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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전생 더 빌런-270화 (270/367)

무한전생-더 빌런 270화

26-빌런본색

“내 과거 행적을 보면 알겠지만, 난 더러운 인간에게 이익이 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아. 그래서 우선 범인이 모방범인지, 그리고 정말 네 아버지가 결백한지부터 알아볼 거다.”

“제 아버지는 결백해요!”

“그건 모르는 일이야.”

경완의 냉정한 시선에 김배진은 흠칫했다.

“가족사진이라는 노래의 가사 중에 이런 말이 있다.”

-나를 꽃 피우려 거름이 된 부모님께.

그렇게 스스로를 썩혀 거름이 된 부모도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손에 피를 묻혀서라도 자식의 앞길에 레일을 깔아주고 싶은 부모도 있었다.

일례로, 태종 이방원이 손에 그렇게 피를 묻히지 않았다면 세종대왕은 결코 양반들의 반대를 이겨내고 한글을 반포할 수 있는 왕권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네 아버지도 그랬을 수 있지.”

“아니에요!”

“아닐 수도 있지. 하지만 나로서는 확인하지 않으면 도울 수 없어. 돕기 싫다.”

“…….”

“납득이 안 되면 아예 관여하지 않으마.”

“……도와주세요.”

“진실부터 밝히겠다는 거에 동의하니?”

“……네.”

김배진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경완은 박수로 주의를 환기하며 말했다.

“그럼 테스트부터 하자.”

“네?”

“오늘 테스트하는 날이잖아?”

“…….”

경완의 말에 김배진은 물론이고 이미 테스트를 치른 다른 아이들까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지금 아버지가 살해당했다는 아이를 위로해 주진 못할망정 어찌 저렇게 냉정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너무나 오래 살아서 한 꼰대력 하는 경완은 그런 아이들의 표정에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다음과 같이 꼰대력을 발휘했다.

“인간은 모두 언젠간 죽어. 죽음에 대한 애도는 필요하지만 언젠간 일상으로 돌아와야 하고, 그건 빠를수록 좋다.”

“강사님, 너무해요.”

강미령이 불퉁한 어조로 따졌지만 경완은 요지부동이었다.

“너무하든 말든 내 말은 사실이고 어쭙잖은 공감은 사람을 망치는 지름길이야. 김배진이.”

“……네.”

경완이 김배진을 보자 소년은 가라앉은 어조로 대답했다.

“지금 네 딱한 처지에 공감 안 해주면 막 죽을 것 같고 삶을 놓아버리고 싶고 그래?”

경완의 말에 소년은 고개를 저었다.

경완이 도와주지 않는다고 했다면 혹시 모르지만 그는 분명 조건부로 도와준다고 했다. 그러니 자신의 슬픔에 공감해 주지 않는다고 해도 괜찮았다.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을 밝혀내고 범인을 잡을 수만 있다면.

말 없는 김배진의 대답에 경완인 강미령을 돌아보며 으스대며 말했다.

“봤지?”

“정말 싫어.”

그리고 강미령은 여태까지 보여준 적 없는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경완은 그러한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김배진에게 말했다.

“테스트 준비는 해놨어?”

“……했어요.”

“문제없지?”

“없을 거예요.”

경완은 고개를 끄덕였고 김배진은 테스트를 시작했다.

신체변형능력자이자 청각 에스퍼인 김배진의 테스트는 위버멘쉬의 커리큘럼에서 나온 족보에 경완이 살짝 손본 것이었다.

“준비.”

경완의 말에 김배진은 날카로운 단검을 들었다.

“시작.”

“큭!”

“꺅!”

김배진은 단검을 들어 테이블 위에 놓인 자신의 손등을 콱 찍었고 그걸 보던 홍일점 강미령의 입에서도 비명이 나왔다.

테스트 내용이 이렇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직접 보니 평정심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피는 흐르지 않았다. 신체변형능력이 작용 중이라 신체의 물성이 변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단검은 김배진의 손을 관통하고 테이블에 박혀 있었고, 소년은 그 상태로 단검에 박혀 있는 손을 천천히 당겼다. 손은 마치 점토처럼 천천히 단검을 빠져나왔고 완전히 아물었다.

언젠가 경완이 말했던 힐링팩터 같은 능력으로써 신체변형능력의 응용형이었다.

아직 완벽하진 않았다. 능력이 발동하고 있는 와중에만 부상을 복구할 수 있었고, 능력이 발동하지 않은 와중에 입은 부상은 자연치료나 다른 치유능력자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경완은 김배진의 단검 시험을 확인하고는 다른 아이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차후 지도 방향에 대해서 설명했다.

“다음엔 화상과 동상에 대한 회복 능력을 확보하는 게 과제다. 이번에도 그랬듯이 그때도 통각 조절이 중요하니까 유념해 둬라.”

“네. 그럼…….”

김배진의 간절한 눈빛을 본 경완이 아이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오늘 테스트는 여기까지고, 과제 내용에 대한 강습은 다음 시간에 한다. 그리고 공부해라, 공부. 누누이 말하지만 지식은?”

“““““…….”””””

“지식은?”

“““““힘이다…….”””””

경완은 힘없이 대답하는 아이들을 보며 짝하고 손뼉을 치면서 말을 이었다.

“그럼 해산. 김배진 너도 집에 가라. 네 아버지 일은 내가 따로 알아볼 거다.”

“제가 할 일은 없나요?”

“기다리는 게 돕는 거야. 아참! 그리고 내가 끼어들었다는 거 비밀로 해라. 경찰이나 검찰에서 아는 순간 손 뗄 거다. 김배진 말고 다른 녀석들도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지?”

경완의 경고에 김배진이 동기들을 간절한 눈으로 보았다. 친하진 않았지만 제발 비밀을 지켜주길 바랐다.

경완은 어색한 분위기의 아이들을 두고 날아올랐다.

아래로 아이들이 모여서 김배진을 위로하며 뭐라고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아마 비밀을 지켜주겠다고 약속하는 대화이지 않을까?

경완은 그 장면에 이유 모를 씁쓸함을 느끼며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곧장 김준에게 연락했다.

[그러니까 김배진의 아버지가 살해당한 사건에 대해서 조사해 달라고요?]

“정확히는 죽은 이유에 대해서요. 그 동기가 뭘까 라는 거죠.”

[경완 씨는 판검사 살해 사건에 관여하지 않으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네, 관여하지 않을 이유가 있다면 관여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다른 말로 관여할 이유가 있다면 관여할 생각이라는 뉘앙스에 김준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김배진이라는 소년이 가엽네요.]

김배진의 부친이 무고하면 왜 무고한 부친이 살해당했는지 고통스러워할 것이고, 부친에게 자식에게도 밝히기 부끄러운 과거가 있다면 그것대로 고통스러울 것이다. 어느 쪽이 더 낫다고 말하기 어려운 업보.

“그래도 할 일은 해야죠.”

경완은 냉정하게 말했다. 내가 죽어도 지구는 돈다. 모두가 저마다의 짐을 짊어지고 살아간다. 어떤 인생을 살아갈지는 결국 김배진의 결정에 달려 있었다.

김준은 길게 고민하지 않고 경완의 부탁을 수락했다.

[알았습니다. 알아보죠.]

“혹시 모르니까 한국 정부 기관이 제가 그 사건에 관해 조사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안 됩니다.”

[왜요?]

“왜긴 왜요? 무고한 사람으로 위장해서 절 끌어들일 수도 있으니 말이죠.”

국정원, 경찰, 검찰 관계자들이 다 찾아왔다. 그 셋이면 비리 검사도 천하에 다시 없을 청백리로 둔갑시킬 능력이 있었다.

[그럴 수도 있네요.]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면 재밌을 것 같기는 해요.”

[뭐가요?]

“김준 씨는 통수 맞은 걸 어떻게 갚아줄까 고민할 때 즐겁지 않아요?”

경완의 말에 김준은 중국을 떠올렸다. 서울 참사로 인해 한국은 많은 고통을 받고 있지만, 중국의 고통은 현재진행형이었다.

김준은 경완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확실히 조사하겠습니다.]

솔직히 한국계라고 해도 한국이라는 나라에 약간의 호감은 있어도 애국심은 없는 김준이라지만, 일단 한미는 동맹 관계이고, 본인은 그 동맹관계를 중하게 여겨야 하는 공무원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통일 한국의 발전을 기대하고 주식에 투자해 놓은 그였다.

그런데 경완이 갑자기 한국 정부 기관과 척을 지면 그 여파가 어디까지 미칠지 예측이 안 됐다.

그는 CIA 인맥을 통해서 한국의 검찰, 특히 김배진의 부친에 대한 첩보와 찌라시를 수집했고, 가공 없이 그대로 경완에게 가져갔다.

“양이 많네요?”

왜 정리 안 하고 들고왔어? 라며 질책하는 뉘앙스에 김준은 이렇게 대답했다.

“편견 없이 판단하라고요.”

“인정.”

경완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유출된 진실들을 감추는 방법에는 수많은 정보나 관심을 끌 만한 다른 이슈로 덮어버리는 방법도 있지만, 김배진의 부친에 관련된 일에서 김준이나 미국이 그런 식으로 그를 속일 이유는 없었다.

경완은 찬찬히 태블릿을 훑어보았다. 자료가 많았기 때문에 한참을 보다가 어느 소문 하나를 발견했다.

“과거 상사의 지시를 받아 수사 하나를 뭉갰다는 소문이 있네요?”

“아는 사람은 아는 소문이라는군요.”

이런 소문까지 수집하다니. CIA의 정보력은 보통이 아니었다. 아니, CIA, 미국에 협조하는 한국인이 많다는 소리가 아닐까? 아니면 누군가 SNS에 생각 없이 적은 글이 걸려서 첩보로 올라갔다든지.

경완은 CIA의 첩보력에 감탄하면서 김준에게 물었다.

“이 수사가 어떤 사건에 관련된 수사인지는 모르고요?”

“그건 아마 검찰 캐비닛에 있을 겁니다.”

“하여간, 쯧쯧.”

경완은 혀를 차며 다른 걸 물었다.

“그래서 김배진의 부친을 죽인 범인이 모방범일 가능성은요?”

“수사기관에선 거의 없다고 보고 있습니다. 장소가 집인 건 맞지만 남겨진 메시지의 내용과 필체는 동일하거든요.”

“그 왓치독 어쩌고 하는 거요?”

“네.”

Who is watching the watchdog? 감시자는 누가 감시하는가?

다른 건 몰라도 범인이 평소에 사법체계에 유감이 많은 건 확실했다.

“혹시 사건이 일어난 장소가 어딘지 알아요?”

“직접 조사하게요?”

김준이 반문하자 경완은 고개를 끄덕였다.

“범인에게 직접 물어봐야 이유가 명확해질 것 같아서요.”

“그 말을 들어보니 한국 수사 기관의 도움을 받을 생각은 아닌 것 같고…….”

경완은 고개를 끄덕이며 김준을 보았다.

그 시선에 담긴 의미에 김준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저기, 경완 씨. 행정에는 관할권이라는 게 있거든요.”

아무리 미국 CIA라도 한국땅에서 꼴리는 대로 할 수는 없었다. 특히 판검사 살해 사건처럼 한국 수사 기관들이 불을 켜고 있는 범죄에 관여하는 걸 본국에서도 허락할 리 없었다.

경완은 완곡한 김준의 거절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수 없죠. 알아서 하는 수밖에.”

그리고는 알아서 하기 위해 정호태 지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경완 씨가 이렇게 먼저 전화를 걸다니. 놀랍네요.]

아니 왜 자신이 전화를 걸면 이런 반응이 나오는 걸까?

경완은 자신이 그렇게 사회생활을 안 하나 싶어서 자신의 일상을 되돌아보고는 일단 제쳐놨다. 찔리는 부분이 많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

“혹시 김배진 학생의 일, 알고 계십니까?”

[잘 알죠. 위버멘쉬 코리아의 귀한 인재이지 않습니까?]

아예 위버멘쉬 소속이 되는 걸 기정사실로 생각하는 정호태 지부장에게 경완이 말했다.

“혹시 어떻게 된 일인지 정보를 알 수 있을까요?”

[음, 이건 김배진 학생의 사생활과 관련된 일이기도 해서…….]

“그게 말이죠.”

경완은 김배진과 한 약속을 설명했다.

[흐음. 그래서 물어보시는군요.]

정호태 지부장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결심이 섰는지 김배진의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다.

[김배진의 부친인 김견민 씨는 우수한 성적으로 연수원을 마친 인재였습니다.]

그리고 서울중앙지검에서 나름 충실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지방으로 발령을 받았다. 지방으로 갔다가 서울참사로 인한 공백 때문에 수원지검으로 복귀했고.

“이유는요?”

[일단은 자발적인 전출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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