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전생-더 빌런 274화
26-빌런본색
서울지검장이 언성을 높였다. 그리고 경완은 그를 향해 입에 검지를 대며 미소와 함께 말했다.
“그렇게 소리를 지르면 이웃집에서 민원 넣어요.”
건설업체들이 무주택자 돈 좀 빨겠다고 방음도 잘 안 되게 날림으로 지은 아파트와 경완의 번듯한 주택의 방음능력이 비교가 되겠는가?
그런데도 굳이 이웃집 민원이라는 핑계를 넣은 것은 조용히 하라는 경고였는데 흥분한 서울지검장은 당최 이해하질 못했다.
“이 자료를 어떻게 얻었는지 알아야겠소!”
“왜요? 그게 중요한가요?”
“중요하지! 당신이 테러리스트와 결탁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경완은 자신의 경고를 이해하지 못하고 계속 언성을 높이는 서울지검장을 향해 딱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참 이상한 일 아닌가? 공부 잘한다는 사람들이 판검사가 될 텐데, 왜 이렇게 멍청할까? 이런 멍청이가 서울지검장 자리까지 올라간 것이 신기했다. 아! 사회적 관점에선 신기하다기보다는 비극적인 건가?
경완은 딱하다는 표정 그대로 비아냥거렸다.
“고작 부패한 법조인 좀 죽였다고 테러리스트라니. 누가 들으면 판검사가 국가 존엄인 줄 알겠어요.”
“뭐라고?!”
“아 좀 소리 좀 지르지 말라는 말을 직접 해야 알아듣겠어요?”
“…….”
짜증이 난 경완이 인상을 찌푸리자마자 서울지검장은 입을 다물었고, 경완이 굳이 거기에 사족을 달았다.
“명색이 서울지검장이라서 체면 세워주려고 돌려 말했는데도 이해를 못 하네, 쯧쯧. 지검장이라는 사람이 이렇게 눈치가 없어서야. 검찰이 어찌 되려고, 쯧쯧쯧.”
경완의 말에 서울지검장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부끄러워서인지 화가 나서인지는 경완이 알 바 아니었다.
“언성을 높인 것은 사과합니다. 하지만 경완 씨가 이 자료를 어떻게 얻었는지는 정말 중요한 문제입니다.”
서충헌 차장이 끼어들어 분위기를 환기했다.
경완은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미국에 부탁하니 구해주던데요?”
뻔뻔한 거짓말에 서충헌 차장이 더욱 굳은 표정으로 반박했다.
“이 자료는 미국에서도 제공할 수 없는 자룝니다. 특히 이 수사자료는요.”
“그걸 어떻게 확신해요?”
“확신할 수 있는 근거가 있습니다. 그리고 질문으로 말 돌리지 마십시오.”
경완의 언변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의지가 단단했다.
경완은 어깨를 으쓱했다.
“제 말 맞다니까요. CIA에서 구해줬나 보죠.”
“CIA에도 구할 수 없는 자료입니다.”
“검찰에 CIA 협조자가 있나 보죠.”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모를 리 없습니다.”
“그걸 어떻게 알아요?”
“미국과 저희는 혈맹이니까요.”
“…….”
“…….”
경완은 말이 없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혈맹이면 뭐? 뒤통수 안 친다나? 국익 앞에서 냉정한 게 국제사회였다.
“그게 무슨 관련이 있는데요?”
“이런 중요한 기밀 자료를 빼내 가면서 언질 한 번 안 해줄 리 없죠. 나중에 외교적으로 큰 문제가 될 테니까.”
경완은 손을 내저으며 이렇게 반박했다.
“겨우 독직검사의 부패자료가 중요한 기밀일 리가 없으니까 그랬겠죠. CIA에서 검찰 캐비닛에 보관되어 있던 부패검사 자료 좀 빼내간다고 말해주는 게 오히려 곤란하지 않나요?”
사소한 자료를 빼내 가는데 굳이 알려줄 필요가 있나? 그리고 빼내가는 자료의 성질상 차라리 말 안 해주는 게 낫지 않나?
그래야 청문회 같은 곳에서 모르겠습니다,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같은 발언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며 면피할 명분이나 챙길 수 있지.
그런 경완의 말에 서충헌의 얼굴이 옆에 있던 서울지검장처럼 붉어졌다.
“도무지 말이 안 통하는군요.”
“내 말이.”
맞장구를 치며 고개를 끄덕이는 경완의 모습이 사람을 더욱 기가 차게 만들었다.
“정말 이 자료를 어떻게 얻었는지 말하지 않을 생각입니까?”
“이건 뭐 답정너네요.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서는 결백을 증명하려면 판검사 살해범을 추적하든 잡든 하라는 겁니까?”
“…….”
“허! 이 씹새들이.”
순간 당황해서 말을 잇지 못하는 서충헌의 모습에 경완은 어이가 없어졌다. 의식의 흐름에 따라 되는대로 내뱉었는데 설마 그게 정답일 줄은 경완조차 예상하지 못했다.
그렇다. 애당초 저 새끼들에게 자료의 출처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명분을 쥐고 흔들어서 경완을 판검사 살해범을 쫓을 사냥개로 부리려던 것이 방문의 목적이었다.
정말 CIA에서 준 자료라고 해도 상관없었다. 경완이 김배진에게 건네준 자료는 절대로 적법하게 얻은 것일 리 없기 때문에 그 부분도 충분히 물고 늘어질 수 있었다.
“아니 그게,”
“꺼져. 뒤지게 처맞기 전에.”
그나마 대화에 끼어들지 않아서 상황을 냉정하게 보고 있던 경찰청장이 끼어들었지만 경완의 실력행사를 막을 순 없었다.
검은 연기가 세 사람의 목을 움켜쥐고는 그대로 대문 밖으로 던져버렸다. 공중 3미터로 던지지 않은 것만 해도 경완이 많이 참아준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멈출 순 없었다. 저 새끼들이 괘씸하기 때문만은 아니요, 경완이 뒤끝 있는 인간이기 때문만도 아니었다.
이대로 끝낸다고 저 새끼들이 반성할까? 절대 아니었다.
경완은 저들의 반성을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저런 새끼들이 반성할 리가 있나?
그저 저 새끼들에게 함부로 자신을 건들면 그만한 대가가 있다는 ‘교훈’을 척추에 각인시키는 것이 그가 원하는 전부였다. 그래야 다음부터 이딴 식으로 간을 볼 녀석들이 튀어나오기 전에 한 번 더 고민하지 않겠는가?
그는 즉시 수화기를 들고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무슨 일입니까, 경완 씨?]
“아이고~ 공사다망하신 우리 이관영 차장님. 혹시 시간 날 때 잠시 들려주실 수 있나요?”
경완의 연락을 받아 불려나온 이관영은 떨떠름한 기색이었다. 그간 그와 경완의 관계는 이관영이 경완에게 용건이 있는 형태였지 경완이 이관영에게 용건이 있는 식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서충헌 차장에 대해서 말해봐요.”
“아, 그 친구요? 그 친구는 왜…….”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서요.”
경완은 순진무구한 표정을 지었다. 보아하니 이관영은 서충헌 차장이 서울지검장과 경찰청장이랑 경완을 찾아온 사실을 아직 모르는 눈치였다.
“아니 그러니까 왜 서 차장이 궁금합니까?”
아무리 일본 돈 빨아먹은 이중첩자 같은 국정원 차장이라고 해도 국정원은 국정원인지라 두루뭉술하게 넘어가 주질 않았다.
그래서 경완은 솔직하게 말했다.
“마음에 안 들어서 조지려고요.”
“.……네?”
“마음에 안 들어서 조지고 싶다고요.”
“어…… 이 선생님. 그러시면 안 됩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죽인다거나 병신을 만든다는 게 아니라 그냥 사회적으로 죽이고 싶다는 거죠. 그리고 그런 건 저보다는 이 차장님이 전문이잖아요?”
“제가요?”
이관영은 금시초문인 듯 눈을 크게 떴지만 경완은 시치미 떼지 말라는 뉘앙스로 말을 이었다.
“네. 검찰이랑 짝짜꿍해서 멀쩡한 사람 간첩 만들기가 특기인 게 국정원이잖아요.”
“오햅니다!”
“오해는 무슨. 중정 시절부터 용공조작에 무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더구먼. 아, 물론 북한도 없는 마당에 멀쩡한 국정원 차장을 간첩으로 만드는 게 무리라는 건 저도 알죠. 하지만 개인적인 비위 사실 같은 걸 발굴해서 옷 벗기는 건 이 차장님 같은 사람에겐 어렵지 않은 일이잖아요?”
“아니, 저 그게 그건 불법입니다.”
“민간인 사찰도 자주 하더만. 원래 국정원 같은 정보기관은 불법과 합법 사이를 오가면서 활동하잖아요. 걸리면 불법, 안 걸리면 합법. 이번에도 안 걸리면 돼요.”
“아니, 그건 좀 무리,”
이관영은 당황했다. 물론 국정원의 첩보능력이라면 한 사람을 터는 건 어렵지 않았다. 경완의 말대로 민간인 사찰도 하긴 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런 불법적인 일을 한 뒤가 문제였다. 국정원 요원들이 무슨 AI로봇마냥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한 후 편하게 기억 삭제를 할 수 있는 존재들은 아니지 않은가?
그들도 입이 있었기에 불법적인 일을 시키고 나면 입단속을 해줘야 했다.
그리고 그 입단속의 가장 확실한 방법이 권력이었다.
굳이 협박할 필요는 없었다. 뒷감당하고 싶지 않으면 입 다물라는 무언의 압력만으로 충분했다. 즉, 다시 말하자면 정권의 비호가 없이는 결코 민간인 사찰 따위는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뒷감당이 안 되기 때문이었다.
사실 민간인 사찰을 해서 국정원에, 혹은 거기에 소속된 개인에게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위험만 있지.
그렇기 때문에 그간 벌어진 민간인 사찰은 사실 정권의 의지일 수밖에 없었다. 국정원은 칼이며 칼이 제멋대로 날뛰는 걸 높으신 분들은 극히 싫어하기 때문인데, 소속원의 사사로운 이익 때문에 허락도 없이 민간인 사찰을 했다? 옷이 여럿 벗겨질 일이었다.
민간인 사찰마저 그러할진대, 지금 경완이 찍은 대상은 민간인이 아니라 무려 국정원 차장이 아닌가?
이관영 자신과 동급의 직위에 있는 이의 뒤를 파는데 과연 윗분들이 허락해줄 것인가? 그리고 그 정보가 서 차장 귀에 안 들어갈까?
그래서 거절하려고 하는데 경완이 그의 말을 자르며 말했다.
“아는 소스만 주세요. 증거 얻고 뿌리는 건 제가 알아서 할게요.”
“소스도 없습니다.”
“정말요?”
“네, 없습니다.”
“그 대답 제가 손잡고 해도 다시 할 수 있어요?”
“…….”
입을 다무는 이관영의 말에 경완은 그러면 그렇지라고 혀를 찼다.
국정원 활동의 대부분은 대외비였다. 국정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부터 37년간 사용된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는 원훈에서 알 수 있듯, 국정원은 원래 음지에서 활동하는 조직이었으며 국익을 위해서라면 불법도 마다치 않는 조직이었다.
얼마나 불법을 마다하지 않느냐면 인도네시아 대통령을 수행하는 특사단의 숙소에 침입까지 할 정도였다.
그런 짓을 하면 걸리지나 말지 굳이 들켜버리기까지 하는 무능함은 일단 제쳐놓고, 이는 당시 국정원장까지 날려 버리기 충분한 일이었지만 조용히 넘어갔다. 당시 국정원장이 국정원특활비를 당시 여당 실세에게 전달하면서 여론을 무마해 달라고 부탁했다나?
과연 음지에서 일하는 조직다운 수단이었다.
아무튼, 이런 조직이다 보니 개인 비위가 없을 리 없었다.
일본 돈도 받고 일본 극우단체도 지원하는 국정원인데 고작 개인 비리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 않을까? 참고로 영수증 따윈 없는 국정원 특활비였다. 정권 실세에게 상납도 하는데 개인 쌈짓돈으로 들어가도 밝힐 방법은 없었다.
“정 싫으면 마세요. 나중에 불똥 튀어도 제 탓하지 마시고요.”
“자, 잠깐만!”
어떻게든 서충헌 차장을 조지겠다, 그 와중에 네가 피해가 가도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패기에 이관영은 급히 외쳤다.
경완의 말이 ‘네가 돕지 않으면 판을 크게 벌이겠다’라는 협박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경완이 지금껏 해온 짓들을 보면 도대체 무슨 큰일을 벌일지 상상이 안 됐다. 초능력이 없었던 시절에도 국회의사당으로 차량을 몰고 돌진한 미친놈이었다.
“몇 가지 알고 있는 사실이 있기는 합니다만…… 서 차장도 알고 있습니다.”
이관영이 본인의 약점을 쥐고 있다는 사실을 그 본인이 알고 있다는 말이었다.
경완은 이관영의 말 이면에, 서충헌 차장도 이관영의 약점을 쥐고 있다는 배경을 읽을 수 있었다. 하긴 그러니까 서로 충돌하지 않고 각자의 영역에서 활동할 수 있는 거 아니겠는가?
야생의 맹수도 서로 싸우다가 다칠 것 같으면 서로 못 본 척 넘어간다. 맹수가 맹렬하게 같은 맹수랑 싸울 때는 본인의 영역, 사냥터, 즉 밥그릇을 위협할 때였다.