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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전생 더 빌런-244화 (244/367)

무한전생-더 빌런 244화

24-현지화

레일건 자체는 전자기학적으로 매우 만들기 쉬운 물건이었고, 출력을 조절하는 것으로 레일의 내구성과 타협을 볼 수 있었다. 함포용 레일건과 달리 사람이 들고 쏘는 레일건은 초장거리 저격을 상정하지 않으니까.

“한국도 미국 못지않게 화력을 사랑하지만, 저 형은 명색이 경찰 소속이라 그런 화기류는 못 쓸 거예요.”

“그렇군요. 이해가 됩니다.”

사실은 TSTG 때문에 초능감각을 계발하려고 하는 거지만 굳이 거기까지 말해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암튼, 이만. 이 형과 가볼 곳이 있어서요.”

“알겠습니다. 저도 이만 가보죠.”

김준은 같이 가도 되겠냐고 물어볼 정도로 눈치 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경완은 현관을 나가는 그에게 손을 흔들어주고는 현관문이 닫히자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소장님. 네, 접니다. 아무래도 그걸 써야 할 것 같아요. 동의요? 당연히 받았죠. 네, 네. 그럼 곧 갈게요. 오래 기다리지 않으셔도 될 거예요.”

통화가 끝낸 경완의 뒤를 따라 웜홀을 통과한 이철은 어느 한적한 마당에 발을 내디뎠다.

“어서 와요!”

마당이 딸린 주택에서 마리아 소장이 나오며 두 사람을 반겼다.

“박사님? 여기는 어디죠?”

“제 별장이에요.”

그녀는 이철의 의문에 대답해주고 두 사람을 뒤뜰로 데려갔다. 그리고 이철은 거기서 한쪽 면이 투명한 커다란 물탱크 하나를 볼 수 있었다.

그런데 그냥 물탱크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있는 게 아니라 투명한 벽 앞에는 평면 모니터가 놓여있었고, 그 옆에는 크레인 같은 것이 있었다.

“저게 뭐죠?”

“이철 씨 초능감각 수행을 도와줄 기계예요.”

마리아는 그렇게 말하면서 이철에게 양팔에 씌우는 토시 같은 걸 건네주었다.

“차요.”

“뭔데요?”

“센서예요.”

“음. 저게 어떻게 제 훈련을 도와주는지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이철의 물음에 마리아는 웃으면서 시선을 피하더니 경완을 보았다.

“경완 씨?”

“저요?”

“왜 모르는 척해요? 경완 씨 부탁 때문에 만든 건데.”

경완은 눈이 가늘어진 이철과 시선을 마주하지 않으려고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며 설명했다.

“어~ 그러니까 내가 트레이너도 아니고, 훈련 잘하고 있는지 온종일 감시하면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그것도 못 하냐 면박을 주면 인간관계가 파괴되고…….”

“변명은 됐고, 그래서 어떤 방식인데?”

“그래서 기계적으로 알아서 훈련을 감시하는 기계를 만든 거야. 물은 답을 알고 있다는 말 알지?”

“유사과학?”

이철은 미간을 찌푸렸다.

경찰 소속이라 일본에서 건너온 육각수니 뭐니 하는 걸 파는 다단계 사기 조직을 잡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물은 답을 알고 있다는 말에 육각수, 유사과학은 순서대로 연상한 것이다.

하지만 경완은 고개를 저었다.

“그거 말고 훨씬 옛날 중세시대 때.”

“……?”

경완의 말에 이철이 어리둥절했지만 이어진 설명에 표정이 굳고 말았다.

“그러니까 마녀인지 아닌지 판별할 때 물에 던지잖아? 가라앉으면 사람이고, 뜨면 마녀라고.”

그게 물은 답을 알고 있다고?

“그러니까 저게…….”

“훈련의 성과가 미진하면 물고문을 하게 되어 있는 기계예요.”

경완이 빙빙 둘러서 설명하는 게 답답해서 더는 참지 못한 마리아 소장이 끼어들어 간단히 일축했다.

“역시 마리아 소장님. 굳이 제가 설명할…….”

“혹시나 오해가 있을까 봐 말해두지만, 이 아이디어는 온전히 경완 씨 머리에서 나온 거예요.”

“흐음. 왜?”

경완은 자신을 향한 이철의 도끼눈 시선을 두꺼운 낯가죽으로 받아냈다.

이철은 무슨 말을 더 꺼내는 대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그를 향해 경완이 뻔뻔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내가 보기에 형의 훈련이 지지부진한 건 긴장감이 없어서 그래. 혼자서 공기 좋고 파도 좋은 무인도 해변가에 있어봤자 훈련이 되겠어? 괜히 잡생각만 나지. 그~ 무협지나 만화 같은 거에도 스펙업의 효율을 위해서 약간의 위험을 가미하잖아? 밑에 칼날 꼬챙이 같은 걸 거꾸로 박아둔다던가, 뒤에 미친개를 붙인다던가. 다 긴장감을 조성해서,”

“그렇게까지 해야 하냐?!”

경악하는 이철을 경완이 안심시켰다.

“요즘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그런 욕 먹을 짓을 해? 자칫 다치면 오히려 손해라고. 그래서 물이야. 물은 괴롭기만 하지 다칠 일은 없잖아?”

물고문도 충분히 욕먹을 짓 같은데라고 이철이 속으로 뇌까릴 때 마리아 소장이 웃으며 덧붙였다.

“깨끗하게 정수하고 소독한 물이라 코로 들어도 괜찮답니다.”

“…….”

역시 매드사이언티스트.

이철은 심란한 표정으로 한쪽이 투명한 물탱크를 보았다.

“포기할 거야?”

귀에 들어오는 경완의 질문에 이철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사서 고생하는 길로 들어갔다.

* * *

“허푸! 허푸!”

크레인이 돌아가며 사람 하나를 끌어 올렸다. 사서 물고문을 받기로 한 이철이었다.

“줄었어요?”

경완의 질문에 이철의 훈련 데이터를 정리하고 있던 마리아 소장이 대답했다.

“폐활량이 늘고 있어요.”

“그건 당연한 거 아닌가요?”

“그 수치가 정상 범주를 훨씬 뛰어넘는 건 어떻게 생각해요?”

“……산소를 초능력으로 공급하고 있다고요?”

“이산화탄소를 다시 분해해서 흡수하고 있는 건지, 세포에 직접적으로 전기 에너지를 공급하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네요.”

경완이 고안하고, 마리아 소장이 제작했으며, 이철이 그 대상인 ‘물은 답을 알고 있다’ 훈련의 방식은 이러했다.

그의 양손에 전극을 쥐여준다. 물 밖의 모니터에는 전극 사이에 흐르는 전압과 전류의 데이터를 표시해주고, 크레인에 그의 두 다리를 묶은 채 거꾸로 물탱크에 넣어지면, 그가 투명한 벽 밖으로 보이는 모니터를 보면서 미세하게 자신의 전기능력을 조절하는 것.

또, 하나는 물에 넣기 전 제한시간 안에 모니터에 표시되는 목표 데이터대로 이철이 자신의 능력을 미세조절하는 것이다.

물론 실패하면 크레인이 격렬하게 그를 물탱크에 첨벙첨벙 적시게 되어 있었으니, 크레인의 출력이 강해서 미리 물에 담가놓는 것만큼 괴로웠다.

양쪽 모두 제한시간과 물고문이라는 긴장감을 부여했지만 이상하게도 이철의 폐활량 증가라는 성과만 가져왔다.

“긴장감이 모자라서 그런 거 아닐까요?”

경완의 물음에 마리아 소장이 고개를 저었다.

“제 생각에는 긴장감의 방향이 문제인 것 같아요.”

“방향이요?”

“결국 수중 무호흡의 고통을 벗어나기 위한 방식으로 능력이 발달했잖아요.”

그러니까 훈련의 목표인 능력 미세조절을 통한 위기의 해소보다는 폐활량의 증가로 위기 및 고통에 대한 내성을 길러냈다는 그녀의 말은, 초능력의 계발에서 초능력이 자극에 1차적으로 반응한다는 증거였다.

이는 세계의 여러 초능력 각성, 능력 계발 사례에서도 충분히 확인된 사실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대로 계속해 봤자 소용없다는 걸 깨달은 경완의 질문에 마리아 소장은 대답했다.

“제가 보기엔 결국 경완 씨가 귀찮음을 감수하는 방법밖에 없어요.”

그 말에 경완은 잠시 고민하다 착잡한지 입맛을 다시 말했다.

“미리 말씀해 주시지…….”

“저는 경완 씨가 해달라고 한 걸 해줬을 뿐이에요.”

“가만히 있어도 이렇게 데이터가 굴러들어 오니까 굳이 지적할 필요를 못 느끼셨고요?”

마리아 소장은 웃으며 시선을 피했고, 그런 그녀를 보는 경완의 눈은 가늘었다.

하지만 그는 귀찮음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결국 마리아 소장의 도움을 필요로 했고, 새로운 훈련 방식을 도입했다.

이철은 갑자기 지상에서 지하로 장소가 바뀌자 의아해했다.

“이제 그 물고문은 안 하는 거냐?”

“효과없음으로 판명되어서 폐기됐어.”

“그럼 내 고생은?”

이철의 항의에 경완은 말없이 그의 위아래를 훑어보았다.

“왜?”

“형은 생각보다 상당히 육체파였다는 게 판명되어서 말이야…….”

체벌이나 벌칙 등의 반대급부로 긴장감을 조정하는 식의 훈련법은 초능력자 육성에 있어서 공공연하게 사용되는 방법이었다. 인권탄압이라는 말도 있지만, 효과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었다.

물론 마리아 소장의 말대로 1차적인 자극에 저항하거나 내성을 기르는 방식으로 능력이 발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그렇다고 목표하던 방향으로 계발을 전혀 못 시킨 것도 아니었다. 분명 목표하던 식으로 초능력을 계발한 사례도 충분히 많았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가 인간은 자기 세뇌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고통과 압박의 원인을 1차원적이 아닌 다른 것으로 치환함으로써 목표한 성과를 이룰 수 있달까?

그래서 경완은 이철을 탓했다.

“형이 형의 무의식에게 물 때문이 아니라 본인의 산만함 때문에 능력계발에 집중 못 한 걸 제대로 납득시키지 못하니까 소장님이 기껏 만들어 주신 장비가 소용없게 되었잖아.”

이철은 어이가 없었다. 이게 뭔 개소리야?

“그거랑 육체파랑 무슨 상관인데?”

“이성적인 생각보다는 본능과 무의식에 의존하는 게 육체파잖아? 그래서 온갖 훈련으로 무의식에 갖가지 기술들을 박아넣는 거지.”

생각을 하고 움직이는 것보다는 척추반사가 확실히 빠르기는 했다. 그래서 토하도록 훈련해서 기술을 척추에 새겨넣는 거 아니겠는가?

이철이 실내에서 일하는 인텔리가 아니라 밖에서 범죄자를 잡는 경찰 겸 히어로, 즉 육체파라 제법 설득력이 있달까?

전혀 아니었다.

“어이가 없네.”

자기 세뇌가 안 되면 어떻게 운동선수들이 그 힘든 훈련을 이겨내겠는가?

지금의 고통과 인내가 내일의 영광이 될 거라는 자기세뇌에 가까운 믿음이 아니면 그 힘든 훈련을 견뎌내기 쉽지 않았다.

경완은 이철이 자신의 궤변에 넘어가지 않는 것 같자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어차피 방금 전까지 했던 말들은 별 의미 없이, 귀찮게 직접 움직여야 할 상황에 대한 불만으로 구시렁댔던 것, 그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아무튼, 그래서 이번엔 마리아 소장님의 조언을 받아 확실한 훈련 프로그램을 짜왔어.”

“그래?”

경완의 궤변과 헛소리에 휘둘린 이철은 무의미한 물고문에 대한 불만은 어느새 잊어먹고 마리아 소장이 짰다는 프로그램이 궁금해졌다.

왜 이 지하에 내려와 있는가? 매트가 깔린 지하실의 공간은 마치 그가 한때 유도를 배웠던 체육관을 연상시켰다.

다만 다른 건 정말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이라는 점과 신기할 정도로 목소리가 울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렇게나 고립된 공간인데도 말이다. 벽에 붙어있는 두툼한 패드 때문일까?

그래서 그런지 이철에겐 이 지하공간이 정신병동의 격리실을 확대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자, 이거 받아요.”

그때 마리아 소장이 들어와 마치 펜싱 경기 때 사용하는 세검을 닮은 얇은 회초리를 가져와 두 사람의 손에 쥐여주고는 지하실에서 나갔다.

이철의 귀에 문이 닫히며 철컥하고 잠기는 소리가 매우 불길하게 들려왔다.

그가 다시 경완을 보며 물었다.

“그래서 이거 가지고 대련이라도 하는 거야?”

“비슷해.”

경완은 읽기 힘든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전창에 붙어있는 스피커에서 마리아의 목소리가 나왔다.

[이철 씨. 일단 물은 답을 알고 있다 프로그램이 실패한 원인에 대해선 이미 설명을 들으셨으니, 바로 이번 프로그램에 대해서 간략히 말씀드릴게요. 일단 이철 씨가 1차적 자극에 더 강한 반응을 보인다는 전제가 확인되었으니, 이를 이용해 확실한 동기를 부여할 거예요.]

마리아 소장의 설명은 길고 언 듯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확실히 이철에게 불안감을 주었다.

[…완전히 시야와 청각이 차단된 상황에서의 자극이 새로운 감각에 대한 무의식적 수요를 증대…….]

블라블라블라블라.

설명이 길어지자 경완이 끼어들었다.

“그러니까 불도 끄고 스피커에선 시끄러운 소리도 나온 상태에서 존나 맞는 거야. 언제까지? 초능감각을 깨달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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