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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전생 더 빌런-254화 (254/367)

무한전생-더 빌런 254화

25-헤게모니

“그렇군요.”

경완도 굳이 더 캐묻지 않았다. 하지만 요하네스가 관련되어 있다고 했으니 뭔가 커다란 밑그림을 그리는 용도이지 않을까 정도로 이해했다.

설마 정말 젊은이들을 위한 어른의 마음일 리는 없었다.

맨손으로 지금의 위버멘쉬를 일구어낸 능력자가 정말 순수한 의도로 온갖 유력자들을 불러모은 파티에 천기호 등의 젊은이들을 초대했을 리 없었다.

경완은 정호태가 그에 대해 더는 모른다고 하니 화제를 돌렸다.

“수사는 어때요?”

[모르겠습니다. 알 수가 없어요.]

“그래요?”

국회의원들이 대거 죽은 상황은 국가 체제에 대한 도전인데도 범인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경완은 딱히 체제에 대한 도전으론 생각하지 않지만, 높으신 분들은 기꺼이, 그리고 당연하게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언론에서 그런 방향으로 바람 잡는 거 보면 뻔했다.

평생 자신들만은 안전할 거라 했던 장담이 깨진 일은 바로 분노를 일으켰다.

서슬 퍼런 공권력이란 칼날이 북한 분리주의 운동가들을 용의자로 지목했다.

그들이 정말 범인이 아니라도 상관없었다. 만들어서라도 범인을 만들고 엄벌해서 다시는 국회의원을 테러할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모두의 뇌리에 심어두는 게 중요했다.

마치 석궁으로 판사를 위협했을 뿐인 사건이 판사 테러 사건, 혹은 살인미수 사건으로 변모한 것처럼 말이다.

증거주의? 죄는 밝히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한국 사법의 역사를 보면 그런 사례는 즐비했고, 법조계에 있는 이들이 법을 자기네들 유리한 대로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일은 오늘날에도 비일비재했다.

그나마 경완과 상관없는 일이라서 다행인 걸까?

“피해를 많이 입으셔서 어떡해요?”

[……그게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왜요?”

[어…… 그게 제 입으로, 또 유선상으로 말하기가 좀 그렇네요.]

“그렇군요.”

경완은 정호태와 몇 마디 나누고 대화를 끝마쳤다.

경완이 정 지부장이 말하기 꺼려한 이야기의 내막을 알게 된 건 며칠 후 요하네스와의 통화에서였다.

[정 지부장을 경질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는 위버멘쉬 코리아를 훌륭하게 경영했고 위기 상황도 잘 버텨냈죠. 명성이 좀 깎이기는 했지만, 정 지부장의 잘못도 아니고, 어차피 너무 높은 명성은 적만 늘리니 좀 흠집이 나는 것도 한국의 사회환경을 생각하면 나쁘지 않습니다.]

“왠지 피해가 아니라 이득을 얻었다는 소리로 들리는데요?”

경완은 정호태 지부장의 말을 떠올리며 물었다. 그때의 뉘앙스와 지금 요하네스가 하는 말을 종합해 보면, 자선파티 테러 사건은 오히려 위버멘쉬에게 도움이 됐다는 것 같았다.

[하하. 사실 죽은 사람들 모두 우리와 척을 진 사람들이거든요.]

“한국 기득권층하고는 친해진 거 아니었나요?”

[어떻게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있겠습니까? 그건 신도 불가능해요.]

“그렇긴 하죠.”

[그런 점에서 죽은 이들은 타협이 힘들 정도로 탐욕적인 자들이었죠. 오만했고 본인이 가진 권력의 금자탑이 영원하리라 믿었습니다.]

“바보네요.”

[하하하! 바보가 어떻게 그렇게 권력 있는 자리에 올라갔겠어요? 그저 그들은 그들의 뒷배를 믿었을 뿐이랍니다.]

“호오~ 뒷배가 있었다고요.”

[네. 일본이죠.]

순간 경완의 머리에 자신이 일본에 가서 방사성 폐기물의 완전처리 겸 스마트 포스필터 기술 시연을 도와주고 온 일이 떠올랐다. 귀찮게 그런 출장을 다녀온 이유가 아마 친일파 내지 신친일파라는 자들 때문이었지?

뭔가 생각이 떠오를 듯 말 듯한 상황에 요하네스가 말을 이었다.

[경완 씨는 잘 모르겠지만 일본은 지금 어떻게든 한국에 영향력을 드리우려고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어요. 중국은 군벌이 난립한 춘추전국시대로 회귀했고, 러시아는 당분간 내부정리에 들어가 외부로 힘을 투사하기 힘든 지금 상황은 그들에겐 대륙진출의 꿈을 실행할 절호의 기회로 보일 겁니다. 게다가 북한도 붕괴한 상황이라 한반도는 대륙 진출의 교두보나 다름없는 상황이잖아요? 그런데 문제는 한국에 저희 위버멘쉬가 진출했다는 거죠.]

요하네스의 말을 경완 식으로 해석하면 이랬다.

우리가 차려놓은 밥상에 엉뚱한 놈이 와서 앉으려고 한다는 것.

위버멘쉬가 한국 사회에 자리 잡기 위해서 단순히 기득권층하고 샤바샤바만 했을까?

아니었다. 그들은 초능력자 발굴과 인재 육성은 물론 북한 개발과 치안 활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에 기여했다.

그저 단순히 권력과 기득권층과 야합했다면 국민적 반발을 샀겠지만 그러지 않고 한국과 상부상조하며 천천히 한국 사회에 녹아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일본놈들이 자신들이 차린 밥상에 신친일파라는 숟가락을 들이대네?

이걸 용납할 수 있을까?

뭐, 일본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위버멘쉬가 굴러들어온 돌로 보일 것이다.

일본이야말로 오랜 역사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에 집적거리며 영향력을 행사해온 집단이 아니던가?

식민지 시절부터 시작해서, 친일파, 자발적 일뽕, 한국이 아닌 일본의 입장을 대변하는 한국 극우, 한국 유통에 뿌리내린 한일 정체성이 모호한(하지만 그룹 회장이 한국어를 거의 못하는) 대기업, 가마우지 경제, IMF 때는 제2, 3금융권으로 들어와 신나게 해먹고, 일본 본토 태생의 한국 대통령까지 배출.

과장하자면 내선일치가 이루어지고 있는 아주 끈끈한 사이였는데, 갑자기 위버멘쉬라는 놈들이 와서는 한국의 기득권을 노리니 충돌은 예견된 일이었다.

경완의 머릿속에 떠오르던 생각이 선명해졌다.

“죽은 사람들이 친일파였던 모양이죠?”

[친일파 가계에서 태어나 일본의 지원까지 받는 성골 중의 성골이었죠. 신친일파의 구심점이도 하고요. 그래서 그런지 회유도 힘들더군요. 뭐랄까. 절대 저들의 서클에 끼어들 순 없다는 확신이 들었죠.]

“그래서 없앴어요?”

[What?]

뜬금없이 튀어나온 질문에 요하네스는 반문했다.

경완은 다시 질문했다.

“혹시 총수님이 하신 일인가 싶어서요.”

동기는 충분해 보였다. 이런 말도 있잖은가? 용의자가 없다면 이득을 얻는 자가 범인이라고.

한국이란 사회의 패권을 얻는 데 방해가 되는 경쟁자를 해치웠다고 설명하면 모든 게 맞아떨어졌다. 능력도 되고 말이다.

요하네스는 부정하는 대신 이렇게 말했다.

[그게 중요한가요?]

“딱히 중요하진 않네요.”

자백이나 마찬가지인 대답이었지만 경완은 동요하지 않고 일축했다. 국회의원 서른과 기업인 몇이 죽은 건 권력을 쥔 자들에겐 엄청난 사건이겠지만, 그의 관점에선 권력이 수평 이동한 사건일 뿐이고 그런 일은 인류의 역사상 비일비재했다.

평화적인 권력의 이양? 그딴 건 요순시대에나 있었던, 증명되지도 않는 전설일 뿐이다.

그런 경완의 담담한 반응에 요하네스는 잠시 말이 없다가 뜬금없다면 뜬금없이 이런 말을 꺼냈다.

[혹시나 오해가 있을까 봐 말하는 거지만 이경리는 죽지 않았습니다.]

“그럼 거기서 폭발한 사람은 뭐죠?”

[정교하게 만든 인형이죠. 내부를 폭발물로 가득 채운.]

DNA 검사는 어떻게 통과했을까? 매수, 해킹, 시료 바꾸기 등 여러 방법이 떠올랐지만 캐묻진 않았다. 알아서 뭐하게?

그보다는 사람들이 리얼 인간이라고 생각될 정도의 인형을 만들어 조종했다는 것이 놀라웠다. 아마 초능력이 사용된 거겠지?

“대단하네요.”

경완은 감탄했다. 적어도 초능력의 활용면에서 위버멘쉬는 다른 모든 국가기관을 제치고 선두에 있는 것은 확실해 보였다. 인간으로 보이는 인형을 만들고 조종하는 능력이라니.

요하네스가 마저 설명을 이었다.

[진짜 이경리는 지금쯤 백사장에 누워서 느긋한 휴가를 보내고 있을 겁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되나요?”

그것도 굳이 자신에게?

요하네스가 대답했다.

[경완 씨가 혹시 우리 위버멘쉬를 사람 목숨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악의 축 따위로 오해할까 봐 걱정돼서요. 저는 우리 조직이 최선은 아니지만 나름 인류에게 공헌하고 있다고 자부하거든요.]

“그럼 차선인가요?”

[차선이 되려고 노력하는 차악 정도로 하죠.]

경완의 농담에 요하네스는 그렇게 정리했다.

위버멘쉬의 총수는 경완에게 지나치게 솔직히 테러에 관한 걸 털어놨다. 그 말은 그렇게 솔직해도 될 정도로 경완에게 호의와 신뢰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솔직히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그 이유를 도무지 모르겠다는 게 더 부담스럽고 찝찝했다.

물어보는 건 더 찝찝했고.

경완은 이 일에 더 깊이 엮이기 싫어서 슬슬 말을 돌렸다.

“아무튼, 저는 모르는 걸로 하죠.”

[그게 편하시면 그렇게 하시죠.]

경완은 더는 이 사건에 얽히고 싶지 않았다. 권력과 패권을 두고 벌어지는 건곤일척의 승부는 이기든 패배하든 그만한 대가를 요구하기 마련이었고, 거기에 휘말린 인간은 평온 일상과는 작별인사를 해야 했다.

하지만 한국 땅에 있는 한, 아무리 경완이라도 국회의원들이 대거 테러로 사망한 사건의 영향에서 자유롭기는 힘들었다. 설사 그들이 평소에 욕을 존나 처먹던 국회의원이라도 말이다.

“귀찮은데…….”

경완은 자신을 찾아와 한 가지 의뢰를 맡기려는 정준혁 안보실장에게 흥미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정준혁 안보실장이 맡기려는 일은 다름 아닌 체포된 테러 용의자들에 대한 심문이었다.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정준혁 안보실장이 사정하자 경완은 바로 거절하진 않았다. 정준형 안보실장의 눈밑이 시커먼 게 과로한 기색이 역력했다.

“경찰하고 검찰에 맡기면 되지 않나요? 국정원도 있고.”

“대통령께서 지켜보고 계십니다.”

음. 안 봐도 그림이 그려진다. 테러범을 잡아서 떨어지는 지지율을 붙들어보겠다?

정말 북한 분리주의 운동가들이 범인이라면 나쁘지 않은 판단이었다. 언론과 검찰, 경찰, 국회, 기업 등 한국의 힘 있는 집단들이 일치단결해서 범인을 색출할 테니까.

아마 대통령은 그 위에 숟가락만 올리면 된다고 판단한 듯했다. 하지만 어쩌나? 영 잘못 짚었는데, 쯧쯧.

경완은 잠시 생각했다. 괜히 여기서 얽히기 싫다고 빼는 것도 이상했다. 그래, 지금의 이경완은 저번 요하네스와의 대화를 깡그리 잊어버린 이경완이어야 했다.

그래서 경완은 완곡하게 허락하면서 조건을 달았다.

“혹시나 심문 결과가 마음에 안 든다고 저한테 따지지 마세요.”

“물론입니다.”

“그리고 출장비는…… 아시죠?”

“관례대로 지급하겠습니다.”

정준혁 안보실장의 대답에 경완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나 간단한 조건부 허락과 합리적 가격에 정준혁 안보실장의 표현도 환해졌다. 이제 경완의 18번, 진실의 스무고개로 용의자들로부터 자백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벌써 20명째입니다. 아직도 단서가 안 나온 겁니까?”

“슬슬 이쯤 되면 안보실장님도 인정할 때가 된 거 아닌가요? 북한 분리주의 운동가들이 그 테러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걸 말이죠.”

“정말 제대로 심문한 거 맞습니까?”

“제가 심문하는 거 직접 봤으면서 뭘…… 못 믿으면 여기서 손 털죠.”

경완이 예상한 대로 긴급체포한 북한 분리주의 운동가 중엔 테러와 관련된 이들은 없었다.

정준혁 안보실장이 초조한 기색으로 물었다.

“진짜 단서 하나 없습니까?”

“다 녹화 녹음했잖아요? 뭔가 더 의심스러운 게 있으면 다시 한 번 살펴보는 게 어때요?”

“…….”

경완의 제안에 정준혁 안보실장은 거칠게 마른세수를 했다.

그 모습에 경완은 속으로 혀를 쯧쯧 찼다. 처음 봤을 때에는 깔끔하고 샤프하고 날카로운 인상이었는데 지금은 퇴직 압박을 받는 중년 가장과 같은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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