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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전생 더 빌런-252화 (252/367)

무한전생-더 빌런 252화

24-현지화

그뿐인가? 마구 난립한 히어로 매니지먼트사들 덕분에 경찰의 입김도 세졌다.

흔히 관할 구역이라고 하던가? 히어로가 커버하는 지역, 그리고 투입되는 현장을 조율하는 게 경찰의 역할이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우진 히어로즈는 이렇게 난립한 히어로 매니지먼트 회사 중에서 영세한 곳이었고 이런 회사의 주 영업수단은 루키 발굴 및 판매였다.

히어로라고 범죄자만 잘 잡으면 다일까? 그건 예전의 일이고 요즘에는 이미지 메이킹과 홍보가 중요한 시대였다.

얼마나 멋지게 범죄자들을 제압하는가? 그리고 그 장면을 얼마나 잘 찍어서 얼마나 잘 편집하고 얼마나 잘 대중들에게 보여주느냐가 히어로 산업의 승패를 좌우했다.

이로 인한 이미지 구축과 광고 사업이야말로 이 바닥에서 가장 돈 잘 버는 방법인 것이다.

당연히 그러려면 규모가 큰 업체가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우진 히어로즈같이 영세한 업체는 루키를 발굴한 후에 인지도와 몸값을 높여서 더 큰 회사에 팔아넘기는 것을 주 수익모델로 삼았다. 마치 스포츠 선수들 이적하는 것처럼 말이다.

경완은 옥상에서 우진 히어로즈의 사무실을 초감각으로 훑었다. 그 건방진 녀석이 사무실 안에 있었다. 아무래도 출동대기 중으로 보였다.

경완은 옥상에 누워서 얼굴로 내리쬐는 태양빛을 박스로 가린 후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그러면서 간간이 초감각을 돌려 천기호의 움직임을 감시했다.

하지만 좀처럼 움직임이 없었다. 하긴 이런 대낮에 히어로가 출동해야 할 정도의 일이 벌어지긴 힘들었다.

범죄자들도 꼴에 머리가 달려 있지 않은가? 범죄는 밤에 저질러야 목격자가 적고, 혹시나 보더라도 제대로 못 볼 가능성이 컸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경완은 계속 기다렸지만 결국 해가 졌고 미연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빠. 나 퇴근해.]

“그래, 데리러 갈게.”

경완은 그때도 초감각을 돌렸다. 여전히 사무실에 앉아 있는 천기호의 모습이 느껴졌다. 뭐랄까…… 이쯤 되니 뒤끝보다는 가여운 마음이 들 정도였다.

마치 인력사무소에 앉아 있지만 아무도 찾지 않는 일용직 노동자 같은 느낌이랄까?

문제가 커지지 않게 남들 눈 피해서 버릇을 고쳐주려고 했는데 좀처럼 기회가 나지 않는다는 짜증을 측은한 마음이 달래주었다.

아무리 이경완이라도 측은지심이 없진 않았다. 건방진 건 짜증 나지만 사정이 딱하다면 동정심으로 한 번쯤 넘어갈 수도 있었다.

그런 그의 생각이 바뀐 건 미연의 퇴근을 도와주고 저녁을 먹고 난 후 후식을 먹을 때쯤이었다.

“위버멘쉬 코리아, 큰일 났나 봐.”

“또 무슨 일 났어?”

“아니 그게 아니라, 이번에 죽고 다친 사람들이 워낙 대단한 사람들이었잖아?”

“글쎄?”

경완은 고개를 갸웃했다. 국회의원이 대단한 사람인가? 뱃가죽에 칼도 안 들어갈 정도로?

그들은 스스로 대단한 사람으로 여겨지길 바라지만 실제로는 당선 전에는 간도 쓸개도 다 내어줄 것처럼 넙죽넙죽 절하는 인간이 태반이었다.

그리고 당선 후엔 너는 천것, 나는 상것이라며 콧대를 높이기 일쑤. 한마디로 웃기는 것들이었다.

경완의 입장에선 가소롭기 짝이 없었다. 대가리를 짱돌로 찍어주면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선생님 운운하면서 무릎 꿇고 두 손 모아 싹싹 빌 인간의 전형적인 모습 아니겠는가?

경완은 딱히 그런 인간들을 욕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폭력 앞에 모두가 평등해지는 건 진리에 가까웠고, 폭력에도 굴하지 않을 정도로 줏대 있는 인간들은 선거라는 복마전에선 살아남기 힘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줏대 있는 인간들은 그렇지 않은 인간들이 보기엔 최소 ‘그래 니 잘난 놈’ 혹은 더 나아가 씹선비처럼 보인다는 것이고, 대중은 자신들에게 희망찬 환상을 보여주는 이에게 투표하지 이래선 안 된다 저래선 안 된다 지적하는 씹선비를 좋아하지 않았다.

솔직히 여태 투표도 한 적 없는 경완이 누굴 욕하겠는가?

그는 기껏 찍어줬더니 그런 병신일 줄은 몰랐다며 욕을 하는 멍청한 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 먹어봐야 아는 지능이 아닌 건 둘째 치고, 적어도 내가 투표해서 당선된 새끼가 엉뚱한 헛짓거리를 한다면 배때기에 사시미를 기꺼이 삽입해 줄 정도의 책임감은 가지고 투표해야 하지 않겠는가?

민주주의의 최대의 문제점이 바로 거기에 있었다.

책임의 분산. 설사 병신 같은 대통령이 뽑혀도 누가 하나 나서서 책임지는, 혹은 책임질 수 있는 인간이 없다는 것.

다른 인간이야 한 인생 살고 가는 하루살이나 다름없어서 투표 실패에 깡소주나 빨며 정부와 정치인을 욕하겠지만, 경완이 같은 수준으로 놀기엔 명색이 무한전생자라는 자존심이 있었다.

그만큼 오래 살았는데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 못 하면 접싯물에 코 박고 뒈져야지. 아, 어차피 환생하나?

아무튼, 이것이 경완이 여태 투표하지 않은 이유이며 국회의원들이 고맙다고 그에게 절을 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만일 그가 투표를 한다면 그가 투표한 국회의원은 항시 배때기 걱정을 하고 임기를 지내야 할 테니까.

미연은 경완이 고개를 갸웃하며 의아해하자 이렇게 반박했다.

“오빠 눈에는 시시하게 보일지 몰라도 남들에게는 안 그렇거든.”

미녀는 이번 사건이 얼마나 큰 파급효과를 지녔는지 설명했지만 정작 경완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다른 것이었다. 위버멘쉬가 한량, 백수같이 별 볼 일 없는 인간을 초대할 리 없다는 것.

당연하게도 그 자리에 있던 천기호라는 놈도 일이 없어 자리에 앉아 대기만 하는 별 볼 일 없는 반백수가 아닐 가능성이 높았다.

경완은 자신이 너무 성급하게 편견을 가졌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후식을 챙겨 먹다가 미연의 수다가 끝날 때쯤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빠, 어디가?”

“잠시 볼일 보러?”

“뭔데?”

“어……. 정호태 지부장이 부탁한 일이 생각나서?”

그러니까 천기호와 면담해서 용의자인지 파악해 달라는 일이었지?

거짓말은 아니었다. 다만 그걸 제안한 사람이 경완 본인이라는 것만 말하지 않았을 뿐.

“그런 거라면 얼른 해야지 까먹고 있었어?!”

미연은 놀라면서 얼른 가라고 경완의 등을 떠밀었다.

그는 위버멘쉬 코리아 지부장의 이름값이 이 정도인가?라는 생각을 안고 신발을 신었다. 그리고 곧장 웜홀을 타고 개성으로 이동했다. 혹시나 해서 웜홀 마커를 박아둔 게 다행이었다.

경완은 다시 우진 히어로즈의 사무실을 초감각으로 훑었다. 저녁을 먹고 난 이후였지만 그래도 천기호는 여전히 대기 중이었다.

초조한지 일어섰다가 앉았다가, 괜히 스쿼트도 몇 번 하고 팔굽혀 펴기도 몇 번 하는 녀석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괜히 짠해졌다. 혹시나 자신이 뭔가 오해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갑자기 사무실이 분주해졌다. 천기호는 급히 주차장으로 내려가 바이크를 타고 튀어 나갔고, 사장으로 보이는 사람과 그 직원들이 승합차를 타고 뒤를 쫓았다.

그런데 모습이 가히 심상치 않았다. 천기호가 운전하는 바이크는 물리법칙을 벗어난 것마냥 미친 가속과 방향전환 능력을 보여주었다. 초능력이 분명했다.

경완은 유심히 천기호의 S입자 운동을 관찰했는데, 염동력 따위가 아니었다. S입자가 주변 시공간에 녹아드는 것이 시공을 다루는 능력임이 분명해 보였다. 한마디로 줄이면 시공계열의 가속능력이랄까?

본인과 본인 주변의 시공을 그 주변으로부터 일정량 괴리시켜 시간을 가속하는 능력으로 보였다.

경완의 웜홀 능력도 일종의 시공계열 능력이었지만 저런 식의 활용은 현재로선 흉내조차 낼 수 없었다.

S입자가 시공에 녹아들며 작용하는 작동기재에 대한 정확한 매커니즘을 전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경완은 왜 위버멘쉬가 저 녀석을 파티에 초대했는지 알 것 같았다. 아주 귀한 능력을 가진 루키라면 투자의 개념에서 호의를 베풀 수 있었다. 뭐 테러 때문에 헛고생이 되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 뒤를 쫓는 우진 히어로즈의 사장과 스탭들도 범상치 않았다. 크게 맘먹고 투자했는지 카메라가 달린 RC 비행기가 천기호의 머리 위를 따라다니고 있었다.

경완은 도로 위 20미터 높이에서 나는 RC 비행기에 혀를 내둘렀다. 낮도 아니고 밤인데 사람이 조종하는 거라면 대단한 거고 기계가 조종하는 거라면 돈깨나 깨졌을 거라고.

경완도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방향은 개성시 동쪽. 중간에 방송 차량으로 보이는 차들이 하나둘씩 눈에 띄었다. 방향을 보니 그들도 천기호와 우진 히어로즈가 가는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 허름한 공장에 도착했을 때 경완은 현대 히어로 엔터테이먼트 산업의 적나라한 현장을 볼 수 있었다.

“카메라 도착했어?!”

“드론 날려! 드론!”

“거기 조심 좀 해요! 우리 드론이 얼마짜린 줄 알아요?!”

“네~ 유튜브 시청자 여러분 반갑습니다! 여기는 현재 히어로들이 출동한…….”

“이 타이거맨이 있는 한! 개성의 범죄는…….”

“……구독! 좋아요! 알람 설정까지!”

“거 위험하니까! 접근하지 말라니까요!”

경찰과 기자와 유튜버에 휴대폰 카메라를 든 구경꾼들까지.

그 모습을 본 경완은 할 말은 많지만 안 하기로 했다.

차~암 열심히들 산다. 열심히들 살어.

히어로 더 플래쉬, 천기호는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맹활약했다.

본인 주변의 시공을 괴리시키고 가속해서 움직이는 그의 능력은 본인의 입장에선 세상 전체가 마치 슬로우 모션으로 들어간 것으로 보일 것이다. 총알조차 느려서 보고 피할 정도로 말이다.

경완의 초감각에 천기호가 슉슉슉하고 움직여서 농성을 벌이고 있던 마약 유통 조직원 12명 중 6명을 무력화하는 것이 보였다. 나머지 6명은 같이 현장에 투입된 두 명의 다른 히어로가 제압했다.

경완은 계속 구경했다. 범인들이 제압되고 안전이 확인되자 경찰이 투입되었다.

경찰은 수백 킬로그램의 마약과 총기류들을 수거했는데 총기 중엔 AK계열의 소총도 여럿 보였다.

이야~ 이 정도면 총기 청정 국가는 이미 물 건너간 거 아닌가? 마약도 마찬가지고 말이다.

그래서 항간에는 작게 민간 총기 자유에 대한 담론이 퍼져 나가고 있는 모양이었다.

처음에는 경완도 인터넷에서 그러한 주장을 들었을 땐 이 무슨 뜬금없는 소리인가 싶었지만, 만일 히어로라는 존재가 없었다면 정말 진지하게 총기 자유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시작되었을 것이다. 사회가 안전을 제공하지 못한다면 스스로 챙기는 수밖에 없잖은가?

경완은 이렇게 히어로 매니지먼트사가 많아진 이유가 어쩌면 높으신 분들이 그렇게 판을 깔아서 그런 것이 아닐까란 음모론을 떠올렸다. 히어로라는 존재 덕분에 민간 총기 자유에 대한 담론이 더 뻗어 나가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과연 높으신 분들은 시민들의 손에 총기가 들리는 상황이 두려운 걸까, 아니면 총기를 자유화하기엔 아직 입에 떨어질 이득이 크지 않은 것일까? 그건 두고 볼 일이다.

경찰의 투입으로 현장은 빠르게 정리되었다. 현장지휘관은 투입된 히어로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고, 경찰들은 범인의 이송과 증거물 확보를 서둘렀다. 그리고 히어로들은 기자들 앞에서 인터뷰했다.

더 플래쉬, 천기호는 능력은 뛰어났지만, 그렇게 인기 좋은 인터뷰 대상은 아닌지 다른 히어로들이 입담 좋게 인터뷰를 진행하는 와중에 그는 약 2~3분간의 짧은 인터뷰만 마치고 나왔다.

경완은 조심히 그런 천기호의 뒤를 따라가다가 인적이 없는 곳에서 천기호가 우진 히어로즈의 사장으로 보이는 중년 남자로부터 훈계를 듣는 걸 목격했다.

“너 또 왜 그리 까칠하니? 내가 기자들에겐 잘 보여야 한다고 몇 번이나 말했잖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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