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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전생 더 빌런-249화 (249/367)

무한전생-더 빌런 249화

24-현지화

핵심은 대중이 권력이란 게 결국 그들의 머릿속에 심어진 아이디어에서 나온다는 진실을 깨닫지 못하게 하는 것에 있었다.

인간의 언행과 정신은 결국 아이디어, 개념에 의해 유도되고, 통제되기 때문이었다.

사람을 평가할 때 개념 없다는 말이 괜히 있겠는가?

그것이야말로 누군가를 독립운동가로 헌신하다가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게 만들고, 또 누군가는 조국과 동포를 팔아먹더라도 일신의 안녕과 부귀영화를 추종하게 하며, 또 누군가는 독재에 항거하는 투사로 만들고, 또 누군가는 프락치가 되어 독재정권에 부역하고 승승장구하는 삶을 추구하도록 만드는, 인간 정체성의 구성요소였다.

그래서 언론과 세력이 프레임 선점에 눈이 벌게지는 것이다.

대중의 머릿속에 든 개념을 주물러서 그 행동을 유도하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인지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런 관점에서, 요하네스의 대답에서 경완은 이 연말 자선 파티가 위버멘쉬-코리아에게 확실히 중요한 행사임을 이해했다.

사람들의 머릿속에, 특히 내로라하는 영향력 있는 이들에게 위버멘쉬-코리아의 위상을, 혹은 그러한 생각을 확실히 심어주겠다는 목적인 것이다.

“그런 중요한 자리에 저를 초대하겠다고요?”

경완의 말에 요하네스가 유쾌하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하하하! 현존 최강의 초능력자를 초대하지 않으면 누굴 초대한다는 말인가요?]

“그러다가 기껏 자리 잡은 한국에서 밉보이면요?”

[그걸 확인하는 자리입니다. 한국의 유력자들이 불쾌하더라도 우리와 적대할지 안 할지를 가늠하는 자리니까요.]

요하네스는 경완에 대한 한국 기득권층의 적대감, 혹은 불안감을 모르고 있진 않았다. 다만 그것마저 이용할 일뿐.

“가늠을 한 후에는요?”

[적절한 조치나 보상이 따르겠죠.]

어쩐지…….

정호태 지부장에게 이번 위버멘쉬-코리아 연말 자선 파티는 단순한 파티가 아닌 모양이었다. 그간의 성과가 성적표로 나와서 상사인 요하네스에게 평가받는 자리랄까?

위버멘쉬-코리아의 지부장으로서 그간 한국의 기득권층을 얼마나 요리했는지 확인하는 이벤트였다.

남이 볼 때 위버멘쉬-코리아의 지부장쯤 되는 사람이 고작 파티 초대 때문에 연구소까지 찾아오는 게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과한 행동일 수 있는데, 본인 입장에선 전혀 과한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보상이 따른다면…….”

[아마 한국 위버멘쉬 지부는 독자적인 행보를 걷게 되겠죠.]

경완은 김준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떠올렸다. 지부의 독립이라. 진짜인 모양이었다.

“정말 아무런 간섭도 하지 않을 생각인가요?”

[기본적으론 그렇습니다.]

“그러면 위버멘쉬 본부 입장에선 너무 손해잖아요?”

[어차피 지금도 상당히 많은 지부에서 손해를 보고 있습니다. 지부가 자립하게 되면 오히려 본부와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는 상호호혜적인 관계가 되는 거죠.]

오~ 그런 관점도 있구나.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그리고 한 지부에서 이익이 나고, 그 이익을 마냥 손해 보고 있는 지부에 지원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분명 불만이 생길 겁니다. 그리고 불만은 갈등과 분열의 씨앗이죠. 차라리 이렇게 독립성을 보장해 준다면 각 지부 역시 자립하려고 노력할 것이고, 각 지부에선 자원을 빼앗긴다고, 혹은 지원을 안 해준다고 불만을 품는 일도 줄어들 겁니다. 그리고 이는 위버멘쉬 전체의 성장에 도움이 되겠죠.]

거창한 비전이었다. 또 이상적이었다.

수많은 전생과 환생 때문에 마음 한구석이 잔뜩 꼬여있는 경완은 비관적인 시나리오를 툭 던졌다.

“그러다가 지부끼리 싸우면요?”

정말 아무런 간섭도 하지 않으면 각 지부가 그 영향력을 해외에 투사하는 것도 허락한다는 소리 아닌가?

그렇게 되면 언젠가는 이권을 두고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영향력이 커지면 각 지부가 누릴 권력과 이득도 커지는 건 당연한 논리니까.

그런 경완의 의문에 요하네스는 이렇게 말했다.

[천년만년 싸울 순 없을 테니 본부에 중재를 요청하겠죠. 정 심하다 싶으면 중간에 끼어들어서 말려도 되고요.]

“……와우.”

무게추의 역할로서 본사의 영향력을 확보하겠다는 말이었다.

경완은 요하네스의 시각이 매우 독특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지만, 말에 묻어나오는 당연하다는 어조는 마땅히 그렇게 될 거라고 예측하는 것 같았다.

첩보계에 떠도는 이야기로는 예지능력자라고 한다지?

경완으로선 도저히 그 원리가 뭔지 알 수 없지만, 자신감의 근거가 전혀 없진 않은 것 같았다. 무게추의 역할도 충분히 무게가 나가야 할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뭐, 그런 골치 아픈 거 말고도 보고 즐길 거리가 많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오셔도 됩니다. 미연 씨와 같이 오시면 즐거울 거예요.]

“이렇게 총수님께서 저를 설득하시면 결국 정호태 지부장을 돕는 거 아닌가요?”

시험 출제자가 대놓고 힌트를 주는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

하지만 요하네스의 말은 뜻밖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

[아아. 경완 씨 건은 예욉니다. 아니, 이미 통과했다고 할까요?]

“네?”

[정 지부장이 경완 씨를 어찌 대하는지가 시험이었고, 그는 통과했습니다.]

“…….”

집에 방문하지 않고 연구소로 찾아온 거 그거 말인가?

경완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고민하는 와중에 요하네스가 말을 이었다.

[아무리 경영을 잘해도 무슨 소용입니까?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이 누구이고 또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말이죠.]

“제가 무슨 영향력이 있다고..”

[하하하! 중국을 그렇게 만든 장본인이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

요하네스가 농담하냐고 웃으며 묻자 경완은 입을 다물었다. 어. 음……. 저 얘기가 나오니 할 말이 없었다.

그렇다고 요하네스의 말뜻이 ‘네가 동아시아의 대국 하나를 조져놔서 우리가 알아서 기는 거잖아’라는 건 아니었다. 뉘앙스에도 전혀 그런 의미는 묻어나지 않았다.

그는 폭력의 본질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사람이었다. 폭력을 선호하거나, 역설적으로 싫어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폭력이라는 수단이 가진 영향력과 파급에서 눈을 돌리지 않을 뿐.

원래 위버멘쉬는 초능력자들의 폭력으로써 자리 잡은 조직이었다.

“어.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가야겠네요. 안 갔다가 총수님이 그 정호태 지부장을 두고 무슨 오해를 할지 모르니까요.”

[하하. 요한이라고 부르라니까요.]

경완은 요하네스의 요구를 시답잖은 농담으로 웃어넘기고 무시했다.

* * *

“준비됐어?”

“응.”

미연의 물음에 경완은 고개를 끄덕였다.

짙은 남색 계열의 이브닝드레스를 입고 있는 그녀는 경완 앞으로 와서 그의 정장 맵시를 정리했다. 그런 그녀의 입가엔 흐뭇함이 떠나지 않았다. 아마 경완이 정장을 입은 게 이번이 처음이라서일까?

경완은 굳이 탈-정장을 고집하진 않았다. 그냥 옷가게에 가서 고르는 게 귀찮을 뿐.

“가도 되겠다.”

미연의 말과 함께 두 사람은 현관을 나섰다. 하지만 대문으로 나가지는 않았다. 그저 웜홀로 훌쩍 이동했을 뿐. 경완이 미리 박아 놓은 웜홀 마커였다.

파티가 열린다는 모 호텔 앞에는 사람들이 우글우글했다.

영화제의 레드 카펫 같은 곳은 아니지만 유명한 히어로들과 연예인들이 참가한다는데 어찌 기자들이 모이지 않을쏘냐? 기자들만 모여 있나? 히어로나 연예인의 팬들도 있었다.

그러니 물주 되시는 정경계 인사들이 불편해한다고 기자들이 카메라 렌즈를 닫을 순 없었다.

요즘 같은 인터넷 시대에 기자들 눈과 귀를 막는다고 사람들이 모르기를 기대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었다. 그래서 기자들은 뉴스거리를 얻는 대신 좋은 샷으로 보답(?)하면 결국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라는 뇌내 합리화를 꽃피웠다.

경완과 미연이 서로 팔짱을 끼고 갑작스레 나타나자 웅성거리던 호텔 입구가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경완을 두고 서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이경완이다.’

‘말로만 듣던 웜홀인가?’

‘왜 이경완이 어떻게 왔지?’

‘초대받아서 왔겠지.’

‘와, 진짜 위버멘쉬 이 자식들은 눈치 같은 거 안 보는구나?’

경완의 초감각에 그들의 수군거림이 들려왔다. 하긴 그를 불편해할 사람이 적지 않았다.

그는 아무리 안 그러려고 해도 요하네스가 좀 또라이 같다는 생각이 자꾸 떠올랐다. 잔잔한 수면에 돌을 던지고 그 때문에 놀라서 튀어나온 것들 보면서 그 물 속에 뭐가 살고 있는지 가늠하겠다는 전략.

아무리 역량과 자신감이 있어도 상식적으로는 하기 힘든 짓이었다.

그러다 문득 미연에게 생각이 미친 경완이 옆을 보았다. 괜찮을까? 자신이야 괜찮지만 연예인인 그녀에겐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마침 미연도 그와 시선이 마주했다. 보아하니 그녀는 경완의 걱정을 했던 모양이었다.

“왜?”

“아무것도 아니야.”

경완은 피식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강한 여자다. 괜한 자신의 걱정이 오지랖이었을까?

하지만 그녀는 바로 경완이 자신을 걱정했다는 걸 눈치채고는 요망하게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내가 걱정돼?”

“가자.”

그걸 굳이 말할 필요가 있나? 경완은 얼른 미연을 재촉했고, 그녀는 깔깔 웃으며 그의 리드대로 호텔로 들어갔다.

막 정문이 몇 발 남지 않았을 때 사람들 사이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살인마!”

순간 정적이 흘렀고 미연의 표정도 굳어졌지만, 경완은 전혀 동요가 없었다. 오히려 소리친 방향을 향해 무심하고 지루한 표정으로 중지를 세웠을 뿐.

그런 그의 행동에 분위기는 더욱 가라앉았다. 하지만 소리를 지른 누군가는 오히려 악에 받힌 듯 한마디 더 했다.

“학살자!”

그에 대한 경완의 반응 역시 변하지 않았다. 어디서 개가 짖냐라는 표정으로 다른 한 손도 중지를 올려 쌍중지를 내밀었을 뿐.

그런 그를 미연이 급히 정문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그리고는 웃으며 화내는 얼굴로 옆구리를 꼬집었다.

경완도 인상을 찌푸렸다.

“아퍼.”

“그냥 무시하지 왜 상대해 주고 있어?”

“그냥?”

“그냐~앙.”

미연은 집에 가서 잔소리 듣고 싶지 않으면 저런 인간들을 무시하라고 요구했고, 경완은 미연의 잔소리가 더 귀찮고 괴롭기 때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뭐, 약속이 지켜질지는 그때가 봐야 아는 일이지만 말이다.

호텔 연회장으로 들어오자 벌써 여러 사람이 여기저기 모여서 인사하고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종업원들은 조심스러우면서도 신속하게 움직이며 서빙을 했다. 전체적으로 북적북적한 활발함이 느껴졌다.

미연은 일단 경완을 데리고 연예인 무리, 특히 미연 자신과 친하거나 편한 이들이 모인 쪽으로 향했다.

“어머 언니~ 형부~”

바스티앙의 슈퍼 요트에서 같이 놀았던 윤혜정이 미연과 경완을 반겼다. 연예인이라서 그런가 아니면 천성이 그래서 그런가 참 사교적이고 친근했다.

“그동안 잘 지냈어?”

“저야 그동안 바쁘게 지냈죠? 언니는요?”

“나야 일 찾는 중이지.”

미연이 일을 찾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가수이자 연기자로서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은 그녀는 그 모든 일을 다 할 수는 없었기에 전략적이고 효율적인 선택을 해야 했다.

그녀는 신비주의로 이미지 소모를 막는 전략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또 그런 방식으로 성공하지도 않았다. 노래면 노래, 연기면 연기, 예능이면 예능, 팔색조 같은 매력을 뽐내며 자신만의 이미지를 구축했고, 다음 활동 역시 그러한 방식으로 진행할 예정이었다.

익숙하지만 신선하게, 과연 이미연이다라는 평가가 세간에서 나올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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