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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전생 더 빌런-267화 (267/367)

무한전생-더 빌런 267화

26-빌런본색

고통에 대한 역치는 계속 낮아지고, 쾌락에 대한 역치는 계속 커지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인간은 고통과 괴로움을 피하려고 하면 계속 게을러지고, 더 큰 쾌락을 찾으려고 하다가 종국에는 마약까지 흡입하게 된다.

경완은 그러한 이치를 잘 알고 있었기에 도대체 무슨 일인지 간만 좀 보기로 했다.

“여보세요, 김준 씨. 접니다.”

역시 정보 입수에 가장 만만한 건 김준이었다.

[웬일입니까? 이렇게 경완 씨가 먼저 전화를 다 주고?]

의아해하는 김준에게 경완이 백윤식 검사 씨가 방금 다녀간 일을 설명하며 덧붙였다.

“도대체 무슨 일이길래 검찰이 와서 저 난리인가 싶어서요.”

[음…….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김준이 다시 연락을 한 건 채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서였다.

[엠바고 걸린 이 사건 때문인 모양입니다.]

“무슨 사건인데요?”

[판사 살해 사건입니다.]

“어유~ 여태 조용한 게 신기한데요?”

[그게 죽은 장소가 영 거시기해서 그렇습니다.]

“어딘데요?”

[룸살롱이요.]

“판사가 돼서 룸살롱에 혼자 갔을 리는 없고.”

[경완 씨 생각대로입니다.]

김준이 죽은 판사와 함께 있던 어떤 중견 기업 이사를 언급했다. 그 중견 기업 이사가 바로 판사 살해 사건의 목격자이자 증인이었다.

[그의 증언에 따르면 과거 어떤 판결에 불만을 품은 초능력자의 소행이라더군요.]

“판결이 X같았나 보죠.”

[그건 알 수가 없습니다.]

“척하면 척이죠. 중견 기업 이사나 되는 사람이 괜히 판사 모시고 그런 곳에 갔겠어요? 분명 뭔가 청탁이 있어서 접대하러 간 거겠죠.”

[하긴…… 그 기업의 아들이 수차례 마약을 했는데 초범이라고 집행유예를 내린 판사입니다.]

“그러니까요. 제 생각엔 과거 판결도 X같이 내린 게 분명해요.”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가고, 바늘 도둑 소도둑이 되듯,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살아온 관성대로 살아오는 것이 인간이라는 동물이었으니, 향응과 뇌물을 받아먹던 검사가 제대로 수사를 하고, 거기에 어울려 노는 판사가 멀쩡한 판결을 내릴 거라고 기대하는 건 지능기능이 정상인지 심각하게 의심해야 할 태도였다.

사후수뢰죄라는 것이 있기는 하지만, 뇌물 자체가 그 직접적인 관련성을 밝히기 어려운 혐의였고 우회하기도 쉬웠다. 본인에게 뇌물을 직접 못 주면 자식이나 친인척을 고용해서 나중에 퇴직금이나 위로금 명목으로 50억 정도 챙겨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솔직히 한 번에 50억씩이나 주는 건 아마추어 수준이고, 가장 일반적이고 ‘합법적인 방법’은 기업이 과거 샤바샤바했던 판검사를 거액의 연봉을 주고 고문(顧問)이나 법무팀으로서 고용하는 방식으로, 정치에 뜻이 없는 전관들이 주로 선택하는 방법이었다.

그 외에도 장기간에 걸쳐서 여러 명목으로 나누어서 주기도 하고, 국책 연구 운운하면서 일도 안 하는 놈에게 예산을 배정하는 방법도 있으며, 그것도 아니면 작전주나 개발 관련 등 돈 되는 정보를 대가로 주는 등 그 혐의를 입증하기 매우 어려운 방법으로 뇌물을 줄 수 있다.

‘아니, 뇌물이 아니라 내가 똑똑하고 운이 좋아서 주식투자로 돈 번 거라니까’라는 주장을 반박하려면 일반인을 대상으로도 엄청난 노력과 수사력이 필요한데, 그런 주장을 하는 이가 판검사라면? 그래도 과연 뇌물죄, 사후수뢰죄를 입증하는 것이 가능할까? 안 그래도 입증이 어려운 혐의를 패소의 위험을 안은 채 ‘한 식구에게 칼 겨눈 놈’이라는 딱지를 붙일 용감한 검사가 과연 몇이나 있을까? 과연 수사는 누가 하고 기소는 누가 할까?

그리고 과거가 찜찜한 판사가 과연 그런 영장을 승인할까?

엄밀히 따지면 전관예우라는 표현 말고 전관 비리, 전관 뇌물이라는 표현을 사용해야 하고, 사후뇌물죄나 최소한 직권남용, 독직죄로 다루어야 하는데 대한민국 역사상 그런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경완은 이어서 김준과 한국의 사법제도를 씹기 시작했다. 김준도 저도 모르게 경완과 동조해서 판검사와 전관예우를 씹어댔다.

경완의 언변이 뛰어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권력에 대한 조롱과 비난은 고금을 통틀어 짜릿한 재미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안 보이는 데서는 나라님 욕도 한다는 말이 있을까?

“미국에선 전관예우 같은 게 없나 보죠?”

[그랬다간 패가망신합니다. 한국처럼 후진적이지 않아요. 검사 권한 자체도 그리 막강하지 않아서 견제도 잘 되고요.]

미국 법조계가 김준이 자랑하는 것처럼 한국보다 깨끗한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한국 검찰의 권한이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하다는 건 사실이었다.

대한민국 초대 독재자가 정적을 합법적으로 숙청하기 위해 휘둘렀던 칼이 현재까지 남아 검찰 쿠데타가 일어난 브라질의 검찰보다 막강한 권한을 지닌 게 바로 현재 대한민국 검찰이었다.

그 정도가 어느 정도냐.

검사 멱살 잡으면 독직폭행, 검찰 고위 간부 출신이면 성접대 받고 뇌물 받아도 무죄.

무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식 부실수사.

짧게 표현하자면 유검무죄 무검유죄인 게 현재 대한민국 사법의 실정이었다.

[그런데 경완 씨. 검찰 측의 요청을 들어주실 겁니까?]

“전후 사정을 말 안 해주기에 안 해주려고 했는데, 김준 씨 이야기 들어보니까 더 안 해주고 싶네요.”

[그럼, 확실히 안 도와줄 거라고 결정을 내리신 거로 봐도 되겠습니까?]

‘싶다’라는 표현과 ‘결정’ 사이에 꼭 필연적 인과가 있는 건 아니었다. 사람들 대부분이 ‘아~ 출근하기 싫다’, ‘아~ 사표 쓰고 싶다’고 생각해도 결국은 출근을 하고 마는 것처럼.

“에이~. 세상에 100%가 어디 있어요? 상황이 바뀌면 생각도 바뀌는 거지.”

[역시.]

그동안 김준의 역시를 여러 번 들어왔지만 이번 ‘역시’라는 소리는 기분을 썩 좋게 하는 역시는 아니었다.

“왜요? 남자가 줏대 없이 이랬다저랬다 한다고요?”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속을 다 읽혔다고 놀라서 헛기침하는 거 전화기 너머로 다 들렸는데.

경완의 추궁에 김준은 할 일이 있는데 너무 잡담을 많이 했다는 핑계를 대면서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그런 김준의 모습에 경완은 피식 웃었다. 그 딱딱하던 FBI 수사관이 이런 임기응변도 부릴 줄 알게 되니 재밌었다.

하지만 더 재밌는 일은 다음 날 저녁 뉴스에서 일어났다.

[부장검사, 차장검사, 부장판사와 나란히 피살된 채 발견!]

[벽에는 Who is Watching THE WATCHDOG?라는 문구가 피로 새겨져…….]

[비질란스의 귀환? 한국의 자경단 발생은 이미 위험수준.]

사법연수원 동기였던 차장검사와 부장판사, 그리고 평소에 친한 후배였던 부장검사가 한 유흥업소에서 나란히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고, 현장에는 범인의 의도가 적힌 메시지가 남아 있었다.

뉴스에선 기회다 싶어서 떠들어 댔고, 한국의 자경행위, 아니 자력구제형 범죄의 발생 빈도가 이미 OECD 평균을 넘어섰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며 공포를 부추겼다.

시청자들을 자극해야 조금이라도 시청률이 더 올라가지 않겠는가?

그래서 기레기 소리를 듣지만, 광고료로 먹고사는 언론의 태생이란 원래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미연은 그런 언론의 구조적 문제를 모르고 걱정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심각하네.”

“글쎄? 언론이 별것 아닌 일로 호들갑 떠는 게 하루 이틀이어야지.”

파업 허용은 기업 망하는 길이다, 노동착취 반대법도 기업을 망하게 한다, 주 40시간 노동은 실업률을 폭증시킬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은 기업 경쟁력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것이다 등등, 언론의 엄살은 200년 된 자본가들의 엄살과 그 궤를 같이했다. 광고주인 자본가들의 나팔수로 살아왔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근묵자흑이라지 않은가?

그래서 언론이 떠들어 대는 건 반드시 한 번 걸러 들어야 했다. 정말 중요한 게 뭔지 알고 떠드는 건지, 아니면 이미 아는 사실이지만 자기들에게 손해가 되는 줄 알고 입을 꾹 다무는 건지 듣는 입장에선 알 수가 없으니까.

“저게 별일이 아니야?”

“사회 시스템이 헌법이 보장하는 정당한 권리를 보호하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자력구제를 해야지.”

미연의 물음에 경완은 당연하다는 듯이 대꾸했다.

그 과정에서 다른 이의 권리가 침해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법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게 내 탓은 아니지 않은가? 목마른 놈이 우물을 판다고 법이 우물을 파주지 않으면 본인이 파야 했다.

“걱정이야. 세상이 점점 각박해지는 것 같아서.”

“관점에 따라서 다르지. 큰 부자는 큰 흉년에 난다는 말도 있잖아.”

혼란은 누군가에겐 기회였다.

“큰 부자가 되려면 인면수심의 인간이 되어야 하는 거구나.”

미연이 허탈한 어조로 대꾸했다.

남의 돈을 빼앗아야 단기간에 큰 부자가 되지라고 대꾸하려고 하던 경완은 입을 다물고 채널을 돌렸다. 괜히 그녀를 꿀꿀한 기분으로 놔둘 필요가 없었다.

“우리랑 상관없는 이야기니까 영화나 한 편 보자.”

판검사 좀 죽은 일은 대다수 사람들의 인생에 거의 영향을 주지 못했다.

판검사들이 싸그리 몰살당한 것도 아니고 금방 대체 가능한 예비인력들이 즐비해 있는데 뭘 저리 호들갑을 떨어대는지…… 고작 판검사 몇 명 죽었다고 시스템이 붕괴할 정도의 법조계라면 차라리 무너뜨리고 다시 세우는 게 낫다는 게 경완의 생각이었다.

그런 그의 관점에서 살짝 사건을 비틀어 보자면 이번에 살해당한 판검사는 일종의 산업상 재해, 아니 업무 수행상 안전수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 일어난 사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누가 어떤 초능력을 각성할지 모르는 세상에서 법체계를 지들 꼴리는 대로 다루다가는 앙심을 품은 누군가가 보복할지도 모른다는 걸 생각하지 못한 걸까? 북한이 초능력이 그 원인으로 추측되는 평양 대폭발로 붕괴한 꼴을 보고도 여전히 안이하게 하던 짓거리를 안 고치는 걸 보면 법전은 잘 외워도 대가리는 영 삐리한 모양이었다.

“이건 어때?”

“별로.”

“그럼 이건?”

“좀 기분 좋은 거 보자. 코미디나 로맨스로.”

미연은 매니저가 가져온 시나리오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가차 없이 쳐내듯이 경완이 고른 영화를 가차 없이 걸렀고, 십분 넘게 고르고 나서야 영화 한 편을 결재했다.

거참 뭘 볼지 고르는 것도 피곤하구나. 하지만 경완은 굳이 그런 생각을 내뱉진 않았다.

“오빠, 잠깐만.”

오프닝이 시작되기 전에 잠시 화면을 멈춘 미연이 주전부리를 가져왔다. 그녀는 주전부리가 담긴 플라스틱 통을 그의 겨드랑이 사이에 끼우고 그의 허벅지에 자신의 머리를 올린 후에야 다시 재생을 눌렀다.

이제 본격적인 휴식 시작.

“오빠, 아~”

미연이 입을 벌리자 경완은 그녀의 입에 주전부리를 넣어주었다. 그녀가 고른 주전부리는 참깨가 뿌려진 스틱형 과자였다.

띠리리~

그런데 그때 초인종이 울렸다. 이 저녁에 찾아올 인간이 있었던가?

미연이 일어나고 경완이 인터폰을 확인했다. 찾아온 이들은 경찰청장과 서울지검장, 그리고 국정원 제3차장이라는 사람이었다.

들어온 세 사람이 거실에 앉았지만 어색할 정도로 침묵이 흘렀다.

미연은 긴밀히 이야기하라며 안방으로 들어가 버린 상태라 경완의 차가울 정도로 무심한 얼굴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그의 표정을 마주하고 있는 세 사람은 자기소개만 했을 뿐 경완의 그런 분위기 때문에 감히 용건을 꺼내기 위해 입을 열 생각을 하지 못했다.

경완이 입을 열었다.

“무슨 일로 오셨나요?”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국정원에서 나온 서충헌이라는 사람이 입을 열었다.

“상황이 심각합니다.”

“무슨 상황이요?”

“지금 강력한 초능력자 집단이 이 나라의 헌정 질서를 무너뜨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쿠데타라도 벌어진대요?”

“…….”

“아~ 이런 걸로 신이 나면 안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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