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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전생 더 빌런-259화 (259/367)

무한전생-더 빌런 259화

25-헤게모니

어쨌건, 이관영은 어떻게든 경완을 설득해 보려고 했지만 심드렁한 태도를 바꿀 순 없었다. 그저 간신히 포기 유예를 얻어냈을 뿐.

김준은 떠나면서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정말 한국 국적을 포기할 생각인가요?”

“필요하면요?”

“어…….”

경완의 대답에 김준은 떨떠름한 반응을 보였다.

“왜 그래요? 사랑하는 조국이 이경완 유일 보유국이 되는데 기쁘지 않아요?”

“하. 하.”

김준은 어색하게 웃었다. 이게 과연 기쁜 일일까, 아니면 부담스런 일일까?

이경완이 미국 국적‘만’ 보유하게 되었을 때를 가정해 보자. 과연 그때 그가 얌전히 있어줄까? 이번에 태평양에서 일본 고래 사냥팀을 훼방 놓은 사건 같은 걸 일으키지 않고 말이다.

지금이야 김준은 이관영 등이 경완을 설득하느라 진땀 빼는 장면을 강 건너 불구경하는 심정으로 구경했지만, 정말 경완이 미국 국적만 가지게 된다면 그게 더는 남일이 되진 않을 것 같았다.

“오빠. 어떻게 할 거야? 일본이 노발대발하던데?”

모두가 돌아간 후 싱글 앨범을 준비 중이던 미연이 저녁 늦게 돌아와 경완의 염동력 안마를 받으면서 물었다.

아무리 바빠도 자기 남자가 얽힌 일이라 관심이 없을 수 없었다. 스텝이나 매니저, 회사에서도 언급되기도 하고, 친한 연예인 동료가 물어보기도 했다.

경완이 대꾸했다.

“내가 후쿠시마 도와준 건 벌써 잊은 모양이야.”

이래서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는 말이 있는 모양이지?

미연이 대꾸했다.

“그걸 사람들에게 이야기해 봤자 소용없을걸?”

경완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가 일본을 도와줬던 은혜를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면 노발대발한다는 표현을 쓸 이유가 없었다.

은혜는 잊히기 쉽고, 원한은 기억하기 쉽다. 인간이라는 동물 자체가 그렇게 만들어져 있었다.

“아무튼, 어떻게 할 건데?”

미연이 걱정스럽게 묻자 경완은 차근차근 설명했다.

“사람들에게 폐가 되지 않도록 내가 책임을 져야지.”

여기서 사람들이란 일본에 항의를 받는 한국 정부 관계자들을 일컬었고, 경완이 진다는 책임은 한국 국적 포기였다.

미연의 눈이 동그래졌다.

“진짜?”

“내가 한국인이라서 일본이 한국에 항의하는 거니까 내가 한국인이 아니면 되잖아?”

“그것참 대단한 논리네?”

미연은 어이가 없었지만, 합리적인 방안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경완에게 일본에 사과하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기 남자가 잘못하지도 않았는데 사과하는 꼴을 보긴 싫었다.

합리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 사과하는 게 가장 좋다는 말이 있었지만 글쎄. 미연은 사람이 약한 모습을 보일 때 물어뜯는 인간들을 충분히 보아왔다. 특히 언론에 그런 족속들이 많았다.

그래서 경완의 생각을 들은 그녀는 업무적 관계에 있는 이들과 친인들이 남자친구 일이 궁금해서 물어볼 때마다 경완의 생각이 어떤지 말해주었다.

한국에 너무 폐를 끼치는 것 같아서 한국 국적을 포기할 생각이 있다고 말이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는지 그 이야기가 언론에 퍼졌다. 누군가가 인터넷에 이경완이 한국 국적 포기를 고려하고 있다는 걸 올리고 그걸 많은 사람이 봤기 때문이었다.

-이제 우리 이경완 보유국에서 떨어져 나가는 거야?

-후쿠시마 방사능 제염한 것 하나만 가지고도 3대는 은인으로 모셔야 할 판에 남들 싫어하는 고래학살 좀 막았다고 저렇게 발광하는 걸 보니 역시 일본이랑은 상종하면 안 될 듯.

└이건 좀 인종차별적인 발언인 듯

└넌 좀 일뽕인 듯

└아니 정치인이 잘못이지 일본 국민들은 무슨 죄냐?

└아~ 일본은 정치인을 투표로 뽑지 않는 민주주의 국가구나~ 이제 알았다ㅋㅋ

-정부는 뭐하냐? 일본이 개소리 좀 못 하게 막던지

-이거 일본에서 한국이 이경완을 보유하지 못하게 수작 부리는 거 아냐? 우리가 못 가지면 너희도 못 가진다고

-야야 오피셜 떴다

별의별 이야기가 나돌았지만, 언론 덕분에 한 가지 확인된 것은 있었다. 이경완의 한국 국적 포기설은 근거 없는 이야기가 아니라 충분히 진지하게 고려되고 있다는 것.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게, 그걸 확인해 준 사람이 바로 이경완의 연인인 이미연이었다.

당연히 한국의 여론이 들끓었다. 이경완을 잃어버렸을 시에 벌어질 일들을 시뮬레이션하는 뉴스도 있었다.

예를 들자면 안보가 불안정해지고, 그만큼 안보에 투자해야 하기 때문에 다른 경제 분야나 복지 등에 투자하지 못하고, 경제성장률이 오르지 못하고 투자자가 빠져나가고…….

처음 경완이 그 뉴스를 보았을 무슨 용비어천가인 줄 알았다.

“쟤들 왜 저런데?”

“글쎄?”

경완의 질문에 미연도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단체로 약을 빨았나?”

경완은 의아해했다. 진심으로 그를 싫어하는 언론은 거의 없기는 했다. 훌륭한 뉴스거리가 되어주고 딱히 언론을 적대시한 적이 없기 때문이기는 하지만, 그게 언론이 이렇게나 그의 편을 들어줄 이유는 되지 못했다.

순간 요하네스가 머리에 떠올랐다. 그가 광고를 좀 주기로 했나?

아무튼 나쁘진 않았다. 일본의 항의로 발생한 ‘이경완, 그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여론의 방향이 ‘이경완 보유국을 잃을 것인가 말 것인가’로 변했으니까.

이게 바로 이슈는 이슈로 덮는다는 것 아니겠나?

그래도 정치권에서 뭔가 일이 터질 때마다 캐비닛에서 이슈거리를 꺼내 드시는 검찰님들만큼은 아니지만, 이 정도면 나름 여론전에서 선방한 게 아닐까?

아무튼 언론이 떠들어대니 예전에 왔던 삼인방이 다시 방문했다.

“왜 언론에 알리신 겁니까?”

외교부 차관 공태구가 지친 기색으로 물었다.

“딱히 알린 적 없는데요?”

“그럼 어떻게 언론이 알게 된 겁니까?”

“글쎄요? 친한 지인들이 말했나?”

경완은 미연의 이름을 굳이 꺼내지 않았다. 하지만 이관영은 어떤 경로를 통해 이야기가 빠져나갔는지 파악하고 있었다.

“이미연 씨를 통해서 의도적으로 언론에 유출한 것은 아니고요?”

“딱히 유출할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니었어요.”

“입단속을 하셨어야죠!”

“말하지 말라고 한 것도 아니잖아요?”

심드렁하게 대꾸하는 경완의 태도를 보니 이 일을 가지고 따져도 이빨 하나 안 들어갈 것이 확실해 보여서 정말 급한 용건으로 넘어갔다.

“정말 한국 국적을 포기하실 생각이십니까?”

“저 때문에 국익이 손상된다 하는 분들이 많잖아요?”

이관영은 속으로 이를 갈았다. 하여간 사이비 좆문가 새끼들. 일본 돈은 처먹어도 학자로서의 양심은 팔지 말았어야지!

“일본이 얌전해지면 국적 포기는 안 하시는 건가요?”

“원인이 없어졌으니 당연하지 않을까요?”

“알겠습니다.”

세 사람은 경완의 입장만 확인하고 돌아갔지만, 경완은 딱히 그들이 뭔가를 할 수 있을 거라고 보지는 않았다.

일본 입장에선 한국이 경완 대신 배상을 해주어도 좋고, 한국이 이경완 보유국이 아니어도 좋았다. 그런데 일본이 쉽게 침묵할까?

그런데 의외로 쉽게 침묵했다.

“요즘 일본이 잠잠하지 않아?”

미연의 말에 경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본이 한국에 강하게 항의했다느니, 한일 어업 협정은 무효라느니, 위안부는 자발적 매춘이라느니, 한국에 강하게 나올 수 있는 명분을 확보하자마자 전방위적으로 압박하던 내용이 뉴스를 장식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갑자기 뉴스에서 잘 보이지 않게 되었다.

설마 벌써 시청자들이 질렸다고 언론이 판단하는 걸까?

그렇진 않았다. 한국인들에게 일본의 도발은 늘 짜릿하고 신선했는데 이 좋은 뉴스거리를 포기할 리가?

그런데 뉴스에서는 마치 일본의 항의가 없었다는 듯이 조용했다. 경완의 한국 국적 포기까지 잠잠했다.

경완은 저번에 방문했던 세 사람을 떠올렸다. 국정원, 외교부, 청와대.

음. 그 정도라면 신보도지침을 내려서 언론통제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않을까?

하지만 정답은 다른 곳에 있었다.

“그래서 미국은 제가 싫다?”

경완이 말꼬리를 올리자 김준이 급히 변명을 늘어놓으며 경완의 표현을 완화했다.

“그게 아니라 경완 씨가 한국 국적을 포기하는 게 미국의 국익에 별로 좋지 않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왜요? 부담스럽데요?”

“……그런 것 같습니다.”

김준은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상부의 심정이 자신의 심정과 같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어이가 없네?”

경완이 중얼거렸다. 그의 행보가 얼마나 친미적인가?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던 중국을 저 모양 저 꼴로 만든 것 하나만 해도 명예 미국 시민이 될 만한 자격이 있지 않을까?

뭐, 여론의 눈이라는 거 때문에 안 그럴 뿐이지, 미국의 패권을 옹호하는 매파들은 경완에게 뽀뽀라도 해주고 싶을 것이다.

경완이 중얼거리는 걸 들은 김준은 화들짝 놀라 그가 오해하지 않도록 구구절절이 설명(변명)을 늘어놓았다.

“냉정하게 따져보면 경완 씨에게도 나쁜 일이 아닙니다. 왜 경완 씨가 이토록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다고 봅니까? 그건 경완 씨가 한국 국적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죠. 만일 경완 씨가 미국 국적만 가지고 있다고 칩시다. 세계적 여론이 미국 정부에 압박을 가하지 않겠습니까? 세계 최강대국이 일개 개인을 통제하지 못하고 뭐하냐고요.”

“흐음…….”

경완이 턱을 쓰다듬었다. 충분히 일리가 있는 이야기였다. 경완이 한국의 국적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관리 책임(?)이 분산되는 효과가 없다고 할 순 없었다.

그래서 정말 경완이 미국 국적만 가지게 되었을 경우, 김준이 말한 것처럼 미국 정부와의 갈등이 생길 여지는 충분히 있었다. 패권국의 체면과 권위는 정치적으로, 그리고 실리적으로도 충분히 중요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이 일본 정부에 조용히 의사를 전달한 모양이었다.

닥치라고.

그걸 미국에서 경완이 온전한 미국 시민이 되는 걸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다고 해석했으니, 김준이 저렇게 기겁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렇군요. 충분히 이해가 되네요.”

경완이 고개를 끄덕이자 김준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 논리를 만들기 위해서 정치학 교수와 CIA의 심리분석팀의 자문을 받은 건 정말 적절한 한 수였다. 만약 일이 잘못 풀렸으면 꼴 받은 경완이 어떻게 튀었을지 모르니까.

그렇게 이경완 한국 국적 포기 사건이 일단락되는 듯했지만 연장전이 있었으니, 바로 프랑스 정부였다.

“반갑습니다. 르티오라고 합니다.”

주한 프랑스 대사관에서 근무하는 참사관이 방문한 것이다. 방문 이유는 프랑스 국적 취득을 권유하기 위해서.

경완은 중후한 멋이 돋보이는 갈색 머리의 잘생긴 백인 남성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왜요?”

“우리의 자랑인 바스티앙 씨를 도와주셨지 않습니까?”

“별일 아니었는데요?”

경완이 진심을 겸양 떨 듯 말하자 르티오는 웃으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역시 대단합니다! 분명 선의로 도와주신 거겠죠. 그리고 저희는 저희 국민을 도와주신 그 선의에 보답하고 싶습니다.”

프랑스어 억양이 섞여 사투리 같이 들리는 표준어에 경완은 고개를 갸웃했다.

국가가 선의에 보답하겠다고? 글쎄? 어떤 실리가 없다면 움직이지 않는 게 바로 국가이고 정부이다.

“바스티앙 씨하고 사이가 별로 안 좋아졌나 봐요?”

그를 도와준 경완에게 보답해서 생색을 내고 바스티앙과의 관계를 회복해 보겠다는 의도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번뜩인 건 순간이었고, 그 생각을 내뱉는 건 찰나였다.

그 순간 르티오의 표정이 아주 찰나 굳었던 건 경완의 착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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