 텄으니 마리아 소장에게 책임을 묻는 질문도 의심받을 것이다.
“잘될까요?”
[이 사건이 가져온 긍정적인 점이 있다면 피아 구분의 계기가 되었단 점이죠. 모든 기업이 한통속인 게 아니라는 걸 확인한 것으로도 우리에겐 큰 수확이랍니다.]
엘리트 카르텔 사이에도 파고들 틈이 있다는 건 귀한 정보였다.
“혹시 잘못되어도 저까지 뭐가 오는 일은 없겠죠?”
[물론이죠. 미스터 리는 그저 청문회에 참석한 것이 다니까요.]
나탈리의 말에 경완은 안심하며 위버멘쉬의 역량을 구경하기로 했다. 역시 뒷배가 있으니 인생 살기 참 편했다.
어떻게 할 거냐고 구체적으로 캐묻진 않았다. 그건 그 일에 좀 더 깊이 연관된다는 말이었으니,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고 싶었을 뿐.
그리고 그는 며칠 안 되어 위버멘쉬의 실력을 구경할 수 있었다.
[청문회 위원과 정 회장의 수상한 회동 영상.]
[건설족은 이번 청문회에서 무엇을 원했나?]
위버멘쉬의 광고는 쳐다도 보지 않았다던 언론사들이 은근슬쩍 청문회를 비판하고 마리아 소장에게 유리한 뉴스를 내보내기 시작했다.
게임도 불감증에 걸리고 영화나 드라마도 다 섭렵해 버려서 멍하니 채널이나 돌리던 경완은 왠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묘~하게 언론사 채널에 등장하는 어떤 대기업 광고가 많아진 느낌이랄까?
분명 세계적으로 브랜드값이 좀 있는 기업이었다.
한국은 어찌 되었던 수출 주도형 산업이 발전한 국가였고, 식량자급률이 절반도 안 되는 나라이기도 했기 때문에 외화를 벌어오는 기업의 입김이 강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기업이라면 분명 위버멘쉬와 손잡을 기회를 놓치지 않을 리가 없을 테고..
경완의 머리에 나탈리가 한 말이 지나갔다.
피아 구분이라…… 확실히 위버멘쉬에선 이번 사건으로 손을 잡아야 하는 쪽과 아닌 쪽을 구분할 수 있었던 모양이다. 마리아를 공격하는데 가담하지 않고 관망만이라도 한쪽은 통찰력이 좋던지, 아니면 그나마 양심이 있는 건인지 모르지만 어느 쪽이라도 협상이 원활한 상대라는 점은 확실하니까.
아무튼 여론의 방향이 어수선해지자 그 영향은 정치계를 직격했고 각자도생을 위해 눈치보는 시간이 도래했다.
하지만 서울 참사라는 국민적 트라우마를 건드렸으니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지 않을까? 그 책임은 일의 선두에 있던 건설족 의원들에게 쏠렸다.
당연히 그들은 외세에 협조하는 매국세력의 정치공세라고 발악을 했다. 어떻게 쌓아온 정치생명인데 이렇게 허망하게 날릴 수 있겠는가?
정치공세라는 물타기로 다시 한 번 비난 여론을 막아보려 했지만 오히려 그것이 자신들의 무덤을 팠다.
100만 대중의 분노가 쉽게 가라앉을 리 없었고, 오히려 정치권의 무능과 모럴 헤저드에 대한 비난여론에 불을 붙였다.
물론 여전히 마리아 소장에게 서울 참사의 책임이 있다는 근거 없는 믿음을 가지거나 진실을 알고 싶어 하는 이들이 있었지만, 그러한 압력은 혼란스런 정계 상황과 언론의 물타기에 방향성을 잃었다.
마리아 소장의 보호라는 목적을 절반쯤 달성한 위버멘쉬는 그녀에 대한 확실한 보호를 위해 한국 사회에 대한 영향력을 늘리기 시작했다.
그 예로 위버멘쉬 소속의 초능력자가 언론에 노출되는 일도 많아졌는데, 그 선두에는 A급 초능력자, 매스 이팩터가 있었다.
“안녕하쉐에~요!”
본명 김봉남.
당연하게도 그는 자신을 본명으로 부르는 이들을 싫어했다. 어느 정도냐면 ‘김봉남 씨! 인터뷰 한 번 해주십시오!’라고 마이크를 내미는 기자는 마치 투명인간처럼 보이지도 않는지 외면하고, ‘매스 이펙터 씨!’, 혹은 최소한 ‘미스터 김’이라고 부르는 기자들하고만 인터뷰했다.
본인이 이름으로 불리기 싫어한다고 직접적으로 말하진 않았지만 눈치 빠른 기자들 사이에선 소문이 빠삭했다.
“매스 이펙터 씨. 요즘 이슈가 된 서울 참사의 진실에 대해서 혹시 하실 말씀이 있나요?”
이미 매스 이펙터에게 찍힌 기자들을 제외한 다른 기자들은 매스 이펙터를 그리 싫어하지 않았다.
왜냐면 관종끼가 있어서 흥미로운 기삿거리를 잘 만들어주기 때문이었다. 사람은 대체로 자기네 밥벌이에 도움이 되는 사람을 싫어하기 힘들었다.
김봉, 아니 매스 이펙터는 그런 기자의 질문에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아! 아~주 슬픈 사건이죠. 불쌍한 아줌마한테 서울 참사의 죗값을 떠넘기려는 일까지도 포함해서요.”
불쌍한 아줌마? 기자들은 어리둥절했지만 이내 마리아 소장을 지칭하는 말임을 알아들었다.
“그럼 마리아 소장에겐 잘못이 없다는 말인가요?”
“당연히 없죠. 핵폭탄을 그 아줌마가 만들었나요? 서울에 웜홀을 뚫어 핵폭탄을 보낸 사람이 그 아줌마인가요?”
“하지만 여전히 괜히 중국을 자극해서 그렇게 됐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헛소리 좀 그만하세요. 그럼 언제는 중국이 자극 안 받았다는 거예요? 김치도, 한복도 자기네 나라 거라고 억지를 부리는 게 중국놈들인데 자극을 안 받는다고요? 아예 그냥 군대도 해산하고 장거리 미사일도 해체하자고 하지 그랬어요?”
꽤나 신랄한 말이지만 원래 반쯤 빌런 취급을 받았던 전과자였기 때문에 기자들은 그러려니 했다.
매스 이펙터가 말을 이었다.
“제가 위버멘쉬 소속이라 좀 주워들은 게 있는데, 서울 참사를 일으킨 워프 능력자가 위구르 해방전선인가, 독립정부인가 하는 쪽에 포로로 잡혀 있대요.”
“그걸 어떻게 알고 계십니까?!”
이건 특종이 아닌가?!
“위버멘쉬에 위구르에서 도망쳐 나왔던 초능력자들이 많아서 그쪽 방면에 라인이 있거든요. 아무튼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중국이 여러 나라에 웜홀 마컨가 하는 거 찍어놓고 여차하면 핵폭탄을 밀어 넣으려고 기회를 보고 있었다는 거죠. 위구르도 그 대상이었고. 그래서 놈은 핵테러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있어요.”
“웜홀 능력자라지 않습니까? 탈옥하면요?”
“탈옥하지 못하도록 목에 무슨 제압용 목걸이를 씌웠데요. 몸 안 여기저기엔 추적용 발신기를 심어놓고요. 쉽게 탈옥 못 할 걸요? 그리고 탈옥하면 아마 죽는 것보다 끔찍한 꼴을 당할 겁니다.”
“왜요?”
“그야 이경완 씨 때문이죠. 도망치면 그 사람이 바로 잡으러 나설걸요? 웜홀 능력도 새로 얻었겠다, 추적도 쉽다고 하더라고요.”
“이경완 씨가 그 웜홀 능력자의 처지를 이미 알고 있었다는 말로 들리는데요?”
“그렇죠. 그러니까 중국 공산당만 골라서 목을 칠 수 있었던 거 아니겠어요? 진실의 스무고개라는 재주가 진짜 신통방통하더라고요. 그래서 결과적으로, 유족들은 아쉽겠지만 복수할 대상은 없어요. 이미 경완 씨가 다 처리했거든요.”
“그래요?”
매스 이펙터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과 같이 말을 마무리했다.
“그러니 유족분들은 힘들겠지만 일상으로 돌아가세요. 가족분들의 원수는 이미 다 죽었으니까요. 아! 한 명 남아 있기는 한데 평생 감옥에서 못 나올 겁니다. 그쪽 감옥에선 우리나라 무기수들만큼 편하게 지내진 못할 거예요.”
매스 이펙터의 인터뷰는 경완이 강우빈 감독을 방문했을 때 화두로 꺼내기 적당한 내용이었다.
“어떻게 생각해요?”
서울 참사와 마리아 소장 청문회를 통틀어 하는 질문에 강우빈 감독은 이렇게 대답했다.
“이미 끝난 일이죠.”
“그래요?”
“네.”
강우빈 감독은 고개를 끄덕이며 더는 말하지 않았다. 더는 말하고 싶은 주제가 아닌지, 아니면 정말로 끝난 일이라 말할 필요가 없다고 느끼는 건지 아리송했지만 경완이 굳이 뒹굴거리는 시간을 포기하면서까지 불씨 재단에 방문한 건 이미 자신의 손에서 벗어난 마리아 소장 서울 참사 책임론에 관해 묻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생각만큼 정보를 얻을 순 없었기에 경완은 속으로 아쉬워하면서 가벼운 근황토크부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