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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전생 더 빌런-241화 (241/367)

무한전생-더 빌런 241화

24-현지화

그녀는 경완을 데리고 시험장으로 들어가며 말을 이었다.

“아참. 미리 말해두겠는데 버전 1.1과 동시에 테스트할 거예요.”

“왜요?”

“아무래도 실전적인 면에서 성과를 빨리 보고 싶다고 윗사람들이 재촉하고 있어서요.”

“혹시 대련 같은 것도 하나요?”

경완의 물음에 마리아 소장은 웃으면서 대꾸했다.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 있죠.”

“정치하시면 잘하실 것 같아요.”

경완이 살짝 비꼬자 마리아 소장의 눈이 가늘어졌다. 하지만 그녀는 굳이 대꾸하지 않고 넘어갔다. 소개해줄 인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 소개할게요. 종합초능력전술장비 버전 1.1의 테스터, 이철 씨에요.”

“…….”

“…….”

뜻밖의 만남에 경완과 이철은 서로를 말없이 보았다.

“형이 테스터였어?”

“응. 그런데 네가 여기 왜 있어? 너도 테스터?”

“몰랐어?”

“응.”

이철이 고개를 끄덕이자 마리아 소장이 살짝 놀란 표정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보더니 물었다.

“두 사람 아는 사이였어요?”

그 질문에 둘이 고개를 끄덕이자 마리아 소장은 웃으며 박수를 쳤다.

“어머~ 잘됐네요.”

글쎄요? 경완을 보는 이철은 쓰게 웃었고, 그런 그를 보는 경완은 입맛을 다셨다.

* * *

이철. 히어로 명, 선더보이.

그가 이번 테스트의 테스터가 된 건 상부의 지시 때문이었다. 아무리 히어로라고 하지만 그는 공식적으로 경찰소속이었다.

그는 처음엔 그러려니 했다. 좋은 초능력 보조 장비가 나오면 으레 히어로가 가장 먼저 도입하곤 하기 때문이었다.

뜬소문에 의하면 특수 초능력 부대가 신무기를 가장 먼저 도입한다고 하는데 이철은 그런 소문은 믿지 않았다. 그런 초능력 부대 같은 것이 정말 있었다면 이철이 여태 히어로 노릇을 하진 않았을 것이다.

여기는 한국이었다.

이철이 경험한 현실은 이러했다. 여전히 국가 기관에선 초능력 인재에 대한 수요가 절실했고, 새로 각성하는 초능력자의 수준은 국가 기관이 요구하는 기준에 미치지 못했으며, 그마저도 민간 수요에 쪽쪽 빨리기 일쑤인 상황.

때문에 좀 등급이 떨어지는 인재라도 확보해서 육성해보자는 안건도 있었지만, 언제나 문제는 예산이었다.

설사 나라에 여윳돈이 있어도 국가 초능력 인재 육성에 예산이 배분되는 일은 없었다. 대기업의 로비 때문이었다.

그들이 내미는 명분은 해외인재 유출 방지, 솔직한 말로는 위버멘쉬 코리아와의 경쟁이었으니, 초능력 인재 육성 예산은 잘해봤자 민간 교육기관의 보조금 지원 수준에서 그쳤을 뿐 국가적 차원의 적극적 인재 영입으로는 넘어가지 못했다.

덕분에 이철은 국가에서 초능력자가 간절히 요구된다고 판단되는 일에 투입되어야 했고, 이번 종합초능력전술장치의 테스터가 된 것도 같은 맥락에서 벌어진 일이다.

최근 히어로라는 직업의 엔터테인먼트화가 가속됨에 따라서 선더보이로서 좀 널널해진 덕분에 이철은 히어로가 때아닌 테스터로 뽑힌 일에 별다른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그저 흔히 나라에서 하는 인재 돌려막기 인줄 알았다. 초능력 각성기 초기부터 그리해왔으니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경완과 마주하게 되다니.

이경완. 경찰에서, 아니 그보다 높은 곳에서부터 항상 예의주시하는 아주 강력한 초능력자. 잘 키운(?) 초능력자 한 명, 전략핵 부럽지 않다는 걸 몸소 증명한 장본인.

각국에서 제2의 이경완을 배출하기 위해서 노력 중이었다. 물론 인성은 빼고 말이다.

그런데 한국만 그런 노력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그 이유는 뭘까? 간단하다. 대한민국의 지도층이 막강한 힘이 개인의 손에 쥐어졌을 때 느끼는 압박감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그 힘이 잘못 건드렸다가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미친놈(?)의 손에 쥐어졌을 때에는 더욱 말이다.

그런데 제2의 이경완이라고? 그놈이 이경완처럼 막나가지 않을 보장이 어디있나?

사람을 믿느니 차라리 기계와 기술을 믿자는 것이 윗분들의 의중이었다. 그래서 국가와 사회에 대한 충성과 도덕심이 증명된 초능력 인재, 선더보이 이철에게 TSTG 종합초능전술장비의 테스터를 맡긴 것이다.

그런 충성과 도덕심이 증명된 인재가 이철뿐만은 아니지만, 적어도 정부에서 생각하기에 자신들이 가진 패 중에서 가장 좋을 걸 내민 것이다.

“요즘 잘 지내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마리아 소장이 다음 테스트를 준비하느라 불가피하게 생긴 대기 시간에 이철이 불쑥 말을 걸었다.

경완이 그의 말을 받았다.

“저야 어디서든 잘 지낼 수 있죠. 설사 그곳이 아포칼립스가 닥친 세기말이라고 해도요. 그런데 형은 어떻게, 잘 지내고 있어요? 요즘에도 그 선더보이인가 뭔가 하는 거 하고 있어요? 요즘 잘 안 보이던데…….”

“요즘 초능력 범죄 제압에 대한 히어로의 수요가 많이 줄어서 말이야.”

“히어로가 아니라 연예인이 되어가는 추세다?”

“일단은 그래.”

전 세계적인 추세는 아니지만 적어도 한국에서는 그랬다. 그도 그럴 것이 초능력 확장 장비 덕분에 어떤 초능력이든 일단 각성만 하면 써먹을 수 있게 되면서 초능력자에 대한 거대한 수요가 생겼기 때문이다.

즉, 초능력으로 범죄를 저지르지 않아도 각성만 하면 사회계층의 사다리를 올라갈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는 소리다.

그러다 보니 초능력 범죄가 급락했다. 어디 남미나 소말리아처럼 마약카르텔이나 군벌 때문에 원래 치안이 안 좋았던 곳이 초능력 때문에 더욱 개판이 되는 상황과 비교하면 양호함을 넘어 천국이었고, 바야흐로 K치안의 승리였다.

한편으론 불법 입국 초능력자가 급증하고 국제 초능력 양극화라는 용어가 만들어질 정도였지만 말이다.

아무튼 한국의 초능력자들은 굳이 빌런이 되지 않아도 먹고살 만했고, 기존 자본주의 사회의 규범에 잘 녹아들 수 있었으니 빌런, 다른 말로 초능력 범죄자를 잡는다는 히어로의 치안 활동은 자연히 뜸해질 수밖에 없었다.

재난이 없으면 소방관이 필요없는 것처럼 빌런이 없다면 히어로도 필요없는 법이다.

히어로가 히어로에서 엔터테이너로 전직하는 것도 먹고살려는 짓이었으니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랄까?

뭐 철밥통 공무원이나 마찬가지인 이철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오~ 연예인!”

“나는 아니라니까.”

경완이 놀리듯 말하자 이철이 미간을 찌푸렸다. 이철은 연예인 히어로 따위가 될 생각은 추호도 없었고, 그에 관해 더는 말하기 싫어서 경완의 근황을 물어보는 걸로 화제를 바꾸었다.

“미연이는 잘 지내지?”

“여전히 잘나가죠.”

“난 너희 둘이 그렇게 엮일 줄은 몰랐다.”

“저도요.”

경완이 마치 남일처럼 말하자 이철이 빤히 쳐다보았다. 그런 이철을 보며 경완이 반문했다.

“왜요?”

“전생에 나라를 구한 행운아답지 않은 반응이라서.”

그의 말에 경완은 코웃음을 쳤다. 본인이 구한 나라가 몇이고 세계가 몇인데?

아, 중간에 살짝 머리가 돌아버려서 멸망시킨 나라와 세상도 여럿 있기는 했지만 섬(Sum)하면 충분히 플러스가 되고도 남는다.

“제가 남들이 부러워하는 걸로 자긍심 같은 걸 느끼는 스타일이 아니라서요.”

“그래. 그랬지.”

이철은 쓰게 웃었다. 저 독고다이 스타일이 상부에서 여전히 경완을 유의하는 이유였다. 위에서 뭔가 당근을 제시하려고 해도 딱히 제시할 만한 것이 없으니까.

이경완이라는 인간은 인생에서 도대체 무엇을 추구하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야망이 있다기엔 너무나 게으르고 소시민적이었고, 소박하다기엔 종종 보이는 행동의 스케일이 너무나 컸다.

그래서 한때, 일각에선 탑스타 이미연을 이용해 보자는 의견도 나왔지만, 중공 참수 몰살 건 이후 싹 입을 다물었다. 누구도 먼저 나서서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고 싶어하지 않았다.

“신사분들. 준비 다 됐어요.”

마리아 소장의 말에 두 사람은 잡담을 그만두고 TSTG를 입은 채 시험장으로 들어갔다.

* * *

이철이 연구소에 방문해 TSTG의 테스트 시험을 두 번쯤 했을 경찰청장이 그를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이철 경사, 그래 요즘 어떻게 지냈나?”

“별탈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경찰청장은 이철의 안부를 잠깐 묻더니 이내 용건을 꺼냈다.

“세립 초능력 연구소에서 연구 중인 물건 있잖은가?”

“종합 초능력 전술장비 말씀이십니까?”

“그렇다네. 그런데 듣기로는 거기에 이경완 그자도 있다면서?”

“네.”

고개를 끄덕이는 그에게 청장이 꺼낸 이야기는 다름이 아니라 이경완과 친분을 도모해 보라는 권고의 형태를 띤 지시였다.

이철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런 식의 제안은 예전에도 한 번 받은 적이 있었다.

“혹시 프락치가 되라는 지시라면…….”

“아아. 그런 거 아니니까 그런 표정 짓지 말게.”

청장은 ‘거참 요즘 젊은이들은 표정이 참 솔직하단 말이야’라고 푸념하고는 말을 이었으니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이경완이라는 초능력자의 강력함을 알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미국 같은 나라에서도 전담 요원을 붙여서 통로를 만들어 두고 오해 살 일을 미리 안 만들려고 하지 않느냐, 위버멘쉬 같은 경우에는 무려 총수가 나서서 이경완을 끌어들이려는 모양새다,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지 않겠나?

“그래서 저입니까?”

“그와 딱히 악감정이 없고 또한 같은 시설 출신이라는 공감대가 있지 않나? 전혀 안면이 없는 것도 아니라면서?”

하지만 이철은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여태 연락도 없었던 제가 친근하게 굴려고 다가가면 도리어 의심할 겁니다.”

“그래?”

“녀석의 상식적이지 않은 행동 때문에 많은 사람이 간과하고 있지만 그 녀석은 굉장히 명석합니다.”

그 머리를 그 상식적이지 않은 행동을 위해서 사용해서 문제지.

이철의 말에 청장은 잠시 입을 닫고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억지로 다가가라는 게 아니야. 그저 자연스럽게 인연의 고리를 만들라는 거지. 상부에서도 협조할 걸세. 그 종합초능력전술장비의 테스트 기간을 늘리는 것도 지원의 한 방편이겠군.”

“그렇습니까?”

결국 까라면 까야 할 때가 있는 것이 조직에 몸담은 사람의 운명이었다.

청장은 이철의 표정에 피곤이 서리자 다독여주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수수방관할 순 없다는 건 자네도 이해할 걸세. 안 되면 어쩔 수 없지. 친하게 지내고 싶다고 모두가 친하게 지내는 것은 아니잖은가?”

이철은 맞다고 맞장구를 친 후 청장의 다독임과 임무의 중요성에 대한 강조를 다시 한 번 듣고는 사무실을 나왔다. 하지만 경완의 무심한 듯 만사 지루해하는 특유의 표정이 떠오르니 한숨이 푹 나왔다.

그 녀석하고 어떻게 친해지라는 건지

하지만 미리 큰 걱정을 할 필요는 없었다. 테스트가 진행되면서 자연히 얽히게 된 것이다.

“형. 괜찮아?”

“아니.”

시험장 바닥에 누운 이철은 온몸이 얼얼하고 머리가 멍했다.

TSTG는 엑소스켈레톤 아머를 뼈대로 만들어진 전신갑주. 무게가 상당했고, 메치기라도 당하면 그 무게가 그대로 바닥에 충돌하는 충격이 그 안에 있는 사람에게도 전달되었다.

당연하게도 그 안에 있는 사람이 이철이었다.

“어떻게 한 거야?”

이철은 경완이 내민 손을 잡고 일어나며 물었다.

그의 입장에선 경완과 힘겨루기에 들어가는 순간에 세상이 빙글 돌더니 전신에 비명이 튀어나올 만큼 둔중한 충격이 가해졌다.

“밭다리후리기.”

“뭐?”

이철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자신도 훈련받을 만큼 받은 경찰이었다. 당연히 유도도 일정 수준이 이상 배웠으니 밭다리후리기였으면 자신이 모를 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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