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전생-더 빌런 235화
23-팍스 위버멘쉬
그녀의 자랑에 경완은 놀랐다.
“대단하네요.”
벌써 기술이 이렇게까지 발달하다니.
“쉬운 건 아니에요. 상용화도 어렵고, 범용적이지도 않죠.”
이 장비의 코어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초능력을 통해 코어와 인간사고(思考)의 동기화가 필요하다나? 그래서 이를 위한 각인 작업이 필요한데, 이 각인 작업이 이루어진 코어는 다른 사람이 쓸 수 없다고 한다.
초기화 작업을 거치면 가능하지만, 그 초기화 작업을 사람이 직접 해야 하는데 차라리 새 코어를 만드는 게 더 싸게 먹힌다나?
“그래서 이런 걸 절 주겠다고요?”
“물론이죠.”
경완의 눈이 가늘어졌다.
“겸사겸사 테스트도 하고요?”
다른 곳에서 이런 물건이 나왔다는 뉴스는 들어본 적이 없으니 딱 봐도 프로토타입이었다. 경완을 연구에 부렸던 마리아 소장의 행태를 생각하면 선물의 의미만은 아닐 것이다.
아, 대양국제활용기구 운운했던 건 그냥 연막에 불과했던 건가?
경완은 떡밥 던지는 실력이 한층 향상된 것에 경계심을 가지며 물었고,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의 말을 수긍했다.
하지만 거기서 그녀의 말이 끝난 건 아니었다.
“공식적으로 테스터는 정해지지 않았어요.”
“왜요?”
“그야 정부에서 승인을 내주지 않았기 때문이죠.”
경완은 고개를 갸웃했다. 왜? 딱 봐도 종합초능력전술장비는 새로운 무기체계고, 반드시 테스트를 거쳐야 했다.
마리아가 말을 이었다.
“그 서류에 적힌 테스터의 이름은 당신이었어요.”
“그러니까……..”
“정부는 경완 씨가 이 장비를 다루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죠.”
경완은 바로 정부의 입장을 이해했다. 정부에선 그가 부담스러운 것이다. 한국 정부도 어쩌지 못했던 중국을 단신으로 저렇게 만들어버린 그의 무력을 말이다.
솔직히 그가 미쳐서 중국 공산당에게 저질렀던 짓을 한국 정부 고위 인사들에게 그대로 한다고 해보자. 과연 막을 수 있겠는가?
저 종합초능력전술장비라는 것도 강력한 힘을 가진 초능력자를 통제하기 위한 정부 노력의 결과물이었다. 그런데 그 장부가 정부가 가장 먼저 통제하고 싶은 초능력자의 손에 들린다니 용납하기 어려운 일일 것이다.
거기서 경완은 한발 더 나아가 마리아가 자신을 불러낸 명목을 떠올렸다.
“그래서 대양 뭐시기를 가져다 붙인 건가요?”
“거짓말은 아니에요. 경완 씨의 초능력이 돕는다면 대양국제활용기구의 태평양 사업에 탄력이 붙을 건 확실하니까요.”
스마트 포스필드 사용자의 꾸준한 육성이 그 결실을 보이고 있지만 마리아의 눈에 차는 운용요원은 아직 없었다. 경완의 능숙한 스마트 포스필드 제어는 태평양 사업에 있어 매우 큰 도움이 될 것은 확실했다.
“뭐 그건 급한 일이 아니니까 당장 대답하지 않아도 돼요. 그래서 어때요? 제 선물은?”
“어……. 이거 받으면 정부에서 뭐라고 하는 거 아니에요?”
“뭐라고 못해요. 이건 정부에서만 투자한 사업이 아니거든요.”
코어 기술은 위버멘쉬가 독점하고 있었다. 위버멘쉬가 돕지 않았다면 이 사업은 시작부터가 불가능했으리라. 그리고 마리아는 코어를 이용해 초능력 확장장비를 개발한 사람이었다. 지분이 없을 순 없었다.
“위버멘쉬에서는요?”
“좋다고 하죠.”
“그런데 여기 정부소유기관인데, 여기서 이래도 돼요?”
“호호호! 여기 반쯤 민영화해서 괜찮아요.”
마리아 소장이 웃으면서 말했다.
“민영화요?”
“어차피 제 입김이 강한 곳이라 저와 위버멘쉬에게 지분 반을 팔아넘겼죠. 부서 몇 개는 통째로 넘기고요.”
“그 부서들 다 알짜부서죠?”
“그렇긴 해요.”
대한 세립 초능력 연구소의 알짜부서라고 한다면 단연코 스마트 포스필드 관련부서와 초능력 확장장비 관련부서였다.
“언제 팔았대요?”
“서울 재건 때요.”
그녀의 대답에 경완은 비릿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과연 민영화된 게 그거뿐일까? 서울 참사는 많은 알짜 공기업을 민영화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을 터였다. 안 봐도 훤했다.
그와 딱히 상관이 없는 일 아닌가 싶겠지만, 교도소를 나온 경완은 성실한 납세자였다. 그런데 그의 세금이 기반 시설과 인프라에 빨대 꽂은 놈들에게 빨린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배알이 꼴렸다.
민영화의 방식이 하나 같이 세금으로 손실을 보전해 주는 꼴에 돈 안 되는 개털은 남기고 돈 되는 알짜만 팔아넘기는 식이 아니던가?
민영화로 경쟁력을 재고한다는 명분은 그것만으로 개소리임이 증명되었다. 잘 안 돼서 빌빌거리는 개털 사업이야말로 민영화해서 경쟁력을 재고해야 하는 분야가 아닌가? 민영화를 주장하는 자들의 말대로 정말로 민영화가 경쟁력 확보에 유리하다면 말이다.
그렇지 않은 민영화는 결국 위험은 국민이 감당하고 이득은 검은 머리 외국인이 보는 일에 불과했다.
“경완 씨?”
“주신다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래서 경완은 마리아가 선물해 준다는 저 아이X맨 슈트를 받기로 했다. 갑자기 배알이 꼴린 걸 이렇게라도 풀어야지.
그의 이런 속내를 정부 관계자들이 알았다면, 이게 무슨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화풀이냐고 황당해하지 않을까?
“고마우면 테스트 도와주면 돼요.”
생긋 웃는 마리아 소장의 얼굴을 보며 경완은 피식 웃었다.
그럼 그렇지 어련하실까?
* * *
종합초능력전술장비의 테스트 결과는 각자에게 상대적인 인상을 주었다.
경완에겐 재미는 있지만 딱히 필요없음으로, 그리고 개발자인 마리아 소장에겐 개선의 필요는 있지만 충분한 가능성이 있는 장비라는 인상을 준 것이다.
“S입자의 보유량이 많은 이들이 대체로 강한 초능력자임을 보았을 때 1:1 장기전은 무리지만, 정부나 기관 입장에선 큰 문제는 안 되겠죠.”
마리아 소장의 말에 경완은 고개를 끄덕였다. 축차투입을 하면 그 정도 약점은 충분히 보완할 수 있었다. 그전에 순간적으로나마 S급 위력을 내는 초능력자 다수를 투입해서 단숨에 제압하는 쪽을 선택하겠지만 말이다. 정부도 머리가 없는 건 아닐 테니 후자를 택할 것이다.
기술이 발달하면 재능의 격차는 줄어드는 법. 친정부적인 초능력자에게 TSTG를 입히면 정부에 친화적이지 않은 초능력자에 대한 충분한 견제장치가 되어줄 것이다.
개인이 소유해서 운영하기엔 가격과 유지비가 만만치 않은 TSTG 그 자체도 안전핀의 역할을 해줄 테고 말이다.
물론 이는 정부의 입장에서 본 시각이고 경완의 입장에선 그저 남자의 로망을 충족시켜줄 재밌는 장난감 정도?
그의 전투 스타일은 기본적으로 기동력과 기습을 바탕으로 하는 기동전이었기 때문에 신체보호를 위한 특수장갑과 완력 보조를 위한 로보틱스 시스템이 장착되어 무게가 나가는 TSTG는 오히려 방해물에 불과했다.
현존하는 거의 모든 총탄과 포탄을 막아준다는 메리트가 있기는 하지만 물량에 장사 없다고 그것도 한계가 있었고, 그런 상황이 닥치기 전에 일을 끝내거나 몸을 빼내는 것이 경완의 스타일이었다. 또한 초능력이 숙련되지 않거나 모자라서 중국 원전 하나 폭파하는 일로 빌빌거렸던 그때의 그가 아니기도 하고 말이다.
“장식용으로는 쓸만하겠어요.”
“제작자로선 안타깝네요.”
딱히 필요없다고 가지고 싶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필요해서 장난감을 사는 건 아니잖은가?
아무튼, 경완은 사흘에 한 번 꼴로 연구소에 방문해서 마리아를 도와 TSTG의 테스트를 시행했다. 불편한 점, 개선해야 할 사항 등 그는 마리아가 기대한 대로 테스터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방해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반갑습니다, 마리아 소장님, 그리고 이경완 씨. 저는 청와대 안보실장 정준혁이라고 합니다.”
마치 포마드라도 바른 듯 깔끔하게 빗어서 옆으로 넘긴 머리에 안경을 쓰고 마르고 날카로운 인상의 남자가 몇 명의 사람과 함께 테스트실로 들어오면서 자신을 소개했다.
마리아 소장은 미간을 찌푸렸다.
“아무도 들어오지 말라고 했는데 어떻게 들어오셨죠?”
경완과의 종합초능력전술장비 테스트는 기밀로 진행되고 있었다. 그래서 연구 보조원들도 테스트가 끝난 후에야 데이터를 받아 분석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외부인사가 함부로 들어오다니?
마리아 소장의 말에 정준혁 안보실장이 대답했다.
“직원들을 너무 나무라지 마시길 바랍니다. 나라의 일이니까요.”
“나랏일이라고요?”
마리아 소장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 와중에 그녀의 귀에 경완이 속삭였다.
“그런데 안보실장은 원래 강태수라는 사람 아니었어요?”
대답은 마리아가 아니라 정준혁이 했다.
“그분은 국가 초능력 자원부로 영전하셨습니다.”
귀도 밝다.
마리아도 한마디 했다.
“정권 바뀌었잖아요. 물갈이했겠죠.”
아, 그랬지. 귀찮아서 투표를 안 했었다.
“그 양반 일 좀 하는 것 같던데 영전한 이유가 있었네요.”
마리아의 말에 경완이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정준혁은 살짝 미간을 좁혔지만, 이내 표정을 관리하고는 마리아를 향해 입을 열었다. 시선은 경완을 향하면서 말이다.
“종합초능력전술장비 테스터에 대한 선정이 아직 허가되지 않을 걸로 아는데요?”
“제가 분명 가장 적합한 테스터가 이경완 씨라고 보고한 걸로 아는데요?”
“그렇지만 허가는 나오지 않았죠.”
“글쎄요. 굳이 허가가 필요한가요?”
“당연하지 않습니까? 정부가 주관하는 연구입니다.”
“정확히는 반만 그렇죠.”
마리아 소장과 정준혁의 시선이 충돌했다. 다행인 점은 경완이 마리아 소장의 편이라는 점이었다.
“저기……. 결국 테스터 선정에 관한 권한이 누구한테 있는 거죠?”
“글쎄요?”
마리아 소장은 고개를 갸웃했고 정준혁 안보실장은 말이 없었다. 경완은 대충 어떻게 된 일인지 이해가 되었다.
“그러니까 계약서에 명시가 안 되어있다는 거네요. 맞죠?”
“……맞습니다.”
정준혁 안보실장은 경완이 자신을 향해서 질문을 던지자 어렵게 대답했다. 어차피 나중에 계약서 살펴보면 금방 알게 될 테니 거짓말을 할 순 없었다.
“그럼 새로 합의를 해서 계약서에 추가하든가 해야지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
“그래요.”
마리아가 팔짱을 끼고 경완을 거들었다. 정준혁 안보실장은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종합초능력전술장비는 국가 안보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자산입니다. 박사님께서 적합한 인물을 테스터로 선정했다면, 그리고 코어 각인이라는 것도 없었다면 이러진 않았을 겁니다.”
옆에서 듣고 있던 경완은 고개를 끄덕였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경완이 어떤 인물인가? 사상적으론 자력구제도 서슴지 않으며, 실력으로는 중국 공산당 수뇌부를 무너뜨린 인물이었다. 아무리 말이 통한다고 하지만 불안감이 없을 순 없었다.
너무 예민한 거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원래 국가가 하는 일이 이런 거 아닌가? 최악을 대비하는 것.
괜히 각국에서 군대를 유지하는 게 아니다. 설마 전쟁이 나겠냐고 안이한 발상을 하다가 실제로 전쟁 나면 나라가 망하니까 생산성도 없는 조직에 돈을 쏟아붓는 것이다.
타성에 젖어 안이하게 있는 것보다는 차라리 저렇게 날을 세우는 게 낫다.
경완이 생각해도 자신의 존재는 국가에 있어 불안정 요소이기는 하니까. 뭐, 저렇게 예민하게 구는 게 경완 본인에게만 그러는 일이냐는 다른 문제지만 말이다.
하지만 마리아 소장은 안보실장과는 생각이 다른 모양이었다.
“경완 씨가 왜 적합한 인물이 아니죠? 경완 씨만큼 초능력 사용과 활용에 능숙한 사람이 또 있는 줄 알아요? 스마트 포스필드 기술도 그가 아니었으면 몇 년은 더 개발해야 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