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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전생 더 빌런-221화 (221/367)

무한전생-더 빌런 221화

22-뉴 오더

“요즘엔 새로운 영화 안 찍으세요?”

“준비 중입니다.”

“오! 어떤 거요?”

“공익제보자의 삶을 다룬 주제로요.”

“이야~ 그거 투자 붙기 힘들겠네요.”

“그렇죠.”

강우빈은 쓰게 웃었다. 지원을 받으려고 영화 진흥위원회에 지원서류를 보냈지만 여태 말이 없단다.

“공익제보자를 정부에서조차 별로 안 좋아한다는 거죠.”

관리자 입장에서 보면 공공의 이익을 위해 양심을 걸고 위험을 감수한 이는 골치 아픈 문제를 던지는 문제아에 불과했다. 공무원 조직이라고 다르랴?

“투자라도 해줘요?”

경완이 제안했다. 지금은 얼마 없지만 미국 쪽 일을 몇 개 하면 다큐멘터리 하나 찍을 예산은 충분히 나오지 않을까?

하지만 강우빈은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괜히 귀찮게 하고 싶진 않군요.”

강우빈이 입에 발린 말을 받아넘기자 경완은 더는 권유하지 않았다. 본인이 괜찮다는데 뭐…….

강우빈은 계속 말을 이었다.

“요새 터지는 이슈가 워낙 많아야죠. 제가 영화를 찍어봤자 한동안 관심도 못 받을 겁니다.”

“하긴 그렇긴 해요.”

마리아 소장 서울 참사 책임론을 들이밀었던 청문회는 어느샌가 건설족 비리 게이트로 확대되어 있었다.

건설족 의원들이 리베이트 받는 방식, 리베이트 준 건설사들에 대한 폭로가 해당 인물의 실명과 함께 차근차근 폭로된 것이다. 마치 불이 꺼지지 않게 장작을 하나씩 넣는 것처럼 말이다.

전혀 상관없는 보도들이었다면 물타기가 되겠지만, 마치 후속보도라도 하듯 꼬리를 물고 이어진 폭로라 불길은 점점 커졌다.

경완은 그러한 폭로들에 관해 운을 떼면서 넌지시 이렇게 말했다.

“폭로라……. 정보력이 대단해요. 마치 요즘 모습을 보이지 않는 사망기자 같지 않나요?”

그리고는 강우빈이 눈치채지 못하게 그의 신체반응을 살폈다.

하지만 강우빈은 별다른 특이 반응 없이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글쎄요.”

“뭐가 다른가요?”

“요즘 나오고 있는 폭로들은 하도 오래 묵은 것들이라 기자들이 모를 리가 없습니다. 딱히 정보력이 대단하다기보다는 저는 그러한 보도들을 내보낼 수 있는 힘에 주목하고 싶군요.”

위버멘쉬를 언급하는 내용이지만 경완은 문맥과 상황에 맞게 우회해서 질문을 던졌다.

“마리아 소장님의 힘이 그만큼 강하다는 건가요?”

“아니요. 그분의 힘이 강했다면 아예 본인이 청문회에 출석하지 않으려고 했을 겁니다. 저는 그보다는 위버멘쉬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호! 위버멘쉬가 왜요?”

경완은 모르는 척 의뭉을 떨었고 강우빈은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그는 사실상 이번 마리아 소장 청문회 사건은 기존의 기득권과 한국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위버멘쉬의 충돌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그런 강우빈의 생각은 특이한 건 아니었다. 조금 음모론에 심취하거나, 사회 현상 기저에 무엇이 있는지 호기심을 가진 이들이 쉽게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잠깐 그의 생각을 들은 경완은 이러다가는 사망기자 이야기는커녕 이미 알고 있는 위버멘쉬 이야기만 들을 것 같아서 슬쩍 화제의 방향을 틀었다.

“정말 사망기자가 위버멘쉬에 들어가지 않았을까요? 그 사망기자가 몸담았던 비질란스라는 곳도 위버멘쉬가 한국에 진출한 이후에 차츰 활동을 안 하더니 이제는 소식도 없잖아요? 그 와중에 위버멘쉬가 심상찮은 정보력을 보여주니까 혹시나 하는 의심이 든 거죠.”

“위버멘쉬가 범죄자를 감추고 보호하고 있다는 말인가요?”

뭐래? 지도 샌드맨이면서.

경완은 어이가 없었지만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이었다.

“원래 위버멘쉬는 빌런 집단으로 취급받았잖아요. 초기엔 빌런 취급받은 회원들도 많고요.”

물론 위버멘쉬가 각국 정부로부터 인정받은 다음엔 대부분 집행유예나 벌금형, 사면을 받아서 자유의 몸이 되었지만, 법률을 무시하고 초법적인 행동을 했던 과거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비질란스라고 다를까? 아니 오히려 신원이 밝혀지지 않았으니 그들을 보호해주는 대신 그들의 능력을 활용하는 건 위버멘쉬에겐 매우 쉬운 일일 것이다.

강우빈은 경완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글쎄요. 전 좀 다르게 생각합니다. 딱히 활동할 필요성을 못 느껴서 그렇지 않을까요?”

“비질란스 활동이 더는 필요없을 정도로 세상이 좋아졌다?”

경완의 말에 강우빈은 바로 손을 내저으며 대답했다.

“그게 아니라 세상이 혼란스러워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모르는 거겠죠. 비질란스라는 조직의 행동원리를 생각해 보면 불합리한 시스템에 대한 저항이 핵심이거든요.”

죄를 지은 자가 제대로 벌을 받지 않은 부패한 시스템에 대한 저항은, 곧 개인적인 보복을 최대한 대의에 가깝게 만들기 위한 핵심 행동강령이었다.

그런데 그 부패한 체제가 초능력 격동기를 맞이해 흔들리고 있으니 일단 관망하겠다는 건가?

경완의 귀에는 그렇게 들렸다.

“그렇군요. 그럼 당분간 비질란스의 활동은 없을 거라고 보십니까?”

“네.”

강우빈은 고개를 끄덕이며 단언했다.

경완도 고개를 끄덕였다. 샌드맨 강우빈의 입에서 나온 말은 사실상 비질란스의 방침을 간접적으로 들은 것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다행히 자신에게 영향을 주진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자 슬쩍 화제를 돌렸다.

“그럼 사망기자가 아니라도 위버멘쉬의 정보력이 원래 대단한 모양이네요.”

“네. 오죽하면 위버멘쉬 총수가 예지능력자가 아니냐는 말이 나돌 정도니까요.”

“오호! 그래요?”

“그의 행보를 보면 그렇게 생각되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죠.”

정부기관보다 신속한 속도로 초능력자들을 그러모아 협회를 창설한 것은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위버멘쉬의 행보가 마음에 들지 않은 여러 정부기관의 방해를 이겨내고 내실을 다신 것 자체가 비범한 무언가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는데, 아무리 봐도 위버멘쉬의 창립자는 무투파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에 관해서 한 가지 소문이 돈 적이 있는데, 기근을 정확히 예측하고 숏포지션으로 어마어마한 거액을 벌었다는 겁니다.”

위버멘쉬의 내실을 다질 수 있게 된 계기이자 그 총수가 예지능력자라는 소문의 시발점이었다.

경완은 요하네스를 떠올렸다. 확실히 S입자가 있기는 했는데 농도와 활성도 자체는 평범해 보였다. 하지만 예지능력자라?

경완은 요하네스가 혹시 자신이 위버멘쉬랑 충돌하는 미래라도 봤나 싶었다. 그러니 그렇게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이 아닐까?

경완은 강우빈과 좀 더 잡담을 떨며 자연스럽게 대화를 끝낸 후 불씨 재단을 나섰다. 샌드맨이 조금의 이상함도 느끼지 못하게 자연스러운 퇴장이었다.

* * *

22-뉴 오더

“야앙!”

“벌써 밥때 됐냐?”

“야아응!”

경완은 ‘그래!’라는 듯이 길게 우는 치즈에게 캔 하나를 따주고는 최근에 쌓인 드라마를 다시 소화하기 시작했다.

청문회 이후 잠깐 기자들이 경완의 집 앞을 서성거리며 신경을 거슬렀던 것을 생각하면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왔다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몸담고 있는 이 땅의 변화는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비리가 밝혀진 건설족 의원 및 건설사들에 대한 고발 조치는 이미 게이트 수준까지 번졌고, 정치계는 서로 물어뜯기 바빴으며 사법계는 어디에 줄을 서야 자신들이 이익인지 눈치 보기 바빴다.

언론만이 ‘이러다간 다~ 죽어!’라며 어떻게든 사안을 축소해 보려고 했지만 그들의 물주들인 기업들의 이합집산이 하나 된 논조를 내밀기 힘들게 만들었다.

“김 실장. 김 회장의 연락은?”

“아직 없습니다.”

“아, 그 새끼 요즘 많이 컸어.”

모모 그룹 정준호 회장이 미간을 좁혔다.

정 회장이 말한 김 회장이란 제 주인을 잡아먹고 그 자리에 올라선 김민식이었다. 전 태광실업 회장 비서, 현 디디그룹 회장.

정준호 회장이 김민식 회장을 부른 것은 현재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건설업을 하는 그룹들을 단속하기 위해서였다.

“뭔가 이상합니다.”

“그건 그래. 놈이 머리가 모자란 것도 아닌데 지금 상황에서 내 호출을 무시하는 건 비상식적인 행동이야.”

현재 상황이란 이러했다. 건설족 게이트에 분노한 시민들을 달래주기 위해 정치권에서는 그간 건설업계에 만연해 있던 비리들과 불투명한 부분을 걷어내기 위한 법안을 준비 중이었고, 당연히 건설업계에선 이를 좋아할 리가 없었다. 산하에 건설업이 있는 정준호 회장도, 김민식의 디디그룹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피해는 디디그룹 쪽이 더 컸다. 왜냐면 디디그룹은 건설업의 비중이 상당히 컸기 때문이다.

이는 그룹의 창립자가 전직 정치깡패 출신이었던 오태광 회장이었기 때문인데, 당시 시대 배경에서 정치깡패 출신의 기업인이 진출하기도 쉽고 뒤로 빼먹기도 쉬웠던 업종이 바로 건설업이었고 그것이 여태 이어져 내려와 디디그룹에 영향을 끼친 것이다.

그런데 지금과 같이 건설업에 불리한 여론과 정계 분위기에서 건설업계의 기업인들이 하나로 뭉쳐야 할 때에, 현 디디그룹의 회장인 김민식이 그보다 높은 재계 순위를 가지고 있는 정 회장의 부름에도 답이 없었다.

이유가 대체 뭘까? 연락도 없으니 물어보지도 못했다.

“김 실장, 다시 한 번 연락해 봐. 아니, 내가 직접 연락하지.”

괘씸했지만 고양이손이라도 빌리면 손해가 좀 덜하지 않겠는가? 정 회장은 입에 발린 말로 비용을 줄일 수 있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발신을 뜻하는 소리만 계속 이어졌다. 정 회장의 미간에 주름살이 졌다.

“이 전화 맞나?”

“김 회장 직통 번호입니다.”

“비서실 전화라도 줘봐. 사업한다는 인간이 전화를 안 받아?”

정 회장의 역성에 김 실장이 급히 주소록에서 디디그룹 비서실 전화번호를 찾고 있을 때, 누군가 급히 문에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회장실 앞을 지키고 있던 여비서였다.

“회장님!”

“무슨 일인가?”

“급히 TV를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급하게 말을 전하는데 나긋나긋하게 들리는 재주가 신기했지만 이런 일이 한 번도 없었던 정 회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여비서가 TV를 켜도록 지시했다.

여비서가 튼 채널에 정 회장은 어이가 없어졌다.

“저 자식 저거 저기서 뭐 하는 건가?”

연락이 없던 김 회장이 화면에 있었다. 밑에는 ‘디디그룹의 김민식 회장의 양심고백 기자회견’이라는 문구가 자막으로 지나가고 있었다.

정 회장은 저놈이 무슨 양심고백을 하는지 찬찬히 들어보았다. 처음부터 들은 것이 아니지만 김 회장이 무슨 말을 하는지 충분히 이해가 갔다. 그래서 뒷목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그간 건설업계의 수많은 로비에도 불구하고, 마리아 소장은 철저한 감사를 통해 부실공사와 날림 계약을 막아냈습니다. 이로 인해 손해를, 아니 예상한 이익을 내지 못한 건설업계는 정계에 청탁을 넣어…….]

그것은 마리아 소장 청문회에 대한 배경을 고발하는 내용이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전에는 건설업계에 만연한 공사비 부풀리기, 자재 빼먹기 등에 관한 것도 양심 고백했다고 한다.

정 회장은 김 실장을 보며 언성을 높였다.

“다른 그룹 회장들에게 빨리 전화 돌려!”

이러다간 서울 참사 청문회의 역풍을 맞게 생겼다. 100만 유가족들과 또 대중들은 수십만이 죽어나간 사건을 제 잇속을 위해 이용하려고 한 이들을 결코 가만두려 하지 않을 것이다.

한편 디디그룹 김 회장의 기자회견을 보던 경완은 감탄하며 혀를 내둘렀다.

“이야~ 끝났네, 끝났어.”

감탄하는 동시에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그룹 회장을 구워삶은 거지?

회유? 협박? 세뇌?

분명 저 세 개 중 하나 혹은 그 이상을 사용했을 텐데, 말이야 쉽지 실제로 행하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변수도 많고 더구나 상대는 그룹 회장이라는 사람이 아니던가?

물론 재벌이라고 하기에는 손색이 있지만, 평범한 서민도 아니고 쉽게 회유, 협박, 세뇌하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그걸 해냈다.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이번 청문회에 한 다리 걸친 건설업계 사장님들은 똥줄이 타지 않겠는가?

김민식 회장의 양심고백 기자회견이 그들에겐 각자도생하라는 신호총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제 주인 잡아먹고 회사 차지할 정도로 간 큰 놈이 대단히 불리한 뭔가가 있으니 다른 모두를 엿 먹이는 대담한 짓을 하는 거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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