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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전생 더 빌런-251화 (251/367)

무한전생-더 빌런 251화

24-현지화

당연하게도 이들은 불온단체였고 국정원의 감시하에 놓여 있었다. 테러가 일어난 직후 바로 수사하기도 용이했다.

하지만 막상 수사가 시작되자 진척이 나가질 않았다. 자살폭탄테러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외치며 폭사했던 호텔 종업원 이경리가 북한 출신은커녕 조선족조차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남한에서 태어나 남한식 교육을 받은 그가 왜 어째서 북한 분리주의자처럼 행동하며 자살폭탄 테러를 저지른 것일까? 그리고 그 폭탄은 도대체 어디서 구한 걸까?

정밀한 분석 끝에 국과수는 이번 테러에 초능력이 관여된 정황이 있다고 발표했다.

이경리의 총 체중은 78kg. 그중 남은 사체의 무게는 겨우 24kg. 산산조각이 난 육신을 모두 주워 모았는데도 그 정도에 불과했다.

그럼 나머지 54kg은 어떻게 된 걸까? 완전히 산산조각 가루가 되어서 찾아내지 못한 걸까?

국과수는 초능력 공학자들의 자문과 도움을 받아 분석한 끝에 최대 54kg의 살점이 폭발물로 변했다고 발표했다. 그래서 고작 몸에 폭탄조끼를 꼈을 뿐이지만 엄청난 폭발을 일으켜 많은 사상사를 낼 수 있었다고 말이다.

현장에 남았던 폭발물 잔해로는 설명할 수 없었던 폭발의 규모를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가설이었다.

당연히 사건은 미궁에 빠졌다.

분리주의자가 이번 테러를 벌일 동기는 충분했다. 공교롭게도 폭발이 일어난 중심지에 있던 정치가 및 고위관료들은 복지에, 특히 북한 주민에 대한 복지에는 더욱 인색한 자들이었다.

지금은 복지를 늘릴 때가 아니라 경제의 규모, 즉 파이를 더 키워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말이다.

일리가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나날이 남북 간의 격차가 커지는 것을 보고 있는 분리주의자들에겐 그러한 주장은 북한 주민들을 영원한 프롤레타리아 계급으로 묶어두고, 남한 부르주아지의 영원한 노예로 삼겠다는 소리로밖엔 들리지 않았다.

안 그래도 하청에 재하청으로 쥐꼬리만 한 월급을 받으며 근근이 살아가는데 복지까지 줄이면 돈을 어떻게 모으란 말인가?

공산주의에 시달렸던 북한 주민들은 그래서 오히려 돈독이 올랐고, 남한 사람들보다 오히려 더 자본주의의 핵심을 꿰뚫고 있었다.

돈 없으면 사람대접 못 받는 세상.

권력이 없어서, 백두혈통이란 성골이 아니라서 사람대접 못 받았기에 더욱 돈에 눈이 벌게질 수밖에 없었다. 돈만 있으면 사람대접 받을 수 있는 게 자본주의 사회니까.

아, 그런데 남조선 위정자 동무가 우리한테 돈을 안 쓰겠다네? 미친 애미나이 아닌가?

이 정도면 테러의 동기도 충분히 되고 지원자도 찾기 쉬운 명분도 된다.

하지만 문제는 정작 그 테러를 실행한 이경리가 북한과 아무런 연고도 없다는 점에 있었다.

단기 알바 형태로 호텔에 고용된 이경리는 남한에서 태어나 남한식 교육을 받았고 북한 분리주의자들과의 접점이 딱히 없었다.

동기와 범인이 불일치하는 상황에서 초능력의 개입 정황은 수사를 더욱 난항으로 이끌었다.

만약 초능력자 개입설이 사실이라면 남한 사람을 북조선 분리주의로 만들 정도의 세뇌 능력자와 그 사람의 육체를 폭발물로 바꾸는 변질 능력자가 연관된 것이 아닐까?

이 가설이 맞다면 용의자 특정은 더 어려웠다. 지금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는 북한 분리주의자들인데 과연 가난한 북한 분리주의 세력에 그런 능력자가 있을까?

그냥 그 능력 가지고 남한에 오면 대기업에서 초고액 연봉을 주면서 모셔가려고 할 텐데 굳이 구질구질하게 북한 분리주의 집단 따위의 가난한 단체에 몸을 담고 위험을 감수할 가능성은 매우 낮았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사건은 더욱 미궁으로 빠졌다.

다만 확실한 건 이번 사건이 비질란스니 하는 빌런들이 잠잠한 기간 동안 초능력 범죄에 무감각해진 한국 사회에 경종을 울렸다는 것이다.

경완은 이런 이야기들을 하는 뉴스 채널의 소리를 줄이고 정호태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이경완입니다.”

[네, 경완 씨.]

전화를 받는 정호태의 목소리엔 피곤이 끼어 있었다. VIP테러의 뒷수습을 하느라 정신이 없는 모양이었다.

경완은 많이 피곤해하는 그를 동정하면서도 용건을 꺼냈다. 동정은 동정이고 용건은 용건이었다.

“혹시나 해서 말인데, 사건이 일어났던 당시의 출입명부를 좀 보여주실 수 있습니까?”

[경완 씨에게요?]

경완의 요청이 뜻밖인지 정호태가 놀라는 기색을 보였다.

“신기하게도 연회장에서 저에게 시비를 거는 젊은 친구가 있어서요. 누군지 궁금하더군요.”

[그래요?]

“그리고 그 친구가 저를 두고 위버멘쉬는 절대 세계평화에 관심 있는 인간이 아니라는 식으로 말하더군요. 위버멘쉬는 절대 정의로운 집단이 아니라나?”

뒤에 이어진 말만 아니었다면 혹시 뒤끝 있는 인간이 그 청년에게 뭔가 앙갚음을 하려는 것은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었지만 지금 상황이 좀 그렇지 않은가?

정체불명의 테러집단에게 거하게 엿을 먹은 정호태의 입장에선 위버멘쉬를 적대하는 모든 이들이 잠재적 용의자로 보일 터.

[혹시 이름을 기억하고 있습니까?]

“기억이 안 나서요. 혹시나 해서 사진도 같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자료 정리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리겠군요. 그래도 오늘 안에 보내드리죠.]

말은 그렇게 했지만 통화한 지 한 시간도 안 돼서 자료를 보낸 것으로 보아 얼마나 급한지 그 속이 보이는 것 같았다.

혹시나 경완의 뒤끝 꼬장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소 뒷걸음질 치다 쥐 잡는 격으로 용의자에 대한 단서가 나온다면 이 역시 좋은 일 아니겠는가? 그리고 정호태는 지금 그 시비를 걸었다는 청년의 개인정보 보호에 관심을 둘 정도로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었다.

경완은 메일로 보내진 자료를 확인했다. 사람의 얼굴 사진과 이름, 나이 정도만 적힌 간단한 자료였다.

그가 차근차근 그 자료를 살피는 와중에 미연이 거실로 들어오며 물었다.

“오빠 뭐해?”

“으음. 용의자 후보 찾기?“

사실은 아니지만 정호태는 그리 알고 있을 테니 말을 맞추는 게 남들도 수긍하지 않겠는가?

그 말에 미연은 경완의 뒤로 다가와 그가 보고 있던 자료를 슬쩍 보고서는 물었다.

“그것만 보고 용의자를 찾을 수 있어?”

“그냥 수상한 사람이 있나 훑어보는 거야. 없으면 어쩔 수 없는 거고.”

그 말에 미연은 더는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참! 혜정이가 고맙다고 전해 달래.”

“뭘 별거 아닌 거 가지고.”

경완은 겸양을 떨었지만 속으로는 예의 바르고 인성이 되었다고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에서 건져놨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놈들을 여럿 봐온 그였기에 이런 당연한 감사인사를 하는 상대를 만날 때마다 이 빌어먹을 세상이 아직 망하지 않은 이유를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럼 밥 차릴게.”

“응.”

경완은 고개를 끄덕이고 정호태가 넘겨준 자료를 계속 훑어보다가 발견했다. 그 시건방진 애송이 새끼의 면상과 이름을.

이름 천기호, 나이 24세, 남성.

이름을 발견한 경완은 녀석을 찾아가기 위해 정호태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고 천기호가 히어로명 더 플레쉬로서 활동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소속은 우진 히어로즈.

정호태는 천기호의 소재지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고는 물었다.

[그가 이번 테러와 관련되어 있다고 보십니까?]

“물어보기 전엔 알 수가 없죠.”

99.99%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0.01%도 가능성은 가능성이지 않은가?

경완은 혹여나 정호태가 설레발을 쳐서 일을 키울까 봐 미리 말했다.

“제가 조용히 가서 물어볼게요. 안 그래도 요즘 상황이 안 좋은데 정보유출이니 불법수사니 하는 소리가 나오면 좀 그렇잖아요?”

위버멘쉬는 수사권이 없었고, 경완은 지금 눈이 벌게진 위버멘쉬 코리아가 자신의 개인적인 일에 끼어들어 괜히 일을 키우길 바라지 않았다.

정호태는 경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진실의 스무고개는 경완의 트레이드마크나 다름없었고, 그의 능력이라면 일을 키우지 않고도 천기호라는 청년이 테러와 관련이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혹시나 그가 용의자라면 조용히 제게만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물론이죠. 아니라고 해도 바로 알려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경완은 정호태와 통화를 끊고 미연과 점심을 먹은 다음에 그녀를 회사에 데려다주었다.

“이거 너무 편하다.”

경완의 염동력으로 몸을 보호한 채로 하늘을 날아서 순식간에 회사에 도착한 그녀의 감상에 경완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물었다.

“어. 이렇게 데려다주는 건 처음인가?”

“응.”

해맑게 웃는 그녀에게 경완은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일 끝나면 연락해. 데리러 올게.”

“응!”

경완의 말이 그렇게도 기쁜지 미연은 그의 입술에 쪽하고 키스하고는 옥상문을 열고 내려갔다.

경완은 빨간 루프가 묻은 입술을 쩝쩝거리며 입맛을 다셨다. 변하고 싶지 않았지만 변하는 건 본인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이기 때문일까?

그는 미연이 퇴근하기 전까지 얼른 그 천기호인가 하는 인간과의 면담을 끝내기 위해 서둘렀다.

일단 천기호가 있을 거라고 짐작되는 곳은 그의 직장과 집. 다행히 정호태는 그 두 곳을 다 알고 있었고 경완에게도 두 곳의 주소지를 전달했다. 보니까 개성이었다.

경완의 비행 속도를 생각하면 그리 멀지 않았기에 그는 우선 천기호의 집으로 향했다.

집에 혼자 있다면 빠르게 볼일을 끝낼 수 있었지만 아쉽게도 집에는 아무도 없었기에 결국 직장까지 찾아갔다.

천기호의 직장은 한 빌딩에 사무실을 임대해 입주한 우진 히어로즈.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 히어로 매니지먼트 업체였다.

요근래 들어 많이 늘어난 히어로 매니지먼트 회사들은 사실상 연예 매니지먼트사와 다름없었다. 기존의 연예 매니지먼트 회사들이 히어로 매니지먼트 허가를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순식간에 레드 오션이 된 히어로 매니지먼트 업계지만 희망이 없는 건 아니었다.

서울 참사, 북한 개발, 경제난, 중국 붕괴 등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인한 범죄율의 증가는 경찰력에 부하를 가져왔고, 그간 암묵적으로 초능력 범죄에만 투입하기로 했던 히어로를 일반 강력 범죄에도 투입하기로 하는 결정에 큰 영향을 끼쳤다. 덕분에 히어로에 대한 수요는 높아졌으며 당분간 줄어들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 평양 대폭발 이후 북한 땅을 수복하면서 대륙과 국경이 맞닿자, 마약과 함께 총기도 들어오기 시작했다.

마침 중국도 붕괴하고 러시아도 독재자가 피살되는 등의 혼란기를 겪어서 더욱 많은 총기가 두만강과 압록강을 넘어왔다.

덕분에 범죄자들은 더욱 위험해졌고 제압에도 목숨을 걸어야 했지만, 보수적인 한국 사회는 여전히 경찰의 총기 사용에 대해 학을 떼고 있었다.

군부 독재 시절 총기로 시민들을 학살했던 국가적 경험이 공권력에게 총기 사용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히어로는 총기를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총기로 무장한 범죄자들을 능히 제압할 수 있었다. 특히 무장한 범죄조직들을 제압하는데 히어로만큼이나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방편도 없었다.

놈들을 잡으려고 경찰력을 투입하면 순직 나올 걸 각오해야 하는데 히어로를 투입하면 만일의 사태가 벌어져도 산재처리만 하면 되니까.

사람 목숨을 뭐로 보느냐는 말이 안 나올 수 없는 말이었지만, 냉정히 현실을 따져 보면 전혀 일리가 없는 말이 아니었다.

조직범죄현장에 투입된 경관의 사망률과 히어로의 사망률을 비교해보면 압도적으로 후자가 낮았다. 사람 목숨을 생각해도 히어로를 투입하는 편이 훨씬 나았다는 말이었다.

경관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라는 명분 덕분에 비초능력자 범죄에 대한 히어로의 투입은 정당화되었다.

높으신 분들은 순직 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앓지 않아도 됐으며, 경찰 본인들은 한층 안전해지고, 히어로는 경력을 쌓고 사회에 공헌하는, 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을 왜 안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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