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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전생 더 빌런-245화 (245/367)

무한전생-더 빌런 245화

24-현지화

경완의 말에 이철이 눈알을 부지런히 굴렸다. 그러다 저도 모르게 뒤를 쳐다보자 경완이 한마디 했다.

“문? 잠겼어.”

도망갈 곳이 없다는 걸 깨달은 이철이 경완을 향해 말했다.

“내가 형이지?”

“나는 형을 도울 뿐이야. 싫으면 말든지.”

지레 겁먹어서 하는 말에 경완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꾸했다.

솔직히 이 모든 게 그에겐 귀찮은 일이었다. 그래도 이렇게 이철이 초능감각을 일깨우는 걸 돕겠다고 한 이유는 초능감각이 있으면 생존에 유리해서였다.

아무리 함께 지낸 기간이 짧아도 이철은 나름대로 괜찮은 사람이었고, 위험한 일에 몸소 나서는 사람이었다.

좀 눈치가 없고 타협하지 않는 성격이 답답하기는 했지만 그런 인연이 불의의 일로 죽는 건 아무래도 경완에겐 찜찜한 일이었다.

그래도 강압적으로 권유하진 않고 어디까지나 선택권을 이철에게 넘겼다.

소를 물가까지 끌고는 가도 억지로 먹이지는 못한다는 말 때문은 아니었다. 경완에겐 며칠 소에게 물을 안 주면 물가에서 물을 마시려고 하는 정도가 아니라 물가로 달려가려고 안달이 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까지 하긴 너무나 귀찮았을 뿐이다.

문을 잠근 건 그가 아니다. 마리아 소장이지.

아무튼, 그가 어깨를 으쓱하며 ‘네 맘대로 하세요’라는 분위기를 풍기자 이철은 심경이 복잡한지 머리를 긁적이다가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마리아 소장의 ‘시작할까요?’라는 음성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이렇게까지 준비를 해줬는데 맛은 한 번 봐야지 않겠는가?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는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게 되었다.

찰싹!

“아악!”

삐레~ 삐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눈을 감고 잔뜩 긴장하고 있던 이철은 첫 방부터 비명을 질렀다.

스피커에선 마이클 잭슨의 ‘Beat it’이 흥겹게 울리고 있었다.

경완은 처음부터 살살 때려서 고통에 적응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물은 답은 알고 있다는데도 정답 대신 폐활량을 키울 정도로 적응력이 뛰어난 이철이었다.

약하게 때려서 고통에 적응할 시간을 주었다간 자칫 전기자극으로 뇌내마약을 뿜어서 고통을 잊는 능력을 각성할지도 모른다. 아니면 전기로 하는 부분 마취를 익힐지도 모르지.

그러면 또 방식을 바꿔야 하기 때문에 경완은 좀 귀찮더라도 신경을 써서 한 번에 이 과제를 해결하기로 했다.

삐레~~ 삐레~~ 노 워너 원 투 비 디삐~딧

오~ 예~

귀에 들려오는 세기의 명곡에 누가 추임새를 넣은 듯한 느낌도 있었지만, 순간 도대체 누가 선곡한 건지 의문도 들었지만 그딴 생각할 틈은 없었다.

잠깐이라도 긴장을 놓으면 어떻게 알았는지 어둠 속에서 날아온 회초리가 몸을 때렸다.

찰싹! 찰싹!

“악! 윽!”

타격 부위는 등짝, 허벅지, 목덜미 상하좌우 전후좌우를 가리지 않았다.

심지어 안면에도 회초리가 날아왔다. 이마에 가로로 철썩 소리가 났을 때는 저절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아마 분명 회초리 자국이 남았으리라…….

그렇게 이철은 두 시간 동안 잊을 만하면 맞고, 긴장을 풀 때마다 맞았다. 그는 경완의 조언을 떠올리며 어떻게든 시청각이 상실된 상황에서 주변을 인식하기 위한 감각을 일깨우려 애를 썼다.

초능감각의 매커니즘은 물이 답을 알고 있다는 물고문을 할 때 자세히 들었다. 경완이 전기능력의 미세조절을 우선하는 것은 그렇게 미세한 조절을 익혀야 발현된 전기능력에 영향을 미치는 미세한 변화를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초능력이라고 하지만 작용과 반작용은 있을 수밖에 없고, 발현된 능력에 반작용으로 돌아오는 미세한 변화를 감지해내게 되면 그것이 초능감각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그러한 조언에 따라 이철은 최대한 전기장을 사방에 깔고 그 전기장 내의 변화를 감지하려고 애를 썼다.

차알싹!

“끄악!”

애를 쓰기는 했다. 결과적으로는 실패해서 그렇지.

파지직!

어둠 속 대련을 매일 2시간씩 한 일주일 후, 시험장의 가운데 선 이철의 몸에서부터 사방으로 번개줄기가 번쩍였다. 그 번개줄기가 얼마나 촘촘하고 빽빽한지 그에게 접근할 방법이 전혀 없어 보였다.

“굉장하네요.”

번개줄기가 잦아들고 마리아 소장이 감탄을 터뜨리자 이철은 민망하게 웃었다.

시험장 한편에서 머리에 젖은 수건을 올려놓고 누워있던 경완이 한마디 했다.

“굉장하죠. 전기장을 펼쳐서 오감 대신 쓰라고 했더니 그 전기장으로 공간 전체를 감전시켰으니까요.”

이철이 민망하게 웃은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결국 물은 답을 알고 있다 때처럼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능력이 발달, 거기에 의도치 않게 이경완에게 한 방 먹였으니까.

아무리 지하 대련실이 넉넉해 보였지만 이철의 광역 방전은 경완도 감전시키기에 충분했다.

마리아 소장은 이철에 대해 몇 가지 테스트를 더 하더니 입을 열었다.

“번개 발사 능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네요.”

원래부터 이철에게는 좀 떨어져 있는 상대에게 방전으로 번개줄기를 날리는 기술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기본적으로 몸에 전기를 두르고 빌런 범죄자를 추적해 제압하는 육체파 초능력자였고, 번개줄기를 날리는 기술도 도망가는 빌런 범죄자의 발목을 잡을 정도지 그리 강력한 건 아니었다.

거리도 손이 안 닿을 정도로 아슬아슬한 거리쯤에서야 유효하고, 거리가 멀어지면 출력과 정확도가 급감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 능력이 진화했다. 이전의 이철이 근거리캐였다면, 이젠 확실히 중거리, 제한된 조건에서 원거리까지 커버 가능한, 후위든 전위든 뭐든 할 수 있는 캐릭터가 되었달까?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발전해서 문제지만요.”

전기 충격을 추스른 경완이 일어나면서 마리아 소장의 말을 받았다.

광역 전기 폭발이라고 해야 하나? 거대한 방전이 갑작스럽게 터져 나온 것도 있고, 전기능력이 경완과 상성이 안 좋기도 했다. 경완의 염력이나 중력제어는 질량이 있는 공격을 막는 것에는 유용했지만 전기장을 막기엔 적합하지 않았다.

“하…… 이제 또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겠네요.”

“미안하다니까.”

경완의 말에 이철이 사과했다. 초능감각을 각성하는 다른 훈련법을 찾아주겠다는데 뜬금없이 미안하다는 말이 나온 건 어둠 속에서 맞은 경완의 회초리질이 매우 아팠기 때문이리라.

솔직히 첫날 이마에 가로로 찍힌 일자 자국 때문에 한동안 이마에 헤어밴드를 차고 다녔던 걸 생각하면 통쾌하기는 했지만 내색할 순 없었다.

첫날부터 명색이 형인 자신에게 그리 가혹하게 했는데, 그다음 훈련법은 또 얼마나 힘겨울 것인가? 이번에 감전당한 원한을 실으면 더 힘들고 괴로우리라…….

이철은 경완의 뒤끝 있는 성격을 알고 있었다.

마리아 소장도 입을 열었다.

“경완 씨가 가르치는 데 재주가 있는 건지, 이철 씨가 재능이 있는 건지 일주일 만에 이렇게나 능력이 발달하다니 대단해요.”

“……사실 실패해서 기쁘시죠? 또 다른 데이터를 얻을 기회가 생겼으니까?”

경완의 대꾸에 그녀는 후훗하고 웃기만 했고, 그런 그녀에게 경완은 가늘게 뜨며 이렇게 말했다.

“적어도 이번 실패의 원인이 저에게 있지 않다는 건 확실해요.”

이번 훈련 프로그램의 아이디어와 설계는 모두 마리아 소장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다. 그녀가 의도적으로 실패를 조장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적어도 경완 자신에게 책임이 없다는 건 확실하게 말할 수 있었다.

마리아 소장이 입을 열었다.

“용불용설이라는 거 알아요?”

“진화론?”

“맞아요, 진화론.”

초능력의 근원인 S입자만이 아니라 그것이 발현되는 초능력자에 대한 연구도 많이 이루어지고 있었고, 그중 한 분야가 초능력 발달 및 계발의 매커니즘에 관한 것이었다.

여기에 도입된 이론 중 하나가 진화론의 용불용설로써, 결국 초능력은 가장 사용이 잦은 방향으로 발달한다는 이론이었다.

이는 초능력을 분류하는 다섯 가지 계열, 육체, 정보, 강화, 변질, 특이가 각 계열로 능력이 발달하는 경향성이 있는 걸 설명하는 이론이었다. 예컨대 육체 계열에 가까운 초능력은 더욱 육체 계열 쪽으로 발달하고, 변질 계열에 가까운 초능력은 더욱 변질 계열 쪽으로 발달한다는 식이었다.

이는 역으로 설명하자면 초능력자가 다른 계통을 터득할 가능성을 더욱 줄여버린다는 걸 의미하기도 했다. 사용하지 않은 계통은 퇴화하고 사용하고 있는 계통은 더욱 발달하기 때문이다.

모로 가도 서울로만 가도 된다고 그래도 어느 정도 현실적인 이득은 있었으니까.

이번 이철의 능력 발달도 이 같은 경우로 볼 수 있었다.

범죄자들을 잡는 경찰일 때의 경험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의 전기 능력은 육체, 강화 계통으로 분류되었다. 전기에너지로 신체를 활성화하고 강화된 전기 충격으로 적을 제압하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시청각이 차단되고 공격이 어디에서 들어오는지 전혀 모르니 결국 사방에 펼친 전기장을 공격용으로 사용하고 만 것이다.

원래 원거리 능력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었기에 범위 전기 폭발 같은 기술을 발현한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철은 단순히 기술 하나를 익힌 것이 아니었다. 전류란 가장 약한 곳으로 흐르는 성질이 있는데 이철의 전기 폭발이 전신에서 사방으로 뻗어 나간 것은 그만큼 전기장이 균일하게 퍼졌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이철 씨는 지금 몸 멀리 전기장을 형성하는 능력이 굉장히 발달한 상태에요. 하지만 이철 씨의 능력에 정보 계열이 전혀 없기 때문에 몸 밖으로 멀리 전기장을 펼쳐도 이를 통해 정보를 얻을 수 없는 거죠.”

“어떻게 하면 될까요?”

이철의 질문에 마리아 소장은 고개를 갸웃했다.

“글쎄요. 이건 감각의 영역이기 때문에……. 예를 들어 강화 계열이 전혀 없는 전기감응 능력자에게 이철 씨처럼 방전 능력을 터득하라고 하면 전혀 못할걸요? 마치 꼬리가 없는 사람에게 팔다리를 쓰지 말고 꼬리를 흔들어보라는 꼴이니까요.”

경완이 말했다.

“다른 계열을 각성한 경우도 많다고 하셨잖아요.”

“미약하게나마 해당 계열을 가지고 있었던 게 계발이 된 건지, 아니면 우연과 행운으로 새로운 계열을 각성한 건지는 논란이 분분해요. 아직 모르는 게 많아요.”

그녀의 설명에 경완은 이렇게 말했다.

“잘 모르는 분야엔 맨땅에 헤딩을 하면서 개척을 해나가지 마련이죠.”

“저도 동의해요.”

“머리가 멍청하면 몸이 고생이라는 말고 있고요.”

“전적으로 동의해요.”

경완과 마리아의 시선이 이철을 향했다.

그는 불안해졌다.

“왜요?”

“일단 이렇게 해볼까요?”

마리아의 제안을 들은 이철은 초능감각의 각성을 포기했다.

“눈을 가리고 생활하라니요!”

“눈이 문제라니까. 청각 장애인 중에 각성해서 박쥐나 돌고래처럼 주변의 소리로 사물을 인지하는 사람도 있다던데?”

이철의 항의에 경완이 대꾸했다. 마리아 소장은 경완의 편을 들었다.

“그것도 초능력 용불용설의 예시죠.”

“아니, 그래도 현실적으로…….”

이철은 나름의 생활이 있었다. 갑작스럽게 눈을 가리고 생활하라고 하면 여태까지의 일상은 어쩌란 말인가?

“그래서 안 할 거야?”

경완이 이번에도 도발적으로 물었지만 이번엔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다른 방법은 없어?”

“글쎄?”

경완이 마리아 소장을 보자 그녀가 입을 열었다.

“원래 감각 하나가 불구가 되면 다른 감각이나 재주가 발달하기 마련이고 일상생활에서의 시각 차단은 지금으로선 가장 가능성이 높은 방법이라고 추정돼요.”

확신이 아니라 추정이란다. 이러니 더욱 받아들일 수 없는 거 아니겠는가?

“다른 방법은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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