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전생-더 빌런 26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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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데타 모의, 내각제 세력, 노후 원전의 방사능 오염수 유출 등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들이 실제로 벌어지는 세상이었다. 그런 요지경인 세상을 누구보다 많이 겪었던 경완은 그래서 최악을 상상하는 일이 익숙했다.
김준은 경완이 그 검사 청부살해 사건에 연관되었던 사실과 그로 말미암아 벌어진 일들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김준의 말에 경완이 생각을 고쳐먹은 것이 무색하게도 결과는 경완이 처음 예측한 것처럼 위버멘쉬의 압승이었다. 한일 초인 친선전의 총 아홉 종목 중에서 일본이 한국에 승리한 경기는 딱 하나, 기지 습격밖에 없었다.
그것도 어떻게 이겼느냐 하면, 가미카제 식의 반자이 특공으로 방어 측에 혼란을 주는 와중에 보호 대상을 파괴한, 실전이었다고 하면 상처뿐인 승리라 할 수 있었다.
당연히 이러한 결과는 일본에 큰 충격을 주었다. 최소한 반반은 가져갈 줄 알았는데 이렇게나 압도적으로 패배하다니!
일본 토론 프로그램에서나 일본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나 그 이유를 분석하기 바빴다.
한국 언론에서도 한일 초인 친선전에서의 승리가 뉴스의 전면을 점령했다. 월드컵도 그렇지만 국뽕은 언제나 시청률 치트키였다.
유튜브에 돌아다니는 무수한 억지 국뽕 영상과 낚시성 썸네일과는 다르게 이번 친선전의 승리는 확실한 국뽕소스이지 않은가?
“경완 씨 말대로 되었네요.”
김준이 경완의 눈치를 슬쩍 살폈다. 뭔가 말할 게 있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경완은 머리에 떠오르는 이유가 있어서 물었다.
“윗분들이 충격을 많이 먹었나요?”
“어…… 네.”
원래라면 한국의 초능력자 수준이 굉장히 높구나, 역시 일본에게 안 지려고 이를 악물었다고 생각했겠지만, 그들은 김준의 보고서로부터 경완이 한국의 승리를 점친 이유를 되새길 수밖에 없었다.
위버멘쉬. 현존 최강의 초능력자가 한국의 승리를 점친 이유.
과연 미국이 한국을 지원했더라도 초인 친선전에서 이렇게나 일본을 압도적으로 이기게 할 수 있을까라며 자문자답했을 때 미국의 싱크탱크가 내놓은 대답은 ‘No!’였고 이는 미국을 이끄는 리더들에게 대중은 모르는 충격을 주었다.
초인 친선전은 평범한 스포츠 경기가 아니라 초능력자의 역량을 겨루는 경기가 아니던가? 적어도 위버멘쉬가 초능력자의 육성에 대해선 미국조차 따라잡기 힘든 집단이라는 걸 실감하는 충격은 적지 않았다.
“이러면 내기는 제가 이긴 모양이네요?”
“네. 근데…… 와우.”
김준은 경완과 재미로 했던 토토의 배당률을 확인하고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무려 500배. 웬만한 직장인의 연봉을 한 번에 벌어들인 것이다.
김준은 경완의 표정을 슬쩍 살폈다. 그런데 그저 담담한 표정만 볼 수 있었다.
도박에서의 승리와 횡재가 그에겐 별로 의미가 없는 모양이었다. 김준은 보고서에 ‘도박 성향은 보이지 않음’이라고 쓰기로 하고 더 중요한 화제에 집중했다.
“경완 씨는 위버멘쉬의 초능력 교육이 이 정도로 뛰어나다는 걸 알고 계셨나요?”
“미국에도 위버멘쉬 초능력 교육 센터가 있는 걸로 아는데, 저보다는 미국이 더 잘 알고 있지 않을까요?”
“좋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이 정도로 차이가 있을 줄은 몰랐죠.”
경완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아무리 훈련받았다고 하더라도 그 훈련받은 내용을 활용할 수 있는 마당이 마련되어 있지 않으면 차이를 실감하기란 어려웠다. 미국이 블랙옵스에 투입되는 초능력자들을 위버멘쉬 교육 센터에 집어넣기는 힘들었을 테니까.
“그것도 그렇지만, 이번엔 위버멘쉬 측이 이 악물고 준비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가요?”
김준은 경완의 통찰을 듣기 위해 귀를 기울였다.
“이로써 위버멘쉬는 한국과 일본 양쪽에 이득을 얻었죠. 한국 내 입지 강화, 그리고 일본에 진출할 기회.”
일본 토론 프로그램에선 애써 에둘러 말하고 있지만, 곧 친선전에서의 격차가 난 이유가 인재육성의 차이에 있고, 그 차이란 바로 위버멘쉬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원래 일본인은 한국인보다 열등하다는 식의 말이 나오지 않게 하려면 말이다.
“성과를 보이면 반대론자들은 입을 닥칠 수밖에 없거든요.”
그건 어떤 분야에서든지 그렇다. 그래서 악의적인 반대론자들 같은 경우에는 성과를 낼 기회 자체를 안 주려고 오직 반대를 위한 반대만 하는 경우도 있었다.
상대가 실패하면 비난할 빌미를 얻을 수 있지만 혹시나 성과를 내면 입을 닥쳐야 하기 때문이었다.
경완의 평가에 김준은 우려를 표했다.
“이거 위버멘쉬의 영향력이 너무 커지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새로운 유력자가 등장하면 갈등이 생기는 건 당연하죠.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인류는 그렇게 살아왔고 그래서 현재의 찬란한 문명을 만들었잖아요.”
“……더 걱정이 되는데요…….”
김준이 짜게 식은 표정으로 뇌까렸다.
신흥세력이 커지면 결국 기득권과 충돌하게 된다.
그게 심해지면 전쟁도 일어날 수 있었다. 김준이 생각하는 대표적인 사례는 바로 미-소 냉전. 자본주의라는 전통적(?)인 체제에 공산주의가 도전하던 상황이 아니었던가? 세계 3차대전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았던 그 시절을 생각하면 경완이 말하는 찬란한 문명이라는 표현이 공허하게 들렸다.
게다가 현재의 찬란한 문명이라는 걸 누리는 곳도 대부분이 제국주의 시절 때 식민지 자산 다 빨아먹고 부를 쌓거나 전쟁에서 승리했던 강대국들이 아니던가? 패자에겐 비참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 냉혹한 진실이다.
그래서 경완의 말에 동의하기 힘들었다.
경완은 우려가 가득한 그의 표정을 보며 웃었다.
“하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무리 위버멘쉬지만 국가는 아니잖아요? 국가처럼 할 수가 없어요.”
“뭐가 국가처럼 할 수 없는데요?”
“강제동원, 징집 등 인권을 유린할 수 있을 정도의 공권력 사용이요.”
“아…… 음…… 네, 그렇군요.”
김준은 반박하고 싶었지만 딱히 그럴 수 있는 논리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위버멘쉬를 상대로 국가가 가장 앞설 수 있는 점이 경완이 말한 공권력이라는 건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래서 국가를 상대할 수 있는 유일한 조직은 국가밖에 없었다. 총력전이란 걸 수행할 수 있는 건 국가라는 조직뿐이었으니까.
그런데 그런 걸 과연 위버멘쉬가 모를까? 김준은 불안해졌다.
그리고 김준은 그 불안감이 어떻게 구체화되는지 한국의 사례로 볼 수 있었다.
* * *
한일 초인 친선전이 한국의 승리로 끝난 뒤, 약 한 달.
그 한 달 동안 한국에는 위버멘쉬 광풍 불었다.
“이래도 됩니까?”
“안 될 것도 없죠.”
김준은 경완을 찾아가 자신의 우려를 드러내며 상담했지만 경완은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경완 씨는 정말 이게 정상이라고 봅니까?”
김준은 진지하게 물었다.
한 달간 한국에서 일어난 변화는 이해하기 힘들 정도였다. 위버멘쉬 관련 테마주가 폭등한 거까지야 그렇다고 치자. 어차피 주식판은 그 대단한 아이작 뉴턴조차 이해하기 힘든 광기의 도가니니까.
대기업들이 위버멘쉬와 전격적인 협력 체계를 갖추기로 양해각서를 체결한 것도 그렇다고 치자. 초인은 향후 국력의 중요한 지표이자 초능력 공학이란 신산업의 기반이었으니까.
하지만 정관계에서 일어난 일은 이해가 힘들었다. 위버멘쉬를 견제하는 인물이 여야를 통틀어 단 한 명도 없는 건 이상하지 않은가?
아니 솔직히 한 명은 있었다. 하지만 그가 위버멘쉬를 비난한다며 한다는 소리가 ‘위버멘쉬는 제국주의 침략군이다’라는 시대착오적인 헛소리였으니, 그에 대한 대중의 평가는 ‘모두가 Yes를 외칠 때 홀로 No!를 외쳐서라도 관심을 끌고 픈 관심종자’였다.
딱히 대단한 리더쉽이나 비전이 있어서 정치하는 사람은 절대 아니라는 평가에 김준도 동의할 수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정상적이진 않죠.”
“그렇죠?”
김준은 경완이 자신의 말에 동조하자 화색을 띠었지만 그의 말은 미처 다 끝난 것이 아니었다.
“원래 세상은 비정상적이잖아요.”
“…….”
“표정이 왜 그래요? 원래 세상은 상상보다 더하잖아요? 국제금융세력이 일부러 외환위기 같은 거 일으켜서 개발도상국의 자산과 이권을 빨아들인다든가, 아무리 유색인종이라지만 자국민을 대상으로 생체실험을 한다든가. 김준 씨도 미국인이니 아시죠? 워터게이트 사건.”
경완은 웃으면서 표정이 짜게 식은 김준에게 잔혹한 현실을 농담을 꺼내는 듯한 태도로 상기시켜 주었다.
그가 예시로 든 사례가 모두 실제로 있었던 일이기 때문에 차마 반박하지 못한 김준이 할 수 있는 말은,
“……경완 씨는 한국인이면서 한국보다 미국을 더 잘 아시는 것 같네요.”
라며 구시렁대는 것밖엔 없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나도 미국인인데 뭔 헛소리를 하냐?’라는 경완의 면박뿐이었고, 김준은 입맛을 다시며 입을 다물었다.
그래, 경완도 미국인이기는 했다. 국적상으로는 말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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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친선전 이후 한국에서 위버멘쉬를 언급하지 않고서는 이야기가 되지 않았다.
누군가는 그저 광풍, 한때의 유행으로 치부했지만, 경완의 시선엔 아니었다.
지금 일어나는 위버멘쉬의 유명세는 단순히 운이 좋아서, 대중심리란 밀물이 몰려와서가 아니라 그간 쌓아온 위버멘쉬의 영향력이 임계값을 넘었기 때문이라 판단했다.
일단, 기술적으로 한국은 세계 여러 나라와 초능력 공학 연구에서 선두는 달리지 못해도 적어도 선두권에 있었다. 초능력 공학은 재활용, 원자재 등의 각종 산업의 기초가 될 것은 자명했고, 이는 제조업이 핵심 기반인 한국의 생존과도 직결되어 있었다.
그리고 위버멘쉬는 이 초능력 공학과 산업에 있어 가장 중요한 초능력자 공급 시장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이를 대기업 같은 곳에서 모를 수가 없었고, 국제적인 우수 초능력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서라도 위버멘쉬와 협력체계를 갖추는 건, 중간에 알력다툼이 있었더라도 결과적으로 봤을 땐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이렇게 대기업 공화국인 대한민국에서 대기업과 짝짜꿍을 하나니 정계나 언론도 같이 친해지고 싶어하는 것도 당연했다.
신친일파의 구심점이 제거된 테러, 그리고 일본조차 위버멘쉬에 손을 내밀게 한 한일 친선전의 결과.
대한민국의 기득권은 그들의 이권과 위치를 지켜줄 새로운 동맹, 혹은 상전을 고심 끝에 맞이했다…… 라는 게 경완의 종합적인 결론이었다. 위버멘쉬를 적대해서 기득권이 위협받는 것보다는 그게 합리적이니까.
“축하합니다. 이제 완전히 한국을 장악하셨네요.”
[장악이라니요. 그저 한국 내 저희의 권익과 자산을 보호하기 위한 울타리를 쳤을 뿐이죠.]
경완의 축하를 요하네스는 단순하게 일축했다.
“이제 어떻게 하실 건가요?”
[음…… 일단 위버멘쉬 코리아를 독립시켜야겠죠.]
“그다음에는요?”
[하던 일을 계속해야죠.]
초능력자 권익 보호를 말하는 걸까, 아니면 세계 평화를 말하는 걸까? 경완은 그저 덕담을 건넸다.
“하시는 일 잘 되기를 바랍니다.”
[경완 씨도 평온한 일상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당연하죠.”
여기까지 경완은 별생각 없이 요하네스의 말을 덕담으로 들었다. 하지만 그의 말은 다 끝난 것이 아니었다.
[독립한 위버멘쉬 코리아가 미래에 이상한 짓을 한다고 해도 그건 제 뜻이 아니라는 걸 기억해주셨으면 합니다.]
“네? 갑자기 무슨 말씀이신지…….”
[말 그대로의 뜻입니다. 독립한 위버멘쉬 코리아는 제 뜻을 벗어나 독자적으로 활동하게 되었지 않습니까?]
“어……. 분명 균형추의 역할을 할 거라고 저번에 말씀하시지 않으셨나요?”
[다른 지부와의 갈등이 생길 경우에는 그렇죠. 위버멘쉬 코리아의 국내 활동이나 정책에 대해선 더는 간섭하지 않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