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전생-더 빌런 223화
22-뉴 오더
“그런데 그 사람은 명색이 S급 초능력자 아닌가요? 그런데 그런 사람이 경호를 필요로 한다고요?”
[능력의 영향력과 위험도가 S급이라는 것이지, 그것이 본신을 지키는 능력을 뜻하진 않으니까요.]
초능력 등급제는 여전히 손볼 곳이 많았다. 이런 허점이라니…….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봐야 할 것 같은데요.”
경완은 한 발 뒤로 빠졌다.
명색이 S급 초능력자의 경호 요청이었다. 아무리 요하네스 말마따나 초인 등급제에 허점이 있더라도 곧이곧대로 들을 순 없었다.
각 나라 정부가 아무리 뇌가 온전치 않다 하더라도 아무에게나 S급이란 명찰을 달아줄 리는 없잖은가?
요하네스는 이렇게 대꾸했다.
[제가 다 일일이 말하기엔 너무 오지랖이 넓은 것 같고 자칫 불필요한 오해를 부를 수도 있으니, 차라리 본인의 입에서 직접 듣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한 가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그리 크게 어렵거나 위험한 일은 아니라는 거죠.]
“혹시 위버멘쉬 측에서 경호 지원을 해주는 건가요?”
[그리 위험하지 않은 일이라서요. 다만 편의를 위한 지원은 해드릴 참입니다. 아무래도 경호를 위해선 출국해야 하는 상황이니까요.]
국외? 국외로 나가야 하나? 귀찮은 건 둘째 치고 경완은 위버멘쉬, 아니 요하네스의 배려에 적잖이 감탄했다.
경완이 최근에 보유하게 된 웜홀 능력 때문에 많은 나라들이 그의 출입을 금지하고 있는데 그걸 뚫는다는 말이 아닌가?
[그래서 어떻게…… 생각이 있으신가요?]
조심스럽게 답변을 요구하는 요하네스의 목소리에 경완은 잠시 생각했다.
그래, 그동안 신세 진 것도 있고, 할 일도 딱히 없으면서 거절했다간 괜히 위버멘쉬 총수의 체면에 먹칠하는 격일 테고, 그랬다간 기껏 다져놓은 친목에 찬물이 끼얹어질 테니 승낙하는 게 여러모로 현명한 결정으로 보였다.
“알겠어요.”
[결코 후회하지 않을 선택일 겁니다.]
요하네스는 흡족한 어조로 말을 하고는 통화를 끊었다.
그리고 경완은 또 일하러 나간다는 소리를 하자마자 미연으로부터 살짝 바가지를 긁혔다.
“이번엔 얼마나 있는데?”
“글쎄?”
“이번에도 말없이 일주일 넘게 외박하는 건 아니겠지?”
“어…… 이번엔 안 그럴게.”
경완의 대답에 미연의 표정에 흡족함이 서렸다.
“그래, 웜홀 능력을 뒀다가 뭐해? 잠을 자더라도 편하게 집에 와서 자.”
“그래도 일할 땐 일을 해야지. 왔다갔다 하다가 문제 생기면 어떡해? 정 보고 싶으면 연락해. 그럼 잠깐 보러 올게.”
경완의 말에 미연이 볼을 부풀렸지만 경완은 딱 선을 그었다. 투정도 미녀가 하면 귀엽고 사랑스럽지만 마냥 오냐오냐 해주면 버릇 나빠진다. 예쁘고 사랑스럽다고 사람이 아닌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요즘 나한테 너무 무정한 것 같아.”
“언제는 안 그랬나?”
“오빠는 나 사랑하기는 해?”
“흐음…… 남들보다는?”
“뭔 대답이 그래?”
“나한텐 항상 상대적인 거라.”
너무 오래 살다 보면 절대적 기준조차 마모된다.
절대적 기준이라는 건 결국 본인의 마음에 품은 기준이라는 건데 마냥 똑같지 않은 여러 사회와 세상을 경험하다 보면 절대적 기준으로 산다는 게 너무 피곤해진다는 걸 깨닫고 만다. 항상 본인의 기준과 세상의 기준이 충돌하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언제나 기준은 상대적이어야 한다는 것이 경완이 몸소 느낀 바였다.
경완의 말에 미연은 히죽 웃었다.
“그러니까 세상 사람들 중엔 내가 가장 소중하다는 말인가?”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으니 이 얼마나 좋은가? 경완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으면서도 한편으론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이게 내 최선이야.”
“알았으니까 더 말하지 마.”
미연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좋아했다가 다시 엄해졌다가, 참으로 롤러코스터 타는 기분이었다.
그녀의 허락을 받은 후 경완은 약속 장소로 향했다. 인천항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위버멘쉬에서 데리러 올 사람이 있다고 들었다.
그런데 별로 달갑지 않은 인간이 데리러 왔다.
“헤이요~! 브로!”
“…….”
그는 다름 아닌 매스 이펙터 김봉남이었다. 아무리 위버멘쉬 소속이라고 하지만 이런 인간(?)을 보내다니?
“왜 그런 눈으로 보는 건가요, 브로?”
왜긴 왜야? 댁 같은 관심종자 옆에 있으면 피곤하니까 그러지.
“위버멘쉬에서 나올 사람이 댁밖에 없수?”
“자원했어요, 브로.”
“항상 같이 다니던 친구는?”
“고향 갔어요, 브로.”
말끝마다 브로를 붙이는 게 왜 이렇게 거슬리지? 경완은 당당하게 요구했다.
“알겠으니까, 브로라고 부르지 마세요.”
“왜요, 브로?”
“맞을래요?”
“알았어요.”
경완의 눈빛에서 진심을 김봉남은 바로 화법을 수정했다.
그래, 말을 하면 들어먹을 줄은 아는구나. 경완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김봉남을 재촉했다.
“얼른 가기나 합시다.”
“넵.”
경완의 경고에 군기가 바짝 든 매스 이펙터가 앞장서서 걸었다.
“그런데 짐이 거의 없으시네요?”
“필요하면 다녀오면 돼요.”
“아, 맞다, 웜홀 능력 있으시지? 그거 엄청 부럽네요.”
결코 가식이나 입바른 소리가 아니라 진심으로 부러워하는 게 느껴졌다. 경완은 더 해줄 말도 없어서 그저 걷기나 하라고 앞을 향해 손짓했다.
김봉남은 군말 없이 경완의 말에 따라 부지런히 걸음을 옮기면서도 입을 쉬지 않았다.
“저보다 나이 많으시죠? 그럼, 형님이라고 불러도 돼요?”
“안 돼요.”
“넵.”
* * *
“이야~ S급 히어로의 경호임무라니 대단하십니다!”
“얼마나 더 걸어야 해요?”
“얼마 안 남았습니다.”
저번에 만났을 때에도 말이 많더니 천성인 모양이었다.
아무튼, 경완은 적당히 그의 수다를 막으며 척 봐도 비싸 보이는 슈퍼 요트 앞에 도착했다. 김봉남은 휘파람을 불며 요트의 자태에 감탄했다.
두 사람이 도착하자 배에서 한 사람이 내려와 반겼는데 다름 아닌 비스트 마스터 바스티앙 보나파르트였다.
경완은 그가 다가오기 전에 슬쩍 김봉남에게 물었다.
“S급 히어로가 이렇게 마음대로 본국을 벗어나 돌아다녀도 돼요?”
“되니까 있겠죠?”
듣고 보니 맞는 말이지만 경완이 기대한 건 그런 단순한 대답이 아니었다.
명색이 위버멘쉬 소속이라서 좀 더 자세한 사유가 있지 않을까 했는데, 정말로 되는 거니까 있는 것인지, 아니면 매스 이펙터의 머리가 그런 것에 의문을 가질 생각을 안 할 정도로 게을러빠져서 저리 대답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경완은 개인적으로 후자가 아닐까 추측했지만 생각은 길어지지 않았다. 다가온 바스티앙과 악수를 나눠야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요청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총수님이 더 자세한 이야기는 댁에게 들으라고 하던데요?]
[타시죠. 가면서 말하죠.]
경완은 바스티앙의 슈퍼 요트에 타면서 의아해했다. 습관적으로 돌린 초감각에 아무도 걸려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 혼자지? 경호를 필요로 할 정도라면 더 많은 인원이 필요한 거 아닌가? 아니, 그전에 이 큰 배를 모는 사람이 한 사람뿐이라고? 만일의 사태를 대비한 정비공은? 선원은?
그런 의문은 조타키를 잡은 바스티앙이 배를 출항한 후에 풀렸다. 그가 왜 이 배를 홀로 가져왔는지를 말이다.
[제가 하는 일을 모두가 반기는 건 아니더군요.]
[그럴 만도 하죠.]
경완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에! 세계의 모든 고래를 죄다 강화시키겠다니!
바스티앙의 목적은 자신의 초능력으로 세계 모든 고래를 강화하고 그들과 교감한 후에 ‘교육’을 시켜서 해양을 보호하는 것이었다.
이유는 인류와 그 후손들을 위해서라나?
[그래서 말인데, 경완 씨에겐 미리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왜요?]
[해양을 파괴하는 국가를 무너뜨려 주셨잖습니까?]
아! 중국? 중국의 불법조업 문제는 사실상 정부의 묵인하에 이루어진 해양자원 약탈행위였다. 당연히 해양 생태계를 무분별하고 광범위하게 파괴했고 말이다.
[중국 정부라는 거대한 걸림돌이 사라진 상태라 이 프로젝트를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혹시 강화된 고래들에게 배를 공격하게 할 건가요?]
[그들의 생명과 그들의 생태계에 심각한 악영향을 준다면요. 그들에게도 생존욕구가 있잖습니까?]
워우~ 과연 혼자인 이유가 있었다. 만일 이런 계획을 프랑스 정부가 알았다면 결사반대를 하고 나섰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경완에게 감사인사를 하는 이유도 더 확실하게 납득이 되었다. 만일 중국 정부가 멀쩡한 상황에서 저런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건 중국을 공격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강화된 고래들이 그들의 먹이터를 엉망으로 만들고 황폐화하는 배를 두고 볼 리가 없을 테니까.
그래서 다른 한편으론 걱정되기도 했다.
[어부들이 싫어할 텐데요?]
[그래서 고래들을 교육한다고 한 겁니다. 평화적으로, 지속 가능한 어업을 하는 배인지, 아니면 환경을 파괴하는 약탈적인 어선인지 구분하도록이요. 어부들에게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 강화되고 교육받은 고래는 인간과 상호협조하여 바다 생태계를 보전하고 더 많은 어획량을 기대할 수 있도록 돕게 될 테니까요.]
블라블라블라, 바스티앙은 자신이 꿈꾸는 비전을 설명했다. 푸른 바다를 보는 그의 두 눈동자는 열정으로 반짝거렸다.
고래를 목동견으로 삼아 바다 목동장을 세우는 인류사 최초의 일이라는 둥, 고래와 먹이 보상체계를 이용해 해양 쓰레기를 친환경적으로 수거할 계획이라는 둥의 열정적인 연설을 경완은 한 귀로 흘리며 물었다.
[그런데 고작 그 정도라면 굳이 경호가 필요할 것 같진 않은데요?]
[아닙니다. 필요해요. 대표적으로 귀하의 양옆에 있는 나라 때문이죠.]
[아아.]
경완은 감이 오는지 고개를 끄덕였고 바스티앙은 굳이 경호가 필요한 이유를 설명했다.
다른 나라 바다에서 불법조업 깡패짓을 하던 어선단은 중국 정부가 사라졌다고 같이 없어지지 않았다.
Chinese fishing fleet.
중국 어선 함대라고 불리는 이 불법조업 어선단은 중국 정부가 운영하던 해상민병제도의 핵심으로, 어민들에게 타국의 어선공격, 물자운반, 해상시위, 정보원 역할을 맡기는 민간 휴민트이자 해상민병의 척추였다.
이들은 경완의 손에 중앙정부 인사가 몰살된 이후에도 기존의 꽌시를 통해 각 지역의 군벌이나 지역 정치권과 붙어먹은 채 연명하고 있었다.
중앙정부가 사라져서 예전처럼 대규모로 배 째라고 달려들진 못하지만 더욱 교묘하게 산발적인 게릴라 전법으로 불법 조업 활동을 이어가고 있었다. 역시 빨갱이 족속 아니랄까 봐.
아무튼, 굳이 이유를 말하자면 지들 앞바다는 남획으로 수산물이 씨가 말랐기에 먹고 살기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먼바다, 남의 바다로 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바스티앙의 고래 목동견화(?) 프로젝트와 충돌하는 것이 예정되어 있다고 볼 수밖에.
그리고 일본.
국제포경협약 따윈 뭐임? 먹는 거임? 이러면서 국제적인 비난에도 불구하고 포경을 계속하는 나라.
그 이유가 뭘까? 포경하는 지역이 자민당의 텃밭이라서? 그게 아니면 제국주의 시절부터 이어져 내려온 포경을 억지로나마 유지하면서 그 시절의 영광을 추억해 보려고?
확실한 건 일본의 포경에 대한 집착은 매년 감소하는 수요만 봐도 시장경제적인 이유를 벗어났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에게 뭔가 협상이나 대화를 통한 설득은 통하지 않을 거라는 게 바스티앙의 판단이었다.
[그래도 그 뭐시냐, 고래 목동견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몇 마리 정도는 협상 카드로 내밀 수 있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