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전생-더 빌런 231화
23-팍스 위버멘쉬
[그래서 납치해 오셨다?]
[그렇죠.]
마르코를 찾기 위해 파라이조폴리스에 향했던 경완으로부터 세 시간 만에 전화를 받고는 호텔 옥상으로 올라온 니코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냥 돌아온 것도 아니고 사람 하나를 납치해온 게 아닌가?
아무나가 아니라 바로 마르코의 납치 용의자인 파라이조폴리스 민병대의 키끌로마를 말이다. 거기에 대수롭지 않은 짓을 한 듯 태연하기까지 했으니 황당함이 한층 더해졌다.
[어떻게요?]
당연히 그 방법이 짐작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황당함 때문에 입에서 질문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경완이 대답했다.
[쟤가 화장실 간 사이에 창문을 통해 염동력으로 싸들고 나왔죠.]
거참 신통하고 비범한 방법이었다.
니코는 키끌로마를 힐끗 보았다.
그는 몸부림을 치며 저항하고 있었지만 그의 몸을 감싸고 있는 검은 연기에 꼼짝도 못한 채 그저 읍읍 신음만 흘리고 있었다. 어쩐지 바지춤이 좀 헐렁한 상태다 싶었다.
납득 못할 짓은 아니었다.
이경완이 누군가? 초능력이 없던 시절에도 수틀린다고 국회의사당에 침입해 의원에게 칼침을 놓고, 핵테러했다고 자비 없이 한 나라의 수뇌부들을 사정없이 참수한 이가 아닌가? 거기에 비하면 납치 정도야…….
하지만 니코는 마냥 좋아하진 않았다.
[경계가 심해질 거예요.]
잘 있던 사람이 갑자기 사라졌다? 경계를 강화하고 행적을 찾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분명 납치된 정황도 파악되겠지.
이는 마르코에게 가해지는 위협이 한층 강해진다는 의미였다. 키끌로마의 부하들이 과연 보스의 실종과 마르코를 연관 짓지 못할까?
하지만 경완이 그 생각을 못할 리 없었다.
[어차피 속도전이에요. 위버멘쉬가 파악하지 못한 장소에 숨겨놨다면 역시 당사자의 입에서 듣는 게 가장 빠르죠.]
[이상하네요. 저희는 분명 거점 대부분을 알아냈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마르코를 납치한 게 본인의 생각이 아니었을 수도 있죠.]
경완은 니코에게서 키끌로마에게도 시선을 옮겼다.
경완의 초능력을 벗어나려고 몸부림치고 있던 키끌로마는 어느새 얌전하게 그저 니코와 경완 두 사람을 탐색하고 있었다. 아마 ‘마르코’라는 이름이 나왔을 때부터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경완이 한 가지 의심을 품게 된 시발점이기도 했다.
니코는 경완의 추측에 키끌로마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심문이 시작되었다.
경완이 현장에서 심문하지 않고 굳이 키끌로마를 납치해 호텔까지 돌아온 이유는 간단했다.
경완은 포르투갈어를 몰랐고, 키끌로마는 경완의 영어를 잘 알아듣지 못했다. 그래서 원활한 의사소통을 해줄 통역이 필요했고 관련자인 니코가 가장 적합했다.
심문은 금방 끝났다. 일단 납치된 마르코의 행적만 물어봤기 때문이었다. 더 궁금한 건 많았지만 일단 마르코부터 구해낸 다음에 물어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상황이 생각보다 복잡했다. 키끌로마가 마르코를 납치한 이면에는 정치권의 사주가 있었던 것이다.
[뭐지? 정치권이랑 이야기가 잘 되었다고 하지 않나요?]
[우리가 손잡지 않은 정치인들이 관련된 것 같아요.]
경완의 의문에 대답하는 니코의 눈이 가늘어졌다.
무슨 일을 하든 모두를 만족시킬 순 없었다. 더구나 그것이 돈과 영향력, 권력과 관련된 일이면 더욱 그러했으니, 내 편, 네 편을 확실히 구분해서 내 편은 보호하고 네 편은 몰락시켜 온 것이 위버멘쉬의 행보였다.
신중한 피아구분 이후, 내 편을 확보하고 이를 적대하는 자들을 확실하게 공격해서 그 영향력을 제거하거나 약화하는 위버멘쉬의 방침은 그들의 급성장에 분명 도움을 주었다.
[정치권하고 엮이면 골치 아픈데…….]
경완이 중얼거리자 니코가 고개를 갸웃하면서 의문을 표했다.
[경완 씨에게 국회의원 상해 전과가 있지 않았나요?]
살해당한 김오민 검사와 양승태 이야기였다.
경완이 대꾸했다.
[그때는 법 위에 있는 범죄자를 응징한 거고요.]
[지금도 마찬가지지 않아요?]
[…….]
경완은 눈알을 굴리며 말을 아꼈다. 솔직히 그녀의 말이 아주 틀린 건 아니었다.
살인과 납치. 경중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 활개치는 정치인의 사주라는 점에서 전혀 다를 게 없었다.
다만 경완의 마음이 그때와 지금과 다른 이유는 그때는 그가 김오민 검사가 좋은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고, 지금은 마르코라는 이에 대해서 전혀 모르기 때문이었다.
바다 건너 먼 나라에서 백만 명이 죽든 이백만 명이 죽는 것보다 내 옆집, 내 이웃의 불행과 사고가 더 안타까운 법이고, 졸업 후 만난 적도 없던 동창의 부고 소식보다는 본인이 키우는 반려동물이 무지개다리를 건널 때 오열을 하는 게 바로 인간이었으니, 경완도 다를 바가 없었다.
모든 인류를 공평히 긍휼히 여기고 사랑하는 건 신의 아들이나 하시라는 게 그의 입장이었다.
[일단 마르코부터 구하고 보죠.]
키끌로마가 붙잡은 마르코의 신병은 좀 떨어져 있는 파벨라의 민병대에 넘어갔다. 그리고 그 민병대는 현재 12년째 브라질 상원의원으로 있는 정치인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측’되고 있었다.
그저 추측만 되고 있는 이유는 그것을 본격적으로 조사하려고 한 이들은 모두 석연치 않은 이유로 입을 다물었기 때문이다. 아니, 모두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았다. 몇몇은 세상에 없었던 것처럼 사라졌으니까.
그 정도라면 브라질 검찰에서 내사(內査)하지 않을까 싶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왜냐면 그 정치인이 검찰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브라질 검찰의 우리가 남이가 정신은 한국 검찰 못지않았다.
니코는 키끌로마를 일단 위버멘쉬 브라질이 준비한 모종의 장소에 가두어두고는 서둘러 조사를 시작했다.
마르코의 신병을 받아간 민병대장 호아킨, 그리고 그와 긴밀한 관련이 있다는 소문이 드는 12년 차 상원의원 후세 깔판토.
그들이 왜 마르코를 납치했는지 그 이유는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었다. 왜냐면 이번 파라이조폴리스를 매개로 한 정치권과 위버멘쉬의 협상, 야합, 혹은 결탁에 후세 깔판토는 끼어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경완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 정도 되는 정치인하고 손을 안 잡았다니……. 이상하네요.]
[더 자세한 건 저도 몰라요.]
니코가 대답했다. 아마 그에 대한 힌트는 어쩌면 마르코의 입에서 들을 수 있을지도...
아무튼, 위버멘쉬의 정보력에 대해 경완은 다시 한 번 감탄했다. 니코가 요청한 자료를 해가 뜨자마자 가져다줬으니까. 이는 위버멘쉬가 브라질 진출을 위해서 얼마나 자원을 투입했는지 엿볼 수 있는 단면이기도 했다.
니코가 요청한 자료는 호아킨의 근거지, 그리고 후세 깔판토의 행적이었고, 자료를 살펴본 니코는 경완에게 알아낸 사실 두 가지를 전달했다.
[키끌로마의 납치 이후 호아킨과 민병대의 행동이 분주해졌어요. 그리고 마르코의 납치가 일어나기 얼마 전 후세의 행적이 잠시 사라진 적이 있다는군요.]
당시에는 그 이유를 특정할 단서가 너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와서 키끌로마와 호아킨, 그리고 호아킨에서 후세로 이어지는 인과관계를 보니 행적이 잠시 사라진 그때 마르코의 납치를 기획한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그때 외에는 호아킨과 의논할 수 있는 여건이 없었어요. 당시 호아킨과 동선이 교차하기도 했고.]
니코의 말에 경완은 묘한 느낌이 들어서 물었다.
[혹시 후세라는 그 정치인 도감청도 하는 거예요?]
그 말에 니코는 자신의 말실수를 깨달았는지 당황하면서 빠르게 눈알을 굴렸다가 이내 실수하지 않은 척,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우리같이 외부에서 들어온 세력은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엄청난 손해를 보거든요.]
경완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부패가 일상인 나라에서 홀로 고고하고 깨끗한 척 해봤자 병신 소리만 듣겠지. 원래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보고 요란하게 더 짓는 법이 아니던가?
아무튼, 정보는 모였고, 이제 모인 정보를 통해 마르코의 행적을 찾는 일만 남았다.
다행히 경완이 일일이 호아킨의 거점을 뒤질 필요는 없었다. 갑작스레 호아킨이 급히 움직이고 있다는 첩보가 들어온 것이다.
[정보력이 대단하네요.]
경완이 감탄하자 니코가 자랑스레 말했다.
[저희 위버멘쉬 브라질은 따로 정보팀을 운용 중이죠.]
법치국가의 평범한 소시민이라면 사생활 침해라고, 역시 빌런 조직이라며 손가락질했겠지만, 비단 이런 일은 돈과 권력을 가진 이들에겐 비일비재한 일이었다.
가진 것이 많을수록 그것을 지키고자 하는 노력도 투철한 법이니, 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사업상의 이유로도 정보를 취급하는 조직을 운영하거나 그런 조직과 관계를 유지하는 건 이런 이들에겐 상식이었다.
소시민은 이해하지 못할 일이지만, 미국은 대놓고 탐정 등의 직업이 있었으며 합법화된 로비산업 때문에 정보를 취급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한국에는 흥신소가 있었고, 정부의 시선 때문에 흥신소를 대놓고 이용하지 못하는 대기업에서는 내부에 그런 일을 하는 조직이 있었다.
기껏 대기업 입사했다고 좋아했더니 하는 일이 노조 파괴를 위한 노조원 미행이었더라……. 농담이 아니다.
엄연한 법치국가 대한민국에서도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부패가 심각해 각자도생이 당연한 브라질 같은 나라에선 오죽하랴?
이런 곳에서 적법하게 사업하는 놈이 병신이었다. 아니, 다들 이미 ‘적법’하게 사업하고 있었다. 걸려서 법원에서 판결까지 받아야 불법인데, 과연?
[아무튼, 서두르죠.]
호아킨이라는 놈이 증거를 지우기 위해 마르코를 처리하거나 다른 곳으로 옮겨서 숨기기 전에 서둘러야 했다.
이 시점에서 경완은 아직 마르코가 살아 있다고 판단했다. 왜냐면 죽은 자는 말이 없고, 마르코가 죽었다면 민병대장 호아킨이 이렇게 빨리 움직일 리 없었다. 그저 모른 척 가만히 있는 게 더 괜한 의심을 피하는 방법이었으니까.
경완은 위버멘쉬 브라질의 도움을 받아 호아킨을 추적하다가, 놈이 누군가에게 지시를 내리는 것을 확인하고는 어떤 직감을 느끼고 그 누군가를 추적했다. 태도를 보니 부하인 게 확실했다.
원래 위험하고 더러운 일은 직접 하지 않고 대신 부하들의 손을 더럽히는 것이야말로 보스의 특권 아니겠는가?
힘든 일은 아래로, 부와 명예는 위로. 원래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왕서방이 받는 법이다.
그렇다고 호아킨을 무방비하게 두진 않았다.
그가 착용한 손목시계나 밸트, 구두 등에 추적 마커를 박아놓은 후에 움직였다. 설사 지금의 직감이 틀렸다고 하더라도 만회할 기회를 충분히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만일의 상황을 대비한 보험은 필요 없게 되었다. 호아킨이 지시를 받은 부하놈을 쫓아가다 교외 지역의 한 허름한 창고에서 마르코를 발견했으니까.
그 부하놈이 어디로 가는지 가는 방향 쪽으로 초감각 레이더를 돌린 덕분이었다.
물론 그의 초감각 레이더를 감지할 정도로 예민하거나 능력 있는 초능력자가 자본의 논리로 거의 다 기업의 사병으로 들어간 상태인 덕도 있었다.
아무튼, 호아킨의 지시를 받은 부하놈들이 창고에 도착하기도 전에 마르코의 위치를 파악한 경완은 전광석화처럼 움직였다.
허름한 지붕을 뚫고 히어로 랜딩을 하는 순간 힉스장 제어능력을 전개, 중력장과 검은 안개의 염동력이 마르코를 제외한 주변의 모든 사람을 짓눌렀다. 급작스레 늘어난 하중을 버티지 못해 무릎이 탈골되어 버린 놈도 있었다.
경완은 당황하는 놈들을 놔두고 문답무용으로 의자에 묶여있는 마르코를 챙긴 뒤 그대로 창고를 빠져나왔으니, 뒤늦게 도착한 호아킨의 부하들이 분주하게 이리 뛰고 저리 뛰어도 이미 멀찌감치 도망간 경완과 마르코를 찾을 순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