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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전생 더 빌런-242화 (242/367)

무한전생-더 빌런 242화

24-현지화

“그거 입고 있으니까 감각이 둔해진 거잖아. 소장님. 저기 마스크에 붙은 디스플레이 좋은 거 맞아요?”

경완이 고개를 돌려 시험장 가장자리에서 데이터를 기록하고 있던 마리아 소장에게 묻자 그녀가 모니터를 확인하고 말했다.

“외부 카메라에서 안면 디스플레이까지 딜레이가 0.1초 정도 있네요.”

“그럼 그렇지. 그거 실전에 들어가면 생각보다 큰 문제가 될걸요?”

“해상도를 낮추면 딜레이를 줄일 수 있어요. 음. 이철 씨? 지금 보이는 거 어때요?”

이철은 바뀐 시야에 앓는 소리를 했다.

“이상한데요?”

“좀 모자이크 같죠. 하지만 딜레이는 더 많이 줄었을 테니 다시 한 번 붙어봐요.”

마리아 소장이 지시했다. 이번 대련 테스트의 목적은 각 버전의 TSTG에 사용된 엑소스켈레톤 골격에 얼마나 부하(負荷)가 가해지느냐를 확인하려는 것이었는데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다시 진행된 대련. 하지만 이철은 다시 한 번 발목 후리기에 균형을 잃고 주저앉아 버렸다.

이철은 바닥을 짚고 일어나며 억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너 유도하지 그랬냐?”

저런 마크원을 닮은 둔한 걸 입고도 반응조차 힘든 발목 후리기를 날리다니……. 최소 메달감이 아닐까?

경완은 그의 투덜거림을 한 귀로 흘리면서 고개를 저었다.

“형. 아무래도 눈감고 해야겠는데?”

“그럼 나야 고맙고.”

“내가 아니라 형이.”

그 말에 이철은 눈을 껌벅였다.

“눈을 감으면 어떻게 하라고?”

“형 전기 능력자 아니었어? 전기뱀장어처럼 초능력으로 전자기파를 감지하면 되잖아? 어차피 그 안면 디스플레이는 믿을 게 못 돼.”

어차피 눈으로 들어오는 빛도 전자기파잖아라고 중얼거리는 경완을 보며 이철은 어이가 없었다.

“그게 말처럼 쉽게 되는 줄 알아?”

“쉽진 않지만 가능해.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는 게 세상의 법칙이잖아?”

전자기장에 간섭할 수 있으면 역으로 전자기장에 간섭받을 수 있다는 논리에 이철은 어이가 없었다.

경완이 하는 말은 근육으로 사물에 힘을 가하면 사물 역시 근육에 힘을 가하니 그 근육에 가해지는 부하(負荷)를 읽고 사물의 위치와 형태 등을 알아낸다는 식의 말과 다름없었다.

이철이 반박하려고 했지만 순간 청장의 당부가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경완과 좀 친해져 보라는…….

청장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강요보다는 권유의 형식으로 말했으니 듣는 시늉은 해야 하지 않겠는가?

“가르쳐 줄 수 있어?”

그래서 이철은 경완의 말에 반박하는 대신 도움을 요청했고, 경완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철은 주말에 경완의 집에 방문하게 되었다.

“어서와, 이철 오빠. 오랜만이네?”

“그러게. 이렇게 직접 만나는 건 정말 오랜만이다.”

오랜만에 만나지만 이철은 미연을 오랜만에 보는 것 같지 않았다. 각종 드라마나 프로그램에서 얼굴을 자주 볼 수 있었으니까.

잘 사느냐는 둥, 여자친구는 있느냐는 둥 이철이 미연의 짓궂고 곤란한 질문을 마주하는 와중에 경완이 부스스한 머리로 배를 긁적거리며 침실에서 나왔다.

“……너 오늘 나 가르쳐 주기로 한 거 기억은 하고 있니?”

“응.”

경완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대뜸 이렇게 말했다.

“가자.”

“……가긴 어딜?”

“여기서 연습할 수는 없잖아?”

경완의 말이 맞긴 맞는데 이철이 순순히 수긍할 수 없었던 이유는 방금 침실에서 나온 몰골로 나가려는 경완 때문이었다.

눈곱도 그대로 붙어 있고 머리도 삐쳐있지 않은가? 그의 두꺼운 낯가죽을 생각하면 부끄러움은 이철의 몫이었다.

그와 같은 심정이었는지 미연이 경완의 등을 화장실로 밀었다.

“나가기 전에 세수부터 하고 나와.”

“금방 다녀올 건데 왜?”

“다른 사람들이 흉봐.”

“사람 없는 곳에서 할…….”

“잔말 말고 들어가!”

경완의 대꾸에 결국 미연이 앙칼지게 소리치며 그를 반강제로 화장실에 밀어 넣었다.

그러한 모습을 이철이 묘한 표정으로 보았다. 뭐랄까? 탑연예인과 이경완의 생활 치고 굉장히 평범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아무리 중국에서 그런 일을 한 이경완이라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금방 화장실에서 나온 경완은 세수를 했는지 얼굴이 촉촉했지만 삐진 머리는 여전했다. 미연은 거기에 대해서 더 말하기 싫은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고 경완은 그녀의 시선을 피하려는 듯 이철을 데리고 마당으로 나왔다.

그리고 거기서 웜홀을 통해 무인도로 이동했다.

“여기는……?”

“미연이가 산 섬. 무인도야.”

아무리 히어로라지만 소시민 티를 벗지 못한 이철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미연이 자신과 같은 시설 출신이라는 사실이 낯설게 느껴질 정도였다. 연예인이라는 게 그렇게 잘 번다는 말인가? 아무리 히어로 산업이 엔터테이먼트로 변하고 있지만 국가 소속이라 그런 흐름에서 벗어난 이철에겐 실감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잡생각도 잠시 경완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본론이라고 치기엔 좀 뜬금없는 질문이었지만 말이다.

“팔은 왜 팔일까?”

“팔? 무슨 팔?”

“숫자 팔 말고 몸에 달린 팔 말이야.”

“……당연히 팔이라고 이름을 붙였으니까,”

“아, 내가 질문을 잘못했네. 팔은 왜 신체의 일부분일까?”

“경완아. 너무 말을 빙빙 돌리는 거 같지 않아?”

“좀 더 들어봐. 나중에 이해 못 해서 다시 묻지 말고. 팔이 잘려나가서 썩어문드러져도 여전히 신체의 일부라고 할 수 있을까? 팔이 잘려나간다고 해도 썩지도 않고 여전히 내 생각대로 팔딱팔딱 움직인다면 신체의 일부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경완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이철이 잠자코 이야기를 듣고만 있자 말을 이었다.

“즉, 내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으면 그게 바로 내 신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초능력을 내 몸처럼 다루라고?”

“정확히는 S입자지. 초능력이란 결국 S입자를 매개로 발현되는 현상에 지나지 않거든. 그런데 S입자는 정신에 영향을 받는 입자잖아?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통제되고 있는 S입자는 일종의 확장된 무형의 신체라고 할 수 있지. 그래서 이를 유념해두면 초능감각을 일깨울 수 있다고 생각해.”

“…….”

“왜 그리 의심하는 눈초리인데? 초능력이 발전할 가능성이 없는 거라면 초능력을 훈련하고 계발하는 사람이 없지 않을까?”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울 리가 없잖아?”

“당연하지. 그러니까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한 거야.”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싫으면 돌아가던가? 가르쳐 달라고 했던 건 형이었어.”

경완의 말에 이철은 다시 입을 다물고 경완의 설명을 들었다. 아무래도 TSTG의 운용에 있어 시야가 아닌 초능감각을 익히는 것은 필수가 될 것 같으니까.

아무리 기술이 발달해도 카메라와 디스플레이의 딜레이는 남을 수밖에 없었고, 0.001초의 딜레이라도 음속이라면 디스플레이로 보는 건 약 30센티 이전의 위치였다. 그리고 이는 각종 화기가 발달한 현대의 무기체계에서 치명상을 입을 수도 있을 오차였다.

물론 튼튼하게 만들어졌다지만 기왕이면 맞는 것보다는 안 맞는 게 좋지 않은가? 아무리 초능력 장비라고 해도 물량 앞에 장사 없었다.

이와 같은 논리에는 마리아 소장도 동의했다. 그리고 일단 초능감각을 익힌 사람이 TSTG를 운용한다면 안면 디스플레이가 필요없기 때문에 일단 생산비가 줄어든다.

또한 그만큼 줄어든 공간에 다른 유용한 걸 추가할 수도 있었고, 컴퓨팅 자원을 지원으로 더 돌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결국 기술력을 이용해 초능력자 간의 격차를 줄여보고자 하는 TSTG의 의의가 조금 훼손되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런 거창한 건 윗분들이나 고민할 사항이지 이철 자신의 몫이 아니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일단 출력을 미세하게 조절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할까?”

“미세하게?”

“형이 갑작스럽게 제3의 눈을 뜨는 건 어렵지만 전기를 다루고 있잖아? 그리고 전기력은 인간에게 가장 친숙하면서도 생명체에 직관적인 힘이기도 하고.”

눈으로 본다는 건 결국 전자기파를 감지한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뇌도 전기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며 현대 문명도 전기 에너지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니 전기능력이야말로 인간이 가장 개량하고 응용하기 쉬운 능력이라 할 수 있었다.

“잠시만.”

경완은 설명하다 말고 갑자기 웜홀을 열고 어디론가 사라지더니 뭔가 작은 기계를 손에 쥐고 돌아왔다.

“자.”

“이건..”

경완이 준 건 디지털 멀티미터였다. 전류, 전압 등을 측정할 수 있는 기기 말이다.

“이건 왜?”

“우선 밀리볼트, 밀리암페어 수준으로 출력을 미세하게 조절할 수 있어야 해. 이건 그걸 위한 훈련 도구고.”

경완이 일러준 훈련법은 일단 미세한 출력을 낼 수 있을 정도로 능력에 대한 통제력을 확보하고, 그다음엔 그 미세한 출력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었다.

“일단 거기까지가 1단계야.”

“너무 단순한데…….”

“원래 진리는 단순한 곳에 있는 거야. 이게 말은 쉽지 직접 해보려면 피똥 쌀걸? 점심은 먹고 왔어?”

“어.”

“잘됐네.”

경완은 고개를 끄덕이며 웜홀을 열었다.

“그럼 저녁 먹을 때 올 테니까 열심히 해.”

“자, 잠깐!”

이철이 불렀지만 경완은 무시하고 웜홀 너머로 사라져 버렸고, 이철은 홀로 황망히 무인도에 남겨졌다.

그는 잠시 경완이 손에 쥐여준 멀티미터를 물끄러미 보더니 호주머니에서 자신의 폰을 꺼냈다.

전파가 잡히지 않았다.

그는 결국 저녁 먹을 때가 되어서 경완이 그를 데리러 올 때까지 얌전히 멀티미터를 가지고 자신의 전기능력과 씨름을 해야 했다.

* * *

이철이 초능감각 훈련을 위해 경완의 집에 주말마다 방문한다는 사실에 청장은 매우 고무된 느낌인지 하루는 이철을 불러다가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1대1 지도는커녕 무인도에 거의 방치되다시피 한 상황이지만 그것만 해도 어딘가? 윗선에선 느리지만 확실히 이경완과의 끈을 만들어두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러는 와중에 김준이 경완을 방문했다.

“무슨 일이에요?”

“그냥저냥 친분을 좀 다지려고요.”

그렇게 말하는 김준에게선 피곤한 티가 났다.

“김준 씨 상사가 지시한 모양이네요.”

“……경완 씨는 속일 수가 없네요.”

“김준 씨가 괜한 일로 사람을 귀찮게 할 리가 없잖아요?”

신뢰 가득한 말에 김준은 쓰게 웃으면서 자조적인 목소리로 ‘경완 씨는 정말 누구와 친하게 지내기는 힘든 사람이잖아요?’라고 말했고 경완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경완을 가장 오래 옆에서 겪어봤다고 자부할 수 있는 김준에게 있어 이경완이라는 사람은 세간에서 말하는 일반적인 우정, 사랑 같은 걸 기대하기 힘든 사람이었다. 아무래도 자기만의 독특한 기준이 있어서 아닐까?

그래서 그런지 현재 그와 가장 친하다고 여겨지는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마리아 소장이었다. 이미연이야 연인위치에 있으니 예외로 치고 말이다.

경완을 주시하는 이들은 언제부터인진 모르지만 그와 마리아 소장 사이에 기묘한 형태의 우정이 맺어져 있다고 보았는데,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어떤 분석가는 서울 참사를 계기로 공감대가 형성되었다고 말하지만, 김준의 판단으론 그저 세상에서 이해받기 힘든 독특한 괴짜들이 유유상종을 이루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그는 상사의 지시가 더욱 답답했다. 자신과 같이 멀쩡한 사람이 어떻게 이경완과 이 이상 친해질 수 있단 말인가?

솔직히 이 정도까지 해낸 자신이 대견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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