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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전생 더 빌런-261화 (261/367)

무한전생-더 빌런 261화

25-헤게모니

“……그건 빼고요.”

경완의 반문에 김준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무리 양국의 자존심이 걸려있는 초인 친선전이라도 승리를 위해서 빌런을 내보겠다는 생각은 좀 많이 무리수가 아닐까?

김준의 대답에 경완은 반쯤 진담으로 이렇게 대꾸했다.

“저도 사실 반쯤은 빌런이잖아요?”

“아유~ 무슨 소리를 하십니까?”

김준은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서 뜨끔했지만 애써 그걸 감추며 반박했다. 하지만 경완은 생각보다 자기 객관화가 잘 되는 인간이었다.

“중국인 입장에선 나라를 무너뜨린 원수고, 각국 수뇌부로선 미쳐서 날뛰면 막을 수 있을까 확신하기 힘든 놈이잖아요? 오죽하면 미국이 홀로 절 감당하기 싫다고 일본을 조용히 시켰을까.”

“…….”

김준은 할 말이 없어서 입을 다물고 얼른 머릿속으로 다른 화제를 생각했다.

“홍창영 교도소장님 기억합니까?”

“아, 그 양반? 그 양반은 왜요?”

“이번에 은퇴한다고 합니다.”

“잘됐네요.”

평이한 목소리. 별로 관심 없다는 태도였다. 어라? 이상하다? 인연이 중요한 이경완이 아니었던가?

김준은 평범한 사람은 평범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놔두려는 경완의 배려임을 인지하지 못하고 얼른 다른 화제를 꺼냈다.

“세계고래보호협회에서 경완 씨에게 감사장을 전달할 거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감사히 받아야죠.”

감사한 마음보다는 귀찮다는 기색이 역력했기에 김준은 다시 다른 화젯거리를 떠올렸다. 그는 두어 개의 다른 화젯거리를 던지고 나서야 경완의 관심을 끄는 이야기를 꺼낼 수 있었다.

“세계 빌런 연합이라고요?”

“도시 전설 같은 이야기이기는 합니다만 근거가 전혀 없는 건 아닙니다.”

경완의 물음에 김준이 설명하길, 범죄 통계학을 연구하는 학자들 사이에서 도는 소문이었다.

근거는 통계. 초능력 범죄는 매년 국제적으로 감소하고 있는데, 이상하게 치안이 안 좋은 나라의 초능력 범죄도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 의문인 모양이었다.

경완이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초능력 마피아가 되어서 지역 경찰이랑 붙어먹었나 보죠.”

“그럴 가능성도 있기는 한데, 사실 범죄조직이 국제화되고 있기는 합니다. 초능력을 이용한 마약 밀수는 적발하기가 정말 난감하거든요.”

국제 마약 무역은 황금알을 낳는 돈줄이고, 초능력은 마약 밀수 방법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초능력만 있으면 막대한 돈을 벌 수 있는 시장에 새로이 참가하려는 어중이떠중이들은 넘쳐났고, 기존 범죄조직들은 덩치를 키우는 것이 자신들의 밥그릇을 노리는 이 시건방진 벌레들의 시장진입을 막는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걸 깨달았다.

거기에 덩치가 커지는 것만큼 돈을 벌고자 마약 유통에 뛰어들려는 초능력자도 쉽게 영입할 수 있었으니, 마약 조직의 국제화는 마약 유통업계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한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이러한 상황이다 보니 마약 밀수에 초능력을 사용하는 경우는 더욱 많아졌고, 그 양태와 방식도 상상을 쉽게 뛰어넘었다. 초능력을 밀수에 악용해서 더 그렇다.

그런데 초능력을 사용한 방식이 워낙 특이하고, 일반화하기가 힘들다 보니 그 적발에는 현장 검역관이나 공무원의 역량이 필수였다.

하지만 공무원 관료주의라는 게 그렇지 않은가? 자율성을 너무 부과했다가는 부패하기 쉽고, 그렇다고 너무 일일이 간섭했다가는 업무 효율성이 떨어졌다.

그래서 매뉴얼이 중요한데, 문제는 초능력을 이용한 이런 밀수는 그 사례와 방식이 워낙 다양해 매뉴얼화가 어려웠다.

이런 이유를 모를 마약 조직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들 마약 조직의 국제화는 피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 되었고, 범죄조직인 만큼 다른 범죄를 업으로 삼는 조직들도 영향을 받아 국제적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었다. 보이스 피싱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김준의 설명을 들은 경완이 혀를 찼다.

“쯧쯧쯧. 초능력이 있으면 성실하게 일할 생각을 해야지.”

“모두가 그럴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모든 나라가 치안이 좋고, 일자리가 충분하며 경제가 좋은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어느 나라는 범죄수익이 GDP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경우가 있었다.

마약과 사이버 범죄로 수익을 추구하던 북한 같은 경우도 있고, 남미의 마약 카르텔과 거기에 붙어서 공생하는 농부들의 경우도 있었다.

그런 나라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보고 듣는 모든 것은 결국 그러한 환경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에게 마약은 범죄가 아니다. 생계수단일 수 있었다.

김준이 말을 이었다.

“아무튼, 그렇다 보니 범죄계에서 누군가가 초능력 범죄자와 빌런들을 규합하고 있다는 소문도 있을 정도입니다.”

“사실이면 재밌겠네요.”

“사실이면 안 되죠.”

김준이 인상을 찌푸렸다. 전 세계의 빌런들을 모두 통합한 범죄조직이라니. 그것도 초능력자들로 구성된.

이 얼마나 끔찍하고 무서운 발상인가? 그들 중에 만일 북한 붕괴의 원인이 되었던 평양 대폭발 같은 걸 일으킬 수 있는 능력자나 하다못해 이경완 절반쯤 되는 인간이라도 있다면?

“왜요?”

“설마. 아니죠?”

“뭔 소리예요?”

“그…… 빌런들을 통합하는. 아, 아닙니다.”

경완은 김준의 헛소리에 어이가 없어서 저절로 주먹이 들렸고, 그 모습을 본 김준은 얼른 두 손을 내저으며 자신이 내뱉은 말을 도로 주워 삼켰다.

경완이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내가 얼마나 바쁜 사람인지 알아요? 할 게임이 얼마나 많은데.”

김준은 경완이 ‘인생은 짧고 할 게임은 많다’고 말하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플레이 시간과 업적, 트로피는 정직했다. 경완에겐 시간상 빌런 통합 같은 짓을 할 여유가 없었다.

더 이상 이 주제로 이야기를 이끌어가기가 뭐해진 김준은 다시 화제를 바꾸었다.

“경완 씨. 이번 한일 초인 친선전에서 누가 이길 것 같습니까?”

“음.”

“잠깐! 그냥 말하면 재미가 없죠.”

“내기라도 하자고요?”

“토토 어떻습니까?”

그 말에 경완은 고개를 갸웃했다. 김준은 그와 내기를 해서 딱히 줄 것이 없었다.

“토토라.”

“재미로 하죠. 승률도 좀 보고.”

“…….”

“왜요?”

“김준 씨는 성실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맞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도박을, 아! 혹시 나한테 도박 성향이 있는지 파악하려고 한 거였어요? 상부 지시로요?”

경완의 말에 김준은 웃는 표정 그대로 굳었다.

경완을 다루는 방법과 그에게 영향을 끼치는 변수는 그의 위험성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국가 지도자들에겐 중요한 문제였다. 중독과 금단증상을 일으키는 도박 따위가 경완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확인하는 것이 마찬가지 맥락이었다.

하지만 그런 성향이 있는지 탐색하는 것은 사생활 침해에 가까웠고, 혹여나 경완이 불쾌해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알 수 없었다.

김준은 처음 이 지시를 반대했지만, 그도 결국 공무원이었기 때문에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예리한 사람이라 바로 들킨다니까, 이 빌어먹을 꼰대들.

반드시 보고서에 이번 일을 기재해서 얼굴을 들지 못하게 해주리라 다짐하는 그를 보며 경완이 혀를 찼다.

“내가 가챠게임 안 하는 걸 몰라요?”

“……모르죠. 프라이버시니까.”

김준은 혹여나 경완의 심기를 긁을까 봐 조심스럽게 대꾸했다. 전후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잔뜩 혼나서 주눅 든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런 김준의 노력 덕분일까? 경완은 인상을 찌푸리기는 했지만 화가 난 기색을 보이진 않았다. 오히려 김준의 사정을 이해한다는 듯, 혹은 그런 지시를 내린 상부의 입장을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죠. 토토.”

“어. 괜찮은가요?”

“안 괜찮을 건 또 뭐가 있나요? 하지만…….”

“하지만?”

경완이 말꼬리를 흐리자 김준이 긴장감을 유지했다.

“정보를 좀 줘야겠는데요?”

아무것도 모르고 토토 같은 걸 할 순 없다는 게 경완의 지론이었다.

기왕 재미로 토토를 한다면 어느 쪽이 어느 종목을 어느 정도 격차로 이길 것인지 정도는 해줘야 재미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그렇지 않으면 동전 던져서 홀짝 맞추기와 다를 바 없었다.

경완의 말에 김준은 안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야 뭐.”

“제가 이번에 김준 씨 편의 봐준 건 알죠?”

“……암요.”

이 와중에 생색낼 기회를 놓치지 않다니.

김준은 차마 욕을 하지 못해서 웃었으니, 그 미소가 참으로 어색했다.

사회생활이란 어른에게도 어려웠다.

* * *

한일 초인 친선전의 종목은 다양한 초능력만큼이나 다양해야 했지만, 현실적으로 그러기 어려웠다. 예산의 문제도 있고 시간의 문제도 있었기 때문에 종목의 선정은 두 가지 기준으로 이루어졌다. 하나는 대중적으로 인기 있을 것, 또 하나는 규칙이 매우 단순할 것.

이러한 기준에 의해 선정된 대표적인 종목이 바로 팀으로 이루어지는 팀 깃발 뺏기였다.

어린애 놀이도 아니고 무슨 깃발 뺏기나 싶었지만, 팀을 구성해 다양한 초능력자들이 자신들의 장점과 서로의 시너지를 보여주고 명성을 얻게 하면서, 동시에 대중들이 초능력이 실전에서 어떻게 활용되는지 가늠케 해주는 기준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또한 박진감 넘치는 재미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기획 측, 운영 측, 주최 측의 각광을 받았다.

에스퍼와 신체 강화능력자가 달리기 시합을 하는 것처럼 맥 빠지고 재미없는 경기는 또 없을 테니까.

“에~ 그러니까, 깃발 뺏기는 한국이 승, 장애물 달리기도 한국이 승, 경찰과 도둑도 한국이 승.”

경완과 토토 사이트에서 배팅을 진행한 김준은 경완의 배팅을 보고는 묘한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경완이 그의 시선을 보고 대꾸했다.

“왜요? 애국 배팅 아니거든요.”

“전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김준은 얼른 대답했지만, 뜨끔했다. 경완이 자기 속내를 너무나 정확하게 짚어서.

김준은 얼른 화제를 전환했다.

“그런데 한국의 승리로 점친 게 너무 많습니다만. 혹시 이유가 있습니까?”

“참가 선수들 배경을 보면 위버멘쉬와 관련되어 있잖아요.”

“고작요?”

“고작이라니요? 위버멘쉬로부터 초능력 교육과 훈련받은 정황이 있잖아요.”

경완의 말에 김준은 의아해했다.

“위버멘쉬에게 교육받으면 이기는 겁니까?”

그러자 경완은 조금은 진지하게 이야기를 꺼냈다.

“저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위버멘쉬의 초능력 교육과 훈련을 더 높이 평가하고 있거든요.”

“근거가 있습니까?”

“미국이 왜 세계 최강의 군대를 가지고 있을까요?”

“돈을 많이 퍼부었으니까?”

“그것만이 아니죠. 실전을 많이 경험했으니까요.”

경완의 말에 김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고성능의 장비를 보급한다고 해도 실전을 경험하지 않는 한 활용이 미숙할 수밖에 없었다.

경완이 말을 이었다.

“초기에 위버멘쉬가 어땠는지 떠올려 봐요.”

“아!”

김준은 경완의 말을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위버멘쉬는 최근 10년 동안, 아니 초능력 각성 현상이 발생한 이래로 초능력의 실전 사용을 가장 많이 한 조직이었다. 심지어 미국조차 위버멘쉬만큼 초능력자의 실전 투입을 많이 해보진 못했을 것이다.

비록 그 상대가 제3세계의 부패한 독재정권이라 하더라고 실전이란 현장에서 나온 노하우는 결코 만만히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특히 개인적 자질과 경험이 중요한 초능력 분야에선 더욱 그러했다.

하지만 여전히 김준은 의문을 품었다.

“하지만 일본도 국가적인 역량을 투입했는데 그렇게까지 큰 격차가 벌어지겠어요?”

“크지 않을까요? 나라마다 역량의 차이는 크잖아요?”

“일본이잖아요.”

“아. 하긴. 가미가제 특공의 원조라면 국제인권단체의 시선을 피해서 무리하게 초능력자를 육성했을 수도 있겠네요.”

경완이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오히려 김준의 시선은 짜게 식었다.

“경완 씨. 그거 편견인데요.”

한국인으로서 일본을 폄훼하는 시선을 탑재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에 경완은 이렇게 반박했다.

“솔직히 미국에서도 인권문제가 지적될 수 있는 실험을 진행하고 있지 않을까라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그거 음모론입니다.”

“살다 보니까 종종 상상하던, 아니 상상을 벗어나는 일이 발생하더라고요. 이 나라에서도 정치인이 검사를 청부살해한 사건이 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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