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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전생 더 빌런-258화 (258/367)

무한전생-더 빌런 258화

25-헤게모니

그 선물이란 다름 아닌 태평양 양식 연구단지에서 키운 양식 참다랑어였다.

키운지 얼마 되지 않아 겨우 30kg짜리였지만 미연과 경완이 며칠 참다랑어로 배를 채울 수 있을 만큼 넉넉하게 여러 마리를 주었다.

[아이고, 맛있겠네요.]

경완은 먹을 건 사양하지 않았다. 이 정도도 안 받으면 상대의 성의를 무시하는 거 아니겠나?

그는 혹시나 또 일본이 고래 잡겠다고 헛짓거리를 할 가능성을 고려해 연구단지에 웜홀 마크까지 박아놓고, 바스티앙에게 또 이런 일이 생기면 얼마든지 불러달라고 말했다.

바스티앙은 경완의 배려에 감사를 표하면서도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일본 때문에 너무 부담되지 않겠어요?]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전혀 안 그럴 것 같아요.]

저번 테러 사건으로 한국 내에서 일본의 입장을 대변하고 대신해서 영향력을 행사해 줄 빨대는 더 이상 없었다.

설사 일본이 경완에게 앙심을 품고 한국에 남은 친일파를 규합해서 어떻게 해보려고 해도 딱히 경완을 어떻게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설사 그런 일이 벌어진다고 해도 위버멘쉬의 총수 요하네스가 가만히 두고 볼 것 같지도 않았다.

이해가 안 될 정도로 경완에게 호의적이었던 그가 아닌가? 게다가 사실상 위버멘쉬의 태평양 사업에 한 몫 거든 것이나 다름없었으니, 그간 보아온 요하네스라면 반드시 경완의 편을 들어주지 않을까?

경완은 바스티앙의 우려와 배웅을 뒤로하고 순식간에 집으로 돌아왔다.

“왔어?”

“응.”

“그게 뭐야?”

“참다랑어.”

“어디서 난 거야? 볼일 보러 나간다는 게 그거야?”

음…… 읽씹한 게 문제였을까? 묘하게 뾰족한 미연의 태도에 경완은 대답을 잘해야겠다고 느꼈다.

“어. 그러니까…….”

경완은 최대한 성실하게 설명했다. 고래를 죽이려는 나쁜 놈들(?)이 그러지 못하게 하고 왔다고 말이다.

다행히 미연은 사태가 ‘긴급했던’ 것을 이해하고 넘어갔다.

“바스티앙 씨라면 도와줘야지. 좋은 일 하는 분인데.”

“슈퍼 요트를 태워줘서 그런 게 아니라?”

“그런 것도 있고.”

미연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에게 호의를 베푼 사람을 작게나마(?) 돕는 게 뭐가 문제인가? 설사 일본이 얽혀 있다고 해도 그녀는 개의치 않고 당당했다.

“그럼 얼른 먹자. 태평양에서 키운 참다랑어 맛은 또 어떻게 다른지 궁금해.”

미연의 말에 경완이 직접 참다랑어 손질에 나섰다. 어린 개체가 그리 크진 않았지만 성인 남성의 팔뚝보다 조금 더 큰 생선을 미연이 손실하기엔 좀 무리였다.

그렇게 둘은 참다랑어 회를 먹으며 일상의 평온함을 즐겼다. 내일부터는 잠시 소란이 일 것을 그도 그녀도 예상한 듯 서로를 의미심장한 시선으로 보면서 말이다.

둘의 예상대로 경완이 일본 고래 사냥팀을 무력화한 영상은 외신에 먼저 방송되었다가 한국 언론에 의해 국내로 들어왔다.

처음의 논조는 ‘일본의 살인고래 사냥팀을 방해한 의문의 초능력자는 누구?’라는 식이었지만, 영상과 영상에 나온 그 의문의 초능력자가 발휘한 능력을 분석하면 분석할수록 그가 바로 이경완임을 모를 수가 없었다.

이 세상에 그 말고 또 웜홀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인간이 존재한다면 또 모를까. 전투 영상을 본 모두가 그 의문의 초능력자로 이경완을 지목했다.

그리고 여러 사람들이 공교롭게도 한꺼번에 경완의 집을 방문했다. 일단 미국에서 이경완 전용 소통창구로 붙인 김준, 청와대 안보실장 정준혁, 국정원 차장 이관영에 외교부 차장이라는 사람까지 거의 동시에 찾아온 것이다.

“…….”

“…….”

“…….”

“…….”

거실에 가득한 어색한 분위기. 신기하게도 각각 따로 왔는데 어쩌다 보니 함께 경완과 마주하게 되었다.

미연이 출근한 이후 이관영이 찾아와서 경완이 태평양에서 한 짓을 가지고 뭐라고 하다가, 김준이 오고, 정준혁이 오고, 외교부 차장이 오게 되어 모두가 한자리에 모이게 된 것이다.

서로 경완이 벌인 일에 대해 물어보거나 항의하고 싶어서 왔지만, 각자 몸담은 곳이 다르다 보니 서로의 눈치를 보며 말하기 꺼렸다.

자신들이 말한 내용 모두가 정보자산이자 국익과 관련된 일이 아니던가?

경완은 어색한 분위기에 피식 웃었다. 커피가 담긴 머그잔을 홀짝이며 그 미소를 가렸기에 남들은 그걸 볼 수 없었다.

그는 가장 나이가 많고 가장 주변 눈치를 많이 보고 있는 외교부 차장에게 말을 걸었다.

“공태구 차장님이라고 하셨죠?”

“네.”

“장관님은 어쩌고 대신 오셨어요?”

“어, 그게 장관님까지 나설 일은…….”

“에이. 저도 눈치가 있는 사람인데 그런 말을 믿을까요?”

“…….”

“장관이 똥물 뒤집어쓰기 싫다고 대신 온 거죠?”

“…….”

경완의 말이 정곡을 찔렀는지 공태구 외교부 차장은 입을 다물고 다른 세 사람의 눈치를 보았다.

경완의 말이 틀리진 않았다. 왜냐면 경완이 태평양에서 저지른 짓은 한일 양국 사이 싸질러놓은 커다란 똥이라 해도 무방했기 때문이다.

그런 공태구 차장의 반응에 극히 공감되는지 이관영 차장이 볼멘소리를 했다.

“이러다가 한일 공조가 망가지게 생겼습니다.”

“북한도 없고, 중국도 없는데 누굴 상대로 공조를 해요? 러시아? 미국?”

“…….”

경완의 일침에 이관영 차장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고, 그러자 경완은 김준에게 시선을 돌렸다.

“김준 씨는 왜 왔어요?”

“경완 씨의 생각이 궁금해서 왔습니다.”

태평양 패권을 위협하는 가장 큰 상대였던 중국이 망하고, 러시아도 당분간 내부 정리에 여념이 없을 테니 남은 건 일본뿐이다.

어? 일본은 미국의 동맹이지 않은가?

하지만 불행히도 미일 사이엔 진주만 사건이 있었다.

일본은 미국이 진주만을 잊기를 간절히 바라겠지만, 과연 미국이 그럴 수 있을까? 미국 건국 이후 영토를, 그것도 기습적으로 선제타격 당한 유일무이한 사건인데?

아무리 일본이 미국 정가에 돈을 뿌리고 딸랑거린다고 해도 일본을 향한 미국의 인식 한쪽엔 경계하는 시선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미국도 바보가 아니라, 일본의 군국주의 우익세력이 여전히 기득권층으로 잘 먹고 잘살고 있었고, 일본인이라는 집단의 기질 자체가 구밀복검이라는 걸 파악하고 있었다.

한국식으로 표현하자면 ‘왜는 예로부터 신의를 지켰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랄까?

무려 이순신 장군님이 더 이상 왜군을 공격하지 말라는 명나라 관리 담종인에게 보낸 서신에 쓴 내용이었다.

“저야 뭐 미국 시민권자 아닙니까?”

미국의 국익을 신경 쓰고 있다는 경완의 표현에 김준은 알겠다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세 사람과는 달리 그리 사태를 심각하게 보고 온 건 아니었다. 그냥 조용하던 이경완이 큰일을 했기에 상황 파악을 위해 평상시의 프로토콜대로 행동한 것일 뿐. 오히려 한일 양국이 다투면 미국이 중재역으로서 중간에 꿀을 빨 수도 있었다.

경완은 마지막으로 청와대에서 온 안보실장 정준혁을 보았다. 왜 왔는지 가장 이해가 안 되는 인사였다.

“외교부랑 국정원은 그렇다고 치고. 청와대 안보실장님은 무슨 일로 오셨어요?”

“저. 그게…….”

말꼬리를 흐리는 정준혁의 얼굴은 피곤함에 젖었던 예전에 비해서 전혀 나아진 것이 없었다.

자선파티 테러 수사에서 성과를 내지 못해서 대통령에게 질책당한 모양이었다.

그는 괜히 손수건으로 이마를 닦고는 공태구와 이관영의 눈치를 보면서 말했다.

“아무래도 국익이 달린 일이라 VIP께서 관심을 두고 계십니다.”

경완은 상황을 종합했다.

“그러니까 여기 한 사람 빼고, 한국 정부 기관에서 오신 분들은 전부 제게 불만이 있는 거네요?”

“아니, 불만이 아니라,”

“불만이 없었으면 여기서 이렇게 아쉬운 소리를 할 리가 없잖아요?”

“…….”

적나라하게 표현해서 그렇지 경완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도대체 일본이 뭐라고 했기에 이 난리들이에요?”

“……자국과 상의도 없이 끼어들었다고,”

“잠깐, 뭔가 좀 이상한데요?”

공태구의 말을 경완이 잘라먹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니까. 왜 제가 사적인 친분으로 움직인 일을 왜 한국 정부에다가 항의하느냐는 거죠.”

“그야 경완 씨가 한국인니까…….”

“아, 그러니까 내가 한국인인 게 문제다? 그럼 한국인 안 하면 되겠네요?”

“네?”

경완의 말에 뜻밖인 듯 네 사람 모두가 저마다 크기의 차이는 있었지만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보았다.

“내가 한국 국적 버리면 되잖아요? 그럼 내가 한 일로 일본 정부가 한국에 항의할 일도 없을 테고요. 깔끔하죠?”

한미 이중국적을 가진 반 검은 머리 외국인에서 리얼 검은 머리 외국인이 되어볼까?

고위 공직자 자녀분들, 사회 계층의 꼭대기에서 노시는 분들 상당수가 그렇게 동포로서의 혜택을 누리며 사시는데 잘난 경완이 못 할 이유가 있나?

“아니, 저 그게!”

경완의 말에 벙쪄 있다가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건 이관영이었다.

한국 국적 포기라니?! 이경완이?! 이경완 보유국이란 타이틀을 포기하란 말인가?!

“아니 저희는 경완 씨에게 항의하러 온 게 아닙니다! 그냥 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지혜를 모으러 왔죠! 안 그렇습니까?”

이관영이 공태구와 정준혁을 보며 동의를 구했다. 김준은 검은 머리 미국인이라 제쳐놨다.

이관영의 말에 공태구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정준혁은 나는 모르겠다~라는 표정으로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관영은 답답해졌다. 이경완을 보유하고 있다는 게 핵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걸 왜 이해를 못 하지?!

이미 서울 참사에 대한 경완의 보복은 핵보복에 준한다는 게 증명되지 않았던가? 오히려 핵보복보다 더 깔끔하고 더 효과적이었다. 핵발사에 대한 권한을 쥔 자들만 노리고 날아가는 스마트 미사일이랄까?

경완이 툭 던지듯 물었다.

“그럼 어떻게 수습할 건데요?”

“에~ 그건…….”

그러자 이관영은 말꼬리를 흐렸다. 어떻게 이 사태를 수습해야 할까?

“설마 일본에 정중하게 사과하라는 건 아니죠?”

“그게 가장 깔끔하죠.”

경완이 정답을 말하자 이관영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때 경완이 툭 던졌다.

“제가 뭘 잘못했는데요?”

“……살인 고래를 잡으려는 걸 막았지 않습니까?”

“누가 살인 고래인데요?”

“그. 왜 있잖습니까? 일본 포경선을 침몰시킨 고래요.”

“그 고래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기는 한대요?”

“…….”

그러니까 살인고래를 잡아 죽인다는 건 매우 모호한 표현일 수밖에 없었다. 일본이 주장하는 살인고래를 결국 강화고래라는 뜻일 테니까.

“저는 제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사과도 없어요.”

“아니! 왜 이러십니까?!”

이관영은 전전긍긍했다. 만사 귀찮다고 죽은 듯이 지내던 경완이 갑자기 발작(?)하니 이해가 안 돼서 답답하고 미치고 팔딱 뛰고 싶은 심정이었다.

경완이 고개를 갸웃했다.

“전 원래 이랬는데요? 제가 국회의사당으로 반자이어택한 거 잊어먹었어요?”

“…….”

이관영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이 당황스러운 상황에 직장 생각, 직위 생각, 일본 생각, 업무 생각, 상관 생각 등 온갖 생각이 떠올라 머릿속이 혼란스러웠지만, 어떻게든 경완을 살살 달래서 이쪽의 말을 귀담아듣게 해야 한다는 정신줄은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이건 남의 일이지 않습니까?”

“그때 그 일도 제 일이 아니라 검찰 일이었잖아요?”

이관영이 살인고래는 남 일이라고 하자 경완은 국회의원 테러 사건도 결국은 남의 일이라고 대꾸했다.

뭐, 치킨을 못 먹게 된 게 빈정상해서 100% 남의 일이라고 할 순 없지만, 그렇게 따지면 태평양에서의 일도 일본이 해양국제활용기구를 방해해서 물고기 값이 올라 내 밥상 경제에 타격이 왔다는 핑계를 댈 수 있는 거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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