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전생-더 빌런 248화
24-현지화
경완은 전화로 물어보면 되는 걸 왜 굳이 피곤한 지금 하느냐고 툴툴거렸지만, 마리아 소장은 이 일정을 바꿀 생각이 없었다.
한국에서 가장 선망받는 초능력 공학자로서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만나본 그녀가 말하길 직접 사람 얼굴을 보고 하는 게 가장 설득력이 있다나?
고작 스케줄 잡는 일에 설득까지나 필요한가 싶었지만, 이철은 경완을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저 만사 귀찮아하는 얼굴을 봐라. 언제 지각, 결석을 하거나 때려치우려고 들지 이철이 조마조마할 정도였다.
그때 문이 열리고 낯선 남자가 들어왔다.
“다 끝나셨습니까?”
“네.”
마리아 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엔 굉장히 말쑥하고, 핏이 쫙 빠진 양복을 입은 남자가 서 있었다. 나이는 30대 초반 정도? 굉장히 젊어 보였다.
그는 웃으며 다가와서는 경완을 보며 활짝 웃더니 손을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이경완 씨 이렇게 뵙는 건 처음이네요. 정호태라고 합니다.”
“네, 안녕하세요.”
경완은 그의 손을 잡아주며 인사를 받았다.
그리고는 마리아 소장의 귀에 속삭였다.
‘누구예요?’
대답은 남자가 직접 했다.
“아! 절 모르시는군요. 위버멘쉬 코리아의 지부장입니다.”
“지부장이요?”
“네.”
“그쪽이?”
“네.”
일견 무례해 보이는 태도였지만 정호태라는 남자는 시종일관 친절한 웃음을 지우지 않았다. 경완의 성격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곧 경완은 감탄하면서 말을 이었다.
“굉장히 능력이 좋으신 모양이네요. 상당히 젊어 보이시는데…….”
“하하하! 운이 좋았죠. 다 요하네스 총수님 덕분입니다.”
“그래요?”
경완은 요하네스의 머릿속이 궁금했다. 무슨 생각으로 이 젊은 사람을 지부장으로 올렸을까?
능력과 나이가 꼭 비례하는 건 아지만 연륜이라는 것이 있었다. 위버멘쉬 지부장쯤 되면 그 나라의 기득권과 이런저런 협상을 해야 할 텐데 이 젊어 보이는 사람이 그런 게 가능하다고?
그에 대한 의문은 바로 풀렸다. 곧장 기분이 굉장히 이상해졌기 때문이었다.
뭐랄까? 꽃밭에서 꽃향기를 맡는데 은근히 거름냄새가 올라오는 불쾌감, 혹은 이질감이랄까?
뭔가 이상이 느껴지면 습관적으로 초감각을 돌리는 게 습관이 된 경완은 바로 정호태의 몸에서 S입자가 퍼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건 분명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것 같았다.
경완은 곧장 S입자를 펼쳐 몸에 들어오는 정호태의 S입자를 막고는 눈을 가늘게 떴다.
“이게 무슨 짓이죠?”
경완의 적대적인 반응에 정호태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알아차리셨군요. 죄송합니다. 제가 조절이 안 되는 능력이라…….”
그가 설명하길, 일종의 상대방의 호감을 조장하는 정신계 능력이란다. 패스를 사용하지 않고 사람의 정신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아주 유니크한 능력으로, 사람의 호르몬 활성에 작용하는 매커니즘이라고.
“그리 강력한 건 아닙니다. S입자를 가진 사람은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 저항력도 있고, 정신 똑바로 차리고 냉정을 유지하면 별다른 영향을 주지도 못하죠. 기껏해야 협상 시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할 정도?”
경완은 그가 저리 말하고는 있지만, 실제로는 굉장히 강력한 능력이라고 확신했다. 특히 사회생활하는 사람들에겐 더욱 말이다.
상대에게 호감을 사면 얻게 되는 무궁무진한 이점들을 고려하면 협상 시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는 건 빙산의 일각이었다.
게다가 여타 다른 정신계 능력자들처럼 패스를 사용하는 것도 아니라서 고위층이 항시 옆에 두는 정신계 경호원들이 알아차리기 힘들다는 이점도 있었다.
과연 요하네스 총수. 아무나 지부장에 앉힌 건 아니었다.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엘리트 카르텔과 협상하려면 저 정도 능력자는 있어야겠지.
이철이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를 물었다.
“조절이 안 되는 능력이라고요?”
“네.”
“그 이상은 묻지 마요, 이철 씨. 알다시피 초능력의 각성과 그 방향은 굉장히 사적인 원인으로 발현되는 경우도 많거든요.”
마리아 소장이 더 물어보려는 이철의 입을 막았다. 그녀는 그 이유를 아는 것 같았고, 그 이유가 별로 좋은 건 아닌 모양이었다.
듣고 있던 경완은 그게 뭔지 짐작이 되었다. 뭐, 애정결핍 같은 거겠지.
정호태는 경완이 자신을 빤히 보자 사람 좋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경완 씨는 본론을 좋아하신다더군요. 아마 제가 굳이 이렇게 방문을 한 이유가 궁금하실 겁니다.”
잘 아네.
경완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짐작하고 계시겠지만, 위버멘쉬-코리아에서는 정부와 손을 잡고 TSTG의 개발에 힘을 쓰고 있죠.”
“위버멘쉬 본부의 지시인가요?”
이철의 말에 정호태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 정도 사항은 굳이 본부의 허락을 받을 필요가 없답니다.”
‘이 정도 사항’이라니……. 지부에 그 정도 권한을 허락한 총수의 대범함에 놀라야 할까, 아니면 일개 지부가 그 나라의 정부와 맞먹는 상황에 놀라야 할까?
정호태가 말을 이었다.
“아무튼, TSTG의 개발에 협력해 주신 분들에게 감사를 표할 겸 연말 자선 파티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물론 TSTG의 테스터이신 두 분도 초대 대상이죠.”
“어, 음……. 예 그렇군요.”
뭐지? 연말 자선 파티랑 TSTG의 개발 관련자들하고 무슨 상관이 있다는 소리지?
경완의 반응에 그런 의문을 느꼈는지 정호태 지부장이 말을 이었다.
“사실 그동안 우리 위버멘쉬를 성원해주신 각계각층의 유명인사분들을 초대해서 진행하는 자선파티입니다. 그래서 여기저기 분주히 초대장을 보내고 있죠. 파티에 사람이 적어서 헛헛하면 망신이잖습니까?”
“그런데 고작 우리 둘을 초대하려고 여기까지 행차하셨다고요?”
여전히 경완은 고개를 갸웃했고, 정호태는 애써 웃으며 대꾸했다.
“겸사겸사요. 경완 씨 집에 바로 방문하기에는 좀 그래서요. 하지만 이곳이라면 다른 일을 핑계로 삼아 방문하면서 인사도 드릴 수 있죠.”
그의 반응에서 경완은 굉장히 자신을 조심스럽게 대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바로 집에 방문하기가 좀 그렇다고? 그 이유가 자신이 중요한 인물이라서일까, 아니면 위험인물이라서일까? 혹은 그 둘 다일 수도 있었다.
경완은 아무렇지 않은 척 대꾸했다.
“그냥 방문하셔도 되는데…….”
“하하. 집은 쉬어야 하는 곳이지 일하는 곳이 아니잖습니까? 이렇게 경완 씨가 용건이 있어 이렇게 밖에 나온 김에 만나는 편이 경완 씨에게도 편하지 않나요?”
그 말에는 경완은 속으로 감탄했다. 이 남자. 자신을 너무 잘 안다. 위버멘쉬의 지부장이라고 했던가? 요하네스로부터 ‘이경완을 대하는 7가지 요령’ 따위라도 전수받은 것일까?
확실한 건 상대가 자신에 대해서 잘 분석했고 매우 똑똑하게 행동했다는 점이었다. 경완이 입에 발린 말로 집에 와서 그런 말을 해도 된다고 정말 그랬다면 이렇게 분위기가 좋진 않았을 것이다.
뭐? 자선파티 초대? 그딴 시답잖은 일로 집에서 평온을 만끽하던 그를 방해한다고? 일단 지금처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흡족함은 결코 없었을 것이다.
고개를 끄덕이는 그에게 정호태가 다시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오셔서 자리를 빛내주실 수 있겠습니까?”
“제가 가면 괜히 좀 그렇지 않을까요?”
경완이 낯가죽이 두껍다지만 자기 주제를 모르는 건 아니다. 사람들이 자신과 친해지고 싶으면서도 두려워서 함부로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사회적 평판이 그리 좋은 것도 아니고 극과 극으로 갈렸다. 그를 초대하면 빠는 그렇다고 쳐도 까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일반적으로 빠보다 까가 더 극성스러웠다.
그런 경완의 우려에 정호태는 이렇게 말했다.
“괜찮습니다. 정말 여러 사람이 모이거든요.”
“어떤 사람들이 오는데요?”
“주한 미국 대사, 주한 일본 대사를 비롯한 각 나라의 외교관들과 연예인, 가수도 옵니다.”
“혹시 외국 가수인가요?”
이철이 조심스럽게 끼어들어 묻자 정호태는 고개를 끄덕였다. 외국 지부에 있는 위버멘쉬 소속 히어로들도 여럿 참석한다나? 히어로가 연예계에 반쯤 걸쳐있는 존재이니만큼 연예인 지인들을 대동하고 참가한다고 했다.
“아마 이미연 씨에게도 초대장이 따로 갈 겁니다. 그리고 경완 씨도 아마 총수님이 직접 연락하실 겁니다.“
“혹시 총수님도 오시는 건가요?”
경완의 물음에 이철은 아리송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직 확정된 사항이 아닙니다.”
“그렇군요.”
경완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확답은 내리지 않았다. 일단 요하네스가 초대를 목적으로 연락한다고 하니 그때 대화를 나눠보고 대답할 생각이었다.
정호태는 경완이 당장 가부를 결정할 생각이 없음을 알고 명함을 내밀었다.
“참가하고 싶으시면 이리로 연락을 주시죠. 이철 씨도요.”
그는 옆에 있던 이철에게도 명함을 내밀면서 친하게 지내는 히어로, 특히 요즘 남성들에게 인기가 높은 소닉걸도 함께하면 좋겠다는 말로 이철의 표정에 어색한 미소를 띠게 하였다.
그렇게 두 사람에 대한 용건을 마친 정호태는 그제야 마리아 소장을 보았다.
“이제 여기 온 원래 용건을 봐야겠군요.”
“어머? 제 쪽이 용건이었어요?”
그건 몰랐네요라며 호호 웃는 마리아 소장의 농담에 정호태도 웃으면서 ‘아유~ 제가 박사님을 잊을 리 있겠습니까?’라는 말과 함께 사무실로 향했다.
정호태 지부장과 만난 얼마 뒤, 경완은 정호태의 말마따나 위버멘쉬 코리아 연말 자선 파티에 대한 초대라는 목적으로 요하네스의 연락을 받았다.
“잘 지내셨어요?”
[요즘 많이 바쁘네요. 경완 씨는요?]
“저도 나름 바쁘네요.”
경완은 직장인이 들었다면 피를 토할 말로 요하네스의 인사를 받았다. 바쁘기는 뭐가 바빠? 일주일에 한두 번 연구소에 가는 거 빼고는 집에서 놀고먹는데.
아무튼, 경완은 요하네스로부터 이번 연말 자선 파티의 정체를 듣게 되었다.
“위버멘쉬 코리아의 성과를 자랑하는 장소다?”
[동시에 그것을 확정 짓는 장소이기도 하죠. 생각보다 중요한 행사랍니다.]
위버멘쉬 코리아가 그동안 한국 사회에 얼마나 잘 자리를 잡고 영향력을 확대했는지 그 성적표를 확인하는 자리라나?
“겨우 행사 정도로 그걸 확인할 수 있는 건가요?”
[정확히는 아니지만 가늠할 수 있죠. 권력이란 사람들이 그에게 권력이 있다고 생각하게끔 하는 것이거든요.]
“다른 나라에서도 이와 같은 행사를 하나요?”
[하는 곳도 있고 안 하는 곳도 있습니다. 나라마다 문화나 역사가 다르니 영향력을 과시하는 방법도 달라야 하거든요. 하지만 한국같이 엘리트 카르텔이 강력한 곳에선 충분히 목적에 부합하는 방식이라 할 수 있죠.]
이야~ 경완은 감탄했다. 권력의 속성에 대해서 자신의 입으로 적나라하게 말하는 권력자라니…….
사실 권력이라는 것은 매우 무형적인 자산이었다. 본인에게서 나오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생각에서 나온다는 점에서 매우 사회적인 힘이었다.
만일 모두가 ‘네가 뭔데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하는데? 네 뱃가죽은 철판이라도 되냐?’라는 식으로 막가파로 나오면 어떻게 될까?
싸움을 잘하거나 돈이 많아서 한두 명은 굴복시킬 수 있다고 쳐도, 그 수가 백 명이 넘어, 천 명, 만 명이 되면?
‘저 ㅈ같은 새끼 우리가 재끼자’, ‘저 돈만 많은 허당 새끼 치고 우리가 돈을 가지자’라는 상황을 과연 무사히 넘길 수 있을까?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말을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그 총구를 겨누는 군인들의 충성을 받거나, 혹은 그들을 통제한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권력자들이 여러 가지 수단으로 대중을 세뇌하고 길들이려 노력해 왔다.
저 사람은 감히 우리가 덤벼들 수 없다는 생각을 심거나, 믿고 따라야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거나, 혹은 불만을 위정자에게 돌리지 못하도록 서로가 서로를 물어뜯게 갈라치기를 한다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