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전생-더 빌런 265화
26-빌런본색
토니 스타크는 재벌 후계자지만 경무호는 그냥 평범한 중산층 부모님을 두었을 뿐이다.
경무호의 말에 경완은 고개를 갸웃했다.
“돈을 벌려면 일을 해야지.”
“그럼 어떻게 아이X맨이 돼요?”
“내가 언제 아X언맨이 되라고 했니?”
“…….”
“…….”
경무호는 괜히 아이X맨 이야기를 꺼내서 헛바람을 집어넣은 경완을 불퉁한 눈으로 올려다보았고, 경완은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청소년을 보았다.
왜 쟤가 자신을 저런 눈으로 보는지는 짐작이 갔다. 하지만 홀로 헛바람을 흡입한 게 경완의 잘못은 아니지 않은가?
그는 그저 아이가 자신의 자질과 능력을 객관적으로 판단하라고 말을 꺼낸 거지 대단한 야망을 심어주기 위해 영화 속 히어로를 언급한 건 아니었다.
경완은 경무호가 입을 다물고 대꾸할 기색을 보이지 않자 본인이 할 말을 마무리했다.
“아무튼, 넌 살아 있는 컴퓨터가 될 가능성이 있어.”
“컴퓨터는 좀.”
“컴퓨터와 전기 전자 제어는 한몸이지. 넌 걸어 다니는 레일건, MRI, 전자레인지, EMP 등등이 될 수도 있어. 심지어 맨몸 해킹도 할 수 있겠지. 지금의 전자문명에서 너의 가능성은 네가 상상하는 거 이상이다.”
“…….”
경완의 말에 경무호는 살짝 얼이 빠졌다. 진짜? 그렇게 대단하게 될 수 있다고?
하지만 이어진 말은 소년을 실망시켰다.
“따라서 너는 따로 공부하는 시간을 늘려야 해.”
“네? 왜요?”
“적어도 물리전자, 컴퓨터 공학을 대학교 석박사 수준 정도는 익혀야 네 능력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을걸? 많이 알수록 네 능력을 적용할 수 있는 영역도 넓어진다.”
빡대가리였던 이철과는 달리 홀로 다중연산을 해냈을 정도로 전기능력의 제어가 탁월했으니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
경완은 얼이 빠진 채 생각에 잠긴 녀석을 놔두고는 경무호를 부러운 눈길로 보는 나머지 네 명의 청소년들에게 말했다.
“너희도 예외는 아니야. 너희는 아직 너희 능력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져서 그것부터 채워야 하지만, 충분히 너희 능력에 대한 이해와 제어가 능숙해지면 그 능력의 효율적인 활용을 위해서라도 지금부터 관련 지식을 쌓아놔야 해.”
결국 공부하라는 소리에 네 명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명백히 싫어하는 기색이었다. 하긴 누가 공부를 좋아할까?
경완은 그중 홍일점인 강미령을 가리키며 말했다.
“특히 너는 공부를 더 많이 해야 돼. 네 물성변질은 산업적으로 정말 엄청난 가치를 가지고 있거든. 그 말은 이 중에서 가장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뜻이지.”
“위험하다고요?”
“그래. 아마 네 앞날은 둘 중 하나야.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을 위해 일하는 고급일꾼, 아니면 누구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슈퍼을. 만일 네게 경영자나 사업가의 자질이 있다면 슈퍼갑이 될 수도 있지. 어느 쪽이든 공부를 해서 네 능력의 활용 방안을 늘려야 네가 너 스스로를 보호할 역량을 갖출 수 있어.”
강미령은 자신의 물성변질을 그저 물질의 연성과 강도에만 사용해 왔다. 예를 들자면 땅이나 돌의 물성을 변화시키고 염동력으로 성형(成形)해서 스파이크 같은 걸 만들어낸다든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게임으로 치자면 땅마법 마법사 같은 느낌이랄까?
하지만 지금의 기술 문명은 신소재를 기반으로 형성되어 있었고, 최근 신소재 연구에서 주목받고 있는 건 역시 S입자에 의해 변성된 초능력 물질들이었다.
“네가 한국에서 태어나서 위버멘쉬에 보호에 들어간 걸 다행으로 여겨. 아니었다면 어디에 갇힌 채 노예처럼 일해야 했을걸?”
지금도 암거래되고 있는 대(對)초능력자 탄환은 그렇게 음지에서 생산된 물건이 아닐까?라는 추측으로 강미령에게 경각심을 심어준 경완은 이어서 김신과 김배진에게도 조언을 해주었다.
김신에 대한 조언은 어렵지 않았다. 신체강화와 무게, 즉 중력 관련 능력은 원래 시너지가 좋아서 각 능력에 대한 이해도와 숙련도만 끌어올리면 되니까.
하지만 김배진은 조언이 어려웠다. 청각계열의 에스퍼와 신체변형능력은 딱히 시너지가 있을 만한 거리가 없었다.
“으음. 넌 한 번 능력을 사용해 봐.”
경완은 견적을 뽑아보기 위해 김배진의 능력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부터 확인하고자 했다.
“여기서요?”
“응.”
경완의 말에 김배진은 오늘 만난 낯선 또래들의 눈치를 살피더니 신중하게 능력을 사용했고, 경완은 초감각을 끌어올리며 말했다.
“우선 청각 능력부터.”
그의 지시에 따라 김배진은 청각능력과 신체변형능력을 차례로 사용했다.
경완은 초감각에 집중해 김배진이 초능력을 사용할 때 변화하는 S입자 구성체의 모양과 변화 양상을 유심히 관찰하고는 그것을 흉내 냈다.
“와…….”
아이들은 경완의 팔이 고무줄처럼 늘어져서 땅에 닿는 걸 보고는 입을 벌렸다.
딱 봐도 김배진의 신체변형능력을 카피한 것이다. 그에게 카피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보니 실감이 달랐다.
‘이 사람은 어떤 초능력이라도 복제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구나’
경완은 신체변형능력을 해제한 후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에겐 교도소에 있을 때 남동건이란 죄수에게 카피한 괴력 능력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S입자로 일종의 가상 근육을 만들어 괴력을 행사하는 쿨타임형 능력이었는데, 김배진의 신체변형능력는 그와는 궤를 달리했다.
사실상 물질변성이나 마찬가지인 능력. S입자가 간섭하여 세포가, 근섬유가, 인대와 뼈가, 그 물리적 특성이 변질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원상태로는 어떻게 돌아오는가? 정답은 S입자 구성체에 있었다. S입자 구성체가 변화 전의 신체정보를 저장했다가 원래 상태로 복구하는 것이다.
“강미령. 능력 한 번 써봐.”
경완의 지시에 강미령은 가타부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초능력을 사용했다. 바닥에서 흙뿔이 함정 작동하듯 튀어올라 단단히 굳어졌다.
경완은 애들이 요즘 매스컴에 나오는 말 안 듣는 아이들답지 않아서 흐뭇했다. 편해서 만족스러웠다는 뜻이었다.
아무튼, 경완이 비교군으로 강미령의 능력을 확인한 결과, 강미령의 물성변질이나, 김배진의 신체변형이나 본질적으로는 동일한 원리라는 걸 확인했다.
차이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S입자가 입자와 상호작용해 물성을 변화시킨다는 명제는 동일했던 것이다.
경완이 김배진에게 말했다.
“음. 일단 넌 단순한 신체변형능력이 아니야. 힐링팩터라고 알지?”
“……네.”
초능력 각성 현상이 일어나고 나서 히어로 콘텐츠가 다시 유행을 탔던 적이 있었던 터라 힐링팩터라는 개념도 잘 알려져 있었다.
죽음조차 극복 가능한 초재생능력.
“네 신체변형능력은 그게 가능해.”
“어. 진짜요?”
“별로 좋아하는 기색이 아닌데?”
경완의 지적에 김배진은 쓰게 웃었다.
하긴, 상처를 입고 낫는 것보단, 아예 상처를 안 입는 능력이 더 좋기는 했다.
“아무튼, 네 능력은 단련 여하에 따라 분자 단위로 복구가 가능해.”
“그게 가능한가요?”
“머리가 박살나도 원상태로 돌아올 수 있어. 뭐, 기억이라든가 정신은 잘 모르겠지만 말이야.”
“아. 네.”
경완의 설명에 김배진은 살짝 질린 표정을 지었다. 왜 저렇게 싫어할까?
“심지어 늙지도 않을 수 있지.”
“그렇군요.”
인류 최대의 욕망인 불로불사를 실현할 수 있다는 말에도 별로 좋아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경완은 의아해하는 대신 어쩐지 공감이 되었다. 자신도 계속 살아가는 것이 지겹지 않은가? 오래 산다는 건, 특히 남들보다 오래 산다는 건 별로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공감이 되어서 그런가? 갑자기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그건 그가 이 아이들에게 본인들의 능력을 어떤 방향으로 개발하고 싶은지 물어보지 않았다는 것.
더불어, 자신이 평온하고 게을러터진 일상에 물들어 버렸다는 것도 자각했다.
얼마나 평온한 인생에 녹아버렸으면 소를 물가에 끌고 가도 소가 원하지 않는다면 물을 먹일 수 없다는 진실을 잊어버릴 정도였을까?
“아무튼, 네 능력의 핵심은 신체변형에 있는 게 아니라 변형한 신체조차 원래 상태로 되돌릴 수 있는 안전성에 있어. 사실 신체변형은 그 복구능력을 가능하게 만들기 위한 재료일 뿐이야.”
경완은 물질에 간섭하는 S입자 구조체보다 육체정보를 완벽히 저장하는 S입자 구조체의 가치가 더 높다고 판단한 이유였다.
하지만 여기서 더 떠들기를 멈췄다. 수업시간이 거의 다 끝나가기도 했고, 아이들이 오늘 배운 걸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는 시간도 필요했다. 지식도 과식하면 소화불량이 걸린다.
그가 아이들에게 말했다.
“아무튼, 오늘 강습은 여기까지. 너희 능력의 장단점과 가능성에 대해서 어느 정도 설명해 줬으니, 다음 시간에는 너희가 너희 능력을 어떻게 개발하고 싶은지 궁리해 와라. 숙제다.”
“““““…….”””””
“알아들었니?”
“““““네.”””””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이자 경완은 안심했다. 못 알아들은 줄 알고 입 아프게 또 말해야 할 줄 알았는데 똘똘해서 다행이었다.
그는 수업도 끝났겠다 슬슬 집에 가려고 했는데, 강미령이 손을 들며 외쳤다.
“가, 강사님!”
“왜?”
“개, 개인적인 경험담이나 도,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는 없나요?”
“있지.”
그리고 경완은 진지한 소리로 얘기했다.
“세상은 쓰레기통이고, 인간은 그 쓰레기통에서 기어 다니는 구더기란다.”
“““““…….”””””
경완의 폭언이나 다름없는 주장에 아이들은 죄다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그의 설명을 계속되었다.
“구더기에서 번데기로, 또 번데기에서 나비로 우화하는 이들은 극소수고, 대부분은 똥이나 빨아먹는 똥파리가 되지. 아니, 사실 대부분은 파리로 우화하기는커녕 구더기로 살면서 더 큰 구더기에게 뜯어 먹히는 게 일상이야. 내가 뭐냐고 이런 말을 하냐고 불만 섞인 의문을 품을 수도 있지만, 나 역시 이 똥통 속에서 뒹구는 구더기나 다름없다고는 생각하기는 해.”
똥통 속을 구른다면 구더기와 다를 바가 뭐가 있겠는가? 그것을 자각하고 있기 때문에 그나마 다른 구더기보다는 낫다고 자위할 수 있을 뿐.
“너무 말이 좀 과한 것 같아요.”
다른 아이가 끼어들었다. 경완은 턱을 긁적이다가 입을 열었다.
“내 기억의 시작은 현관을 침입해 들어온 동급생의 배에 부엌칼을 쑤셔 넣은 장면이야. 그리고 그 동급생은 왕따인 내가 학교에 나가지 않자 괴롭히러 찾아온 거고. 학교에 안 간 이유는 간단해. 애비가 내 목을 매달고 본인 목도 매달았는데 나만 살았거든.”
숨 막힐 듯한 침묵이 맴돌았다.
하지만 경완은 웃었다.
“너희는 저~엉말 운이 좋아. 여러 재능 있는 인재 중에서 선별되어 이 자리에 서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너희를 필요로 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게 증명이 되었잖아. 그리고 그 말은 나 같은 일을 겪을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다는 거지. 그래, 높지 않다는 거야.”
경완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죽을 때까지 경험하지 않아야 하는 일은 분명히 존재해. 흔히 고난이 인간을 강하게 만든다고 하지만, 무책임한 소리야. 어떤 고난은 사람을 망가뜨리고 이상하게 만들지.”
그 경험자가 바로 경완 자신이 아닌가? 무한전생이란 이상한 사건이 자신의 내면을 어떻게 뒤틀고 있는지 실감하면서 언제 자신이 미쳐서 괴물이 될까라는 두려움마저 느끼고 있으니 말이다.
굳이 그를 예시로 들지 않아도 전장에서 돌아와 PTSD에 고생하는 군인들이 있었으니, 극심한 스트레스는 충분히 인간을 망가뜨릴 수 있었다.
심각한 분위기에도 경완은 다시 씩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나처럼 이상한 인간이 되고 싶지 않으면 열심히 해라. 남들만큼이나 살려면 ㅈ빠지게, 아니 좀 이상한 표현이네. 암튼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지?”
홍일점이 있었기 때문에 적절하지 않은 표현을 물린 경완이 대충 말을 수습하자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수업 끝. 그럼 나는 간다.”
그리고 하늘을 날아서 사라졌다.
얼이 빠진 아이들은 잠시 멍청하게 서서 그가 날아간 방향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