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전생-더 빌런 237화
23-팍스 위버멘쉬
일본의 기질은 이중적이다. 강자에게 순종하면서도 그것을 극복하고자 노력하고, 하극상을 싫어하면서도 성공한 하극상에는 관대했다. 일본에 여행 오는 것은 반기지만 이주와 이민에 관해서는 무척이나 배타적이었다.
요하네스의 말에서 경완은 일본이 위버멘쉬의 위상을 인정하면서도 다른 방편으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용을 쓰고 있으며 그것이 이번 일의 배경이라는 것을 읽어냈다.
아니다. 혹시 과도한 비약일지도 모르기에 경완은 일단 자신의 머리에 떠오른 추측을 의심했다.
“에이…… 설마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의 말을 듣겠어요?”
[정부 차원에선 그렇죠. 하지만 한국엔 친일파가 많습니다. 역사적으로 연명한 친일파 집안도 있고, 일본 우익에서 돈을 주고 키우는 신친일파도 많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게다가 친일파가 그대로 살아남아 그대로 민족교육자로 둔갑하고 족벌 사학으로서 오늘날까지 살아남아 있다고 하죠. 정치계에도 친일파 조부모를 둔 이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그래요?”
경완은 고개를 갸웃했다. 한국의 역사에 대해선 잘 몰라서 친일파가 제대로 청산이 안 됐다 수준까지만 알고 있었다.
“한국 역사에 대해서 잘 알고 계시네요?”
경완은 감탄했다. 하긴 위버멘쉬의 확장 전략을 보았을 때, 그 나라의 사회적 구조를 연구하는 건 필연적이었고, 역사는 그 나라의 전반적인 구조를 이해하기 위한 목차와도 같은 것이었다.
요하네스가 대꾸했다.
[한국의 극우와 일본의 극우가 비슷한 논조와 맥락으로 이야기하는 걸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한국에 우파가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죠.]
그의 관점에서 한국의 우파는 이상했다. 우파라고 하면 응당히 자유주의 사상을 옹호해야 하는 것 아닌가?
자유주의라고 하면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추구하고, 어떤 권력자로부터 받는 부당한 지배와 억압, 차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사상인데, 한국의 우파는 한국의 전신인 조선에 일본제국이 무슨 짓을 했는지 망각한 것 같은 언행을 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제국주의 시절을 그리워하는 일본 극우를 따라 하는 듯한 논조로 말을 할 리 없잖은가?
적어도 요하네스의 관점에서 스스로를 우파라고 말하면서도 일본 극우와 비슷한 주장을 하는 이들은 절대 우파가 아니었다.
다시 한번 을사늑약 같은 일이 벌어지면 텐노헤이카 반자이~라고 외치며 욱일기를 흔들어 댈 잠재적 매국노일 뿐.
서로 모양이 다른 나무가 똑같은 열매를 맺는다면, 사실 두 나무는 같은 종이거나, 하나의 뿌리를 공유하면서 다른 나무처럼 보이는 한 그루라고 생각하는 것이 상식적이었다.
“그래서 그 신친일파라는 자들이 이번 일의 배후에 있다고요?”
[배후에 있다고 하기보다는 일종의 촉매가 되었다고나 할까요? 조사해 보니 경완 씨에 대한 권력자들의 우려가 매우 깊은 모양입니다. 당사자들 앞에서 이런 말을 하기는 좀 그렇지만 경완 씨에게 공포마저 느끼고 있달까요?]
“아니……. 내가 한국에 뭘 했다고요?”
경완은 억울했다. 일본 후쿠시마 사태를 정리해서 한일 우호를 다지고, 기술을 빼내기 위해 마리아 소장을 납치한 중국에서 그녀를 구해내고, 서울 참사를 일으킨 중공을 작살 냈으며, 침략이나 마찬가지인 조선족 난민 대이동도 막아내지 않았던가?
감사패를 받았으면 받았지 자신을 무서워한 나머지 친일파가 부추긴다고 손을 잡고 자신을 견제한다니?
요하네스가 차근차근 이유를 설명했다.
[정부의 권위를 존중하지 않고, 딱히 애국자인 것도 아니면서, 명쾌한 해결을 위해선 법이나 관습 따위도 아랑곳하지 않죠. 더구나 그 누구도 감히 건들기 힘든 힘을 가지고도 재물이나 여자에도 별로 관심이 없고요.]
힘을 함부로 휘두르지 않는 정의로운 영웅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영웅 만들기를 한다고 거기에 휘둘릴 성품도 아니었으니, 돈과 명예, 여자 등 권력자들이 제공할 수 있는 그 어떤 것으로도 회유하지 못하고, 행동도 유도하기 어려운 존재는 확실히 부담스럽기 짝이 없었다.
아마 권력자들에게 이경완이라는 초인은 해체 불가능한 핵폭탄 같은 것이 아닐까?
“이해는 되네요.”
경완은 깔끔하게 인정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해가 된 만큼 한층 너그러워졌다. 아직 그로 인해 딱히 손해를 보거나 피해를 본 건 아니기 때문이었다.
종합초능력전술장비를 못 가지게 되었다고? 그는 그런 사소한 것 가지고 마음이 이랬다저랬다 하는 좀생이가 아니었다.
“아무튼, 그래서 그런 사실들을 말씀해 주시려고 전화를 하신 거예요?”
[대처가 필요하기 때문이죠.]
“굳이 대처할 필요가 있나요?”
[독버섯 같은 자들입니다. 한 번 물꼬를 터주면 마치 제가 잘났다고 옳은 듯이 튀어나오겠죠.]
그 말에는 경완도 일리가 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인터넷의 발달은 사람에게 표현의 자유를 가져왔지만 X신에게 스스로를 돌아보는 거울이 되어주진 못했다.
오히려 본인과 같은 X신들의 모임을 쉽게 만들어서 마치 본인이 X신이 아니라는 착각과 함께 무모한 용기를 부여해 주었다.
마치 여태 자신을 X신 취급했던 사회와 세상에 저항하는 투사라도 된 것처럼 말이다.
이는 친일 매국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원리였다.
사람이 부끄러워서 어떻게 그러냐고 싶겠지만, 애당초 부끄러움을 아는 인간이라면 동포를 침략자에게 팔아먹은 일을 자랑스럽게 정당화할 리 없었다.
“그 대처에 제가 필요하다는 말씀이네요.”
그렇지 않으면 굳이 이렇게 전화를 해서 사정을 설명할 리는 없었을 테니까.
[그렇습니다.]
요하네스의 수긍이 경완의 귀에는 별로 달갑지 않게 들렸다. 그 친일파라는 놈들의 집에 몰래 방문해서 협박이라도 해야 한다는 걸까, 아니면 언론 플레이를 하라는 걸까?
경완의 머리에 몇 가지 방법이 떠올랐지만 강경책은 강경책대로, 유화책은 유화책대로 부작용과 함께 그를 귀찮고 번거롭게 할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그래서 그는 우선 요하네스의 의견부터 들어보기로 했다.
“흐음……. 좋은 방법이라도 있으세요?”
[본진을 쳐야죠.]
“본진을 친다고요?”
일본을?
놀란 가운데 요하네스의 계획을 듣는 경완의 표정엔 감탄이 서렸다. 과연 지금의 위버멘쉬를 만들어낸 사람다운 계획이었다.
* * *
빳빳하게 쳐진 타프 아래서 미연은 바쁜 현대 사회를 잊고 불멍에 빠졌다.
“아~. 좋다. 그치 오빠?”
“응.”
“섬이라서 그런지 모기도 없고.”
“모기 있는데?”
“응? 모기 소리도 못 들었는데?”
미연의 말에 경완은 그녀의 눈앞에 회색의 덩어리를 보여주었다.
미연은 그게 뭔가 싶어 인상을 찡그리고 보다가 얼른 고개를 뺐다. 그것은 적어도 수백 마리의 모기가 뭉쳐진 모기 덩어리였다. 좀 더럽게 표현하자면 모기 경단이랄까?
그렇다. 미연이 모기에 시달리지 않은 이유는 무인도라 모기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경완이 초능력으로 접근하는 모기들을 죄다 잡아 모기 경단으로 뭉쳤기 때문이었다.
“아으! 치워!”
미연이 기겁을 하자 경완은 모기 경단을 모닥불 속에 던져 넣었다. 타닥타닥 모기 터지는 소리와 함께 단백질 타는 냄새가 피어올랐다.
미연이 타박했다.
“아이! 그걸 왜 거기에 던져?”
“오징어 굽는 냄새 같지 않아?”
“오빠, 진짜 무드 깨는 솜씨가 거장 수준인 거 알지?”
경완의 장난에 미연의 눈이 가늘어졌다.
경완은 뻔뻔하게 콧대를 높였다.
“내가 모르면 누가 알겠어?”
“오빠 덕분에 편하게 쉬는 거니까 봐줄게.”
미연은 그런 경완의 뻔뻔함에 피식 웃으며 표정을 풀었다. 경완은 자신이 그녀를 본의 아니게 가스라이팅한 건지, 그녀가 자신을 길들이려고 하는 건지 아리송했다.
그래도 일단 그녀의 말마따나 지금의 편안한 캠핑에 경완의 공이 지대한 건 부정할 수 없었다.
땅을 고르고 텐트와 타프를 치고 팩을 박는 일련의 과정들을 순식간에 끝낸 건 결국 그의 초능력이 있었던 덕분이다. 웜홀 능력의 편의성은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그런데 정말 일본 갈 거야?”
“가야지.”
경완이 대답했다.
그가 일본에 가는 이유. 그것은 현재 그를 견제하려는 정부와 정치권 내의 여론을 약화시키려, 그 일의 촉매가 된 신친일파의 입에 재갈을 물리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신친일파가 경완을 콕 집어서 견제하는 건 아니었다.
그들은 경완에 대해서 별생각이 없었고 그저 위버멘쉬의 코어 기술을 확보하고 싶어 하는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의 가교 역할을 하는 끄나풀에 불과했다.
경완이 TSTG를 가지는 걸 견제하는 건 그 일을 진행하는 와중에 일어나는 부차적인 일일 뿐이었다. 일단 지금 사람들의 시선에 경완은 친(親)위버멘쉬라고 보이는 모양이니까.
아무튼 요하네스는 위버멘쉬를 위해서라도 이 가교에 대한 견제를 필요로 했고 저도 모르게 불똥이 튄 경완에게 손을 내밀었다.
경완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요하네스와 모르는 사이도 아니었고, 그의 말마따나 패망한 제국을 추종하고 그리워하는 또라이들은 한 번 지그시 밟아서 김을 빼줘야 했다.
왜냐? 미친놈들을 가만 놔두면 사람들이 자기네들 상종하기 싫어서 가만히 놔두는 것도 모르고 점차 자기들의 개소리가 옳은 줄 안다. 일종의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는 식이다.
요하네스가 경완에게 그들을 혼내주라는 식의 청부를 했다면 어쩌면 거절했을 수도 있지만, 그가 제시한 방법론이 썩 경완의 마음에 들었다.
신친일파의 활동자금은 결국 일본 극우로부터 오는 돈이 아닌가?
즉, 일본에서 경완을 존중할수록, 그리고 그 존중이 감히 일본 극우조차 주둥이를 다물 수밖에 없도록 한다면 신친일파가 경완에게 수작을 부릴 가능성은 줄어든다.
물론 제정신이 아닌 놈들이라 예상치 못한 행동을 할 가능성은 언제든지 있지만, 그들과 끈이 연결된 이들이 죄다 또라이는 아닐 테니 경고의 의미는 충분히 전달할 수 있었다.
이러한 방법은 경완이 생각했던 강경책과 유화책,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제3의 방법이었으니, ‘본진을 친다’는 요하네스의 표현이 참으로 적절하다 할 수 있었다.
미연이 이런 모든 사정을 다 알고 걱정하는 건 아니지만 경완은 걱정하는 그녀를 안심시켰다.
“걱정 마. 별일 없을 테니까.”
“위험한 일 하지 말고, 악명도 쌓지 말고.”
“내가 위험할 일은 몇 개 없고, 이미 쌓인 악명이 있는데 거기서 조금 더 쌓는다고 티가,”
“아, 좀! 이럴 때는 그냥 알았다고 하면 안 돼?”
미연이 화가 나서 경완의 등짝을 때렸다.
하지만 초능력으로 등짝에 오는 충격을 완화한 경완은 태연하고 뻔뻔스럽게 대꾸했다.
“원래 남자는 이런 생물이야. 그냥 받아들여.”
여심을 잘 아는 스윗남은 또 모르겠지만, 경완은 그렇게 피곤하게 살기 싫었다.
그의 말에 미연은 웃는 낯으로 이를 악물었고, 경완도 이를 악물었다. 미연이 그의 옆구리를 꼬집었기 때문이다.
“오빠야말로 여자가 이런 생물인 걸 받아들이는 게 어때?”
“……우리 비긴 거로 하자.”
미연은 경완의 타협안을 나라 하나 무너뜨릴 것 같은 미소를 지으며 관대하게 수용했다.
* * *
무인도 캠핑에서 돌아온 경완은 본격적으로 요하네스의 계획에 따라 움직였다. 일단 일본에 들어가는 것부터 해결해야 했지만 어렵지 않았다.
그간 해결되지 않았던 일본의 골치를 완전히 해결해 준다는 명분은 경완의 입국 허락을 벼락같이 떨어지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