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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전생 더 빌런-232화 (232/367)

무한전생-더 빌런 232화

23-팍스 위버멘쉬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마르코는 연신 경완에게 감사를 표했다. 두 눈에 눈물을 글썽거리고 있어서 그의 감사가 진심인지 의심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 고문(拷問)으로 인한 부상 때문에 침대에 누워 있다고 해도 말이다.

오히려 감사를 받아주지 않으면 침대에서 일어날 기세라 경완은 얼른 손사래를 쳤다.

[저야 부탁받고 한 일일 뿐입니다.]

[설마 총수님께서?]

위버멘쉬 소속인 마르코가 이경완같이 강한 초능력자를 모를 리 없었다. 그리고 위버멘쉬의 총수가 공을 들이고 있다는 소문도 모를 리 없었으니, 이경완에게 자신을 구해달라고 부탁할 만한 사람은 총수님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경완은 부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고 마르코는 한층 감격에 떨었다.

[아아! 총수님!]

흐느끼며 불편한 몸으로 기도하듯 두 손을 모으는 마르코의 모습이 부담스러워서 경완은 푹 쉬라며 입에 발린 말을 하고는 얼른 방에서 나왔다. 남은 건 위버멘쉬에서 고용한 주치의의 몫이었다.

[고생하셨습니다.]

[별로 고생하진 않았어요.]

함께 병실 밖으로 나온 니코의 말에 경완은 고개를 저었다. 중국에서 마리아 여사를 구출할 당시랑 비교하면 고생한 것도 아니었다. 그때는 전투는 그렇다고 쳐도 추적을 위한 정보, 퇴각로 확보 등 제법 많은 준비를 홀로 해야 했으니까.

그때 웜홀 능력이 있었다면 한결 편했겠지만, 그래도 위버멘쉬 브라질 측이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를 보태준 덕분에 도착 이틀 만에 사건을 해결할 수 있었다는 게 경완의 생각이었다.

니코가 그런 경완을 향해 한 가지 제안을 꺼냈다.

[이제 좀 쉬셔야죠? 브라질에는 놀 곳이 많답니다.]

그러면서 저도 모르게 혀끝이 붉은 입술을 핥는데 무척이나 유혹적이었다.

하지만 경완은 사양했다.

[집에 갈래요.]

[네? 쉬지도 않고요?]

[쉬는 건 집에서 쉬어야죠.]

노는 건 쉬는 게 아니다.

니코가 뭐라고 더 말하려는데 경완이 먼저 옆에 있던 김준을 향해 입을 열었다.

[김준 씨, 전 집에 갑니다. 같이 가실 거예요?]

[당연하죠!]

경완의 여행가방도 맡고 있던 김준이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고 경완은 니코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럼, 만나서 반가웠어요.]

[자, 잠깐!]

마음에 든 남자를 이렇게 놓칠 수 없었던 니코가 그를 붙잡아 보려고 했지만 무리였다. 경완은 쭉쭉빵빵 라틴 미녀의 안타까운 유혹을 매정하게 뿌리치고 웜홀을 열고는 그대로 김준의 목덜미를 붙잡은 채 한국으로 돌아왔다.

“야아앙!”

한국으로 돌아온 경완을 맞이한 건 치즈였다. 현관에 워프 마커가 설치되어 있어서 곧장 올 수 있었다.

“왜? 밥 줄까?”

경완은 치즈의 울음소리에 역시 먹보라는 생각에 밥 줄까 물어봤지만 그러한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꼬리를 세우고 도도히 자기 자리로 가는 치즈의 모습이 마치 ‘내가 돼진 줄 아냥’이라고 말하는 듯했다.

“김준 씨도 수고하셨어요.”

경완은 뻘쭘히 서 있는 김준을 보며 말했다.

“긴 시간 비행기 안 타도 되고 좋죠?”

이어진 말에 김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경완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런데 출입국 절차를 안 해서 그런데, 좀 처리해주실 수 있어요?”

“어. 저. 그게…….”

갑작스럽게 경완의 부탁을 받은 김준은 당황했다.

그는 갑작스러운 요청에 굳이 경완이 그와 함께 웜홀을 타고 한국으로 돌아온 이유가 이렇게 활용하기 위한 거라는 걸 전혀 감도 잡지 못했다.

김준은 어떻게 방도가 있지 않을까 머리를 짜내봤지만 방도가 없었다. 자신은 FBI수사관 겸 이경완 연락책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상부로 경완의 부탁을 상신해 봤자 상부도 골치가 아프지 않을까?

CIA도 이경완에게 한 발 걸치기는 했지만, 그쪽은 위조여권과 변장 따위로 출입국 기록을 속이는 거에 익숙하지 않나? 그렇다고 경완의 부탁 때문에 한 국가의 출입국 시스템에 해킹 가하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병신 짓을 할 순 없었다.

김준은 결국 정론을 택했다.

“가장 속 편한 방법은 다시 되돌아가서 적법한 방법으로 들어오는 겁니다.”

“못 돌아가요. 웜홀 마커 안 찍어놨거든요.”

“정말요?”

“네.”

경완의 초롱초롱한 두 눈은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항변하는 듯했지만 그만큼 가증스러웠다. 경완이야 한국인이니 그렇다고 쳐도, 김준 자신은 영락없이 밀입국자 신세가 아닌가?

그것을 깨닫자 경완을 보는 김준의 시선이 차가워졌다. 어쩐지…… 괜히 이유도 없이 호의를 베푼다 싶었다.

경완은 김준이 ‘알았다!’라는 눈초리로 자신을 보자 슬쩍 말을 돌렸다.

“뭐, 안 되면 할 수 없고요. 그냥 놔두죠, 뭐.”

고작 이런 거 가지고 감옥에 갈까? 그렇다고 한국인이 한국으로 밀입국했는데 어디로 추방한단 말인가?

기껏해야 벌금형, 아님 집행유예 정도겠지.

“그럼 저는요?”

질문을 던지는 김준의 목소리가 싸늘했다. 경완이야 한국의 국적도 있는 이중국적자지만, 김준은 미국 국적만 있는 순수 미국인(?)이었기 때문이다.

“설마 미국 공무원을 추방하겠어요? 특별한 조치를 해주겠죠.”

“그럴 가능성이 없진 않지만 그렇다고 제가 곤란해지지 않은 건 아닙니다.”

“어.. 음…… 미안해요. 내가 괜히 편하게 해준다고 해서.”

“……하아…….”

김준은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호의로 그랬지, 악의로 그랬냐?!라는 프레임을 선점하니 탓을 하기가 애매해졌기 때문이다.

김준에게 진실의 스무고개 같은 능력이 있었다면 저 미안해하는 표정이 진짜인지 그저 면피용 연기인지 반드시 확인했을 텐데…….

“아무튼, 이미 일어난 일은 되돌릴 수 없고, 그보다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네? 무슨 일이요?”

“좀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습니다.”

이렇게 현관에 서서 할 이야기가 아니라는 김준의 말에 경완은 그를 거실로 들였다.

일단 손님이기에 믹스 커피도 한 잔 대접해준 후 소파에 앉았다.

치즈가 그의 무릎에 올라왔다. 목덜미를 가볍게 긁적여주니 골골대며 눈을 감았다.

김준은 일단 커피를 홀짝이며 믹스 커피의 단맛과 향기로 정신을 맑게 하더니 이야기를 시작했다.

“위버멘쉬의 확장이 요즘 심상치 않습니다.”

“원래부터 유명했잖아요.”

경완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대꾸했다. 위버멘쉬의 현지화 전략은 출범했을 때부터 유명했다.

위버멘쉬가 어떻게 선진국으로부터 인정받고 빌런 조직이란 꼬리표를 뗐는가? 간단하다. 국가의 요구를 거부하지 않고 합의와 협상하는 태도를 견지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경우는 그 나라가 민주주의 법치국가일 경우에 한해서였다. 제3세계의 독재국가 같은 경우에는 철저하게, 무력을 동원해서 나라를 뒤엎고, 반강제적으로 민주화를 시켜버렸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혼란은 오히려 위버멘쉬가 그 지역과 사회에 단단히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해주었다. 고이고 굳어진 토양을 뒤엎어 뿌리가 뻗기 쉽도록 부드럽게 만드는 쟁기질 같은 작용을 했달까?

이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느냐 하면, 아프리카나 중동의 분쟁지역에서 무슨 일이 있으면 위버멘쉬를 통하는 게 가장 싸고 빠르게 먹히도록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선진국이 괜히 이득도 없으면서 위버멘쉬에 붙은 빌런 조직 딱지를 뗐을까? 그쪽 지역에 일이 있을 때 위버멘쉬를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위버멘쉬는 빌런조직이란 딱지를 떼고 합법적 조직으로 거듯났고 말이다.

“이건 소수 의견이기는 하지만 위버멘쉬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왜요?”

“이번에 직접 보시고, 거들어주기까지 하시지 않았습니까?”

경완은 마르코를 구한 일을 떠올렸다.

“그러니까 제가 마르코를 구해낸 것과 같은 일이 제법 많다는 건가요?”

“제법 많은 정도가 아닙니다. 비일비재하죠.”

“그야 당연한 거 아닐까요?”

마피아 조직 따위와 충돌을 빚으면 초법적인 상황이 벌어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김준이 말을 이었다.

“핵심은 그 과정에서 기득권과 충돌을 빚는다는 거죠.”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요?”

“아! 제 설명이 부족했군요. 기득권을 분열시키고, 적대한 기득권을 약화시킴으로써 본인들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어요.”

“그게 뭔가 문제가 있나요?”

김준의 눈이 진지해졌다.

“Divide and Rule. 어디서 많이 들어보지 않았나요?”

“들어는 봤죠.”

디바이드 앤 룰은 영국 때문에 널리 알려진 말이지만, 사실은 고대 그리스 때부터, 어쩌면 그 이전부터 있었던 개념이었다. 침략하고 지배하는 입장에서 이만큼 효율적인 전략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경완이 고개를 갸웃하는 이유는 위버멘쉬는 국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국가도 아닌데 딱히 누구를 지배하거나 침략한다고 할 수 있나?

뭐, 영향력의 확대를 침략으로 볼 수는 있지만, 그것이 지배까지 가기에는 좀 많이 모자라 보였다. 지배의 주체를 위버멘쉬라고 치면 지배의 대상은 누구란 말인가? 거기에는 물음표 외에는 딱히 들어갈 표현이 없었다.

김준이 말을 이었다.

“우리는 위버멘쉬가 어떻게 운영되고, 무엇을 목적으로 하는지 자세히 알지 못합니다.”

“총수가 운영하고 초능력자의 권익을 도모하기 위한 거 아니었어요?”

“총수는 드러나 있지만, 그 밑에 어떤 조직이 누구로 구성되어 정확히 무슨 역할을 하고 있는지 확실히 드러나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초능력자의 권익을 도모한다는 문구도 진심인지 확실하지 않고요.”

경완은 잠시 생각했다. 김준의 우려는 과연 타당한가?

타당한 점은 있었다. 마치 음모론의 단골주제로 나오는 비밀결사가 세계를 암중에서 조종한다는 말처럼 말이다. 김준의 말은 지금 그러한 시도를 위버멘쉬가 하고 있는 것 같다는 말 아닌가?

뭐, 공무원 입장에선 충분히 우려할 일이기는 했다. 그것의 사실 여부를 떠나서 미리 걱정하고 준비하는 편이 현명할 수도 있고 말이다.

하지만 경완의 입장에선 설사 위버멘쉬가 그런다고 해도 그게 뭐가 문제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권력의 쟁취는 인간의 본성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인간은 사회에 나가면 필연적으로 착한 놈, 나쁜 놈, 못난 놈, 잘난 놈 등 그 정체가 드러나기 때문이었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라, 누군가를 다스리거나, 지배하거나, 혹은 이끄는데 남들보다 조금이나마 더 재능 있는 이의 등장은 필연적이었다.

그러니 경완의 관점에선 누가 권력과 헤게모니를 장악하느냐의 문제보단, 그 결과가 자신에게 어떻게 다가오느냐가 더욱 중요했다.

“지금 걱정해도 소용없지 않나요? 설사 김준 씨의 우려가 사실이라고 해도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그만이죠.”

솔직히 누구나가 다 백마 탄 초인이 나타나 이 세상의 쓰레기들과 악한 것들을 다 쓸어버리고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주길 바라지 않던가? 그러한 일은 절대 민주주의 아래에선 불가능하지만 말이다.

그런 하늘이 내리신, 반인반신의 지도자만 있다면 민주주의 따위는 언제든 헌신짝처럼 내던질 수 있는 게 인간이었다.

정리하자면, 내 생활, 내 안전, 내 욕구만 충족시켜준다면 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민주주의든, 독재든 상관하지 않는 것이 바로 인간이란 동물이었다.

경완도 마찬가지였다. 높은 이상(理想)이나 대의를 품고 살았던 것도 먼 옛날의 일.

그 모든 것이 부질없어진 그에게 위버멘쉬의 확장 행보를 우려하는 김준의 모습은 어설픈 정의감을 주체할 수 없는 열혈청년으로 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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