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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전생 더 빌런-272화 (272/367)

무한전생-더 빌런 272화

26-빌런본색

경완의 말에 마리아 소장은 안심하고 연구소로 돌아왔지만 당장에 그를 연구에 동원할 순 없었다.

“일단 제 일부터 빠르게 처리하고 올게요.”

“기다리죠.”

마리아 소장은 경완의 말에 수긍했다. 천리안 장비를 동원하고도 추적에 실패한 용의자를 언제 잡겠다는 건지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딴 곳에 마음이 가 있는 상태에서 자기 일을 돕는 건 바라지 않았다. 효율이 안 나오기 때문이었다.

한편 소득 없이 돌아온 경완은 고민에 잠겼다.

사건 현장에서 증거를 얻는 것은 실패했다. 그렇다면 귀찮지만 다른 방법을 쓰는 수밖에.

형사들을 봐라. 결정적인 증거가 없을 땐 잠복수사를 하는 경우가 있지 않은가?

경완도 잠복수사를 하는 것이 범인의 꼬리를 잡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현장에서 실감한 범인의 증거 소각 능력을 생각했을 때 사건이 일어나고 난 후에 추적하는 것은 별로 효과가 없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자신이 그 귀찮은 잠복수사를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경완은 김준에게 연락했고 그는 어떤 자료를 들고 경완의 집에 방문했다.

“이게 요청하긴 명단입니다.”

“오~ 이게 바로 검찰 카르텔인가 하는 건가요?”

경완의 감탄사에 김준은 손을 내저었다.

“거기까진 아닙니다. 그저 겉으로 드러난 친분관계를 관계도로 만들었을 뿐입니다.”

그것이 카르텔의 성격인지, 아니면 단순히 친한 친분 정도인지 알 도리는 없었다. 엘리트 카르텔을 정리하기 곤란한 이유가 이처럼 그 경계선이 어디 있는지 모를 모호함 때문이었다.

경완은 고개를 끄덕이며 김준이 준 명단과 관계도를 살폈다. 관계도는 마치 마인드맵 같은 모양으로 이미 죽은 판검사를 중심으로 여러 이름이 선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다음 피해자가 누가 될지 예측할 수 있겠습니까?”

김준의 물음에 경완은 뭘 잘못 먹었냐는 눈빛으로 김준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김준은 자신이 혹시 말실수를 했나 자신의 발언을 뒤돌아보았다. 도대체 어느 부분이 거슬린 거지?

의아해 하는 그에게 경완이 입을 열었다.

“아니, 고작 직위하고 이름만 알려줘 놓고 그걸 어떻게 알아요? 과거 무슨 재판을 했다, 누구를 불기소했다, 이런 정보도 있어야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지.”

“정말입니까?”

“아니요.”

정말이라고 대답하면 그러한 정보도 구해다 줄(경완의 새로운 면모를 시험이라도 해보라고 지시를 받은 모양이었다) 김준의 기세에 경완은 고개를 얼른 저었다.

“그럼 왜 그 명단을 부탁한 겁니까?”

“혹시나 해서요.”

마음에 품어놓은 구상이 있기는 했지만 말해줄 생각은 없었다. 비밀을 지키고 싶으면 자신의 입부터 조심해야 하는 법이니까.

착각하면 안 된다. 김준은 경완의 편이 아니라 미국의 편이었다.

김준이 찜찜해하면서 돌아간 후 경완은 손에 들린 명단을 활용했다. 명단에 실린 이들을 찾아간 것이다. 물론 대놓고 찾아가면 소동이 일 테니 아무도 모르게 몰래 접근했다.

경완은 잠든 그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몸에 S입자 구성체를 심었다.

그건 마리아 소장의 구출을 위해 그녀의 몸에 심은 마커와는 성질이 달랐다. 그것은 심어진 숙주가 죽으면 주변에 있는 일정 농도 이상의 S입자 덩어리에 달라붙도록 설정해 놓은 마커였다.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명단의 모든 이들에게 한 것도 아니고, 그저 판검사 살해범이 가장 죽이고 싶은 놈이 어떤 놈일까 상상하며 가장 가능성 높은 판검사부터 추적 마커를 심어놨을 뿐이니까.

솔직히 미연이 깨지 않도록 몰래 나가는 게 더 어려웠다.

그의 계획이 사람의 목숨을 미끼로 삼는 짓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었고, 그런 걸 괜히 그녀가 알게 해서 심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아무튼, 경완이 하루하루 적당한 인물에게 마커를 심는 작업을 하던 와중에 또다시 판검사 살해범이 범행을 저질렀다. 피해자는 전직 차장 검사를 지내고 대형 로범에 들어간 전관변호사였다.

그 소식에 경완은 아차! 저런 사각지대가?! 하며 놀랐지만 별수 없었다. 그는 전지전능하지 않았고 전관변호사도 한둘이 아니었으며, 무엇보다도 김준에게 관련 전관 변호사 정보를 요청하기가 찜찜했다. 그게 다 빚이 아니겠는가?

어차피 비밀리에 일을 진행하는 이상 먹잇감이 있는 곳에 덫을 놓고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는 전략이 당장엔 가장 편한 최선의 방법이었다.

그렇게 전관 변호사 피살 사건이 벌어진 지 열흘쯤 지났을 때 검사 한 명이 살해되었다.

도대체 수사기관은 뭐하고 히어로 컴퍼니는 뭐하냐는 비난이 솟구치는 와중에 경완은 뉴스 속보를 보자마자 움직였다.

피살되었다는 검사가 경완이 김준으로부터 얻은 명단에 있으며, 또한 추적마커가 심어져 있었던 검사였기 때문이다.

경완은 사건 현장인 검사의 자택에서부터 이어지는 S입자의 자취를 쫓았다.

다행히 그가 만든 마커가 범인에게 잘 달라붙은 것을 남은 자취로 알 수 있었다. 평범한 S입자가 아니라 한 차례 가공을 거쳐 성질이 무거워진 S입자는 땅에 가라앉아 며칠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자취를 남겼다.

경완만이 알아볼 수 있는 미세한 자취였지만, 그는 혹여나 수사기관이 데려온 초능력 수사관이 그 흔적을 발견할까 봐 자취를 지워가며 움직였다. 그리고 범행 현장에서 좀 떨어진 곳에서 한 남자가 경완의 마커를 발목에 달고 걷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경완은 걸음을 바쁘게 옮겨 그 남자의 걸음을 따라잡았다.

그리고는 옆에서 고개를 내밀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

“아아, 너무 그렇게 놀라지 마요. 잡으러 온 건 아니니까. 잠시 대화라도 좀 할 수 있을까요?”

경완은 사람 친절한 미소를 지으면서 남자를 보았다.

나이는 40대 중반으로 보였지만, 자기관리를 잘했는지 몸이 탄탄해 보였다. 얼굴은 못생기진 않았고, 중후한 매력이 있었다.

남자는 경완을 보며 잔뜩 긴장했다. 경완이 누구인지 아는 모양이었다.

경완도 감각을 끌어올리며 언제든 반격을 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추며 남자를 설득했다.

“저도 경찰 몰래 왔거든요. 그냥 인적 없는 곳에서 얘기만 하자는 거예요.”

경완의 말에 남자는 주변을 살피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둘은 인적 없는 공터로 향했다. 역시 가장 만만한 건 방치된 사유지, 즉 버려진 공장이었다.

사람없는 공장으로 이동할 때까지도 범인은 얌전하고 협조적이었다. 경완과 싸우고 싶지 않다는 느낌이 팍팍 풍겼다.

“전…….”

남자가 입을 열자 경완이 서둘러 말을 잘랐다.

“아! 이름이 뭔지, 어디 사는지 자기 신상에 대해서 구구절절이 말할 필요는 없어요. 전 그냥 김견민이 죽어야 하는 이유가 뭔지 궁금해서 온 거니까요.”

“…….”

“김견민 알죠? 수원지검의 죽은 검사.”

경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남자는 긴장한 태도로 물었다.

“혹시 그자와 친분이 있습니까?”

“그건 아니지만 지금 중요한 사항도 아니죠. 전 질문을 할 거고 당신은 정직하게 답해야 하니까.”

경완의 친절한 미소에도 불구하고 분위기는 더 무거워졌다.

그가 말을 이었다.

“그쪽은 제가 누군지 알죠?”

남자가 불안해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경완이 말했다.

“그럼 거짓말하지 말고 최대한 정직하게 말해주셨으면 해요. 김견민이 죽은 이유는 뭔가요?”

경완의 말에 남자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김견민.

사법연수원 성적 탑 4위권의 인재.

하지만 그는 그런 뛰어난 성적으로 연수원을 나오고 나서도 판사가 되지 않고 검사가 되었고, 서울중앙지검으로 들어왔다.

서울지검으로 들어온 그는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승승장구할 것 같았지만 줄을 잘못 선 바람에 수원지검으로 잠시 밀려났다.

공부를 아무리 잘해봤자 결국 지연, 학연, 혈연을 비롯해 사회적 인맥이 모자라면 소용없다는 것을 모든 검사들의 뇌리에 각인시킨 인물. 그것이 김견민이었다.

아무튼 그가 줄을 붙잡기 위해 선배들의 부탁을 들어준 일이 몇 개 있었다. 말이야 부탁이지만 상식적인 관점에선 명백한 독직이자 기소권의 남용이었다.

기소권을 남발하는 식의 남용이 아니라, 명백히 기소해야 할 사항인데 기소하지 않는 남용. 혹자는 그것을 직무태만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지만, 직무태만 따위의 소극적인 태도가 아닌 어떻게든 구실을 만들어 기소를 안 하려고 하는 적극적인 불기소는 기소권 남용의 또 다른 형태였다.

그리고 그 사건 중에 김견민이 죽어야 하는 사건이 있었다.

일가족 교통사고 사망사건.

교통사고를 낸 범인은 재계 30위권 안에 드는 그룹의 3세로 운전 당시 마약에 취해 있었다.

그리고 김견민은 그 교통사고를 불기소했다.

“그게 다예요?”

“그게 답니다.”

“피해자와의 관계는요?”

“모르는 사이입니다.”

경완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김견민의 일을 어떻게 알았어요?”

왜라고 묻지는 않았다. 판검사 살해범이 판검사를 죽인 이유가 표면적으로 드러난 그것으로도 충분하니까.

‘Who is watching the watchdog?’

고작 기분 나빴다거나 말실수했다고 사람 죽이는 일에 비해선 건전하기 그지없는 동기 아닌가?

경완의 물음에 남자는 대답했다.

“저는 사람의 기억을 읽을 수 있습니다.”

“거짓말을 밝혀내는 게 아니라?”

“네.”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경완은 남자의 몸에 은밀히 뻗은 검은 연기의 염동력을 통해 남자가 긴장은 했지만 거짓말은 하지 않고 있다는 신체신호를 읽을 수 있었다.

“그럼 도와주는 사람 없이 혼자서?”

“…….”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경완은 사실상 그 대답이 조력자의 존재를 인정하는 대답임을 알 수 있었다.

조력자의 존재를 언급하기엔 동료를 팔아먹는 것 같고, 그렇다고 말을 안 하기엔 진실의 스무고개로 유명한 이경완이 눈앞에 있으니 입을 다물 수밖에.

경완이 파악한 진실은 이러했다. 김배진의 부친 김견민은 검찰 카르텔의 일원이었고, 판검사 살해범의 뒤에 있거나 혹은 그를 이용하는 배후에 있는 누군가는 이유를 모르겠지만 검찰 카르텔을 제거하고 있었으며 판검사 살해범은 개인의 신념을 이유로 이러한 활동에 협조하고 있었고, 김견민은 이 거대한 판에서 소모된 졸에 불과하다는 것.

여기서 경완이 느낌 감상은 굳이 끼어들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선악이 불분명한 이 판에 끼어들어 봤자 번거롭고 피곤하기만 하고 얻을 수 있는 것도 그에겐 의미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김배진이었다.

약속을 한 이상 그 소년에게 경완이 이 일에 끼어들지 않을 거라는 걸 이해시킬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김견민 씨가 그런 인간이라는 걸 증명할 자료나 증거가 있나요?”

“……없습니다.”

“흐음. 곤란하네…….”

정보를 얻고 기억을 읽는다는 본인의 능력으로 검증했을 테니 굳이 증거 자료가 필요할 리 없었다. 있다고 해도 정보를 넘겨준 조력자에게 있겠지.

경완은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당신 도와주는 사람들에게 전해줘요. 김견민이 죽어야 했던 이유, 그 증거, 찾아서 가져오라고요. 아니면 내가 걔들 꼬리 잡으러 다닐 거라고.”

협박하기로 한 것이다.

“아! 댁에겐 신경 안 쓸 거예요. 댁은 죽든 말든 자수하든 알아서 하시고.”

정확히는 판검사 살해범을 협박하는 게 아니라 그의 뒤에 있는 누군가에 대한 협박이었다.

“내일 저녁 저기 전봇대 위에 걸어둘 수 있어요?”

“……모르겠습니다.”

“돕는 사람들에게 말해 주려면 얼마나 걸리는데요?”

“…….”

남자는 입을 다물었다.

경완은 이해했다. 그의 물음은 접선 방법에 대한 질문이나 마찬가지였고, 접선 방법의 노출은 그들의 활동방식을 추적할 단서가 될 테니까.

이런 일을 많이 해봤는지 철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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