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전생-더 빌런 264화
26-빌런본색
경완이 용건을 말하자 직원은 그를 원장실로 안내했다.
위버멘쉬 한국 연수원의 원장은 경완도 잘 아는 사람이었다.
“쨔잔~!”
“댁이 원장이었어요?”
“놀랐죠?”
놀라고 말고. 위버멘쉬 한국 연수원 원장은 다름 아닌 매스 이펙터, 김봉남이었으니까.
경완이 대답했다.
“파격적이네요.”
아무리 위버멘쉬라는 조직이 신생 세력이라고 하지만 이렇게 새파랗게 젊은 청년을 원장이라는 자리에 앉히다니. 전혀 없는 경우는 아니겠지만 여러모로 이례적인 사례이기는 했다.
경완의 말에 김봉남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저 말고는 적당한 사람이 없다는데.”
“누가요?”
“지부장 형님이요.”
유쾌하고 붙임성이 있는 김봉남이라 그 지부장하고도 호형호제하는 사이인 모양이었다.
경완은 김봉남의 말을 다시 한 번 곱씹어보았다. 적당한 사람이 없다라…….
그러고 보니 경완은 김봉남, 메스 이펙터를 예전 빌런 시절에 만난 적이 있었다. 새삼 생각해보니 김봉남은 위버멘쉬가 빌런 조직일 때부터 위버멘쉬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그 말은 위버멘쉬에 대한 충성도가 남다르다는 의미였고, 그런 이를 위버멘쉬 한국 교육원장으로 삼은 건 조직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사람이 필요했다는 걸 암시한다고 하면 너무 뇌절일까?
“정호태 지부장과는 언제부터 아셨어요?”
“총장님께서 한국지부 세우실 때 데려오셨죠.”
“그래요?”
경완은 일부러 의외라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김봉남을 보았지만, 사실 요하네스의 선택은 합리적이라고 판단했다. 그가 봐도 김봉남은 리더가 되기에는 너무 가벼워 보였으니까.
그럼에도 정호태가 김봉남을 연수원 원장으로 삼은 건 위버멘쉬 한국 연수원이라는 곳이 잘 만하면 한국 초능력자 공급시장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기관이거나, 그럴 예정이기 때문이리라.
“그나저나 의외네요.”
“뭐가요?”
김봉남의 말에 경완이 묻자 김봉남은 신기한 걸 보는 눈으로 그를 보면서 말했다.
“저는 경완 씨가 특별 강사를 수락하실 줄은 몰랐어요.”
“저도 제가 수락할 줄은 몰랐어요.”
“…….”
뭐지 이 병신 같은 대답은?
김봉남이 어리둥절해하자 경완이 덧붙였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은 상황이었어요.”
여러가지 사정을 고려한 결정임을 말하기엔 너무 말이 길어졌다.
김봉남은 더는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아무튼, 본론으로 들어가죠.”
경완이 이렇게 방문한 이유는 특별 강사로서의 업무를 어떻게 할 것이냐를 상의하기 위해서였다.
스케쥴을 짜는 거야 금방 조율이 가능하지만 교육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이냐가 문제였다.
“뭐, 참고할 것이 있으면 좋겠는데요.”
“아! 저희 위버멘쉬의 커리큘럼을 보여 드릴게요.”
“……그거 대외비 아닌가요?”
“에이~ 경완 씨에게 이 정도도 안 해주면 안 되죠.”
경완은 김봉남의 호의를 감사해야 할지, 저 생각 없어 보이는 가벼움을 걱정해야 할지 잠시 헷갈렸지만 일단 김봉남이 보여준 위버멘쉬 커리큘럼을 살폈다. 그리고 위버멘쉬의 저력은 과연 경완이 생각했던 만큼이나 대단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방대하네요.”
“어쩔 수 없죠. 초능력의 갈래가 방대하니까요.”
위버멘쉬의 커리큘럼은 도제 시스템, 혹은 멘토 멘티 시스템이 핵심이었다. 공통되고 기본적인 교육은 최소한으로 잡은 뒤 가장 비슷한 능력을 가진 선배를 멘토로 삼고 적절한 멘티를 연결하는 시스템이었다.
이것이 가능한 원동력은 위버멘쉬 초기부터 축적한 거대한 데이터베이스와 끝없는 피드백이 핵심이었다.
교육관 건물에 있는 사람 중 절반이 이 피드백을 위한 사무원이었으니, 여기에 들이는 위버멘쉬의 노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을 정도였다.
경완은 혹시나 해서 김봉남에게 물었다.
“혹시나 저보고 멘토를 맡으라고 하진 않겠죠?”
“에이, 설마요. 경완 씨 같이 그 능력의 스팩트럼이 넓은 사람을 멘토로 삼을 수 있는 멘티가 몇이나 있겠어요?”
“세상이 이리 넓은데 한 명 정도는 있겠죠.”
“찾아봤는데 없더라고요.”
김봉남이 단언했다. 그리고 이어진 그의 말은 경완이 특별 강사로서 무엇을 하는 게 적절하냐는 질문과 맞닿아 있었다.
“그래서 경완 씨에겐 크게 두 가지 길이 있어요. 하나는 소수의 인재를 대상으로 한 맞춤형 강습, 또 하나는 여럿을 대상으로 한 일반적인 강의죠.”
경완은 다양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그중 가장 희귀한 능력은 바로 다른 초능력자의 능력을 흉내 내어 자신의 것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 말은 다르게 표현하자면 경완이 멘티가 될 초능력자의 능력을 카피하게 된다면 그 어떤 초능력자의 멘토라도 될 수 있다는 의미였다.
경완이 물었다.
“전자는 이해가 되는데 후자는 뭐죠?”
일반적 강의라는 게 구체적으로 무슨 의미인지 와 닿질 않았다.
김봉남이 설명했다.
“경완 씨가 S입자를 다루는 요령은 교육할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해요. 어차피 벽을 넘은 이들은 S입자를 이용한 공통 기술의 습득이 필수니까요.”
오~ 그 가볍던 사람이 저런 말을 하니 신기했다.
“공부 많이 했나 보네요.”
경완의 감탄에 김봉남은 진절머리난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말도 마세요. 시늉이라고 하려고 해도 뭘 좀 말아야 할 수 있더라고요.”
그러더니 경완을 보며 다시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래서 뭘 좀 알고 보니까 경완 씨가 더 대단해 보이더라고요. 이 형님이 그냥 힘만 센 게 아니구나~라는 걸 깨달았죠.”
사람들과 권력자들은 경완의 무력에 주목하지만, 정말 주목해야 하는 것은 그가 초능력을 사용하는 요령과 방법 그 자체였다.
초능력을 카피하는 능력이 대단하기는 하지만 카피한 능력을 마치 자기 것인마냥 능숙하게 다루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였다.
카피한 능력에 대한 전반적이고 세세한 이해가 없으면 원본보다 더 능숙하게 사용한다는 건 불가능한 소리였다.
그런데 경완은 그것을 해냈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초능력과 S입자의 구성에 대해 그 어떤 학자들보다도 잘 파악할 수 있는 인재라는 의미였으니, 김봉남은 왜 마리아 소장이 경완을 연구원으로 만들지 못해 아쉬워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경완은 자신의 얼굴에 금칠하는 김봉남의 말을 손사래를 쳐서 멈추더니 본론으로 돌아갔다.
“아무튼, 알겠어요. 들어보니까 아무래도 소수의 인재를 대상으로 한 맞춤형 강습이 낫겠네요.”
“그래요?”
“네.”
단순하게 봐도 학원 강사보단 그룹 과외가 편하지 않은가? 아무래도 신경 써줘야 하는 교육생이 많은 것보다는 적은 게 더 편할 수밖에 없으니까. 말 안 듣는 애새끼가 있으면 얘기가 다르겠지만 경완이 그런 애새끼를 붙잡고 교육의 열정을 불태울 리가 없었다.
“그럼 그렇게 하죠.”
김봉남은 교육원장으로서 경완의 생각을 확인하고 그에 맞춰 일을 진행하기로 한 후 남은 일은 실무진에게 맡겼다. 경완은 종종 교육관을 들러서 실무진과 함께 강습 계획에 대해 도움을 받았다.
그리고 나온 결과물은 경완의 기준으론 썩 미덥지 않았지만, 어쩌겠나?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씹어야 하는 법. 일단 계획대로 밀고 나가기로 했다. 어차피 구르는 건 경완이 아니라 실무진이었으니까.
위버멘쉬 코리아는 특별 강사로 초빙된 경완의 특별 강습을 굳이 광고하진 않았다. 오히려 매스컴이 알지 못하게 철저하게 보안을 유지했다.
강습이 시작되는 첫날 정호태 지부장은 직접 찾아오기까지 하면서 경완에게 당부했다.
“위버멘쉬의 미래를 맡길 소중한 인재들입니다. 잘 부탁합니다.”
미래를 운운하기엔 정호태 지부장은 매우 젊었기에 경완은 이렇게 해석했다.
‘위버멘쉬 코리아의 우위를 지키기 위한 인재들’
다섯 명의 훈련생들은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청소년들이었지만, 주변에 뭉친 S입자의 농도를 보니 최소 A급의 초능력자들이었다. 위버멘쉬 코리아의 입지를 튼튼하게 해줄 미래 인재로서 부족함이 없었다.
경완은 아이들을 보고 초능력의 각성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는 것을 실감하며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안녕, 얘들아. 내가 누군지 알지?”
“““““…….”””””
“내가 누군지 몰라?”
경완이 다시 물어도 서로 눈치만 살필 뿐 먼저 나서서 대답하는 훈련생은 없었고, 경완은 인지도로 자기소개를 갈음하려고 했던 자신을 탓하며 자기를 소개했다.
“내 이름은 이경완. 보다시피 너희에게 특별 강습을 해주려고 나왔고, 너희는 너희의 능력에 대한 맞춤 강습을 받게 될 거란다.”
언제까지? 어느 정도 성과가 나와서 경완이 이쯤 하면 체면치레는 했다, 맡은 일의 도리를 다했다는 판단이 들 때까지.
경완은 시간 낭비를 좋아하지 않았고, 겨우 다섯뿐인 아이들의 인적 사항과 이름은 이미 다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바로 강습을 시작했다.
“에~ 그러니까 이동호?”
아이들의 이름은 이동호, 강미령, 김배진, 김신, 경무호였고, 각각 두 개 이상의 복합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방금 이름을 불린 이동호의 능력은 파이로키네시스와 염동력 두 가지. 불도 일으킬 수 있고, 염동력도 사용할 수 있는, 다중 능력자 중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조합이었다.
이동호라는 아이는 경완에게 이름을 불리자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개미 기어들어갈 것 같은 목소리로 ‘네’하고 대답했다.
경완은 개의치 않고 일단 떠들었다.
“어 그러니까 네 능력은.”
이동호의 능력에 대해서 간략히 브리핑한 경완은 결론을 내렸다.
“파이로키네시스와 염동력 조합의 장점은 정밀한 능력의 통제에 있다고들 하지. 틀린 말은 아냐. 하지만 이런 말이 있지. 만 가지 발차기를 익힌 사람보다 한 가지 발차기를 만 번 연습한 사람이 더 무섭다고.”
노란옷이 트레이드 마크인 어떤 무술가이자 액션배우가 한 말이었다.
“복합능력자들은 대부분 능력의 시너지에만 집중해서 각각의 능력 본연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져. 그리고 이해도가 떨어진다는 건 효율성을 끌어올리지 못한다는 의미지. 그런 고로 넌 당분간 염동력 사용은 금지다.”
“…….”
“대답은?”
“네…….”
이번에도 기어들어가는 대답이었지만 경완은 그냥 넘어갔다. 아직 네 명이나 더 남았다.
물성변질과 염동력을 가진 강미령, 청각계열의 에스퍼이자 신체변형 능력자인 김배진, 육체강화능력과 무게 변환 능력을 가진 김신, 그리고 전기능력자이자 한 번에 수천 개의 사칙연산을 동시에 처리할 수 있는 지능형 에스퍼인 경무호.
모두가 이동호라는 아이처럼 능력이 시너지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또 경무호의 경우처럼 복합능력자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의 능력이 확장된 경우도 있었다.
“네? 제가 복합능력자가 아니라고요?”
“그래. 넌 그냥 전기능력자야.”
경무호의 경완의 말에 얼이 빠졌다. 여태 자신을 전기능력과 지능형 에스퍼의 복합능력자로 알고 있었는데 생뚱맞게 전기능력만 가지고 있단다.
경완이 말을 이었다.
“전기제어능력이 확장된 걸 지능형 에스퍼로 착각했을 뿐이야. 하지만 실망할 필요는 없어. 능력의 확장성만 보면 이 중에서 네가 가장 나으니까. 전기능력으로 지능을 강화하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는 재주야. 아무리 요즘 세상이 초능력 쎈 사람을 우대한다고 하지만 인간은 기본적으로 이거거든.”
경완은 자신의 관자놀이를 검지로 톡톡 치며 말을 이었다.
이미 다중연산능력을 꽃피울 정도로 능력의 확장에 잠재력을 보인 경무호는 그 좀 더 가다듬으면 연산능력만이 아니라, 순간기억능력, 다중사고(思考) 등으로 확장도 가능했다.
“아이X맨이 초능력을 가져서 히어로인 건 아니잖아? 다 이거랑 이거 덕분이지.”
경완은 경무호의 머리를 가리키고 차례로 검지와 엄지를 붙여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였다.
그럴 듯한 논리에 경무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경완의 논리가 그럴싸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냥 손발에서 전기를 내뿜는 것보단 멋진 아X언맨 슈트를 입고 다니는 이미지가 멋진 걸 추구하는 나이대인 경무호에겐 더 설득력 있었다.
다만 한 가지 문제점이 있다면.
“……그런데 돈은 어떻게 벌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